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 - 인공지능 시대를 위한 교육 혁명
아라이 노리코 지음, 김정환 옮김, 정지훈 감수 / 해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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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를 더 선호하는 나로서는 과도한 기술 개발은 좀 불안하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븐 호킹박사는 지구종말은 빙하시대의 도래나 우주에서 날아오는
암석과의 충돌이 아니라 AI의 출현이 될 것 이라고 예견했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더라도 인간이 개발한 로봇이 결국 인간을 공격하고 멸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과연 영화속 이야기만이 될 것이라고 누가 단언하겠는가.
알파고가 바둑의 고수들을 차례로 격파했고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이 퀴즈대회에서
우승했다는 보도가 불안한 미래의 전조는 아닐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서? 더 안락한 생활을 위해서?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 멈추지 못하는 폭주기관차처럼 인류가 도달해보지 못한 그 어떤 것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이 많아진다.
여기 어찌보면 무모하다 싶은 도전을 하는 사람이 있다.
2011년 일본에서 시작된 인공지능 로봇 '도보로군'의 도쿄 대학 입학 프로젝트!
10년에 걸쳐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미 AI라고 통칭되는 인공지능은 우리생활 깊숙히 들어와있다.  지금 우리가 일하고 있는 직종들이 AI의 등장으로 절반 이상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실제로 공장견학을 다녀보면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자동화고 착착 물건이 만들어지고 있고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작동시키거나 관리하는 정도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할 일이 줄어든다는 것은 좋은 현상인가.


 


인공지능, 즉 컴퓨터가 내장된 AI의 학습의 원리는 바로 수학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원리가
이 수학으로만 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컴퓨터의 한계가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도보로군'의 대학 입학 프로젝트를 보면 수식으로 치환된 통계를 입력시키고 무한 반복을 통해
학습을 한다. 하지만 그 것으로만 뛰어 넘을 수 없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인간의 뇌과학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AI에게 빼앗기는 수많은 일자리중에 그래도 10~20년 후에도 남아 있을 직종이 있어서
안심이 된다. 대부분이 감성이 요구되는 직종들이다. 기계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 있다는 증명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AI가 진보하고 있는 반면 인간들의 뇌는 어떤 면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것들을 기계에 의존하고 살고 있는 아이들이 오히려 독해력이
떨어지고 뇌를 활용하는 일들이 점점 없어지는 것은 언젠가 AI에게 잠식당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바로 그 점을 주목한다. 인공지능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떤 교육으로 인간다움을 유지
하면서 잠식당하지 않고 살아갈 것인가.

'한줄기 광명은 있다'
그 광명의 빛 한줄기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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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 - 고통도 두려움도 없이 집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법
오가사와라 분유 지음, 최말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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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백세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분명 내가 살날은 살아온 날들보다 적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죽음이란 단어가 무겁게 다가온다. 오래 건강하게 살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겪으면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다가 죽는 것은 아닐지 그게 걱정이다.
잘 살고 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전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류까지 남겨두긴 했지만 오는 것은 선택이 없었으니
가는 것만큼은 선택할 수 있게 정신이 흐리지 않고 깔끔한 마지막을 맞고 싶다.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이란 제목을 보면서 박경리 작가가 남긴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이렇게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닌지 최근에 '우아한 죽음'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지막을 꿈꾸지만 사망자 네명중 세명이 병원에서 최후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전통에서는 집밖에서 죽음을 맞으면 시신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임종이 가까운
경우 집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장례식장에서 인사를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굳이 마지막을 집에서 마치고 싶다는 소망을 떠나서 말기 환자의 경우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사람답게 살다가 떠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의료법인 오가사와라 내과의 원장인 저자는 일본 재택호스피스협회 회장이고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고통스런 죽음대신 행복한 마지막을 보내도록 조언하는 의사이다.
말기암의 경우 끝까지 희망을 놓을 수 없어 항암치료를 하게 되고 그중 기적같이 회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치료로 인해 그 시간만 조금 더 연장했을 뿐 고통스런 죽음으로 향한다.


 

저자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어떤 죽음이 더 바람직한지를 제시한다.
병원에서 수액이나 맞으면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는 말기환자들을 퇴원시켜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을 보내도록 하고 심지어 좋아하는 일이나 술까지도 권한다.
이미 죽음은 기정사실인데 굳이 생전에 좋아하던 일마저 끊을 필요가 없다는 조언에 공감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겁이나서 병원에 있겠다고 마음먹은 환자라면 모를까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면 언제라도 퇴원해서 '재택 호스피스 완화치료'를 권한다.
어떤 환자는 이 과정에서 통증은 줄이면서도 사람답게 살다가 생각보다 오래 연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마음이 편해지니 몸도 좋아져서 고통은 줄이면서도 떠날 준비하는 기간이 충분해
진다는 것이다.


 


곁에서 돌보는게 힘들고 두려워서 병원에서 최후를 맞도록 하는 가족이라면 할 수 없겠지만
내가 만약 환자이거나 보호자라면 저자의 조언을 적극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재택 호스피스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몇 년전 방영된 사례에서도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잘 보내다가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어떤 죽음이 옳은 것인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오랫동안 호스피스 일을 하는 친구 수녀의 말이나 저자의 말은 일치한다.
더 없이 홀가분한 죽음, 더 없이 평화로운 죽음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의 선택은 어때야 하는지
해답이 있는 책이다. 언젠가 반드시 가야할 그 길에 선 우리 모두에게, 특히 이런 환자를 둔
가족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어떤 마지막이 행복한 길인지 선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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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마지막 공부 - 마음을 지켜낸다는 것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 청림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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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 연예인 정해인의 정약용의 6대손이라고 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정약용의 초상화를 보니 정해인과 그의 아버지를 퍽이나 닮아서 역사속 정약용이라는 인물이
바로 곁에 있는 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가 없는 조선을 상상할 수가 없다.
실학의 대가로서 평생 유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저서를 남긴
대단한 학자이며 실천가이고 종교를 이해하는 박학다식의 대명사가 아닌가.
그런 그가 삶의 마지막에 붙들었다는 책이 바로 '심경'이라고 한다.
'심경'이라는 책은 다소 생소한데 송나라 진덕수가 경전과 도학자들의 저술에서 심성 수양에 관한
격언을 모아 편집한 책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각종 명서에서 주옥같은 귀절만 추린 책이다.
과연 이 '심경'에는 어떤 주옥같은 글귀들이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내 인생의 걸림돌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라는 말이 뼈에 와 닿는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이다. 마음이 천국이었다 지옥이었다 하는 것은 결국
나의 선택인데 이게 쉽지 않다.


최근에 그동안 말려놓고 쟁여놓았던 생선을 지인들에게 나누어 보내고 텅빈 냉장고를 보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욕심껏 쌓아놓고 든든해지는 기쁨보다는 비우고 나누는 기쁨이
더 컸음을 깨달은 것이다. 흔히 중용의 도에 대해 얘기하는데 중용, 혹은 중도라 함은 본질에
맞게 덜어내고 보태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그렇게 덜어내고 보태는 일이 능할 수 있게
수련이 잘 되었다면 마음의 평정은 기본일텐데 말이다.


잘했든 잘못했든 그동안 걸어왔던 수많은 길에서 때로는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다시 돌아가 제대로 다시 하고픈 아쉬움들. 하지만 이런 시간은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의 길에서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잠시 잘못된 길에 빠졌지만 극단으로 가지 않고 곧 선한
본성으로 회복하는 것이 바로 돌아오는 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멀리 갔다면 돌아오는 길 또한 멀테니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조언한다.
작금에 보도되는 수많은 범죄뉴스를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조언을 듣지 못해, 혹은
들었더라도 이행하지 못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죄인이 된 것이다.


 


마음은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인생은 그런 마음과 투쟁하고 화해하는 긴 여정.
'공부'는 마음을 나다운 것으로 채우기 위한 과정.
이제 누군가 왜 공부를 해야하냐고 묻는다면 출세하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해진다.
정약용이나 퇴계 이황이 마지막에 선택한 책, 그리고 비로소 마음공부의 뿌리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게되었다는 '심경'에서 고른 글귀로 참된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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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 장애인과 어우러져 살아야 하는 이유 아우름 32
류승연 지음 / 샘터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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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도 이기심인지는 모르지만 가진 것 없는 소박한 삶을 사는 내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건강한 아이를 주셨다는 것이다. 내게 만약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었다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 평범하고 아름다운 미혼시절을 보내고 꿈같은 결혼생활을 보내다가 어렵게 얻은
쌍둥이 중 아들이 장애를 가졌다는 저자가 그렇다고 나보다 불행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고 한다던데 저자는 그 아이들 통해 더 많은 삶의
의미와 사랑을 배워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그런 아들을 주심을 감사한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나에게 그런 아이가 온다면 또 어떻게든 살아가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처럼 이렇게
더 많은 기쁨을 발견하고 더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만큼 그 길이 쉽지 않아 보이기에 더 그렇다.


 


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로서 마음 상하는 일이 어디 한 두번 이었을까.
스스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존에 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장애인 아들을 둔 죄인 엄마처럼 늘 죄송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단다.


 


하긴 겉의 장애는 큰 문제가 아님을 뉴스를 통해 너무도 많이 보고 있다.
멀쩡해 보이는데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죽이고 때리고 그래도 우러를만한
직업을 가진 의사며 검사, 판사들이 음주운전을 하고 몰카를 찍고 그런다.
누가 진정한 장애인일까.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폭력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더 어마어마하다는 것에 동감!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부부 사이도 엉망이었던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럼에도 저자가 전하는 장애인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법은 조금 어렵다.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대상화시키지 말아달라는데 힘들게 걸어가는 장애인을 봐도 무심한 척
지나가라는데 그게 인간적인걸까? 바른 일인걸까?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하는 일만이 공존하는 방법인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도록 손도 잡아주지 말고 시선도 주지말고 살아가는게 옳은일인지.
장애인의 숫자가 줄어든 것이 아닌데 거리에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가슴이 아프다.
많은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들이 그들을 집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해진다.
나도 지하철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왔다갔다 하는 장애아를 보면서 불편한 시선을 보낸 적이 많았다.
아주 아무렇지도 않은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오도록 마음을 정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수많은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분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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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거니?
송정림 지음, 채소 그림 / 꼼지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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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왔단다. 아직 가을의 여운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겨울은 뭐가 그리 급했을까.
올 겨울도 작년 겨울처럼 극악스러울까봐 벌써부터 목이 움츠러든다.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운 세상이 되어버려서 자꾸 겁이 난다.
누군가 따뜻하게 안아주거나 손만 잡아주어도 잠시 기운이 날 것만 같아 자꾸 기대고 싶어진다.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왜 자꾸 허전해지고 불안하고 서글퍼지는걸까. 계절탓인가.
분명 밥걱정없이 사는 세상이 왔건만 가슴은 더 가난해지고 서글퍼지는데 사람들은 홀로 서라고
자꾸 떠미는 것같아 나이가 들어도 세상살이가 더 어려운 것만 같다.


 

 


이럴 때, 5촉 전구를 탁 켜주는 사람, 차가운 마음에 난로를 켜주는 사람이 내겐 있는걸까.
이렇게 가진 것 없는 내가 혹시 누군가에게 불을 켜주는 사람, 혹은 난로를 켜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걸까.


                

 


도대체 이놈의 사랑타령은 언제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통기한이 불과 3년이 안된다는
사랑때문에 평생 마음앓이를 해왔건만 죽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숙제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가랑비처럼 소리없이 젖어드는 사랑때문에 지금도
몸살을 앓는다. 이제는 정말 더 이상 설레지 않는데 곁에 없으면 허전하고 그의 부재가
불편해진다. 이건 사랑인걸까, 집착인걸까.

 


늘 느끼는거지만 인생에도 표지판이 있고 등대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신호등이 있으면 더욱 좋고. 멈출 때 멈추고 전진할 때 전진하고 때로 옆길로 빠질 수도
있으련만 그저 희망일 뿐 인생은 그야말로 독고다이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였어. 누구나 이렇게 살아내는 일이 힘든거구나.  위안? 동지의식?
다만 지루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치는 지점을 알 수만 있다면 나는 미련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훌 떠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섬에 들어와 말이 줄었다. 말많았던 내가 얘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길에서 만난 사람과도 자꾸 수다를 떨고 싶어진다.
정작 중요한 얘기는 하나도 하지 못하면서 뒤돌아 오는 길은 왜 그런 쓸데없는 얘기만
했는지 후회가 되고 좋은 얘기라고 해준말도 맘에 걸린다.
그래 말이라는게 50년 넘게 해오면서도 잘하기가 정말 어려운 일이라걸 늙어서야 자꾸 깨닫는다.

"나 정말 괜찮은 거니?"
요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묻는 일이 많아졌다.
과거엔 사는 일이 버거워서 돌아볼 기력이 없었고 지금은 배는 곯지 않는데 속은 허전해서
혼자 돌아보게 된다. 내가 살아온 고단함에 비하면 너희의 지금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 할수 없어서 슬쩍 이 책을 건네고 싶어진다.
저자의 말처럼 많은 위로의 말보다 손한번 잡아주고 눈길하나 마주치는 기분으로 말이다.
그러면 잠시라도 기운이 나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시처럼 에세이처럼 다가온 책이다.
늘 그래왔듯 여전히 사는 일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손한번 잡아주고 등 두드려주는 따뜻함이
전해지는 그런 밥심같은 책.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한다.

 

 

 

*출팒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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