살면서 한번쯤 실연당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을까? 누군가는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였다는데 나는 실연당해보지 않은 사람과는 마음을 나누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한번쯤이라도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평탄한 기억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흘리는 눈물조차 밍밍해서 인생의 깊은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물으신다면
'사랑은 태동되는 순간 이미 식을 준비가 된 스프와 같다.'고 대답할 것이다.
막 끓여진 뜨거운 스프는 좋은 향과 감칠 맛을 담고 있지만 식어버리면 그 좋던 향과 맛은 다 사라지고 부드러웠던 감촉은 뚝뚝 끊어져버리는 처참한 몰골만 남겨지게 된다.
사랑이란게 그렇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눈물을 반찬 삼아 조찬을 하는 카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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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차와 유기농으로 차려진 식사, 그리고 영화제까지 준비된 그런 모임이 있다면 당신은 올 준비가 되었는가.
물론 한때는 찬란하게 빛나던 기억을 담은 실연의 훈장같은 물건을 가져오는 미션이 있다.
아주 오래전 불길한 그의 전화를 끊은 후 나는 그가 홍콩 어느 백화점에서 한참을 골랐다는 빨간색의 요염한 소니팩을 들고 만나러 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임을 난 알았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린 나이였는데 그의 기억이 묻어있는 그 팩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삶이 끝나버릴 것 같은 막막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그 순간에 말이다.
암튼 나는 그가 담담히 실연을 고하는 순간 그 팩을 이제 겨우 얼음을 뚫고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던 그의 신발옆에 조용히 내려놓고
등을 돌려 산길을 내려왔다. 그가 지금의 내 뒷모습을 어떻게 기억할까.
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뭐 그런 생각이 들었고 한참을 걸어 내려와 택시를 타고...잠시 기억을 잃었던 그 시간.
참 실연이란게, 아니 실연당한 그 순간이라는게 추하지 않기가 어렵다.
보여지는 영상뿐아니라 갈기갈기 찢어진 가슴을 주섬주섬 꿰어 맞춰 그 순간을 빠져나와야 하는 정신적인 쇼크는 누구라도 멋지게 보여질 수가
없다.
그래서 아주 먼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시대에는 그런 추함을 달래주고 치유해줄 카페가 등장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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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을 썼던 프랑스와즈 사강을 너무도 좋아해서 딸의 이름조차 '사강'이라고 붙였다는 남자는 한때는 열렬했겠지만 시시하게 막을
내리고 프랑스로 떠나 백인여자와 결혼하여 배다른 동생을 만들어줬다.
뭐든 완벽하기를 바랬던 사강의 엄마는 자신의 슬픈 결혼의 역사가 빠져나가자 그 아픔을 딸에게 고스란히 넘겨준다. 자신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떠난 것이 아닐까...하는 실패한 사랑의 당사자들은 대략 이런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다. 물론 자신이 실연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던 남자들이 몇 있었다. 다만 한 남자에게만 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었다. 너무도 완벽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남자에게 왜 사강은 끌렸던 것일까.
그것도 이미 아내가 있는 남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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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외조부모밑에서 자란 지훈은 자폐증을 가진 형 때문에 늘 깊은 우수가 깃든 남자다. 연 이어 외조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형을 돌보게 된 지훈에게 고등학교시절부터의 친구 현정은 유일한 여자이다.
교사이지만 자유분망한 현정. 그녀에게는 딸의 삶마저 좌지우지하고 싶어하는 괴물같은 엄마가 있다. 현정이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지훈에게 이별을
고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이미 현정이라는 세상에 최적화되어 살아가던 지훈에게 실연은 교통벌칙금 통지서 8장으로 날아온다.
그녀를 잃고 폭발할 것 같은 자신을 식히기 위해 정신없이 운전을 했다. 결국 자신을 잘 나가는 강사로 전국을 다니게 했던 애마는 팔수 밖에 없고 우연히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모임'에 참석해 현정에게 받았던 로모카메라를 실연박스에 집어 넣는 것으로 그녀와의 시간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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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도라는 여자가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시 조찬모임'이라는 특이한 모임을 만든 것은
순전히 사업적인 의도였었다. 그런 사람들끼리 다시 인연을 만들어주기 위한 결혼 정보회사의 간악한 눈속임같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공감하다 보면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 지는건 더 쉬울지도 모른다는 미도의 의도가 멋지게 성공한다.
'실연'이라는 사건으로 묘하게 얽히게 되는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고 극복해과는 이야기가 참 시리다. 어쨌든 실연이라는 아픔을 극복하려면 이런 모임이라도 만들어 서로의 상처를 보여줘야 빨리 아물게 된다. 만나야 다시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미도의 말에 한표!
실연이 무슨 전과도 아니고 그저 한바탕 지나가는 태풍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나이가 들어보니 실연조차 아름다운 추억이 되더라. 그 때 내가 실연이라는 태풍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때 미도같은 여자가 조찬모임에 초대했다면 좀 더 빨리 그 태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 백표!
그냥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을 봉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헤매이지 말고 일곱지 조찬모임에 참석해서 드르륵 박음질 하고 나오면 좀더 빨리 아물게 되겠지. 마침표가 있어야 끝나는 거니까.
읽는 내내 마음을 울리는 멋진 대사가 많아서 참 행복했다. 다만 지훈과 사강의 재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