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하필 자신의 호를 '빙허각'이라고 지었을까.

기댈 빙(?), 빌 허(虛), 각(閣).

'허공에 기대어 선다'라는 뜻을 지닌 빙허각이란 이름을 손수 지은 소녀는 평양감사를

지냈던 이창수의 막내여식 선정이었다.

조선에서 천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도 아니면 모의 운명을 타고 난 것이고 그것도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불행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을 정도인데 하필이면 선정은

그같은 운명을 지닌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수없이 불행을 짊어지고 제명대로 살지 못한

숱한 천재녀들과는 달리 선정은 좋은 집안에서 학자인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맘껏 학문을

익혔고 조선시대의 거문이었던 서씨 집안의 며느리도 들어가 제 능력을 거진 펼쳤던 행운녀였다.

 

 

 

 

  

별빛을 닮은 눈빛은 아름다웠고 한번 읽은 것은 제것으로 만들었던 선정은 스스로 호를 지어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진 당찬 소녀였다.

이 소설에서는 바로 위의 자매인 숙정이 가혹한 시집살이에 스스로 목숨을 끓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먼저 삶을 마감한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 것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믿는 어리석인 양반들이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그 죽음에 충격을 받은 선정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겠노라고 마음먹는다.

선정은 마흔 아홉에 얻는 막내딸을 귀히 여겼던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감히 여자의 몸으로 동지사에 끼어 청나라의 연경에 다녀오게 된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에 세자였던 이산에게 청을 넣어 외국으로 향할만큼 도전적이었던 선정은 그 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을 뜻을 얻어오게 된다.

 

 

 

 

소설이 그려진 시대는 영조가 아직은 왕좌에 있었고 손자인 세손 이산은 생명에 위협을 느껴 밤에도 옷을 입은 채 잠이 들곤했던 혼란한 시기였다. 역사책에서는 조선의 가장 부흥한 시기라고 적혀있지만 인간 이산에게는 고통스런 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정이 시집을 간 서씨 집안은 이산을 왕좌로 올리는데 크게 기여했고 심지어 세손의 스승이 나올 정도로 명망있는 가문이었다.

감사하게도 여성인 빙허각에게도 학문을 이어가게 도와주고 뜻을 펼칠 수 있게 후원했고 특히 남편 유본은 자신보다 더 능력있는 아내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조선의 남자였다. 다만 금슬좋았던 부부의 불행은 4남 7녀를 두었음에도 모두 죽고 한 명의 아들과 두 명을 딸만을 남긴 것이 한이었다.

정조가 죽고 집안이 몰락하면서 집안의 종이 천주교와 관련된 책을 훔쳐 고발을 하려다 빙허각의 기지로 책을 찾는 장면에서는 그녀의 영민함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라면 능히 해내고도 남을 일이다.

 

 

 

 

 

기울어가는 집안을 일으키고자 동호(지금의 옥수동이나 금호동근처)에 차를 키우고 팔면서 식솔들을 책임지는 모습에서는 조선여인의 강인함을 지닌 빙허각의 의지가 대단하게 다가온다.

고달픈 삶의 여정중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조선의 여인들에게 힘을 실어줄 '규합총서'와 '청규박물지','빙허각고략'들을 편찬한다. 그녀의 이런 노력은 남편인 유본과 시동생은 유구에 의해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동지이면서 사랑이었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절명사'를 짓고 그 뒤를 따르는 빙허각의 의지가 놀랍기만 하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을 따르는 일이기로 생명까지 포기하려 했을까.  하긴 그만한 의지가 있었기에 남자 중심의 조선에서 당당한 삶을 꾸렸을 것이다.

 

 

 

 

  

조신한 아낙네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세상과 맞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던 빙허각에 대한 고증은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여류학자로 실학자로 조선에 족적을 남긴 흔적만으로도 대단한 삶을 꾸렸다고 생각한다. 차를 심고 덕어 파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던 실리주의자.

하지만 먼저 떠난 남편을 따라 죽음으로 향했던 열정주의자.

다만 애지중지 낳았던 아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불행한 시간들을 견디며

후세에 남길 책을 편찬한 멋진 여성을 만나 뿌듯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현세로 이끌어낸 작가의 애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세상을 떠난 그녀를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수많은 고증을 찾아 밤을 새우고 과거의 그녀를 만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에 당당하게 그녀를 불러냈다. 그래서 존경스럽다.

윤회에 법칙이 맞다면 빙허각은 지금 어디에선가 당당한 삶을 다시 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 백년 가게
이인우 지음 / 꼼지락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과이 좋아하지 않는 나라 일본이지만 부러운 것이 몇 있다.

다분히 일본풍이 담긴 에니메이션이 좋고 100년이 넘는 노포들이 있는 것이 그렇다.

노포뿐만이 아니라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에서도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 노포가 없고 이런 젊은이들이 없을까 생각중에 서울에도 백년가게가

있다는 제목에 끌릴 수밖에 없다.

 

 

 

 

조선 500년여년의 역사가 일본에 의해 잠식당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가게들이 지금껏 전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개발이라는 전제하에 스러져간 수많은 노포들의 운명을 보면 옛것에 대한 소중함을 몰라봤다는게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소개된 을밀대 냉면은 처음 그 자리에서 이웃 집들을 사들여 넓히는 것으로 잘 살아남았지만 서울 도심 재개발 일환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을지면옥'은 많은 사람들의 청원으로 일단 숨을 고르고 있다고 한다. 그 점에서 나는 피맛골의 재개발을 대입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첫직장을 교보빌딩에 있는 다국적기업에서 시작한 나는 교보빌딩 뒷편에서 시작되는 피맛골 골목을 잊을 수가 없다. 큰길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 골목길에 숨어있던 숱한 노포들.

지금은 재개발된 번듯한 빌딩속에 숨어 들었지만 그 때의 그 맛-반드시 입맛뿐이 아니다-은 느낄 수 없다.

그 경험을 잊지 말고 서울 도심의 고택들을 기어이 부수고 개발을 하겠다는 생각을 다르게 할 수는 없을까.

 

 

 

부모님이 이북에서 오신 분이니 태어나서 줄곧 서울에서 살았더라도 토박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소개된 노포들이 있는 길들을 훤히 알고 있는 나조차도 이런 가게들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본다.

 

 

 

물론 피맛골에 있던 열차집은 기억이 나고 이전을 하고도 한 두번 가본 적이 있고, 학림다방이나

홍익서점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청기와 신사복점은 불광동에서 13년을 살았어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도장을 예술의 경지로 이끈 인예랑이나 문방사우의 자존심 구하산방은 인사동과 깊은 인연이 있음에도 가본 기억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나는 서울의 겉만 알았던 것 같다.

 

 

 

 

책이 끝나갈 무렵 만난 '세실극장'을 보니 코끝이 시큰해온다.

첫 직장이 있던 교보빌딩과 세실은 아주 가까운 거리였고 학창시절 연극을 하면서 한 때 '배우'를

꿈꿨던 나는 세실이 놀이터가 되었다. 내가 세실에 드나들던 때는 저자가 아주 자세하게 소개한

'이영윤'씨가 운영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헝클어진 머리에 청바지를 즐겨입었던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하고 자유분망해 보였던 그였지만 아주 엄격한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세실극장에 직원들과도 친해져서 세실은 무시로 드나들던 난 당시 마당놀이로 인기를 얻고 있던 극단이며 배우들과도 친해졌었다.

매점에 있었던 '미스차'는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왜 그녀와 연락이 끊겼는지는 모르겠는데 참 무던했던 그녀가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영민이는. 당시 비서역할과 기사역할을 하던 직원은 내 친구와 결혼을 해서 살았는데 역시 연락이 끊겼다. 몇 번의 고비가 있어 사라진 줄만 알았는데 다시 살아났다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고즈넉한 성공회교회 뜰안을 다시 걸어보고 싶어진다.

 

다행인 것은 소개된 백년가게들이 대를 이어 서울의 명가가 되리란 것이었다.

전공이 달라도 과감하게 조부나 부친의 유지를 이어 가겠다는 의지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서울시에서 '미래유산'이란 프로젝트로 선정된 가게들이 있어 정말 뿌듯해진다.

재개발에만 목메지 말고 이런 숨은 노포들을 더 발굴하고 지원해서 후손에게 물려주었으면 한다.

'온고지신'이란 고사성어가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아주 먼곳에 떨어져

살고 있지만 오랫만에 고향소식에 푸근해진 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나는 그들이 궁금해졌다 - 심리치료, 그 30년 후의 이야기
로버트 U. 아케렛 지음, 이길태 옮김 / 탐나는책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예순 여섯살의 심리치료사 로버트 아케렛은 어느 날 자신을 찾아왔던 내담자들의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때는 1990년대 초반, 아케렛은 35년 전 자신을 찾아왔던 내담자들중 5명의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여행을 시작한다.

자신을 스페인의 백작부인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생 나오미, 그녀는 성적매력이 넘치는 멋진 여성이었지만 유대인 부모밑에서 엄격하게 성장한데다 그녀의 섹시미를 천박하다고 믿은 부모의 학대를 당해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다. 전생에 스페인백작부인이라고 믿는 나오미는 스페인을 열심히 공부하더니 어느 날 부모를 떠나 멕시코로 향했다. 아케렛의 치료를 받는 동안 그녀는 움츠러있던 자아가 어느 정도 회복은 되었지만 과연 그 후의 삶은 달라졌을까. 아케렛의 치료가 그녀의 운명에 도움을 주었을까.

 

 

 

서커스의 북극곰을 향한 사랑의 열병에 빠졌던 찰스.

자신의 결벽증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믿었던 간호사 메리.

소설을 쓰기 위해 누군가를 끊임없이 사랑해야했던 프랑스인 사샤.

명문대를 졸업하고 잘 나가는 변호사였던 세스, 하지만 마약과 마약매매에 빠져 파탄이 난 사샤.

모두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었던 이들의 35년 후의 모습이 너무 궁금해졌다.

 

 

 

대학생이었던 찰스는 부유한 집안의 늦둥이로 태어나 귀여움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후원하는 대학의 심벌인 곰을 형상화한 북금곰 인형들이 그의 주변을 지켰고 부모들은 모든 사물을 북극곰으로 대비시켜 찰스를 키웠다. 찰스에게 북금곰은 가족이었고 사랑이었다.

결국 서커스단에서 공연을 하던 북극곰 지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찰스는 곰과 성관계를 하기 위해 애쓰다가 공격을 다해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지로에게 열중하는 찰스.아케렛은 찰스에 대한 사랑이 비정상이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각인시킨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정도라는 것을.

 

 

 

찰스는 곰에 대한 사랑은 접었지만 다른 방법의 사랑을 찾아냈고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케렛은 과거 찰스를 그대로 두었다면 그의 삶이 달라졌을지 고민한다.

 

 

 

아버지를 죽였다고 믿었던 메리역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오미 역시 멕시코와 스페인을 거쳐 마이애미에 정착하여 잘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케렛을 은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케렛은 자신에게 자꾸 되묻곤 한다. 자신의 개입이 없었다면.

 

50년대 후반에 시작된 내담자들과의 만남은 몇 년동안 이어졌고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고 판단된 순간 흩어진 내담자들의 삶이 왜 궁금해졌을까. 이제 생의 마지막을 향하게 된 심리치료사는 자신의 역할의 결말이 궁금해졌던 것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에겐가 말하지 못하고 비밀스럽게 묻어놓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렇게 상담가나 치료사를 찾아 노력을 하기도 한다.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아케렛을 찾아왔던 5명의 내담자들은 하나같이 과거 어린시절부터의 상처가 있었다.

너무 완벽하고자했던 엄마의 간섭이나 무관심, 혹은 폭력까지. 결국 그런 가학적인 행동들이 자식을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른이 되지 못하고 스스로를 상처내고 남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가엾은 내담자들의 삶을 보면서

심리치료사 아케렛은 많은 개입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스스로 길을 찾도록 들어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결국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인간의 생존능력에 대해 경외감을 느낀다.

아마 이 책의 저자나 사례자들은 이미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린 사샤나, 찰스나 메리처럼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어디에 누구를 찾아가야 치료가 될 것인가.

인간의 경외스런 생존본능에 의하면 우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열쇠도 갖고 있을 것이다.

사후관리까지 꼼꼼하게 해주는 아케렛같은 심리치료사가 있다면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다.

아케렛의 여정은 많은 궁금점들을 해소시켜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샘터 2019.2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표지를 보니 없는 오빠가 생각납니다. 제가 맏이라 언니나 오빠가 없는데 노래중에

'우리 오빠 말타고 서울가시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하는 가사가 떠오릅니다.

지금이야 어쩌다 한번 한복을 입을 때나 신는 신이지만 오래전에 이 꽃신은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가 아니었을까요? 설이 있는 2월 표지에 썩 어울리는 그림입니다.

 

 

엊그제 축구 아시안컵 예선에서 우승후보로까지 꼽혔던 요르단을 승부차기로 굴복시킨 베트남 이야기가 화제입니다. 확실히 박항서매직이 있나봅니다. 우리나라가 아시안컵을 가져와야겠지만 베트남도 화이팅!

왜 축구얘기나 나왔나하면 바로 이분 지금 이시대 열공하는 축구해설가 '한준희'씨 기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축구선수출신도 아니고 전공하고도 상관이 없는데 어린시절 차범근이 종료5분을 남기고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장면을 보고 축구사랑에 빠졌다고 하네요. 저 역시 그 순간을 본 사람입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거든요.

제가 이 한준희씨 기사를 유심히 본건 이분 해설이 정말 재미있어서입니다. 늘 웃는 얼굴에 해설이 짱이거든요. 아시안컵 해설 기대하겠습니다.

 

 

지리산 화엄사 뒤편 산내암자 구충암의 기둥이랍니다. 죽은 모과나무를 이렇게 기둥삼아 집을 지었다는데 정말 멋지네요. '나무는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라는 글이 더 좋습니다. 죽은 나무를 살려낸 지혜가 부럽습니다.  옛사람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동화의 대상이라는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2월호 특집 '겨울밤의 군것질 추억'을 보다보니 어린시절 겨울은 지금의 추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추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웃목에 물그릇을 두면 얼곤했습니다. 그런 겨울 날 군고구마 위에 김장김치를 올려먹던 기억들이 아삼하게 떠오르네요. 지금은 군고구마를 먹고 싶어도 파는 곳이 보이지 않아 어려운데요.

특집글을 보니 군고구마나 군밤외에도 군것질거리가 참 다양했다는걸 알게됩니다.

그 군것질보다 나누었던 가족이나 친구가 더 떠오른다는 글들이 감동스럽습니다.

 

이제 설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고마운 분들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마음이 바쁩니다.

잠시 차한잔 만들어서 샘터곁에 앉아 정화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행복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두 살 여자, 혼자 살만합니다 - 도시 여자의 리얼 농촌 적응기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돌이켜 내 서른 두살을 떠올리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서른의 고비를 넘어서 한바탕

파도가 휩쓸고 지나가 모든 것을 잃고 아이를 둔채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었다.

그 뒤 한국으로 돌아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던 나이가 바로 서른 둘 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스물 다섯이면 결혼 적령기여서 서둘러 짝을 찾아야했고 서른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면

노처녀 딱지가 붙어 눈총을 받아야만 했었다. 지금이야 서른이 넘어도 미혼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마흔에 이르도록 결혼을 못한 사람들도 많다. 물론 결혼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가정을 꾸리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른 두 살 구미코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이었던 곳이 문을 닫자 단기 직업을 전전하게 된다.

대학 동기 오사무와 동거를 6년이나 했지만 오사무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겨 결국 헤어지고 만다.

그 사이 오사무가 청혼도 했지만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구미코는 거절을 했고 이후에는

애인같다기 보다는 동지같은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이별이 다가오자 왜 그의

청혼을 거절했는지 후회가 밀려온다.

 

 

 

오사무와 헤어져 집을 나오게 된 구미코는 하필이면 다니던 직장에서도 계약이 끝나 갈 곳이 없다.

마침 TV프로그램에서 여성이 농촌에서 정착해서 성공한 사례가 나오자 구미코도 농사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현립 농업대학교에서 취농자코스까지 이수하고 한껏 부푼 마음으로 농사를 지을 땅을 빌려보려

하지만 초보 여자 농사꾼에게 땅을 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 문제는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문제인듯 하다.

농사지을 인력이 부족하고 심지어 놀리는 땅이 있어도 선뜻 땅을 빌려주겠다는 농부가 없었다.

그깟 세 조금 받자고 아끼는 땅을 잘 알지도 못할 사람에게 빌려주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고집이 문제란다.

알바를 하면서 초보농사꾼의 꿈을 키웠던 구미코는 절망하지만 오래전 대학 동아리선배에게 도움을 청해

본가 어머니의 집에 세를 얻고 어렵게 땅도 조금 빌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자 혼자 농사를 짓는 것은 힘든 일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농촌으로 시집을

가는 것이라는 조언에 농촌 청년과 맞선을 보는 파티에 참가하게 된다. 기대한 상대방은 만나지 못했지만

구미코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여자들을 만나 마음을 나누게 된다.

스물 여덟의 싱글맘은 먹고 살일이 힘들어 나이가 많아도 자신의 아이를 거두어줄 남자가 간절하고

한번 이혼을 한 히토미 역시 홀로 농사를 짓지만 돈을 벌기가 힘들다. 결국 남자에게 의존해야만 생계가

해결되는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구미코는 친환경적인 농사를 지어 생계를 해결하고 꿈도 이루고 싶다.

 

 

 

하지만 몇 번의 위기가 다시 찾아오고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의 무덤곁에서 생을 마감할 결심까지

이르게 된다. 사실 농사로 부자가 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텃밭을 하는 나 조차도 약을 치지 않고 채소를 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데 텃밭 수준이

아니라 생계를 책임질 정도의 업이 될 정도의 농사라면 정말 큰 다짐과 체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구미코가 이런 결심을 한 것은 지단한 단기 알바직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이 싫어서 그랬지만

제대로 된 먹거리를 손수 생산해보고 싶다는 욕심이기도 했다.

구미코는 홀홀 단신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어쩌면 동거를 했던 남자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날 것 같은 결말이 엿보여 정말 다행스럽다.

 

이 소설은 현재 일본의 농촌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인력은 노화되고 농촌 자급력은 떨어지는

것에서부터 농촌청년들의 결혼문제까지. 요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다행스럽게 귀농열풍이 불고는 있지만 다시 되돌아 오는 경우도 많다.

텃세도 힘들고 경험도 없이 농사에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증명이 되는 것이다.

씩씩하게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서른 두살 구미코의 여정이 기특하지만 역시 혼자서는

결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서로 기대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꼭 농사가 아니더라도 미래가 암울한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뭔가 목표를 세우고 구미코처럼 도전해 나가는 과정이 힘이 될 것 같다. 청년들이여 꿈을 향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