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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플라이 ㅣ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2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20170822_225410.jpg)
개발이라는 이익 앞에
노출된 욕망과 부조리가 낳은 끔찍한 사건!
조작된 진실과 증명되지 않는 의문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진실만을 쫓아가기 위한 가부라기 특수반의 활약상!
요즘 들어 산책을 할 때면 여러 마리의 잠자리를 심심치 않게 발견하곤 한다. 내 앞에 보란 듯이 나타났다 어느 틈에
파르르 날아가 버리곤 하는 잠자리를 바라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마치 바람결을 느끼듯 공중을 유영하는 잠자리를 보며 나는 문득
'드래곤플라이'라는 영문 이름에 낯선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유독 서정적이고 시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우리 이름 '잠자리'와 달리
'드래곤플라이'는 어쩐지 특별한 기운의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이름 같다. 가와이 간지의 추리소설 <단델라이언> 을 읽은 이후 민들레가
예사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전작인 <드래곤플라이>를 읽고 있으려니 또 다시 그때와 같은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었다.
일상성의 반전이 주는 묘미랄까, 나는 <단델라이언> 이후 읽고 싶은 추리소설로 주저하지 않고
<드래곤플라이>를 손꼽았다. <단델라이언>의 민들레가 그래했듯, <드래곤플라이>에서 잠자리의 상징성과 이미지는
그 어느 작품보다 강하게 서사의 힘을 떠받치며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 굳이 말하자면 <단델라이언>보다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며 근래에
읽은 추리소설 중 단연 수작이라 할 만하다.
행운의 상징이 슬픔의
메신저가 되어 돌아오다
어느 날, 니코타마가와 강변에서 불에 탄 시신이 발견된다. 그 시신의 모습이란 목에서 아랫배까지 일직선으로 배가
갈라져 폐를 제외한 장기들이 모두 사라진 상태로, 복부를 찌른 후 사후에 배를 가른 것으로 추정되는 기이한 형태였다. 게다가 입 안에는 돌이
들어 있어 입이 쩍 벌어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노련한 직감이 뛰어난 형사 가부라기와 그의 부하인 엘리트 히메노가 즉시 사건에 투입되어 현장에
나타난다. 시신이 불에 탔으니 사망 추정 시간이나 흉기조차 짐작하기 어려워 수사가 난항으로 이어질 찰나, 시신의 목에 걸려 있었던 잠자리 장식의
팬던트가 눈길을 끈다.
"잠자리는 말이야, 유럽에서는 재수 없는 곤충으로 취급해. 때론 사람을 문다는
오해까지 받는데 일본에선 아주 친숙한 곤충이지. 어디 그뿐인가? 예로부터 잠자리는 '승리의 곤충'으로 불리며 행운을 가져다주는 곤충으로
여겨졌어. 그래서 무사들이 칼이나 투구, 겉옷 장식이나 무늬로 즐겨 사용한 거야. 그뿐인가? 잠자리는 그 자체가 참으로 신비한 생물이야." /
221p
잠자리는 신이 보낸 심부름꾼이라고 했던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곤충인 잠자리는 유독 일본에서는 행운, 기쁨과
제국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건으로부터 한참이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히류무라의 두메산골에 사는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녀 이즈미는 많은 생물들
중에서도 잠자리를 특히 좋아했다. 선천적으로 앞을 볼 수 없었던 이즈미는 늘 혼자였던 탓에, 자신에게 다가와 어디선가 날아와 자신의 어깨나
무릎, 단발로 깎은 머리 꼭대기에 가만히 내려앉곤 하는 잠자리만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놀러 와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두 남자 아이, 유스케와 겐이 이즈미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은 잠자리를 매개로 친해졌다. 죽마고우인 유스케와 겐은 앞을 보지 못하는
이즈미를 항상 지켜주기로 약속하고, 이후 함께 잠자리를 잡으러 다니기도 하고 이제는 화석으로만 남아 있는 옛날 잠자리 '메가네우라'를 보았다던
유스케의 말에 따라 함께 이 광경을 보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날아다니는 용을 뜻하는 이곳 지명 역시 '히류무라'. 마치 용이
날아오르는 것 같은 모습의 거대한 메가네우라를 발견한 이 세 아이의 믿기지 않는 이 날의 경험은 훗날 그들 앞에 펼쳐지는 끔찍한 운명의 전조처럼
다가온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장기를 훼손당하고 불에 탄 시신은 혹시 유스케와 겐 둘 중에 한 명이 아닐까. 앞서 읽었던
이즈미와 두 소년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끄는 잠자리의 흔적이 훗날 그 목걸이로 이어지는 것만 같아 불길한 예감이 드는 가운데, 불에 탄 시신이
결국 유스케라는 사실을 드러나고 만다. 행운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잠자리가 슬픔의 메신저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 세상에 진실 같은 건
없다
유스케에게 끔찍한 일을 벌인 살인자가 누구일지, 도쿄 경시청 소속 형사들과 가부라기 특수반이 추적을 거듭하는 가운데
드디어 가장 유력한 용의자 한 명이 떠오른다. 바로 히류무라 마을의 촌장인 다누마다. 과거부터 이 지역은 잠자리의 성지라 불리는 천혜의
생태환경지로, 마을 사람들의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댐 건설이 계속해서 추진되어 온 곳이었다. 촌장인 다누마는 자신이 앞장 서 댐 건설을 반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오랫동안 촌장직을 유지해왔지만, 결국 댐 건설은 추진되고 마을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아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히류댐이 완공을
앞두게 된 상황에 유스케의 시신이 발견되고 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그간 촌장이 건설사와 내통해 댐 건설에 반대하는 척 공사 기간을
질질 끌어 국가로부터 돈을 계속 부풀려 받는 데 일조 했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살 만한 정확히 포착된다. 즉, 유스케는 자신이 아끼는
잠자리의 성지가 히류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던 인물로 다누마로서는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의심은 범인을 촌장 다누마로 향하기 시작한다.
분명, 누가 봐도 범인은 촌장 다누마이고 모든 증거가 다누마를 향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게다가 시신 역시 유스케임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오~ 내가 생각한 게 맞나보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 하고 뭔가 사건이 금방
해결될 것만 같은 쾌감 같은 것이 이미 중반부부터 들곤 할 것이다. 그런데 묘한 이질감이랄까. 누구보다도 직감이 발달한 가부라기가 그러했듯 이게
정말 진실일까? 의문이 든다. 자꾸만 중요한 것을 못보고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여러 가지 증명되지 않은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듯한 의문들이 계속해서 가부라기의 발목을 붙든다.
"어떤 사실에 맞닥뜨렸을 때 우선 그걸 '의외로 놀라운 사실'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진실을 향해 가는 첫걸음이죠. 이 '의외로 놀라운 사실'에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 비로소 '추론'이란 행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진실에 이를 수가 있죠. 그걸 애브덕션(abduction)이라고 하죠." /
183p
애브덕션. 누구보다도 직감이 발달해 엉뚱한 어림직작과 같은 애브덕션법 추리력을 빛내곤 하는 가부라기는 이미 정해진
수사방향과 다른 노선을 그리며 이제 모든 가설을 깨부수고 다시 시작한다.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은폐되고 조작된 진실은 무엇일까. 소설은
줄곧 잠자리가 가리키는 진실이 무엇인지 또 다른 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개성 있는 캐릭터의 다양한
활약상이 추리소설의 활력을 높이다
앞서 <단델라이언>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여타의 추리 소설 및 형사 소설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형사의 개성과 인상이 가와이 간지의 소설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표한 적이 있다. 그나마 위로 할 만한 것은 가부라기
형사의 일방적인 활약이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팀원들이 의기투합하여 사건을 해결해나는 과정에서 진정성을 느꼈다는 점이다.
<드래곤플라이>를 탄탄하게 받치는 힘 역시 가부라기 외 주변 형사들의 개성 있는 캐릭터와 이들의 단단한 팀워크에 존재한다. 가부라기와
오랜 동료로 성질이 급하고 괄괄한 면이 있으나 시종일관 유머 있게 팀의 분위기를 띄우는 마사키, 26세라는 젊은 나이의 프로파일러로 범죄 심리
분석에 능하고 사건의 단서로 진실을 추론해가는 능력이 탁월한 엘리트 사와다, 형사 오타쿠라고 불리며 뛰어난 외모와 스타일로 기동력을 자랑하는
젊은 에너지 히메노는 단서를 조합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소설의 완성도를 높인다.
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가부라기의 돌출행동을 못마땅해 하고 냉정한 태도로 수사방향을 지휘하는 사이키 역시 누구보다도
가부라기 특수반이 마음껏 수사할 수 있도록 뒤에서 은근히 지원해주는 모습이 멋지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드래곤플라이>에서는 진중하지만
특유의 직감이 이끄는 방향으로 획일화 된 수사에 새로운 가설을 끊임없이 재기할 줄 아는 가부라기의 뚝심이 빛난다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이들 형사들이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서 사건에 다가가는지 그 소신과 철학을 진정성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타의 추리
소설과 다른 지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인간의 감정을 '희로애락'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원한'이나 '증오'는
없다. 마치 그런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듯. 아니, 존재할까봐 두려운 듯이. 그건 자기 안에 원한이나 증오 같은 감정이 존재한다는 걸 누구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런 골치 아픈 감정을 짊어지고 사는 걸까. / 74p
"인간은 언젠가 틀림없이 변할 겁니다. 그리고 동족을 죽인다는, 있어서는 안 될
습성을 버릴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하지만 그날까지는 인간 스스로가 인간을 지켜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경찰관이 필요하죠. 저는 그래서 경찰관이 된 겁니다." / 487p
가만 보면 <단델라이언>과 <드래곤플라이>는 사라져가는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인류애 같은
철학이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듯하다. 우리는 왜 같은 동족을 죽여야만 하는 것인가. 왜 이러한 비극은 계속되는 것인가. 자극적인 살인사건에
얽매이지 않고 일그러진 욕망과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고민하고 아파하는 우리 인간들의 고뇌와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작가의 사명 같은
것이 엿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앞으로도 가와이 간지의 작품만큼은 줄곧 찾아보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쭉 이와 같은 작품이 계속해서
출간되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