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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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있어 기억될 그 시절, 그 공간, 그 끈적끈적한 추억들! 

무료한 일상을 펑키펑키함으로 채워줄 박상 작가의 위트 만점 감성충전 에세이!  

 

 

 

  평범하게 흘러가고 마는 찰나의 순간에 음악이라는 아이템이 더해지면 끈적하게 달라붙는 추억으로 돌변해버리고 마는 기이한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대로 '인생 노래' 한 곡 쯤은 있지 않은가 말이다. 거창하게 인생 노래라는 말로 수식하지 않더라도 축축 처질 때 기분을 업 시키기 위해서 빅뱅의 'FANTASTIC BABY'를 찾아 듣거나 현란한 랩핑과 넘치는 스웩을 내 안에 채우고 싶을 때는 비와이의 'The Time Goes On'을 듣기도 하고, 힘들어보이는 내 사람을 위로하며 힘이 되어 주고 싶을 때는 박장현의 '두 사람'을 찾아듣는 등 인생의 순간순간에 꼭 찾아듣게 되는 노래들이 있다.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비상한 기억력을 지닌 나의 남편은 심지어 발매년도와 몇 집에 수록된 곡인지까지 말하며 당시에 그 곡에 얽힌 추억들을 비장하게 말하곤 할 때가 있다. 그래, 그랬지. 머릿속 어느 한 구석에 밀려나있었던 그 시절, 그 공간, 그 끈적끈적한 추억들을 다시끔 생생하게 재현해낼 수 있게 하는 힘은 역시 음악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자칭 문학 천재인 줄 알고 바보 같은 행동만 골라서 하고 다닌다는 작가 박상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작가의 그런 순간순간들이 기록된 뮤직에세이다. 인생이란 어느 정도 흥겨워야만 유연하게 유지된다는 메시지를 얻은 다프트 펑크의 '겟 럭키'로 시작하여 울고 싶을 땐 암울한 마이너톤의 블론드 레드헤드의 'Misery Is A Butterfly'로 감정을 차분하게 가다듬으며,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 일침을 던질 땐 역시 헤비메탈이라며 블랙홀의 '라이어'를 소개하는 그의 음악 세계는 가요, 록, 팝, 클래식 등 다양한 일탈과 변주를 오간다. 특히, 대형마트의 소음같은 광고음악과 어설픈 음질과 선곡으로 식당의 분위기를 망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작가 특유의 까칠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펑키한 감성과 올드 메탈 같이 낡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그의 선곡들에 귀가 솔깃해지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하게 되게 된다. 

 

 

어릴 땐 스펀지처럼 수많은 음악을 흡수하고, 소화해내면서도 계속 배가 고팠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고 싶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심지어 체하기도 한다. 아, 쓸 만한 기능을 하나씩 세월에게 내주다 보면 어느 순간 정말 좋은 음악을 만나도 시큰둥한 꼰대가 될까 봐 무척 쫄린다. 뱀파이어가 아닌 이상 주름살은 어쩔 수 없지만 감각의 쇠락에 대책 없이 당하긴 싫다. / 53p  

 

 

  사실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그 음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식하는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서 묻어나오는 다양한 해석들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뮤직 에세이라는 축의 또 다른 이면에는 환락의 천국이라 불리는 이비사 섬과 비현실적일 정도로 감상적인 이탈리아의 플랫폼, 오토바이 퍼레이드로 식겁하게 만드는 베트남 하노이, 항공권이 싸다는 이유로 다녀온 이스탄불에서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그의 여행기가 그것을 추억하게 하는 음악과 함께 자유롭게 펼쳐진다. 단지 속초 앞바다가 잘생겼다는 이유로 연고도 없는 속초로 이사를 가서 모텔 프런트에서 일했던 경험과 함께 버스커버스커의 '봄바람'에 함께 실려온 가장 낭만적인 한 때를 추억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헬조선에서 기 빨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일상과 시국 비판을 담아내다가도 찌질한 궁핍함이 얽히고설킨 방구석 이야기까지 늘어놓는 정말이지 '웃기는 짜장' 같은 에세이(책을 비하하는 것이 아님, 쿨럭)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일부 착한) 음악들은 묘하게 지친 마음을 위안하는 영적인 힘이 있다. 어떤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하면 신앙심이 생기는 걸까. 그들도 나처럼 힘들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런던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 중 하나였고, 감자만 먹으며 버티던 그 시절의 씁쓸함을 조건반사로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일까. 아무튼 보컬 루 리드 아저씨가 발성하는 차분하면서도 쓸쓸한 목소리와 멜로디에서 록 정신의 기본 교리중 하나인 소외와 고통의 근원적인 심장을 느꼈다./ 56p   

 

 

 

 

 

 

이로운 전염성을 가진 감성 바이러스, 감성 백신 

 

 

  때로 음악은 혼란스럽고 정체되어있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반전시킬 만한 평화를 선사한다. 무엇에 그리도 예민해 있었던 것인지 뒤틀린 감정으로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느라 거의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을 무렵,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올라탄 뒤로 나는 크로스오버 장르의 음악을 구사하는 두번째 달의 앨범을 구입해 내내 그것만 듣고 돌아다녔다. 그들의 1집 앨범에 수록된 '얼음연못'과 '서쪽하늘에'는 가사 하나 없는 연주곡이지만 오직 선율의 힘으로 내부에 침투해 살얼음처럼 변해버린 나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라고, 그리고 서쪽하늘로 지는 태양은 다시금 너를 향해 뜰 거라는 희망이 내 안에 가득차던 순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이처럼 작가 박상의 에세이에도 음악이라는 이로운 전염성으로 하여금 반전을 맞이하는 순간들이 여럿 포착된다. 베트남 하노이 구시가를 걸으며 삭막한 오토바이 떼와 매캐한 매연과, 자비 없는 경적 소리에 영혼을 빼앗길 무렵 그는 서울 거리가 베트남처럼 무척 혼란스럽고 시끄러웠던 시절을 추억한다. 서울의 기동대에서 군 복무를 한 그가 대규모 시위 현장에 투입되어 공권력의 앞잡이로 거리에 나가 시위대의 샌드백이 되어야 했을 때였다. 그날은 평소와 비교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던 상황이었는데, 해산 안내 방송이 나와야 할 페퍼포그 차량에서 뜬금없이 카멜의 'Stationary Traveller'가 흘러나오는 실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시위대와 전경들이 뒤섞인 그 혼란스럽고 삭막한 현장 한복판에서 퍼지는 한편의 나레이션 같은 기타 선율과 아름다운 팬플루트의 황홀함이라니! 마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수류탄이 터지며 창고에 들어 있는 옥수수가 팝콘처럼 한가득 하늘에 팡팡 터질 때 흘러나오던 'Falls of the Popcorn'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카멜의 음악은 싸우기 직전의 대치 국면에 마치 '뽀샵질'을 하는 듯했다. 수많은 시위대와 전경들이 내 눈엔 카멜 콘서트에 몰린 팬들로 보였다. 무거운 국방색 진압복과, 시위대의 처절한 눈빛과, 등 뒤에 숨긴 쇠파이프와, 땀에 전 방독면과, 지휘관의 신경질적인 고함 소리 또한 평소와는 다르게 꿈을 꾸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대로 음악을 계속 틀었다면 모두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라는 마음이 들어 진압도 안 하고, 시위도 그만두고 그것참 좋은 선곡이었다며 악수한 뒤 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 70p 

 

 

음악이야말로 삭막함의 반대말이다. 경제고 사회고 정치고, 삭막하게 정체된 우리의 지금 여행이 음악의 '뽀샵빨'로라도 좀 아름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 72p 

 

 

  메르스 사태로 나라 전체가 혼란에 휩싸였을 무렵, 작가는 크리스 가르노의 'Relief'를 들으며 음악이라는 감성 백신을 통해 후진 감성을 몰아내고 섬세한 사회적 항체가 형성되기를 상상하기도 한다. 마치 담백한 곡물 빵에 저염 버터를 부드럽게 발라놓은 느낌과 유사한 크리스 가르노의 나른하고 차분한 음색을 들으면 강력한 항체가 형성되면서 몸 안의 짜증 바이러스가 쫓겨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음악이 꼭 무슨 효능을 가져야 한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제목 그대로 안도, 안심, 경감, 완화 등을 선사하는 이 노래라면 잔뜩 예민해져 있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을 듯하다. 마침 이사를 마친 후에 새로운 집에서 맞은 첫 아침, 나는 크리스 가르노를 검색하고 이 노래를 재생해 들었는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의 묘한 음색에 머릿속에 짙게 깔려져있던 복잡한 감정들이 가만히 밀려나는 광경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작가 역시 이런 광경을 보았던 것은 아닐까. 내 안의 많은 무게들이 덜어지고 덜어지는 그런 광경 말이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그러니 찬란한 거야 

 

 

  우리의 영원한 '마왕' 신해철. 마왕의 라디오 <고스트네이션>을 듣기 위해 밤을 지새우며 공부를 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없이 낮지만 일그러진 세상을 향해 또렷한 일침을 내뱉을 줄 아는 그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사실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록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기엔 이미 나의 시대는 10대 아이돌 문화에 몸과 마음을 바친(?) 빠순이가 되지 않고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감히 마왕이라는 칭호가 붙을 만큼 마성의 매력을 내뿜는 그의 당당함이 좋아서 라디오만큼은 반드시 챙겨듣곤 했다. 작가 박상에게도 '신해철이 없는 세상만큼 개뿔 같은 것도 없을' 만큼 신해철은 역시 남다른 존재였나 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정말 고마운 존재, 땅이 꺼지도록 더 깔아도 되니까 함께 인생의 기찻길을 달리는 중이기만 하면 좋을 것 같은 존재로 말이다. 영원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더 찬란하게 남아 있는 존재, 신해철이 남긴 '불멸에 관하여'의 가사를 읽어보면 정말이지 요즘의 흔한 가사들이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철학이란 게 담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회성 소비에 치우쳐 있는 대중 문화와 음악의 가치를 보다 단단하게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작가의 마음에 유독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내릴 곳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인생이든 여행이든 텅 빈 채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원고의 의미가 텅 비어 보이더라도, 그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다. / 296p 

 

 

문화적으로 사려 깊고 단단한 것들이 많이 나타나 유치하고 헐렁한 것들을 점점 밀어내는 분위기가 판치면 좋겠다. 오래된 음악들이 자꾸 머그잔처럼 묵직하게 다시 소비되는 건 말입니다. 일회용 종이컵 같은 음악들이 너무 범람했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 262p  

 

 

  이처럼 박상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음악'을 넣어도 무방할 만큼 인생을 달달하고 끈적하게 만드는 순간순간에 함께 한 음악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음악이 많은데 나는 왜 그간 모르고 살아온 건지, 그의 에세이를 읽으며 사는 게 버거워서 감각보다 실존에 치우쳐 살아오느라 놓치고 있었던 음악들을 다시금 찾아 듣고 싶어졌다. "모쪼록 달콤한 사랑이 쩍쩍 달라붙는 날들 되시기를!" 하고 기원하던 그의 글귀처럼 내 인생에도 달달한 감성으로 가득한 추억이 가득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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