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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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자신의 호를 '빙허각'이라고 지었을까.

기댈 빙(?), 빌 허(虛), 각(閣).

'허공에 기대어 선다'라는 뜻을 지닌 빙허각이란 이름을 손수 지은 소녀는 평양감사를

지냈던 이창수의 막내여식 선정이었다.

조선에서 천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도 아니면 모의 운명을 타고 난 것이고 그것도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불행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을 정도인데 하필이면 선정은

그같은 운명을 지닌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수없이 불행을 짊어지고 제명대로 살지 못한

숱한 천재녀들과는 달리 선정은 좋은 집안에서 학자인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맘껏 학문을

익혔고 조선시대의 거문이었던 서씨 집안의 며느리도 들어가 제 능력을 거진 펼쳤던 행운녀였다.

 

 

 

 

  

별빛을 닮은 눈빛은 아름다웠고 한번 읽은 것은 제것으로 만들었던 선정은 스스로 호를 지어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진 당찬 소녀였다.

이 소설에서는 바로 위의 자매인 숙정이 가혹한 시집살이에 스스로 목숨을 끓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먼저 삶을 마감한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 것을 가문의 영광이라고

믿는 어리석인 양반들이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그 죽음에 충격을 받은 선정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겠노라고 마음먹는다.

선정은 마흔 아홉에 얻는 막내딸을 귀히 여겼던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감히 여자의 몸으로 동지사에 끼어 청나라의 연경에 다녀오게 된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에 세자였던 이산에게 청을 넣어 외국으로 향할만큼 도전적이었던 선정은 그 후 평생 삶의 지표로 삼을 뜻을 얻어오게 된다.

 

 

 

 

소설이 그려진 시대는 영조가 아직은 왕좌에 있었고 손자인 세손 이산은 생명에 위협을 느껴 밤에도 옷을 입은 채 잠이 들곤했던 혼란한 시기였다. 역사책에서는 조선의 가장 부흥한 시기라고 적혀있지만 인간 이산에게는 고통스런 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정이 시집을 간 서씨 집안은 이산을 왕좌로 올리는데 크게 기여했고 심지어 세손의 스승이 나올 정도로 명망있는 가문이었다.

감사하게도 여성인 빙허각에게도 학문을 이어가게 도와주고 뜻을 펼칠 수 있게 후원했고 특히 남편 유본은 자신보다 더 능력있는 아내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조선의 남자였다. 다만 금슬좋았던 부부의 불행은 4남 7녀를 두었음에도 모두 죽고 한 명의 아들과 두 명을 딸만을 남긴 것이 한이었다.

정조가 죽고 집안이 몰락하면서 집안의 종이 천주교와 관련된 책을 훔쳐 고발을 하려다 빙허각의 기지로 책을 찾는 장면에서는 그녀의 영민함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라면 능히 해내고도 남을 일이다.

 

 

 

 

 

기울어가는 집안을 일으키고자 동호(지금의 옥수동이나 금호동근처)에 차를 키우고 팔면서 식솔들을 책임지는 모습에서는 조선여인의 강인함을 지닌 빙허각의 의지가 대단하게 다가온다.

고달픈 삶의 여정중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조선의 여인들에게 힘을 실어줄 '규합총서'와 '청규박물지','빙허각고략'들을 편찬한다. 그녀의 이런 노력은 남편인 유본과 시동생은 유구에 의해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동지이면서 사랑이었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절명사'를 짓고 그 뒤를 따르는 빙허각의 의지가 놀랍기만 하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을 따르는 일이기로 생명까지 포기하려 했을까.  하긴 그만한 의지가 있었기에 남자 중심의 조선에서 당당한 삶을 꾸렸을 것이다.

 

 

 

 

  

조신한 아낙네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세상과 맞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던 빙허각에 대한 고증은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여류학자로 실학자로 조선에 족적을 남긴 흔적만으로도 대단한 삶을 꾸렸다고 생각한다. 차를 심고 덕어 파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았던 실리주의자.

하지만 먼저 떠난 남편을 따라 죽음으로 향했던 열정주의자.

다만 애지중지 낳았던 아이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불행한 시간들을 견디며

후세에 남길 책을 편찬한 멋진 여성을 만나 뿌듯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현세로 이끌어낸 작가의 애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느 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세상을 떠난 그녀를 불러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수많은 고증을 찾아 밤을 새우고 과거의 그녀를 만나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에 당당하게 그녀를 불러냈다. 그래서 존경스럽다.

윤회에 법칙이 맞다면 빙허각은 지금 어디에선가 당당한 삶을 다시 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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