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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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반드시 읽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놀라운 작품!

우리 삶을 키치’ 하고이분법으로 재단하려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와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확실히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끊임없이 중첩되는 이분법적인 언어들계속해서 질문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철학적 가치들각 개개인의 내밀한 역사와 그 속에서 발견되는 사랑과 욕망 그리고 고뇌의 자국들. 1인칭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을 오가며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실험적인 소설 기법들소련의 침공으로 자유를 상실한 체코의 시대 상황과 각 인물들에게 드리워진 이데올로기의 그림자 등 소설은 독자가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양산해내기 때문이다따라서 최소 서너 번쯤은 재독이 요구되는 어려운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이분법 그리고 키치

 

 

 

이것이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했던 문제다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세상은 빛-어둠두꺼운 것-얇은 것뜨거운 것-찬 것존재-비존재와 같은 반대되는 것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그는 이 모순의 한쪽 극단은 긍정적이고 다른 쪽 극단은 부정적이라 생각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그의 말이 맞을까이것이 문제다. / 13p

 

 

 

  소설은 이른바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대변되는 이분법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이 세상은 이분법이라는 구조 아래 나뉘어져 있고그 중에서도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 했다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가벼움 아니면 무거움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애초에 우리의 인생을 이처럼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뉠 수 있을까그런 뜻에서 소설은 가벼움과 무거움영혼과 육체자유와 책임 등 이분법인 구조가 제기하는 여러 질문과 그 안에서 탄생한 인물들을 통해 과연 이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숙고하게 한다.

 

 

 

  극 중 의사인 토마시는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난 가벼운 관계를 추구한다사랑과 육체적 관계를 별개로 보고하루살이 애인들과 에로틱한 우정의 관계를 지속한다다만그의 애인이자 화가인 사비나만이 그를 이해할 뿐이다하지만 테레자를 만나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토마시는 자신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만다이후 테레자가 한 차례 그를 떠난 뒤에 그녀를 쫓아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훗날 공산주의자들을 비판하는 글을 잡지에 투고하기도 하는데이처럼 한없이 가벼워지기를 지향하면서도 때때로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자기 안의 모순을 발견한다하지만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버린 뒤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픈 욕망에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창문 닦이가 된다그렇게 그는 다시 가벼워지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마지막 장면에서 테레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임무라니테레자그건 다 헛소리야내겐 임무란 없어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모든 것이 일순간난생 처음으로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무용한 밑그림이다. / 17p

 

 

토마시그의 몫으로 남은 유일한 상속 재산은 여자들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다그는 여자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했다두려움과 갈망 사이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아야만 했고 그 타협점을 그는 에로틱한 우정이라 불렀다그는 애인들에게 이렇게 못을 박았다두 사람 중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않는감상이 배제된 관계만이 두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 23p

 

 

 




 

 

 

 

  무거움을 대변하는 인물테레자는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엄마 아래서 자라나 엄마의 희생으로 성장했다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그런 엄마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고향으로부터 달아나 토마시의 세계로 진입하지만다른 여자들과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개별성을 가지고 싶었던 테레자의 바람과는 달리 토마시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운다이 때문에 그녀는 고양이가 얼굴에 뛰어올라 피부 깊숙이 발톱을 박거나 커다란 실내 수영장에서 스무여 명의 여자들과 알몸이 된 채 행진하는 꿈을 꾸곤 한다. “당신은 우리로부터 눈을 떼지 않다가 우리 중 한 여자가 틀린 동작을 하면 쏘아 죽였어풀장은 물결에 따라 출렁이는 시체로 가득 찼고나는 더 이상 힘이 없어서 다음 동작을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당신이 날 죽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녀에게 있어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토마시의 외도는 공포 그 자체였고 이에서 달아나기 위해 이따금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은 모순된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하지만 테레자는 그간 자신의 약점(동정심)을 이용해 토마시를 붙들고 모든 것을 잃게 만든 것이 자신이었음을자신의 삶에서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음을 성찰하게 된다.

 

 

 

테레자어머니는 테레자에게 어머니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라며 지칠 줄 모르고 설명했다아이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인의 체험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그녀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그 말을 들은 테레자는 삶의 최고 가치는 모성애이고 모성애란 큰 희생이라고 믿었다모성애가 희생 그 자체라면태어난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셈이다. / 79p

 

 

테레자끊임없이 신분 상승을 원하는 자는 어느 날엔가 느낄 현기증을 감수해야만 한다현기증이란 무엇인가추락에 대한 두려움하지만 튼튼한 난간을 갖춘 전망대에서 우리는 왜 현기증을 느끼는 것일까현기증그것은 추락에 대한 두려움과 다른 그 무엇이다현기증은 우리 발밑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홀리는 공허의 목소리나중에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아무리 자제해도 어쩔 수 없이 끌리는 추락에 대한 욕망이다. / 106p

 

 

 

  반면이 소설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상징하는 화가 사비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한다그녀는 항상 같은 사람같은 단어들과 더불어 대열 속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어쩌면 자유로운 성애를 지향하는 토마시에게 이끌린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르겠다그러나 그녀도 관계를 맺은 후 곧장 테레자에게로 돌아가는 토마시를 보며 질투를 느끼고 그의 양말 한 짝을 숨기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특히 거울 앞에 서서 속옷차림으로 아버지의 유산인 중산모자를 즐겨 쓰곤 하는 그녀의 모습은 가벼움을 지향하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모욕하고 희화하는 무거움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이중성을 상징한다이에 사비나는 반항하고 배신함으로써 화폭 너머의 세상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가정을 버리고 그녀에게로 온 프란츠로부터끈질기게 자신을 따라다니는 조국의 그림자로부터 멀리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지향한다.

 

 

 

사비나) “이 그림은 망친 거야붉은 물감이 캔버스에 흘렀거든처음에는 화를 냈는데 점차 그 얼룩이 맘에 들더군그 공사장이 진짜가 아닐 뿐 아니라 눈속임용으로 그려 넣은 낡은 무대장치 같았고붉은 물감 자국은 찢어진 틈 같았기 때문이지그래서 나는 이 틈을 확대해서 그 뒤에서 볼 수 있을 것을 상상하는 놀이를 시작했어그런 이유로 내가 그린 첫 연작을 무대 장치가 불렀던 거야물론 아무도 내 그림을 보진 못하게 했지보았다면 나는 퇴학당했을 거야앞은 완벽한 사실주의 세계였고그 뒤는 무대장치의 찢어진 캔버스 뒤편처럼 뭔가 다른 것신비롭고 추상적인 것이 보였지.” / 114p

 

 

사비나그날 이후 그녀는 아름다움이란 배반당한 세계라는 것을 알았다그 아름다움이란 박해자들이 실수로 어딘가에서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만 만날 수 있다아름다움은 노동절 행렬의 배경 뒤편에 숨어 있는 것이다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배경이 그려진 화폭을 찢어야만 한다. / 184p

 

 

 

  교수인 프란츠는 미남에 학계에서도 출세가도를 달리며 안정된 일상을 누리던 남자였지만 사비나를 만남으로써 달라진다그는 사비나의 자유로운 성애는 물론 그녀가 혁명의 나라에서 왔다는 것이른바 감옥과 박해금서와 장갑차 같은 단어에 향수를 동반한 이상한 부러움을 느낀다그렇게 사비나의 가벼움에 매료되어 프란츠는 아내에게 외도 사실을 밝히고 사비나에게로 향하지만 사비나는 떠나고 만다애초에 그들은 다른 언어를 사용했고사비나가 요구하는 에로틱한 우정을 프란츠는 채워줄 수 없었기에이렇듯 우리는 무거움과 가벼움육체와 영혼과 같은 이분법의 명제 앞에서 어느 것도 완전한 것은 없으며 인간이란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순된 존재임을 4인의 주인공을 통해 깨닫게 된다.

 

 

 

프란츠) “부유한 사회에서는 손으로 일 할 필요가 없고 정신적 활동에 몰두하지대학도 점점 많아지고 그에 따라 학생도 많아져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논문 주제가 있어야 해그런데 어느 것에 대해서나 논문을 쓸 수 있으니 주제는 무한대로 널려 있어그렇게 해서 써 낸 원고 뭉치는 자료실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그것은 무덤보다도 쓸쓸하지만성절이 되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까무수한 저작물문장의 눈사태양의 광적인 팽창 속에서 정작 문화는 실종되지당신 나라에서 금서가 된 단 한 권의 책이 우리네 대학들이 토해 낸 단어 수억 개보다 훨씬 의미 있어.” / 173p

 

 

 




 

 

 

 

  이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사랑이야기이자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야기이며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발견한 한 권의 철학 에세이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때문에 소설 속에서 제기된 키치라는 개념은 상당히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되는 6부 대장정’ 편에서 키치가 처음으로 등장하는데일반적으로 저속한’ ‘하급 문화를 가리키는 키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소설은 스탈린의 아들 이야기를 꺼내든다(네 주인공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서 뜬금없이 스탈린의 아들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스럽지만 이것이 밀란 쿤데라의 서술 방식이다). 스탈린의 아들은 세계 대전 중 전쟁 포로가 되어 영국군 장교와 같은 감옥에 수용되었는데 그는 변소를 항상 더러운 채로 내버려 두어 비난을 당했다영국인들은 당시 우주에서 가장 권세 있는 남자의 똥일지라도 그들의 변소를 똥 투성이로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결국 스탈린의 아들은 끔찍한 저주를 하늘에 퍼부으며 수용소를 둘러싼 고압 철조망으로 달려가 숨을 거두었다스탈린의 아들이 똥 때문에 목숨을 내놓다니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자가 어째서 겨우 똥 때문에 심판받아야만 했을까?

 

 

 

  여기서 소설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저주와 특권이 더도 덜도 아닌 같은 것이라면 고상한 것과 천한 것 사이의 차이점은 없어질 테고신의 아들이 똥 때문에 심판받는다면 인간 존재는 그 의미를 잃고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 자체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밀란 쿤테라는 똥을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는 위선적인 태도고정관념기계적인 이미지와 가치모든 정치 행위의 미학적 이상이야말로 키치라고 지적한다스탈린의 아들이 똥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듯 ’, ‘’ 등 우리 사회가 저급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실존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 그 누구도 초인이 아니며 키치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키치를 경멸한다 한들 그 또한 인간 조건의 한 부분이다참을 수 없이 가벼워지기 욕망하면서도 또한 가벼운 것을 참지 못해 다시 무거워지고 마는 인간이란 애초에 이렇게 모순적인 것이다다만 우리 삶을 키치’ 하고이분법으로 재단하려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와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이 복잡다단한 소설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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