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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리커버)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3월
평점 :

삶이 글과 시를 낳아 다시 우리의 추운 삶을 견디게 하였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길어 올리는 따스한 문장들!
“어딜 그렇게 열심히 가?”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채듯 나를 붙든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이곳에서 마주칠 일이라고는 없을 것 같았던 지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지인은 나의 걸음이 너무 빠르다 못해 매몰차서 달려오면서도 몇 번이나 망설였다고 한다. 어딜 그렇게 바삐 가는지 붙잡아서 인사하는 것조차 실례가 될 것 같았다나. 내 걸음이 그렇게나 빨랐던가. 그때의 나는 사실 이렇다 할 약속이 있었던 게 아닌데도, 스스로 정해놓은 시간과 일정에 맞춰 움직이느라 걸음을 재우치고 있었다. 오전 몇 시까지 필요한 물건을 사놓고, 집에 와서 글을 쓴 후 오늘까지 하려던 일을 몇 시 안에 다 끝내야… 늘 머릿속으로 그날의 일정을 계산하고 그 계산대로 움직이는 편인 나는 꽤 자주 스스로를 몰아붙이곤 했다. 때문에 그날도 역시 목적지까지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걸었던 게 틀림없다.
지인의 말을 듣고 난 이후 나는 그때서야 내 뒷모습이, 나의 걸음걸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타인에게는 느긋하게 해도 된다고 관대하게 말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내 성격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동안 뒷모습에서 드러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느리게 걸어보기로 했다. 목적지를 향해 나를 몰아붙이기보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기웃거려보고 일부러 둘러 가보기도 하면서. 그리고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제법 느릿한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그건 두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내가 계획했던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기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그 계획에 잘 따라주지 않을 때 유독 예민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내려놓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했다. 뒷모습으로도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고, ‘빨리, 빨리’라는 말보다는 ‘기다릴게, 기다려줄게’라는 말을 더 자주 할 수 있는 여유를 내게 주자고. ‘순간을 단숨에 지나치려 하지 않고, 모든 순간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 순간이 나를 붙잡을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꽤 괜찮은 삶의 태도’라던 고수리 작가의 말처럼.
어떤 순간에는,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기도 했다.
지난 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통해 ‘모든 이야기가 절망에서 끝나버리지 않도록 잠시나마 손바닥에 머무는 조금의 온기 같은 이야기를 울더라도 씩씩하게 쓰려’한 고수리 작가의 글을 아직도 기억한다. 불운한 가정사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삶이란 어떤 특별한 목표를 이뤄내는 것보다 평탄하게 이어가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소소한 일상 속에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길어 올릴 줄 아는 그녀의 문장은 참 따스하다. 추운 바깥을 떠도는 생명 하나에도 쉬 지나치지 못하는 세상의 다정함과,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타인에게조차 잔잔한 애정을 느낄 줄 아는 그녀의 온기 어린 시선은, 에세이집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에서도 잘랑거리며 내 마음 속으로 흘러든다.
순간을 단숨에 지나치려 하지 않고, 모든 순간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 순간이 나를 붙잡을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꽤 괜찮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순간에 붙잡힌다 해도 좋을 일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삶이 나를 살아가게 하기도 하니까. 어떤 순간에는,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기도 했다. / 21p
가까운 사이라서 더욱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날들, 마음이 마음에게 말했다. 다정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에게.
미안해하지 마.
잘 지내니.
많이 힘들지.
기운 내.
그런 말들이 소리도 없이 지나갔었다. 수국이 피던 계절에. / 31p
우리는 이따금 이름 모를 타인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예상치 못한 큰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고수리 작가가 열여덟 살이었을 때, 부모님과 헤어져 멀고 낯선 이모네 집으로 주소를 옮기고 기숙사 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그녀는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서를 적기 위해 이모네 집 관할 동사무소를 찾아야 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권과 양육권이 어떻게 되었는지, 혼자 다른 곳에 떨어져 살게 된 자신의 행정 처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던 그녀는 신청서를 앞에 두고 어느 것 하나 적을 수 없었다. 동사무소 직원들은 다시 적어오라는 냉랭한 대답만 할 뿐이었고 괜히 주눅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때, 금테 안경을 쓴 한 직원이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는 여느 직원들처럼 무뚝뚝해 보였지만 엄마와 이모를 번갈아 가며 통화하고 컴퓨터를 두드리며 뭔가를 검색한 뒤 신청서를 채워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학교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 지 모르는 그녀를 걱정하며 자신의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실은 내가 다리 하나가 없었어.” 직원 아저씨는 다리가 없었노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며 가는 동안 내내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시종 유쾌하고 다정하게 그녀의 안부와 사정을 물어봐준 그는 “그러니까 힘내서 살아라.”고 응원해주었다. 앞으로도 불행은 다가올 테지만, 그래도 힘내서 살면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겨우 주민등록증 하나 발급받는 일조차 힘겨워했던 그녀를, 자신의 불행을 어디에도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던 그녀를 위로해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살면서 ‘위로’라는 말을 마주칠 때 어김없이 그를 떠올렸다고 한다. 또 그 덕분에 어른이 된 그녀는 우리 사는 세상이 여전히 다정하다고 믿는다.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옆자리 사람에게서, 거리에서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관공서에서, 내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타인에게 잔잔한 애정을 느낀다.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우리는 사실, 누군가의 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신일지도, 무표정 속에 날개를 숨기고 걷는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어쩌면 이런 믿음이 너와 나,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그 소박한 믿음이 우리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건 아닐까.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은 올이 나갔다고 해서 밖에 내보이지 않으면 그만일 수 없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따끔거린 날이 있었다. 그날 나는 그 마음을 입은 채로 돌아다녔다. 어깨를 펼 수 없고 대화할 수 없고 웃을 수 없었다. 상처받은 마음은 그렇게 티가 났다. 내색하지 않았어도 나와 마주친 사람들은 힐끔 쳐다보았을 것이다. 떼어주고 싶은 부스러기 같은, 가려주고 싶은 얼룩 같은, 정리해주고 싶은 보풀 같은 나의 마음을. / 86p
곧 사라질 소수언어 헤레로어에는 ‘베바라사나(VEVARASANA)’라는 말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늘 통한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옆에 없지만 느낄 수 있다.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수언어가 사라진다 해도 나는 이 단어만은 기억하고 싶다. 베바라사나. 이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조금만 외로울 것이다. 견딜 수 있을 만큼 슬플 것이다. 만나지 못한다 해도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 206p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커튼’은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일화 중 하나다. 스물두 살 무렵, 대학생이 된 남동생과 사는 집으로 처음 엄마가 온 날이었다. 한쪽 벽면이 여러 개의 창문으로 뚫려 있는 원룸이었다. 서울에서 창문 있는 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어서 저렴한 가격에 좋은 집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웃풍이 어마어마하게 센 집이었다. 이사를 물릴 만큼 다녀본 엄마는 단박에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커튼이 있어야겠다고, 뜬금없이 한지와 유성 매직을 사 오라고 했다. 엄마는 방바닥에 한지를 깔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여기에 시를 쓰자.”
세상에. 시 커튼이라니. 어떻게 한지에 시를 써 붙여 커튼을 만드실 생각을 했을까. 고수리 작가 특유의 감성은 아마도 엄마의 유산이 아니었을까. 쏟아질 것 같은 하늘, 그 아래 햇살을 머금은 한지 위에 까만 글자들이 어룽어룽 춤을 추는 공간. 시인이 열여덟에 썼다던 애틋한 연서가(황동규 <즐거운 편지>), 꽃 필 차례가 그대 앞에 있다는 위로가(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흰 당나귀 응앙응앙 우는 사랑의 풍경이(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내가 돌아누우며 네 손을 더듬어 찾는 줄 알라는 당부가(김용택 <꽃>) 하늘에 걸려 있는 방.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엄마와 동생의 손길이 닿은 시가 하늘에 걸려 있었던 나날들, 겨우 몇 줄의 문장에 불과한 글자들이 따뜻함이 되었을 순간들이 떠올라 나의 마음도 짜르르해진다. 덕분에 나는 나의 두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는 엄마가 될까를 생각해본다.
김용택의 <꽃>을 다시 찾아 읽었다. 이불 속에 껴안고 누워 있던 우리 셋이 떠올랐다. 금세 서늘해진 공기에 거실 창문을 닫았다. 햇살은 이렇게나 따스한데 겨울은 아직 힘이 세다.
블라인드를 내렸다. 드르륵, 하얀 블라인드가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이 하얀 공간 위에 시가 쓰여 있었지. 그때 하늘에 걸려 있던 시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걸려 있던 거구나. 엄마가 우리에게 주었던 건, 추운 바람을 막아주는 커튼이 아니라 추운 삶의 견디게 해준 시였다. / 70p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어떤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건다. 쓰기 위해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내내 맴돌고 사무치다가 끝내 손끝으로 써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다. 쓰게 될 테지만 쓰기까지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 결국 방법은 하나뿐. 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 111p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서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든 생각이라고 한다. 이 문장을 읽으니 문득 학창시절 아빠가 나에게 줄곧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빠는 공부를 잘 했지만 일찍 돈을 벌어야 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어.”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학업 능력이 상당히 우수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때 하지 못한 공부가 미련이 남아서 딸인 나에게 기대가 컸다. 나는 내내 아빠의 꿈을 짐처럼 짊어지고 살았다. 아빠의 꿈을 이뤄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까지. 그래서 나는 부모가 이루지 못한 것을 대신 자식을 빌어 꿈꾸게 하지는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부모가 되어 보니 아빠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꾸게 하려는 게 아니라 어쩌면 나의 약한 점을 닮지 않기를, 나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래서 이제는 어느 작가가 SNS에 올렸다던 글귀처럼 ‘내’가 아닌 ‘네’로, 너는 자라 네가 되어라고 빌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사는 세계는 이토록 아름답고 경이롭단다. 그 안에서 너는 자유롭게 살아. 온전히 너 자신으로 자라렴’ 하고 격려해주고, 그저 아이를 믿고 껴안아 줄 유일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나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고유한 나로 살기를 바랐던 것처럼, 내 아이도 고유한 그 자신으로 살 수 있기를 응원해주어야겠다고.



에세이가 지닌 힘은 이런 건가 보다. 당신의 삶을 빌어 내 삶을 바라보는 것. 고수리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내 삶의 어떤 장면과 순간들이 떠올라 잠시 읽기를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과 함께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지금, 가장 추운 곳에서 나를 데워줄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내 안녕하시라는 안부와 함께.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