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백년 가게
이인우 지음 / 꼼지락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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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이 좋아하지 않는 나라 일본이지만 부러운 것이 몇 있다.

다분히 일본풍이 담긴 에니메이션이 좋고 100년이 넘는 노포들이 있는 것이 그렇다.

노포뿐만이 아니라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에서도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 노포가 없고 이런 젊은이들이 없을까 생각중에 서울에도 백년가게가

있다는 제목에 끌릴 수밖에 없다.

 

 

 

 

조선 500년여년의 역사가 일본에 의해 잠식당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가게들이 지금껏 전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개발이라는 전제하에 스러져간 수많은 노포들의 운명을 보면 옛것에 대한 소중함을 몰라봤다는게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소개된 을밀대 냉면은 처음 그 자리에서 이웃 집들을 사들여 넓히는 것으로 잘 살아남았지만 서울 도심 재개발 일환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을지면옥'은 많은 사람들의 청원으로 일단 숨을 고르고 있다고 한다. 그 점에서 나는 피맛골의 재개발을 대입시키지 않을 수가 없다.

첫직장을 교보빌딩에 있는 다국적기업에서 시작한 나는 교보빌딩 뒷편에서 시작되는 피맛골 골목을 잊을 수가 없다. 큰길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그 골목길에 숨어있던 숱한 노포들.

지금은 재개발된 번듯한 빌딩속에 숨어 들었지만 그 때의 그 맛-반드시 입맛뿐이 아니다-은 느낄 수 없다.

그 경험을 잊지 말고 서울 도심의 고택들을 기어이 부수고 개발을 하겠다는 생각을 다르게 할 수는 없을까.

 

 

 

부모님이 이북에서 오신 분이니 태어나서 줄곧 서울에서 살았더라도 토박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소개된 노포들이 있는 길들을 훤히 알고 있는 나조차도 이런 가게들이 있었나 기억을 더듬어본다.

 

 

 

물론 피맛골에 있던 열차집은 기억이 나고 이전을 하고도 한 두번 가본 적이 있고, 학림다방이나

홍익서점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청기와 신사복점은 불광동에서 13년을 살았어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도장을 예술의 경지로 이끈 인예랑이나 문방사우의 자존심 구하산방은 인사동과 깊은 인연이 있음에도 가본 기억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나는 서울의 겉만 알았던 것 같다.

 

 

 

 

책이 끝나갈 무렵 만난 '세실극장'을 보니 코끝이 시큰해온다.

첫 직장이 있던 교보빌딩과 세실은 아주 가까운 거리였고 학창시절 연극을 하면서 한 때 '배우'를

꿈꿨던 나는 세실이 놀이터가 되었다. 내가 세실에 드나들던 때는 저자가 아주 자세하게 소개한

'이영윤'씨가 운영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헝클어진 머리에 청바지를 즐겨입었던 보헤미안 기질이 다분하고 자유분망해 보였던 그였지만 아주 엄격한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세실극장에 직원들과도 친해져서 세실은 무시로 드나들던 난 당시 마당놀이로 인기를 얻고 있던 극단이며 배우들과도 친해졌었다.

매점에 있었던 '미스차'는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왜 그녀와 연락이 끊겼는지는 모르겠는데 참 무던했던 그녀가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영민이는. 당시 비서역할과 기사역할을 하던 직원은 내 친구와 결혼을 해서 살았는데 역시 연락이 끊겼다. 몇 번의 고비가 있어 사라진 줄만 알았는데 다시 살아났다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고즈넉한 성공회교회 뜰안을 다시 걸어보고 싶어진다.

 

다행인 것은 소개된 백년가게들이 대를 이어 서울의 명가가 되리란 것이었다.

전공이 달라도 과감하게 조부나 부친의 유지를 이어 가겠다는 의지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서울시에서 '미래유산'이란 프로젝트로 선정된 가게들이 있어 정말 뿌듯해진다.

재개발에만 목메지 말고 이런 숨은 노포들을 더 발굴하고 지원해서 후손에게 물려주었으면 한다.

'온고지신'이란 고사성어가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아주 먼곳에 떨어져

살고 있지만 오랫만에 고향소식에 푸근해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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