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리커버)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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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글과 시를 낳아 다시 우리의 추운 삶을 견디게 하였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길어 올리는 따스한 문장들!

 

 

 

  “어딜 그렇게 열심히 가?”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채듯 나를 붙든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이곳에서 마주칠 일이라고는 없을 것 같았던 지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지인은 나의 걸음이 너무 빠르다 못해 매몰차서 달려오면서도 몇 번이나 망설였다고 한다. 어딜 그렇게 바삐 가는지 붙잡아서 인사하는 것조차 실례가 될 것 같았다나. 내 걸음이 그렇게나 빨랐던가. 그때의 나는 사실 이렇다 할 약속이 있었던 게 아닌데도, 스스로 정해놓은 시간과 일정에 맞춰 움직이느라 걸음을 재우치고 있었다. 오전 몇 시까지 필요한 물건을 사놓고, 집에 와서 글을 쓴 후 오늘까지 하려던 일을 몇 시 안에 다 끝내야… 늘 머릿속으로 그날의 일정을 계산하고 그 계산대로 움직이는 편인 나는 꽤 자주 스스로를 몰아붙이곤 했다. 때문에 그날도 역시 목적지까지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걸었던 게 틀림없다.

 

 

 

  지인의 말을 듣고 난 이후 나는 그때서야 내 뒷모습이, 나의 걸음걸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타인에게는 느긋하게 해도 된다고 관대하게 말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내 성격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동안 뒷모습에서 드러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느리게 걸어보기로 했다. 목적지를 향해 나를 몰아붙이기보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기웃거려보고 일부러 둘러 가보기도 하면서. 그리고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제법 느릿한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그건 두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내가 계획했던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기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그 계획에 잘 따라주지 않을 때 유독 예민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내려놓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했다. 뒷모습으로도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고, ‘빨리, 빨리’라는 말보다는 ‘기다릴게, 기다려줄게’라는 말을 더 자주 할 수 있는 여유를 내게 주자고. ‘순간을 단숨에 지나치려 하지 않고, 모든 순간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 순간이 나를 붙잡을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꽤 괜찮은 삶의 태도’라던 고수리 작가의 말처럼.

 

 

 

어떤 순간에는,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기도 했다.

 

 

  지난 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통해 ‘모든 이야기가 절망에서 끝나버리지 않도록 잠시나마 손바닥에 머무는 조금의 온기 같은 이야기를 울더라도 씩씩하게 쓰려’한 고수리 작가의 글을 아직도 기억한다. 불운한 가정사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삶이란 어떤 특별한 목표를 이뤄내는 것보다 평탄하게 이어가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소소한 일상 속에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길어 올릴 줄 아는 그녀의 문장은 참 따스하다. 추운 바깥을 떠도는 생명 하나에도 쉬 지나치지 못하는 세상의 다정함과,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타인에게조차 잔잔한 애정을 느낄 줄 아는 그녀의 온기 어린 시선은, 에세이집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에서도 잘랑거리며 내 마음 속으로 흘러든다.

 

 

 

순간을 단숨에 지나치려 하지 않고, 모든 순간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 순간이 나를 붙잡을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꽤 괜찮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순간에 붙잡힌다 해도 좋을 일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삶이 나를 살아가게 하기도 하니까. 어떤 순간에는,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기도 했다. / 21p

 

 

가까운 사이라서 더욱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날들, 마음이 마음에게 말했다. 다정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에게.

미안해하지 마.

잘 지내니.

많이 힘들지.

기운 내.

그런 말들이 소리도 없이 지나갔었다. 수국이 피던 계절에. / 31p

 

 

 

  우리는 이따금 이름 모를 타인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예상치 못한 큰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고수리 작가가 열여덟 살이었을 때, 부모님과 헤어져 멀고 낯선 이모네 집으로 주소를 옮기고 기숙사 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그녀는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서를 적기 위해 이모네 집 관할 동사무소를 찾아야 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권과 양육권이 어떻게 되었는지, 혼자 다른 곳에 떨어져 살게 된 자신의 행정 처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던 그녀는 신청서를 앞에 두고 어느 것 하나 적을 수 없었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다시 적어오라는 냉랭한 대답만 할 뿐이었고 괜히 주눅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때, 금테 안경을 쓴 한 직원이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는 여느 직원들처럼 무뚝뚝해 보였지만 엄마와 이모를 번갈아 가며 통화하고 컴퓨터를 두드리며 뭔가를 검색한 뒤 신청서를 채워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학교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 지 모르는 그녀를 걱정하며 자신의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실은 내가 다리 하나가 없었어.” 직원 아저씨는 다리가 없었노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며 가는 동안 내내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시종 유쾌하고 다정하게 그녀의 안부와 사정을 물어봐준 그는 “그러니까 힘내서 살아라.”고 응원해주었다. 앞으로도 불행은 다가올 테지만, 그래도 힘내서 살면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겨우 주민등록증 하나 발급받는 일조차 힘겨워했던 그녀를, 자신의 불행을 어디에도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던 그녀를 위로해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살면서 ‘위로’라는 말을 마주칠 때 어김없이 그를 떠올렸다고 한다. 또 그 덕분에 어른이 된 그녀는 우리 사는 세상이 여전히 다정하다고 믿는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옆자리 사람에게서, 거리에서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관공서에서, 내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타인에게 잔잔한 애정을 느낀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우리는 사실, 누군가의 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신일지도, 무표정 속에 날개를 숨기고 걷는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어쩌면 이런 믿음이 너와 나,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그 소박한 믿음이 우리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건 아닐까.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은 올이 나갔다고 해서 밖에 내보이지 않으면 그만일 수 없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따끔거린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그 마음을 입은 채로 돌아다녔다. 어깨를 펼 수 없고 대화할 수 없고 웃을 수 없었다. 상처받은 마음은 그렇게 티가 났다. 내색하지 않았어도 나와 마주친 사람들은 힐끔 쳐다보았을 것이다. 떼어주고 싶은 부스러기 같은, 가려주고 싶은 얼룩 같은, 정리해주고 싶은 보풀 같은 나의 마음을. / 86p

 

 

곧 사라질 소수언어 헤레로어에는 ‘베바라사나(VEVARASANA)’라는 말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늘 통한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옆에 없지만 느낄 수 있다.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수언어가 사라진다 해도 나는 이 단어만은 기억하고 싶다. 베바라사나. 이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조금만 외로울 것이다. 견딜 수 있을 만큼 슬플 것이다. 만나지 못한다 해도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 206p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커튼’은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일화 중 하나다. 스물두 살 무렵, 대학생이 된 남동생과 사는 집으로 처음 엄마가 온 날이었다. 한쪽 벽면이 여러 개의 창문으로 뚫려 있는 원룸이었다. 서울에서 창문 있는 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어서 저렴한 가격에 좋은 집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웃풍이 어마어마하게 센 집이었다. 이사를 물릴 만큼 다녀본 엄마는 단박에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커튼이 있어야겠다고, 뜬금없이 한지와 유성 매직을 사 오라고 했다. 엄마는 방바닥에 한지를 깔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여기에 시를 쓰자.”

 

 

 

  세상에. 시 커튼이라니. 어떻게 한지에 시를 써 붙여 커튼을 만드실 생각을 했을까. 고수리 작가 특유의 감성은 아마도 엄마의 유산이 아니었을까. 쏟아질 것 같은 하늘, 그 아래 햇살을 머금은 한지 위에 까만 글자들이 어룽어룽 춤을 추는 공간. 시인이 열여덟에 썼다던 애틋한 연서가(황동규 <즐거운 편지>), 꽃 필 차례가 그대 앞에 있다는 위로가(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흰 당나귀 응앙응앙 우는 사랑의 풍경이(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내가 돌아누우며 네 손을 더듬어 찾는 줄 알라는 당부가(김용택 <꽃>) 하늘에 걸려 있는 방.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엄마와 동생의 손길이 닿은 시가 하늘에 걸려 있었던 나날들, 겨우 몇 줄의 문장에 불과한 글자들이 따뜻함이 되었을 순간들이 떠올라 나의 마음도 짜르르해진다. 덕분에 나는 나의 두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는 엄마가 될까를 생각해본다.

 

 

 

김용택의 <꽃>을 다시 찾아 읽었다. 이불 속에 껴안고 누워 있던 우리 셋이 떠올랐다. 금세 서늘해진 공기에 거실 창문을 닫았다. 햇살은 이렇게나 따스한데 겨울은 아직 힘이 세다.

블라인드를 내렸다. 드르륵, 하얀 블라인드가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이 하얀 공간 위에 시가 쓰여 있었지. 그때 하늘에 걸려 있던 시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걸려 있던 거구나. 엄마가 우리에게 주었던 건, 추운 바람을 막아주는 커튼이 아니라 추운 삶의 견디게 해준 시였다. / 70p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어떤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건다. 쓰기 위해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내 맴돌고 사무치다가 끝내 손끝으로 써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다. 쓰게 될 테지만 쓰기까지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 결국 방법은 하나뿐.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 111p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서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든 생각이라고 한다. 이 문장을 읽으니 문득 학창시절 아빠가 나에게 줄곧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빠는 공부를 잘 했지만 일찍 돈을 벌어야 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어.”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학업 능력이 상당히 우수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때 하지 못한 공부가 미련이 남아서 딸인 나에게 기대가 컸다. 나는 내내 아빠의 꿈을 짐처럼 짊어지고 살았다. 아빠의 꿈을 이뤄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그래서 나는 부모가 이루지 못한 것을 대신 자식을 빌어 꿈꾸게 하지는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부모가 되어 보니 아빠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꾸게 하려는 게 아니라 어쩌면 나의 약한 점을 닮지 않기를, 나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래서 이제는 어느 작가가 SNS에 올렸다던 글귀처럼 ‘내’가 아닌 ‘네’로, 너는 자라 네가 되어라고 빌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사는 세계는 이토록 아름답고 경이롭단다. 그 안에서 너는 자유롭게 살아. 온전히 너 자신으로 자라렴’ 하고 격려해주고, 그저 아이를 믿고 껴안아 줄 유일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나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고유한 나로 살기를 바랐던 것처럼, 내 아이도 고유한 그 자신으로 살 수 있기를 응원해주어야겠다고.

 

 

 




 

 

 

 

  에세이가 지닌 힘은 이런 건가 보다. 당신의 삶을 빌어 내 삶을 바라보는 것. 고수리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내 삶의 어떤 장면과 순간들이 떠올라 잠시 읽기를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과 함께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지금, 가장 추운 곳에서 나를 데워줄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내 안녕하시라는 안부와 함께.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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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내러티브 - 더 이상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하마모토 다카시 지음, 박정연 옮김, 이정민 감수 / 효형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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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고 신비한 신데렐라 백과사전!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 너머의 세상을 통찰하는 시간!

 

 

 

  아름다운 드레스와 유리 구두를 신고 화려한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신데렐라. 밤 12시가 되면 요정의 마법은 사라지지만, 잃어버린 유리 구두를 되찾고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 동화책을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신데렐라 서사’로 지칭되는 플롯의 기본 구조는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각색되며 회자되고 있다.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고 성 평등에 관한 왜곡된 시각을 지니게 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해서 신데렐라 이야기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학, 민속학, 신화학, 문화인류학적 시각에서 바라본 신데렐라 이야기

 

 

  『신데렐라 내러티브』는 신데렐라에 관한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신데렐라 서사의 원형을 탐색하고,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타난 신데렐라 서사의 독특한 특징과 역사와의 연관성을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왜 이토록 오랫동안 신데렐라 이야기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에 다가간다. 먼저 책에서는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서사로 알려진 고대 이집트의 「로도피스의 신발」에서부터 신데렐라 서사의 원조가 유럽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샹드리용」, 그림형제 판 신데렐라 이야기 「재투성이」, 미국판 신데렐라로 아메리칸 드림과 연결되어 전 세계에 널리 정착하게 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신데렐라 서사의 다양한 유형을 추적해나간다. 뿐만 아니라 『아라비안 나이트』 속의 신데렐라 이야기인 「발 장식 이야기」,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 발상설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을 짐작케 하는 중국의 「예시엔」과 베트남의 「떰과 깜」, 우리나라의 「콩쥐 팥쥐」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속에서 발견되는 신데렐라 서사의 유형도 함께 살펴본다.

 

 

 

부모를 잃고 차별받으며 의지할 데 없던 유대인 소녀는 고난을 이겨 내고 막강한 왕의 아내가 된다. 이 이야기는 성경판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의 고난은 신데렐라 서사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역경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에스델의 진의는 왕비의 지위와 명예를 얻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을 받아 유대인을 구제하는 데에 있었다. ‘별(에스델)’이라는 이름답게 에스델은 유대인의 희망이었다. / 33p

 

 

샹드리용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불우한 신세가 되었지만 계모와 의붓자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요정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데, 이 조력자는 대모였다고 설명한다. 중세 이후의 유럽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세례 의식을 받았고 이때 부모 외에 아이를 돌볼 대부와 대모를 정했다. 출산 후 산모가 사망하거나 병에 걸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이런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 요정 대모가 탄생했다. / 49p

 

 

 




 

 

 

 

  저자는 고대 이집트에서 유럽, 아시아에 걸쳐 나타나는 신데렐라 서사를 분석하면서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다르지만 상당히 공통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계모의 학대, 주인공의 시련, 조력자의 등장, 비현실적인 무도회, 신부 시험, 결혼, 해피엔딩이 그러하다. 흥미롭게도 이들 구조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으면 신데렐라가 단순히 허구가 아니라 당대의 생활과 풍습을 고스란히 반영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가령 주인공이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 장면은 이른 나이에 사망하는 일이 잦았던 과거의 상황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흔들린 가족관계 속에서 가장은 결핍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재혼하게 되고, 이때부터 가족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며 계모의 학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대체로 요리와 바느질을 하고 콩껍질을 까는 등 하녀처럼 혹독하게 일하는 처지에 몰린다. 여러 문화권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재를 뒤집어쓰고 일한다는 의미의 ‘재투성이’에서 유래된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주로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력자’는 요정, 새, 나무, 소, 물고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특정 문화권의 종교관이나 토착 애니미즘을 대변하는 존재들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잃어버린 구두의 주인을 찾는 장면은 일종의 신부 시험에 해당한다. 구두, 즉 신발은 오래전부터 결혼의 상징으로써 주인공에게 나머지 구두 한 짝이 돌아오게 되면 이야기 속 남녀는 완벽한 한 쌍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으로써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 역시 각자 혼자일 때는 불완전하지만 결혼을 통해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즉, 결혼을 자연의 섭리이자 다음 세대를 이을 자손을 만들어 내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인류에게 필요한 가장 근원적인 행위라 여긴 것이다.

 

 

 

「샹드리용」에서도 신발이 결혼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많은 구두 중에서 왜 하필 ‘유리구두’여야 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대표적으로 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의 비판이 유명한데, 그는 페로가 동화를 개편할 때 원작에 쓰여 있던 ‘다람쥐 모피vair’를 같은 발음인 ‘유리verre’로 잘못 썼다고 주장했다. 다람쥐 모피는 왕비만 신을 수 있었던 값비싼 구두 재료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대로라면 구두는 샹드리용이 고귀한 신분임을 암시하는 요소라고 해석할 수 있다. / 51p

 

 

크리스트교의 가면 규제에 따라 신데렐라 서사도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군중이 가면을 사랑한다고는 해도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등장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가면 모티브를 은근히 감추는 요소로써 ‘변신’이라는 장치를 고안해 낸 결과가 바로 페로의 「샹드리옹」이었다.

(…) 페로는 가면극을 변신 이야기로 교묘하게 가장했다. 페로는 궁중에서 시중을 들었기 때문에 궁중인을 비롯한 민중이 얼마나 가면을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며 동시에 크리스트교가 가면을 싫어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신데렐라 서사를 가면극처럼 즐길 수 있었다. / 181p

 

 

 

  그런데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어째서 이토록 비슷한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일까? 저자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의 대이동에서 그 이유를 발견한다. 인류의 관점에서 보면 아프리카에서 나와 세계 각지로 대이동을 할 때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거듭 행복을 추구하는 고대인들의 꿈과 희망의 과정이 신데렐라 서사 구조를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머니의 죽음, 계모의 구박, 고단한 생활, 초능력을 가진 조력자의 등장, 그리고 고귀한 존재와의 결합이라는 ‘해피엔딩 스토리’는 간단히 말해서 곤경에서 탈출해 행복해지고자 하는 인류의 오랜 희망과 염원이 반영되었음을 의미한다. 다만 빠르게 수정되고 퍼지는 언어의 특성상 특정 지역과 세계관에 맞추어 변형되기 쉬웠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각 시대적 특성과 신화적 발상, 종교적 관습, 문화상을 반영하여 각 나라마다 신데렐라 서사에서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신데렐라 내러티브』는 전 세계의 다양한 신데렐라 이야기를 살펴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 민속학, 종교학, 역사학 등의 관점을 통해 신데렐라 이야기를 새롭게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결혼이라는 환상, 여성의 자립과 거리가 먼 남성 의존증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젠더론적 비판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왜 여전히 신데렐라 서사가 매력을 잃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지 되새겨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 행복해지고 싶은 욕구, 꿈과 이상을 향한 동경. 그 오랜 인류의 염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어떠한 형태로든 계속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건 이야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중요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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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걷힌 자리엔
홍우림(젤리빈)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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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상처를 내내 움켜쥐고 있으면 어둠 너머의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판타지이나 과거의 과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인들의 삶을 매우 현실감 있게 그려낸 작품!

 

 

 

  1900년대 초 경성. 점차 가혹해지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시대의 아픔과 의지가 한 데로 뒤섞인 격동의 시대. 안국정(안국동) 큰길을 따라 한 골목 들어가면 ‘오월중개소’라 불리는 올리브색 2층 양옥 건물이 있다. 주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중개하는 상점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는 ‘보통 사람들은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최두겸이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기이한 고민이 있거나 곤란을 겪을 때면 그를 찾아온다. 신이라 불리는 자들과 영물들, 억울함을 달랠 길이 없어 저승에도 가지 못하는 원혼들까지.

 

 

 

당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있나요?

그렇다면 오월중개소를 찾아가보세요.

 

 

  경성 외곽, 유독 화려해 보이는 어느 대저택에서 수상쩍은 모임 하나가 열린다. ‘저절로 움직이는’ ‘한밤중에 흐느끼는 소리’ ‘이유 없는 열병’…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란 게 보통 예사로운 게 아니다. 참가자가 기이한 사연이 얽힌 물건을 소개하면 사례금을 주고, 가장 흥미로운 사연을 지닌 물건을 가져온 이에겐 상금을 수여하는 행사로, 이른바 <괴기 물건 대회>라는 이름의 모임을 주최한 이는 젊은 사업가 장영주다. 이 날 장영주의 소개에 따라 앞에 나선 김천호라는 청년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범 잡아먹는 함이란 별칭이 지닌 오래된 함 하나를 선보인다. 그는 함에 얽힌 소름끼치는 전설과 함께 부모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금기사항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째, 함에 모신 신을 극진이 모실 것. 둘째, 신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신의 내력을 말하지 말 것. 하지만 금기를 무시한 탓일까, 청중들 앞에서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김천호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얼굴을 시작으로 온몸에 멍이 찍히더니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엉거주춤 얼어붙었던 손님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김천호는 피를 토하며 뻣뻣한 통나무처럼 굳어 바닥에 쓰러진다.

 

 

 

  장영주가 보낸 자동차를 타고 두겸이 장 씨 저택에 도착한 건 자정이었다. 두겸은 천천히 함이 들어 있는 응접실 안에서 김천호가 말한 ‘신’이 아니라 험한 죽음을 맞은 한 여자의 원혼을 마주한다. 함에 묶인 이 원혼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그대로 저주로 돌려준 게 분명했다. 심지어 원혼은 두겸에게도 살을 날리지만 이 원혼의 오랜 고통이 무엇인지, 왜 이 함에 묶이게 되었는지 사연을 들려주어야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 망설임 끝에 원혼은 두겸에게 개갈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개갈촌은 사냥꾼들의 마을로, 그곳의 부는 사냥에서 왔고 사냥은 하늘에서 내려준 붉은 눈썹을 가진 남자들만의 권리였다. 큰 짐승들이 사는 윗산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오로지 눈썹 붉은 개갈촌 남자들뿐이었다. 외지인, 여자, 검은 눈썹의 남자들이 들어가면 산이 노하신다, 부정에 노한 산은 사냥꾼들을 잡아먹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것은 사냥이 유일한 부를 쌓는 수간인 마을에서 사냥을 소수끼리 독점하려는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금기였다. 하지만 부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사냥꾼들과 달리 늘 곤궁에 시달렸던 어정은 죽은 아버지가 가르쳐줬던 총 쏘는 법을 몰래 익혀 사냥을 시도하려 했다. 그리고 때를 봐서 사람들에게 누구나 사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사냥꾼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 귀한 사람이며 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하지만 이 계획을 눈치 챈 촌장이 일을 꾸몄고, 어정은 금기를 깨 신을 노하게 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발길질에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두겸은 어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린 듯 싸늘해진다. 개갈촌의 붉은 눈썹 사내들이 하는 짓이 꼭 조선의 양반 지배층들이 하는 행동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반들 외엔 인간 취급도 하지 않겠다는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어놓고,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양반 될 기회까지 철저히 차단해 원하는 것마저도 죄악으로 만들어버린 시절이었으니까. 이 외에도 뿌리 깊은 악습과 부당함에 희생당한 자들의 회환은 소설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내로 태어났으나 반골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자로 키워진 고오가 그러했고, 몸이 아팠던 것인데 귀신에 들린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로 인해 우물에 내던져진 두겸의 동생도 그러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어부들의 념인 구앙을 물리치기 위해 대대로 자신의 몸을 바쳐야 했던 무녀도 마찬가지였다.

 

 

 

두겸은 고오의 손을 바라보았다. 거친 손이지만 젊다. 작게는 오 씨 가문의, 크게는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뿌리 깊이 뒤틀린 가부장제에 오고오는 보란 듯이 커다란 한 방을 먹였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통쾌한 것이었을까? 속 시원한 승리였을까? 아니, 그랬을 리 없다. 지금 오고오는 젊디젊은 모습으로 혼령이 되어 내 앞에 있지 않나. 원통함에 저승으로 넘어가지도 못하고. / 38p

 

 

“바람(望)은 강력하단다.”

은자는 얼핏, 손님에게서 기쁨을 읽었다.

“원망 하나, 원망 둘, 원망 셋…. 바람이 모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 89p

 

 

도망친 정이 누님이 붙잡혀 왔을 때 사람들은 누님이 귀신 들린 꽃신 때문에 미쳐서 도망쳤다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남편의 잦은 주먹질 때문이었다. 그가 걸핏하면 누님을 죽도록 두들겨 패는 걸 마을 사람들도 모르지 않았다.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왜 애꿎은 식칼이며 꽃신을 탓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고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말했을 뿐인데, 그래서 소년은 마을의 눈엣가시 같은 아이였다. / 115p

 

 

 




 

 

 

 

  소설을 읽다보면 ‘귀신’, ‘영물’을 소재로 한 흥미 위주의 기담집이 아닌, 개화기를 맞은 경성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과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인들의 삶을 매우 현실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원혼들이 품은 한은 한 개인의 사적인 염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악이라는 사실에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시작은 죄책감이었을망정 네 아이를 거두어 살린 온내가 있었고, 작은 짐승인 담비를 거두고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는 보살님들이 있었으며, 대철을 미워하면서도 그의 죽음에 대해 괴로워하던 은자와 소작제 개선을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추진하던 조기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어둠이 걷힌 뒤에 다가올 빛을 볼 수 있는 법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지만 더 나은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 믿고 세상과 화해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해내왔어요. 정말 느리지만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들은… 아주 천천히 혐오와 차별, 그리고 폭력과 맞서 왔어요. 제가 사는 세상은, 제 아이들이 사는 세상과 다를 테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또 다를 겁니다.” 라던 두겸의 말을 믿고서.

 

 

 

비구니는 여러 해에 걸쳐 피폐해진 전국을 떠돌며 사람들을 구했다. 비구니가 살았던 당시엔 다려가귀라는 악귀가 많았다. 그것은 죽은 이가 하도 많아 피와 원념, 한숨이 깊이 서린 땅에서 솟아난 것들로, 원혼을 넘어서 사람을 해치는 악귀가 된 것이었다. 그것은 땅 아래서 불쑥 나타나 사람들을 끌고 들어갔다. 다려가귀로 인해 사람들이 떠나간 지역들은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폐촌이 됨으로써 수탈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많은 백성들에게는 가혹한 관리가 다려가귀보다 무서웠던 것이다. / 293p

 

 

 



 

 

 

 

  불안과 상처를 내내 움켜쥐고 있으면 어둠 너머의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때로는 불가항력의 고통에 어쩔 수 없이 휘말릴 때도 있지만, 내 안의 어둠을 걷어낼 수 있는 의지만은 나에게 있다. 카카오웹툰에서 누적 조회수 2천만 뷰를 기록한 동명 웹툰을 소설로 각색한 작품이라 해서 그냥 가볍게 읽기 좋은 작품일 거라 생각했는데, 사연 하나하나에 담긴 메시지가 꽤나 묵직하게 다가왔다. 드라마 같은 제3의 작품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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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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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반드시 읽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놀라운 작품!

우리 삶을 키치‘화’ 하고, 이분법으로 재단하려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와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확실히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 끊임없이 중첩되는 이분법적인 언어들, 계속해서 질문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철학적 가치들, 각 개개인의 내밀한 역사와 그 속에서 발견되는 사랑과 욕망 그리고 고뇌의 자국들. 1인칭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을 오가며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실험적인 소설 기법들, 소련의 침공으로 자유를 상실한 체코의 시대 상황과 각 인물들에게 드리워진 이데올로기의 그림자 등 소설은 독자가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양산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소 서너 번쯤은 재독이 요구되는 어려운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이분법 그리고 키치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둠, 두꺼운 것-얇은 것, 뜨거운 것-찬 것, 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 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 극단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 13p

 

 

 

  소설은 이른바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대변되는 ‘이분법’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이 세상은 이분법이라는 구조 아래 나뉘어져 있고, 그 중에서도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 가벼움 아니면 무거움?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 애초에 우리의 인생을 이처럼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뉠 수 있을까? 그런 뜻에서 소설은 가벼움과 무거움, 영혼과 육체, 자유와 책임 등 이분법인 구조가 제기하는 여러 질문과 그 안에서 탄생한 인물들을 통해 과연 이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숙고하게 한다.

 

 

 

  극 중 의사인 토마시는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난 가벼운 관계를 추구한다. 사랑과 육체적 관계를 별개로 보고, 하루살이 애인들과 ‘에로틱한 우정’의 관계를 지속한다. 다만, 그의 애인이자 화가인 사비나만이 그를 이해할 뿐이다. 하지만 테레자를 만나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토마시는 자신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만다. 이후 테레자가 한 차례 그를 떠난 뒤에 그녀를 쫓아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훗날 공산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글을 잡지에 투고하기도 하는데, 이처럼 한없이 가벼워지기를 지향하면서도 때때로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자기 안의 모순을 발견한다. 하지만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버린 뒤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픈 욕망에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창문 닦이가 된다. 그렇게 그는 다시 가벼워지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마지막 장면에서 테레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임무라니, 테레자, 그건 다 헛소리야. 내겐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 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 17p

 

 

토마시) 그의 몫으로 남은 유일한 상속 재산은 여자들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다. 그는 여자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두려움과 갈망 사이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아야만 했고 그 타협점을 그는 ‘에로틱한 우정’이라 불렀다. 그는 애인들에게 이렇게 못을 박았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않는, 감상이 배제된 관계만이 두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 23p

 

 

 




 

 

 

 

  무거움을 대변하는 인물, 테레자는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엄마 아래서 자라나 엄마의 희생으로 성장했다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엄마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고향으로부터 달아나 토마시의 세계로 진입하지만, 다른 여자들과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개별성을 가지고 싶었던 테레자의 바람과는 달리 토마시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운다. 이 때문에 그녀는 고양이가 얼굴에 뛰어올라 피부 깊숙이 발톱을 박거나 커다란 실내 수영장에서 스무여 명의 여자들과 알몸이 된 채 행진하는 꿈을 꾸곤 한다. “당신은 우리로부터 눈을 떼지 않다가 우리 중 한 여자가 틀린 동작을 하면 쏘아 죽였어. 풀장은 물결에 따라 출렁이는 시체로 가득 찼고. 나는 더 이상 힘이 없어서 다음 동작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당신이 날 죽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녀에게 있어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토마시의 외도는 공포 그 자체였고 이에서 달아나기 위해 이따금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은 모순된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테레자는 그간 자신의 약점(동정심)을 이용해 토마시를 붙들고 모든 것을 잃게 만든 것이 자신이었음을, 자신의 삶에서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음을 성찰하게 된다.

 

 

 

테레자) 어머니는 테레자에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며 지칠 줄 모르고 설명했다. 아이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인의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녀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테레자는 삶의 최고 가치는 모성애이고 모성애란 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 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 / 79p

 

 

테레자) 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 현기증이란 무엇인가? 추락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튼튼한 난간을 갖춘 전망대에서 우리는 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일까? 현기증, 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 다른 그 무엇이다. 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 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 106p

 

 

 

  반면, 이 소설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상징하는 화가 사비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한다. 그녀는 항상 같은 사람, 같은 단어들과 더불어 대열 속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어쩌면 자유로운 성애를 지향하는 토마시에게 이끌린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도 관계를 맺은 후 곧장 테레자에게로 돌아가는 토마시를 보며 질투를 느끼고 그의 양말 한 짝을 숨기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거울 앞에 서서 속옷차림으로 아버지의 유산인 중산모자를 즐겨 쓰곤 하는 그녀의 모습은 가벼움을 지향하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모욕하고 희화하는 무거움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이중성을 상징한다. 이에 사비나는 ‘반항’하고 ‘배신’함으로써 화폭 너머의 세상,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가정을 버리고 그녀에게로 온 프란츠로부터,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조국의 그림자로부터 멀리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지향한다.

 

 

 

사비나) “이 그림은 망친 거야. 붉은 물감이 캔버스에 흘렀거든. 처음에는 화를 냈는데 점차 그 얼룩이 맘에 들더군. 그 공사장이 진짜가 아닐 뿐 아니라 눈속임용으로 그려 넣은 낡은 무대장치 같았고, 붉은 물감 자국은 찢어진 틈 같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이 틈을 확대해서 그 뒤에서 볼 수 있을 것을 상상하는 놀이를 시작했어. 그런 이유로 내가 그린 첫 연작을 무대 장치가 불렀던 거야. 물론 아무도 내 그림을 보진 못하게 했지. 보았다면 나는 퇴학당했을 거야. 앞은 완벽한 사실주의 세계였고, 그 뒤는 무대장치의 찢어진 캔버스 뒤편처럼 뭔가 다른 것, 신비롭고 추상적인 것이 보였지.” / 114p

 

 

사비나) 그날 이후 그녀는 아름다움이란 배반당한 세계라는 것을 알았다. 그 아름다움이란 박해자들이 실수로 어딘가에서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만 만날 수 있다. 아름다움은 노동절 행렬의 배경 뒤편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배경이 그려진 화폭을 찢어야만 한다. / 184p

 

 

 

  교수인 프란츠는 미남에 학계에서도 출세가도를 달리며 안정된 일상을 누리던 남자였지만 사비나를 만남으로써 달라진다. 그는 사비나의 자유로운 성애는 물론 그녀가 혁명의 나라에서 왔다는 것, 이른바 감옥과 박해, 금서와 장갑차 같은 단어에 향수를 동반한 이상한 부러움을 느낀다. 그렇게 사비나의 가벼움에 매료되어 프란츠는 아내에게 외도 사실을 밝히고 사비나에게로 향하지만 사비나는 떠나고 만다. 애초에 그들은 다른 언어를 사용했고, 사비나가 요구하는 에로틱한 우정을 프란츠는 채워줄 수 없었기에. 이렇듯 우리는 무거움과 가벼움, 육체와 영혼과 같은 이분법의 명제 앞에서 어느 것도 완전한 것은 없으며 인간이란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순된 존재임을 4인의 주인공을 통해 깨닫게 된다.

 

 

 

프란츠) “부유한 사회에서는 손으로 일 할 필요가 없고 정신적 활동에 몰두하지. 대학도 점점 많아지고 그에 따라 학생도 많아져.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논문 주제가 있어야 해. 그런데 어느 것에 대해서나 논문을 쓸 수 있으니 주제는 무한대로 널려 있어. 그렇게 해서 써 낸 원고 뭉치는 자료실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그것은 무덤보다도 쓸쓸하지. 만성절이 되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까. 무수한 저작물, 문장의 눈사태, 양의 광적인 팽창 속에서 정작 문화는 실종되지. 당신 나라에서 금서가 된 단 한 권의 책이 우리네 대학들이 토해 낸 단어 수억 개보다 훨씬 의미 있어.” / 173p

 

 

 




 

 

 

 

  이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사랑이야기이자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야기이며,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발견한 한 권의 철학 에세이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때문에 소설 속에서 제기된 ‘키치’라는 개념은 상당히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되는 6부 ‘대장정’ 편에서 키치가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일반적으로 ‘저속한’ ‘하급 문화’를 가리키는 키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소설은 스탈린의 아들 이야기를 꺼내든다(네 주인공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서 뜬금없이 스탈린의 아들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스럽지만 이것이 밀란 쿤데라의 서술 방식이다). 스탈린의 아들은 세계 대전 중 전쟁 포로가 되어 영국군 장교와 같은 감옥에 수용되었는데 그는 변소를 항상 더러운 채로 내버려 두어 비난을 당했다. 영국인들은 당시 우주에서 가장 권세 있는 남자의 똥일지라도 그들의 변소를 똥 투성이로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스탈린의 아들은 끔찍한 저주를 하늘에 퍼부으며 수용소를 둘러싼 고압 철조망으로 달려가 숨을 거두었다. 스탈린의 아들이 똥 때문에 목숨을 내놓다니.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자가 어째서 겨우 똥 때문에 심판받아야만 했을까?

 

 

 

  여기서 소설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주와 특권이 더도 덜도 아닌 같은 것이라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사이의 차이점은 없어질 테고, 신의 아들이 똥 때문에 심판받는다면 인간 존재는 그 의미를 잃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밀란 쿤테라는 똥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는 위선적인 태도, 고정관념, 기계적인 이미지와 가치, 모든 정치 행위의 미학적 이상이야말로 키치라고 지적한다. 스탈린의 아들이 똥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듯 ‘똥’, ‘성’ 등 우리 사회가 저급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실존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한다 한들 그 또한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기 욕망하면서도 또한 가벼운 것을 참지 못해 다시 무거워지고 마는 인간이란 애초에 이렇게 모순적인 것이다. 다만 우리 삶을 키치‘화’ 하고, 이분법으로 재단하려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와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복잡다단한 소설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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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집
TJ 클룬 지음, 송섬별 옮김 / 든 / 202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꿈꾸는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

외모, 인종, 종교, 혹은 자신의 신념이나 이상을 끝끝내 이해받지 못한 채 소외당하고 있는 자들의 목소리!

 

 

 

귀하가 마르시아스섬에서 하게 될 과제는 중요합니다.

귀하의 보고서에는 고아원이 운영을 지속할지, 또는 영구 폐쇄될지를 결정할 때

필요한 정보들이 담기게 될 것입니다. 아서 파르나서스는 신뢰를 바탕으로

큰 책임을 맡게 되었지만, 그 신뢰가 여전히 유효한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과 귀를 활짝 열도록 하십시오, 베이커 씨.

한순간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지금까지 귀하가 보여주었던 혹독할 만큼의 솔직함을 기대합니다. - 찰스 위너 / 77p

 

 

 

  마법아동관리부서(DICOMY) 소속 연구원인 라이너스 베이커는 마법아동 고아원으로 파견을 나가 해당 시설이 안전한지 조사하고 보고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최고위 경영진으로부터 회의에 참석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가족이나 친구, 애인은커녕 존재감이라고는 제로지만 업무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판단에 능한 그를 눈여겨 본 최고위 경영진들은 최고 등급에 해당하는 기밀 업무를 맡긴다. 이제껏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극도로 특이한 유형의 여섯 아이들이 모여 있는 마르시아스섬의 고아원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지시였다.

 

 

 

  그렇게 얼떨결에 마르시아스섬에 도착한 라이너스는 그간 비밀에 부쳐져 있던 섬 아이들의 신상 정보가 담긴 파일을 열어보자마자 기절하고 만다. 이름은 루시퍼(애칭: 루시), 나이는 6살 6개월 6일, 어머니는 미상, 아버지는 악마, 종족 분류는 적그리스도. 이른바 악마의 아들로 종말을 불러오는 자의 피를 가진 이 어마어마한 존재로 인해 충격에 빠진다. 여기에 여자아이지만 턱수염이 나 있고 꽃의 말소리를 드는 여자 노움인 ‘탈리아’, 먼 옛날 지구를 헤매던 고대 파충류의 후손이자 멸종 위기 종족인 ‘시어도어’, 꽃과 나무를 피워내는 숲의 정령 ‘피’, 덩치는 크지만 낯선 이와 큰 소리를 경계하는 셰이프시프터 ‘샐’, 종족 미상에 눈은 하나이고 두 개의 더듬이가 솟아 오른 초록색 덩어리 ‘천시’까지. 여섯 아이들은 이제껏 수많은 마법아동들을 만난 라이너스조차도 적응하기 어려운, 일반 사람들에게는 위험스러운 존재다. 여기에 아이들을 돌보는 섬의 정령인 채플화이트(조이)와 원장 아서 파르나서스 역시 예사 인물이 아닌 게 분명하다.

 

 

 



 

 

 

 

“나는 그저 한 장의 종이. 얇고 찢어지기 쉬워. 해를 향해 들어 올리면 빛이 나를 통과해. 내게는 글자가 씌어지고, 그러면 다시는 쓸 수 없지. 이 자국들은 역사야. 또 이야기야.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사람들은 글자만 보고 글자가 쓰인 종이는 보지 않아. 나는 그저 한 장의 종이, 나 같은 이들이 많지만 똑같은 건 하나도 없어.” / 199p

 

 

 

  평소 수줍음이 많고 말이 없는 샐이 직접 쓴 글을 아이들 앞에서 읽어주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다. ‘나는 그저 한 장의 종이. 얇고 찢어지기 쉬워.’로 시작하는 샐의 글은,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만 ‘비도덕적’이며 ‘혐오’스러운 존재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도 그럴 것이 샐은 학대당하고 방치당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 때문에 여러 시설을 전전해야 했다. 누군가는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피는 종족이 아무런 지원 없이 분리되는 바람에 어머니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사를 하는 비극을 마주해야 했다.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지만 외모 때문에 평생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여야 했던 천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이들은 원장인 아서와 섬의 정령인 조이로 하여금 아픔과 편견을 극복하고 함께 성장함으로써 진정한 자아와 마주하는 법을 배운다. 고아원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존폐 여부를 결정짓는 ‘눈’이 되어야 했던 라이너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 역시 그 안에 점점 스며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연히 그렇지. 그래도 때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거든. 그게 꼭 그 재능을 가진 사람의 잘못인 건 아니란다.” / 10p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존재를 두려워 해. 두려움은 그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이유로 혐오로 바뀌고, 사람들은 섬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해서, 두려워서, 그 애들을 혐오하는 거야.” / 94p

 

 

“당신도 해야 할 일이 있겠지. 그 일이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일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을 테고,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그 애들한테 기회를 주라는 게 다야. 그 애들은 파일 안에 담긴 것 그 이상의 존재거든.” / 97p

 

 

 

  “우리가 우리인 건, 어떻게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이 삶을 어떻게 살기로 결정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저 흑백으로 나눌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다시 DICOMY로 돌아가 최고위 경영자들을 마주한 라이너스는 마법이 있든 없든,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는 아이들을 4등급 위험 요소로 분류하고 격리하여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 놓은 조직의 부당함을 지적한다. 작가 TJ 클룬은 이처럼 라이너스의 목소리를 통해 단순히 소설 속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외모, 인종, 종교, 혹은 자신의 신념이나 이상을 끝끝내 이해받지 못한 채 소외당하고 있는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한편으로는 진짜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직시하게 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DICOMY의 승인을 받은 고아원이라면 어디에나 걸려 있는, ‘관리자의 지시를 따르면 행복해져요’ ‘조용한 어린이가 건강한 어린이입니다’ ‘무언가를 보면 말해야 한다’와 같은 포스터 따위는 우리 사회가 제도라는 틀 안에서 얼마나 많은 자유와 자아를 통제하려 드는지를 보여주는데, 이는 넓은 범위에서 사회 곳곳에 장치된 편견과 혐오의 요소들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것이 판타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여기,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적 감각에 보다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괜찮아.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무언가를 두려워할 수 있거든.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너머를 못 보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면 돼.” / 156p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베이커 씨. 세상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영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죠. 그리고 그 수수께끼에 지나치게 매달리면 눈앞에 있는 것들을 놓치고 말아요.” / 171p

 

 

“어떤 사람은 부당한 행동을 한단다. 하지만 네가 지금처럼 공정하고도 친절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나중엔 그런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게 될 거야. 혐오는 목소리가 크지. 하지만 그건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고래고래 외쳐대기 때문이라는 걸 너도 알게 될 거야. 그 사람들의 마음을 영영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잊지만 않는다면 이겨낼 수 있어.” / 416p

 

 

 



 

 

 

 

  소설의 전체적인 구조나 결말은 비록 우리가 상상하는 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곳곳에서 빛나는 사랑스러운 문장과 마음을 단단하게 일으키는 이야기의 힘은 우리를 위대한 여정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쩌면 『벼랑 위의 집』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가 아닐까. 존재감이라고는 없던 라이너스가 “변화란 소수의 목소리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저는 그 소수가 될 겁니다” 하고 당당하게 외치는 저 장면 속에서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성장의 기쁨을 맛보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다운 곳에 살고 있나요? 이 질문 앞에서 주저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진정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으리란 이 책의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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