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파는 가게 1 밀리언셀러 클럽 149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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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공포로 뒤집어버리는 놀라운 이야기꾼의 단편작!

악몽을 파는 가게로 들어서는 순간, 나가는 문은 사라지고 없을 지도!

 

 

   한창 글쓰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누군가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작가가 된다면 어떤 장르의 작가가 되고 싶으냐고. 나는 기꺼이 공포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귀신이 등장하거나 자극적인 연출이 시종일관 지속되는 류의 소설이 아닌, 일상이 공포가 되고 무엇이 현실인지 가늠할 수 없이 모든 가치들이 한순간에 전복되는 놀라운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꿈꾼다. 하지만 정확하고 예측 가능한 일상의 틀을 고집하고 있는 나에게 그럴 만한 기회가 영영 주어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들이 부럽고 짜증이 날 만큼 질투가 난다. 나는 하지 못하는 상상을 어쩌면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냐고. 스티븐 킹, 당신은 어떻게.

 

 

 

자정에만 문을 여는 이야기 노점상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스티븐 킹은 원작이 가장 많이 영화화되어 기네스북에까지 올라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나는 이제야 그의 작품을 글로써 만났다.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1408> 등 그의 작품이 원작인지도 모르고 봤던 영화들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익히 알려진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작품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현역 작가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일본 추리 소설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의 새로운 작품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원통한 나로서는 스티븐 킹의 <악몽을 파는 가게> 1권을 읽고서 그가 여전히 우리 시대에 살아 숨쉬고 활발히 글을 쓰고 있는 작가란 사실이 이렇게도 기쁘고 반가울 수가 없다. 자정에만 문을 여는 노점상 주인의 모습을 하고서 안 잡아먹을 테니 가까이 와서 내 이야기 좀 들어봐, 하는 그의 손짓에 어느 누가 이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악몽을 파는 가게>는 스티븐 킹의 미출간 신작을 모아 두 권으로 나눠 출간된 소설집이다. 총 20편에 이르는 단편과 함께 해당 작품 앞에는 간단한 해설 및 작품 구상에 관한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혹자들은 스티븐 킹의 작품은 단편에서 보다 더 빛을 발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아직 그의 장편을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단편 소설만이 지닐 수 있는 강렬한 인상과 가슴을 선뜻하게 만드는 놀라운 반전을 여러 편에 걸쳐 만날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라도 이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몽을 파는 가게> 1권에는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자동차의 이야기 「130킬로미터」, 느닷없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능청스럽게 주절대는 유머들이 기분 나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프리미엄 하모니」, 알츠하이머를 겪는 아버지와 그를 돌보는 아들의 단조로운 이야기가 예기치 않은 공포의 상황으로 돌변하는 「배트맨과 로빈, 격론을 벌이다」, 죽음을 예언하는 기묘한 섬 이야기 「모래 언덕」,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집요한 죽음의 그림자 「어느 못된 꼬맹이」, 살해 혐의 앞에서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는 남자의 기막힌 반전과 죽음 앞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묘한 여운을 주는 「죽음」, 몽환적인 내레이션 작법이 돋보이는 기이한 작품 「납골당」, 거부할 수 없는 환상적인 거래 앞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가 늘 도덕성이라는 시험대에 올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도덕성」, 사후세계와 환생을 다룬 「사후세계」, 잘못 배달되어 온 기계로 인해 현실과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대체 현실의 판타지 「우르」까지.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면 「130킬로미터」, 「모래 언덕」을 꼽을 수 있겠다. 「130킬로미터」의 경우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줘야겠다는 인간의 선의를 이용한 잔혹한 공포와 우리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자동차라는 평범한 사물이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로 돌변하는 데에서 오는 섬뜩함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여느 작품보다 유년기에서부터 비롯되는 인간의 가장 말초적인 공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보다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우연히 발견한 모래 언덕이 있는 섬이 사실은 데스노트처럼 죽음을 예고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곳이라는 설정의 「모래 언덕」은 예고된 죽음이 현실로 이어지는 오싹한 체험을 하게 한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들의 죽음을 예고하려는 듯 수많은 이름으로 얼룩진 모래 언덕의 광경과 마지막 한 문장의 반전이 가희 압도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작품이니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은 단연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 외에도 「어느 못된 꼬맹이」와 「우르」 역시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니 기억해두시길.

 

 

 

판사는 생각한다. 그는 플로리다 고속도로 순찰대의 지미 캐슬로에게 들은 말을 기억한다. 그가 말하길 콘도르는 단순히 썩은 고기가 있는 곳을 아는 게 아니라 썩은 고기가 생길 곳을 안다고 했다…(중략)… 이름 없는 이 조그만 섬에는 거의 언제나 콘도르들이 있다. 이곳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 모양인데 왜 아니겠는가. / 「모래 언덕」 중에서 152p

 

 

"사람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악마를 움직일 수는 없다고 하지. 악마는 언제나 살아남아서 커다란 새처럼 날아올라 다른 누군가에게로 옮겨가고. 그게 사람을 진 빠지게 만드는 거야, 그렇지 않니? 그게 정말로 진 빠지게 만드는 거야." / 「우르」 중에서 448p   

 

 

 

 

 

 

   <악몽을 파는 가게>를 읽으며 스티븐 킹은 불안과 상처와 같이 인간이 지닌 가장 연약한 감정에서 파생되는 공포를 재현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평소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악마성과 광기가 극한의 상황에서 얼마나 큰 공포를 불러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능력 또한 남다른 듯하다. 요코미조 세이시 이후로 계속해서 만나고 싶은 작가가 생긴 점에 즐겁다. 이제라도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된 점에 감사하며 오랫동안 독자와 함께 하는 작가로 남아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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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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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에 이르는 시간을 관통하여 삶과 죽음, 신과 믿음이라는 웅대한 주제를

능숙하게 조직한 '이야기 대가'의 귀환!

 

 

 

   이것은 '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으로 쌓아올려 서로를 향한 의미로 채운 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번지와 호수로 그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따위의 것들이 아니라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 곧 집이 되는 삶의 정체성에 관한 소설이다. '기억과 의미가 머물러 있는 집', '현재를 살아가는 집',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집'에 대해 생각하게 함으로써 내 삶의 목적과 가치란 바로 이러한 것들을 찾아나가는 여정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위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파이 이야기> 이후 무려 15년 만에 출간된 얀 마텔의 신작이다. <파이 이야기>가 망망대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신과 진정한 믿음의 합일을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한 소년의 모험기라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저마다 상실의 아픔을 지닌 각각의 인물들이 삶의 목적과 나아갈 방향을 찾아가는 일련의 여정을 담아낸 것으로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 살던 인물들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마침내 그것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듯 거대한 서사로 완성되는 마법 같은 스토리다. 1904년부터 1981년까지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세 이야기를 절묘하게 하나로 엮은 이 뛰어난 역작은 '이야기의 대가'라는 그의 수식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고 장엄한 스토리, 환상 미학, 삶과 죽음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철학, 기발한 상상력과 은유까지 겸비한 완성도 높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그에게도 한때 그런 집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 35p

 

 

 

 

 

 

   소설은 3부에 걸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현재, 내 삶의 전부로 상징되는 '집'을 잃은 세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1부인 '집을 잃다'에서는 1904년 무렵 포르투갈의 리스본 지역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잃은 뒤, 연이어 아버지의 죽음까지 맞게 된 토마스가 등장한다. 예측 불가능했던 죽음이었기에 더욱 큰 상처가 되었을까, 이 가혹한 비극 앞에서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그때부터 1년째 '뒤로 걷기'를 실천한다. 그에게 있어서 뒤로 걷기는 죽은 자들을 위한 애도가 아니라 세상을 등지고, 신을 등짐으로써 '반발'하는 은유와 상징의 행위였다.

 

 

 

바람, 비, 태양, 벌레들의 습격, 침울한 타인들, 불확실한 미래 등을 감당하는 데에는 뒤통수나 재킷의 등판, 바지의 엉덩이 부분같이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들이 더 적합하지 않냐고. 그런 것들이 우리의 보호막, 우리의 갑옷이라고. 그것들은 예측불허의 변화를 가져오는 운명을 견디도록 되어 있다고. 또한 뒤로 걸으면 더 섬세한 부분, 즉 얼굴, 가슴팍, 옷에 멋을 더하는 세부 장식을 앞쪽의 잔인한 세상으로부터 가릴 수 있고, 그 익명성은 돌아보고 싶을 때 간단히 몸을 돌림으로써 자발적으로 깨뜨리는 거라고 말했다. / 18p

 

 

 

   고미술 박물관에서 근무 중이었던 토마스는 일을 하다 우연히 1631년부터 기록된 율리시스 신부의 한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일기는 율리시스 신부가 기니 만에 있는 상투메 섬에 머무르며 사제 활동을 했던 때를 기록한 내용이다. 율리시스 신부는 15세기 말부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상투메 섬을 가리켜 '이 주머니는 망연자실한 아프리카의 영혼들로 짤랑거린다'고 표현할 만큼 불화하는 권력자들의 섬이자 아프리카 노예 무역지인 이곳에서 질병과 고독, 적막과 분노, 철저히 이방인으로 취급되어 고립된 백인의 심정으로 점차 환멸을 느끼게 된다. 목적의 상실로 인해 품게 된 깊은 회환, 상투메 종교 당국과의 분열로 결국 파문이라는 혹독한 조치를 당한 그는 마침내 기독교를 발칵 뒤집어 놓을 만한 기이한 십자고상을 만들게 된다.

 

 

 

   토마스는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집'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든 불행이 율리시스 신부가 상투메에서 겪은 모든 불행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가 만든 십자고상을 자신이 찾아내고 말겠다는 기묘한 끌림에 휩싸이게 되고 그것이 있다고 추정되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하기에 이른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가는 기나긴 여정을 동행할 어마어마한 기계, 놀라움과 고난의 연속이 되어줄 자동차와 함께. 미숙한 운전실력, 세상 놀란 눈으로 자동차를 향해 밀려드는 인파들, 어딜 가나 똑같은 충고의 말, 이해력 부족, 길을 잃어 느끼는 마비, 무기력, 절망감, 극심한 피부병, 이따금씩 솟구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올라 치미는 슬픈 감정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토마스의 지난한 여정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무엇일까. 이 고난을 통해서 그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찾고자했던 십자고상을 만날 수 있을까.

 

 

 

그는 울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 실컷, 심지어 몸부림치며 울지만, 그 마지막에는 뭐가 남는가? 황량한 피로감. 눈물 콧물에 젖은 손수건. 울었다는 걸 누구에게나 알리는 빨간 눈. 그리고 울음에는 품위가 없다. 울음은 예의범절을 초월한 개인의 언어이고, 표현 방식도 제각각이다. 얼굴 찌푸림, 눈물의 양, 흐느낌의 음색, 목소리의 높이, 소란의 크기, 안색에 미치는 영향, 손의 움직임, 취하는 포즈가 다 다르다. 사람은 오직 울 때 울음-울음의 개인적 특성-을 발견한다. 이것은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낯선 발견이다. / 65p

 

 

 

   2부인 '집으로'에서는 시간을 건너 뛰어 1938년 포르투갈의 브라간사에 위치한 상 프란시스쿠 병원의 병리학 과장 에우제비우 로조가 등장한다. 새해인 1939년으로 넘어가기 직전, 그는 처리해야 할 서류들로 둘러싸인 너저분한 사무실에서 두 여인의 방문을 받게 된다. 첫 번째 방문자는 그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다. 강한 신앙심과 문학을 사랑하는 아내 마리아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그의 앞에 꺼내놓으며 기나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하나는 예수의 기적들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 관한 것인데 그녀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속에서 예수 이야기와의 유사점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신앙이 지닌 비실용성과 이성이 지닌 맹목성, 이 둘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해결책이 될 거라는 난데없지만, <파이 이야기>에서부터 끊임없이 '신'과 '이야기'에 천착한 저자의 철학이 그녀의 육성을 통해 전달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터리에서 살인범은 우리 예상보다 가까운 인물이기 일쑤예요.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갈색 양복의 사나이><세븐 다이얼스 미스터리><3막의 비극><에이비씨 살인사건>, 특히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 그렇죠. 우리는 멀리 있는 악은 명확하게 보지만, 악이 가까이 있을수록 윤리적 통찰력이 결여되죠. 가장자리가 흐릿해지고 핵심은 보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누가 한 짓인지 드러나면 '브르투스, 너마저?'라는 식으로 반응하죠. 유다가, 친구이자 길벗인 선한 이스가리옷 유다가 배반자임이 드러났을 때 다른 제자들은 틀림없이 그런 반응을 보였을 거예요. 우리는 가까운 악을 얼마나 보지 못하는지요. 얼마나 외면하려 하는지요." / 192p

 

 

"그런데 애거서 크리스티와 복음서는 중요한 면에서 달라요. 이제 우린 예언과 기적의 시대에 살지 않아요. 복음서 시대 사람들과 달리 이제 우리 중에는 예수가 없어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은 존재의 서술이에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은 부재의 복음서들이고요. 의심은 더 많고 믿음은 더 적은 현대인들을 위한 현대의 복음서죠. 예수는 그렇게 단편적으로, 발자취로, 망토와 가면을 쓰고 불명료하게 숨어서 존재해요. 하지만 봐요-예수(Christ)는 그녀의 성씨(Christie) 안에 떡하니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그는 대개 맴돌고 속삭일 뿐이요." / 199p

 

 

 

  두 번째로 방문을 한 여인의 이름 역시 마리아다. 그녀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 남편의 시신을 가져와 느닷없이 그에게 부검을 부탁한다. 그리고 에우제비우에게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어요."라고 고백한다. 모든 시신은 들려줄 사연이 담긴 책이라 여기며, 시신 앞에서 마지막 서술자가 되어 늘 죽음이란 존재를 가까이 하지만 늘 결과론에 지나지 않았던 그에게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닌 어떻게 살았는지를 묻는 여인의 낯선 질문은 그는 당혹케 한다. 마침내 뭔가에 홀린 듯 여인 앞에서 남편의 시신을 부검하기 시작한 에우제비우는 그의 몸에서 토사물, 은화, 피리, 굴 껍데기, 장난감 수레, 말린 꽃잎 등등 믿을 수 없는 각종 물건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시신의 몸속에서 발견한 침팬지 한 마리와 침팬지가 보호하듯 안은 갈색 새끼 곰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슬픈 죽음에 관한 이야기 하나와 남편의 시신과 같이 꿰어 달라는 여인의 기괴한 요청, 에우제비우에 얽힌 놀라운 반전에 다다르게 된다. 이어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를 되뇌는 그녀의 음성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펼쳐지는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것이 1부와 3부를 연결하는 굉장히 중요한 장치로 작용함은 물론, 가장 문학적인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임을 의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3부작인 '집'에서는 198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상원 의원으로 재직 중인 피터 토비가 등장한다. 아내를 잃고 아들마저 이혼을 하게 되어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 그는 기분 전환 삼아 오클라호마 주 의회의 초청으로 가게 된 곳에서 '오도'라는 이름을 지닌 침팬지를 만나게 된다. 아내를 잃은 상처를 위로받듯 오도로부터 묘한 교감을 주고받게 된 그는 만 5천 달러에 오도를 사게 되고, 한때 그의 모든 것이 머물러있던 집과 일을 정리하고 부모의 고향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이주하게 된다. 낯선 언어, 변변치 않은 살림살이, 해야 할 일이 사라진 시계마저 필요 없는 세상에서 그는 이제 오도와 공생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오도와 함께 하는 이야기가 곧 자신의 집임을 깨닫게 된다.

 

 

 

"침팬지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보통의 사람이 예상하는 것 이상을 배웁니다. 침팬지는 진화론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입니다. 우리는 침팬지와 공통의 영장류 조상을 갖고 있지요.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진 것은 600만 년 정도밖에 안됩니다. 로버트 아드리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진화된 유인원일 뿐 타락한 천사가 아니다.'" / 273p

 

 

오도와 투이젤루로 이주한 후 캐나다에 돌아가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 이제 그와 같은 종인 인간은 피로를 안겨준다. 그들은 너무 시끄럽고, 너무 성미가 까다롭고, 너무 고민하고, 너무 믿음이 가지 않는다. 피터는 오도의 곁에서 느끼는 강렬한 고요가, 무슨 일을 하든 생각에 잠긴 더딘 움직임이, 대단히 간결한 수단과 목적이 더 좋다. 그게 오도와 있을 때마다 그의 인간다움이, 경솔하게 서두르는 행동이, 복잡다단한 수단과 목적이 수치스럽다는 뜻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 362p

 

 

 

  뒤로 걷기, 침팬지, 포르투갈의 높은 산 그리고 집

 

 

   3부작을 한 데로 엮은 이 작품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과 믿음, 죽음과 삶, 인간과 동물, 판타지와 현실이라는 이 거대한 주제를 이야기라는 틀에 꿰어 넣는 이 정교함에 저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높은 산'으로 명명되는 이 지역이 사실은 위압적으로 우뚝 선 큰 바위들만 있을 뿐 대평원이나 다름없는 곳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놀라운 은유와 메시지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필사적으로 쫓는 삶의 의미와 목적이 사실은 어떤 거대한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찾아나가는 여정에 있다는 것을,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에 있다는 것을.

 

 

 

   공교롭게도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얀 마텔의 신작을 바로 읽을 수 있었던 점은 그의 세계관과 메시지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감히 말하건데 그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통해 더욱 진화된 이야기를 선보였음은 물론, 남다른 작법으로 문학의 정수를 이끌어내었다. 이래서 이야기란 참으로 매혹적인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이 아름다움 때문에 오늘도 나는 책을 읽고 여기에 나의 집이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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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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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언어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본격 페미니즘 소설!

일곱 명의 작가가 모여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단어가 있다면 단연 '페미니즘'이다. 그간 억압되고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각종 차별적인 문제에 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뤄왔지만, 남성들의 시각에서 다루는 제한적인 형태가 아닌 여성들이 스스로 다양한 음성과 언어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에야 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 소설을 쓰기 위해, 우리 시대의 역량 있는 여성 작가 일곱 명의 작품이 한 데로 모여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소설집이 탄생한 것은 그 뚜렷한 정체성이 오히려 낯설고 다소 이례적일만큼 남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와 당신 모두 한번쯤은 겪었을, 현남 오빠라는 존재

 

 

   <82년생 김지영>이란 작품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조남주 작가를 비롯하여 주목받는 대표적인 여성작가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손보미, 구병모, 김성중의 페미니즘 단편 소설 일곱 작품이 한 데에 모였다. 작품 뒤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 노트를 통해 미루어 짐작하건데, 처음부터 페미니즘 소설집을 구성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기획 하에 작가들이 뜻을 함께 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여성들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일상적인 작품들은 물론, 소설적 상상력과 판타지를 결합한 독특한 시도가 눈에 띄는 작품 또한 상당수 있어 보다 다채로운 페미니즘 소설집이 완성된 듯하다.

 

 

 

   표제작인 「현남 오빠에게」는 현남 오빠의 청혼을 거절하려는 주인공이 그에게 쓰는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소설은 두 남녀가 만나 흔한 연애 생활 속에서 겪는 일상성을 매우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별을 앞둔 주인공의 고백에서 그간 말하지 못했던 이 연애의 불편한 기억과 감정들이 곳곳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를 테면 남녀가 만나서 사랑이란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들, 즉 주도권과 선택의 몫은 늘 남자 쪽에 있고 자신을 인생의 부속품으로 생각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와 그 뻔한 편견들을 조목조목 읊는 그녀의 말투에서 지긋지긋함과 질린 듯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분명 처음 읽는 소설인데 이 낯설지 않은 기시감은 뭘까. '어쩔 수 없다고, 별일 아니라고,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자주 의심합니다'고 고백하는 작가 노트에서도 알 수 있듯 소설은 사실 미처 느끼지 못했거나 알고 있었으나 밖으로 꺼내 말하지 못했던 연애 관계의 불균형에서 이제는 의심하고, 외부로 한 발짝 나와 관계의 중심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꿈꾼다.

 

 

 

오빠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빠의 질문은 "아이를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가 아니라 "아이를 몇 명이나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해?"였고, "네가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가 아니라 "네가 아이를 몇 년쯤 직접 키울 수 있을까?"였으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을 피하곤 했고 오빠는 왜 그렇게 계획 없이 사느냐고 저를 한심해했습니다. 하지만 오빠, 오빠가 아이를 직접 낳을 것도 키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그런 계획을 혼자 세우죠? 한심한 건 제가 아니라 오빠예요. / 「현남 오빠에게」 중에서 34p   

 

 

 

   결혼을 앞둔 동생 커플을 바라보는 누나 유진의 시선을 통해 모순된 결혼 관념, 맏딸에게 부여된 엄마라는 그늘 등을 다룬 「당신의 평화」 역시 「현남 오빠에게」만큼이나 매우 사실적인 작품이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유진에게서 나의 모습을 거울처럼 바라보곤 했다. 나 역시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일까, 자식들에게 자신의 삶을 저당 잡히듯 살아온 수많은 엄마들의 삶의 무게를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자식 혹은 며느리들에게 이해를 요구하는 상황들을 마주할 때면 숨이 막힐 때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당신의 평화」가 엄마를 향한 이중적인 감정들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라면, 「경년(更年)」은 두 아이를 낳고 사는 중년 엄마의 삶을 그린 소설로 이 역시 낯설지 않은 우리 시대 엄마들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게 한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월경전증후군이 심해지고, 급뇨 증상이 일어나거나 갑자기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서 감정을 추스를 수 없게 될 때면 으레 '갱년기라서 그래'라는 말을 듣곤 하는 엄마들. 중학교 사내아이가 여자 친구를 만나고 관계까지 맺고 다닌다는 소식에 '요즘 애들은 워낙 빠르니까'라는 변명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착잡한 심정들까지. 특히나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머지않아 닥쳐올 나의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해서 남다르게 여겨졌다.

 

 

 

내가 누구한테 말하겠니.

누가 내 얘기를 들어주겠니.

정순은 그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인정으로 느껴졌던 그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유진을 옥죄었다. 남동생이 태어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순은 아들에게는 자신이 겪은 괴로움을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 「당신의 평화」 중에서 50p

 

 

랜소이스의 사막을 본 아침, 나는 내가 사뭇 이렇게 늙어가게 될 것 같은 아득한 예감이 들었다. 앞으로는 음모 새치를 아무렇지 않게 뽑을 것이고, 아이들은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 곳곳을 아무렇지 않게 다닐 것이며, 나는 그 사실을 무감하게 받아들이겠지. 이십대에 가졌던 꿈이라든지, 삼십대에 열망했던 미래에 대한 희망은 결국 기억에 남지도 않을 것이었다. 나는 노트북을 소리 나게 덮어버렸다. / 「경년」 중에서 87p

 

 

 

   이처럼 여자로, 딸로, 엄마로 살아가는 숱한 여성들의 삶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 소설들이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면, 「모든 것을 제자리에」, 「이방인」,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화성의 아이」는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여성들의 삶을 외부로 끄집어낸다. 붕괴된 건물을 촬영하는 낯선 직업의 율이 등장하는 「모든 것을 제자리에」의 경우, 책 속에 수록된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작품이기는 했지만 여성 스스로가 가지고 있었던 내 안의 여성혐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 남다른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방인」 역시 여성이 주인공인 느와르풍의 소설이라는 다소 낯선 풍경이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책에 수록된 작품 중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지닌 작품은 단연 구병모 작가의 작품 「하루피아이와 축제의 밤」이다. 친구의 부탁으로 남장 여장 대회에 참가하게 된 표는 처음 와보는 섬의 낯선 도시에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여성들처럼 화장을 하고, 옷과 구두, 장식을 한다. 참가자의 이력을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여성으로 치장된 남성들이 1번부터 무대에 오름으로써 축제가 시작되는데, 느닷없이 수많은 화살 다발이 그들을 향해 퍼부어지고 이내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내몰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무자비한 공습의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그 존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그간 수많은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잔인한 남성들의 역사'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의 것 아닌 신에 발을 꿰기 전에는, 영원한 타인의 옷을 입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감각들이 표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럼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증보다는 가려움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중에서 237p

 

 

 

   이어 「화성의 아이」는 화성으로 쏘아진 열두 마리의 실험동물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와 실험동물의 원조로 인간보다 빨리 우주로 나간 최초의 생명체이나 이미 죽은 개의 영혼을 한 '라이카', 버려진 탐사로봇 '데이모스'가 화성에서 의지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공상 과학 혹은 우주 소설과 같은 판타지 형식의 소설이 대체 왜 페미니즘 소설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에 의문을 내내 가지게 되는데, '나'가 알고 보니 뱃속에 새끼를 품은 암컷이었음이 밝혀지면서 임신한 나를 자신의 딸처럼 돌보는 라이카와 데이모스를 통해 생명이란 존재의 유한한 가치와 공존, 희망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렇게 「현남 오빠에게」로 대표되는 일곱 편의 소설집은 저마다 다른 문체와 개성 있는 구성으로 페미니즘의 가치를 실현한다. 의미 있는 것은 '책으로 읽는 페미니즘과 SNS에서 드러나는 페미니즘, 내가 아는 페미니즘과 희망하는 페미니즘, 내 집에서의 페미니즘-딸들에게 설명하는 페미니즘과 남편을 설득하는 페미니즘, 내가 쓰고 싶었던 소설 속의 페미니즘과 결국 내 소설 속에 갇혀버리고 만 페미니즘이 모드 다 다른 언어'여서 '무엇보다도 실제의 내가 실천하는 페미니즘이 그 모든 페미니즘을 따라잡을 수 없어 나는 너무 자주 곤란해지곤 했다'는 김이설 작가의 고백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와 고민들이 상당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단 점이다. 여성들뿐만 아니라 많은 남성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이해와 공감의 시간을 가져주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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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다이어리 - 자존감을 키우는 세 개의 쉼표
킹코 지음, 신동원 감수 / MY(흐름출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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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나, 조금 더 나은 나를 채워줄 쉼표의 마법!

하루하루 자신을 더 사랑하기 위한 자존감 UP 다이어리! 

 

   어느덧 2017년이 한 달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문득 올 한 해 있었던 일을 더듬어보려 다이어리를 펼쳐보았는데 어째 민숭민숭하다. 세 살인 아들을 키우며 살다보면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는 것 같은데, 막상 다이어리를 훑어보면 이렇다 할 특별한 일이 보이지 않는다. 괜히 허무해진다. 뭐 하나 의미 있게 기록될 만한 것이 없는 일상의 반복, 그 안에서 그저 가만가만히 머물러 있기만 하는 나. 분명 2017년을 시작할 땐 뭔가 목표도 있었던 것 같고 다짐도 했던 것 같은데 그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순간순간 기우는 자존감을 억지로 붙들고 산 것만 마음에 남는다.

 

 

 

   때문에 2018년이라고 별반 다를 일 없는 한 해가 될까봐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다이어리는 새 것으로 바뀌겠지만, 새로울 것 없는 2018년이라니. 벌써부터 마음이 울적해지려는 찰나에 관심이 가는 책 하나를 발견했다. <쉼표 다이어리>다. 귀여운 캐릭터가 눈에 띄는 걸 보니 웹툰 에세이인 것 같기도 하고, 다이어리라고 하는 걸 보니 말 그대로 실용 서적 같기도 하고 잠시 의아했는데, 어느 쪽이든 “쉼표를 기록하는 순간, 당신의 자존감이 조금씩 올라갑니다”라는 문구가 덜컥 마음을 사로잡았다.

 

 

 

 

 

 

   <쉼표 다이어리>는 그림을 그리는 저자 킹코와 정신건강의학과 신동원 전문의가 함께 만든 따뜻한 감성의 에세이 혹은 다이어리다. 저자인 킹코는 축구선수의 꿈을 꾸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리 부상으로 꿈을 잃자, 대학 진학에 전념했지만 이마저도 뜻이 맞지 않아 훌쩍 군대에 가버렸다고 한다. 그는 취미로 낙서하는 걸 좋아해서 군대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는데 자신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즐겁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꿈을 잃고 좌절했던 시기를 떠올리며 그린 그의 그림은 멋지고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림, 사람들의 마음을 살짝살짝 긁어줄 수 있는 그림이었다. 나중에 저자의 sns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어쩐지 순둥순둥해 보이는 생김새와 그림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살포시 미소가 나오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이 힘든 일을 겪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처럼, 독자들이 자신의 그림으로 위안을 받고 이 책을 통해 온전한 나로서 일어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쉼표 다이어리>를 살펴보면 자기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비록 상처투성이에 실수투성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이 그림 한 장, 글자 하나하나에서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루 동안 잠시만이라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것, 그것이 이 <쉼표 다이어리>가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있다

 

 

 

<쉼표 다이어리>는 스스로 묻고 답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온전한 나와 마주하고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하루 십 분 당신 혼자 스스로를 만날 시간을 가지세요. 매일 아침 화분에 물을 주듯, 당신의 마음도 보살피세요. 마음속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스스로를 가꾸세요.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동원 -

 

 

 

 

 

 

   스마트한 시대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매년 다이어리를 구입해 펜으로 기록하고 지면을 넘기며 일상을 더듬는 것이 좋다. 아이를 키우며 살다보니 직장 생활을 했을 때만큼 빼곡한 다이어리의 지면을 기대하기 어렵고, 나의 스케줄이 아닌 가족의 스케줄로 채워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현재 내가 충실하게 여기는 것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니 이 또한 내 모습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쉼표 다이어리>를 적다보면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묻고 싶은 말, 나에게 건네고 싶은 말,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쓰고 싶은 말들을 적음으로써 온전한 나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 스스로에게 굉장한 선물이 된 것 같다. 지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혹은 연인에게 다이어리 한 권을 선물하고 싶다면 이 책이 어떨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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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혀 - 제7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권정현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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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몰고 온 광풍 속에서 다채롭게 피어오르는 음식의 향연,

한중일 동아시아적 세계관을 품은 거대한 상상력이 탄생하다!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난설헌>으로부터 시작하여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밤의 눈>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문학상이 그려온 궤적을 나 역시 함께 따라왔다. 격동의 민족사를 치열하게 다룬 소설가 최명희를 추모하고자 만든 문학상인 만큼 그간의 수상작들이 대체로 우리 민족과 역사에 밀착한 깊이 있는 상상력을 돋보인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와 달리 지난 수상작 <고요한 밤의 눈>에서는 사회 구조 속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를 다루어 혼불문학상의 수상작이라기에는 다소 의외의 선택이라는 생각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럼에도 문학이 이 시대를 돌파할 힘이라는 작가의 강렬한 메시지 앞에서 혼불문학상이 점점 더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때문에 이번 제7회 수상작인 <칼과 혀>는 다시금 혼불문학상만의 색채감을 재확인하면서도 한중일이라는 동아시아적 세계관으로 확장되는, 더욱 거대해진 상상력의 과감한 돌파 앞에 묵직한 한 방을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호수공원 한 귀퉁이에서 한중일 역사의 무대 만주로 나아가는 작가의 상상력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꼽았다는 수상작에 대한 설명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워하고, 또 놀라워하며 연신 압도되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운명의 소용돌이, 만주에서 휘몰아치다

 

 

   <칼과 혀>는 1945년 만주에 주둔해있는 일본 관동군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 그를 암살하려는 광둥인 천재 요리사 첸, 사회혁명주의자인 오빠의 부름 앞에 기구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조선 여인 길순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여기서 유일하게 실존 인물이기도 한 야마다 오토조는 마지막 관동군 사령관으로 실제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겁쟁이였다고 알려진 점이 꽤 흥미롭다. 여기에 소설적 상상력이 덧입혀져 소비에트와의 전쟁을 치러낼 의지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무능을 비난하고, 사령부를 자주 비운 채 극락사에 앉혀진 조선의 반가사유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욱 의아한 점은 군인이라는 신분과 곧 닥쳐올 전쟁의 광풍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요리의 미학을 앞세워 궁극의 맛을 쫓는 기이한 행동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사령관 암살 계획을 세우고 황궁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일부러 붙잡힌 듯한 요리사 첸을 사살하지 않고 끝끝내 그가 선보이는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놀라운 집착에 사로잡히기까지 한다.

 

 

 

내 눈을 탐했던 적(敵)을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혀에 와 닿는 맛으로 경험했던 그날, 나는 커서 결코 군인 따위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적을 죽이다가 끝내는 자신마저 그 죽음 속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미련함, 대상에 대한 자유로운 품평을 강제당한 채 통일된 동작으로 뜨겁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획일화된 세계에 대하여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날 내 혀에 와 닿던 백숙의 맛은, 간장의 달착지근함이 더해진 그 연한 고기의 맛은, 적을 향한 그 어떤 사나운 증오심조차 그 연한 속살 속으로 들어가면 자신의 외피를 둘러싼 단단한 껍질과는 상관없는 가장 순수하고 정제된 하나의 본질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애로움으로 가득했던 내 어머니의 외피 속에 숨겨진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던 그날의 의식처럼. / 217p

 

 

전쟁은 반복된다. 두려움은 간부나 사병이나 민간인이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받기 싫은 선물처럼 진주해 있다. 그 속에서도 인간은 부지런히 먹고 마신다. 두려움 속에서도 매일 세끼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인가. 매일 아침저녁 장교식당을 찾는 머릿수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그들은 잘 먹어야 잘 싸울 수 있다고 자위한다. 사령부가 적들에 둘러싸일 때, 과연 저 머저리들 가운에 몇 명이나 착검을 하고 적을 향해 돌격할 수 있을까? 부하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려놓고 뒤에서 머뭇거릴 인간들이 태반이다. 나 역시 그러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다만 나는 내 마지막 순간이 그런 무모함 가운데 놓이지 않기를 바란다. / 248p

 

 

 

   한편 볼품없는 외모를 지닌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 중국 광둥인 요리사 첸은 유년시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요리사의 숙명과 비밀 자경단원이라는 또 다른 신분 사이에 놓인 매우 극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오토조 사령관 앞에 붙잡혀 와 죽기 직전, 자신이 광둥 최고의 요리사임을 증명해야 하는 운명의 시험 앞에서 그는 요리사로서의 혼을 담아 의연하게 이를 치러냄은 물론, 오토조 사령관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이른다. 하지만 비밀 자경단원으로서는 그저 적일뿐인 오토조 앞에서 그는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적일지라도 자신의 요리를 먹어주는 이의 입맛을 사로잡고 싶은 요리사의 사명 또한 그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매번 그랬지만 재료를 앞에 놓아두고 칼집을 넣기 직전만큼 겸허한 시간은 드물다. 마침내 싸움이 시작되고 다섯 마디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산 것들의 욕망을 죄 갈라놓을 때, 그리하여 그것이 불과 섞이고 양념이 덧발려 여백을 거부하는 수무요 위에 가지런히 담길 때 나의 욕망은 끝난다. 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요리사는 그 누구의 입맛도 아닌,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싸워야 한다. 어떤 식재료도 완전히 굴복시켜 불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열의, 그 수고로움이 식탁 위에서 인간의 혀에 얹힐 때 비로소 요리사의 임무가 끝난다. / 57p

 

 

 

 

 

 

   첸과 마찬가지로 길순 또한 오토조를 죽여야 한다는 압박감과 그를 향한 연민 사이에서 고뇌하는 조선의 여인으로 등장한다. 사회혁명주의자인 오빠를 찾아 만주로 오는 길에 꾐을 당해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된 그녀는 어쩌다 첸의 도움으로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지만 운명은 그녀를 그곳에서 머무르게 하지 않고, 결국 오토조 사령관의 여인이 되어 그를 죽여야 한다는 위기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녀가 조선의 여인이여서일까. 혹은 유일하게 구어체를 사용하여서일까. 작가는 길순의 사연을 애써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모든 사내들을 믿지 않는다는 그녀의 담담한 고백에서 당시 조선의 여인들이 겪었을 한의 정서와 그 속에서 꿋꿋이 움켜쥐려는 자존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나는 물어봤어야 해. 도대체 사람을 죽여 무얼 얻지? 오빠는 화를 냈을 거야. 계집들 때문에 집안이 망한다고. 그 얘긴 아버지가 즐겨 내뱉던 말이기도 했어. 숙영이가 죽었어도 오빠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지. 자신 때문에 한목숨이 끊어졌는데도 앞날에 방해가 되게 생겼다며 욕을 해댔어. 숙영인 자살한 게 아니라 오빠의 무관심이 죽인 거야. 썩어 악취를 풍기는 혁명주의자. 내가 죽여야 하는 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일본인이 아니라 오빠라는 사내들인지도 몰라. 오빠라는 뜨거운 생명을 건너가면 대웅전 부처처럼 열반에 들 수 있을까? 오늘은 그 질문에 답을 듣고 싶어. / 45p

 

 

전쟁이 나면 멍청한 남자들일수록 으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정의를 짊어지고 불속으로 뛰어들길 주저하지 않잖아? 그건 때가 되면 규칙적으로 여자들에게로 찾아오는 이름 모를 일본 병정들이나, 남부식 권총 하나로 세상의 부조리를 끝낼 수 있다고 믿는 내 오빠나, 도마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첸이나 모두 매한가지야. 그래서 난 사내들을 믿지 않아. / 92p

 

 

   이 세 인물의 시점과 입장에 따라 각각의 이야기가 한 데로 얽히는 소설의 구조는 한중일이라는 각기 다른 세 나라 고유의 민족관과 소통의 가능성을 확장시킴으로써 입체적이고도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나아가는데 기여한다. 오랫동안 실타래처럼 얽혀있지만 그 누구도 풀어낼 수 없는 세 나라의 복잡한 역사와 날 서린 긴장감을 이 세 인물을 통해 형상화하고자 한 작가의 대담한 발상이 높이 평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칼과 혀,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하다

 

 

   절대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세 인물을 한 데로 엮을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바로 '칼과 혀'이다. 한중일 세 나라의 깊은 갈등 구조를 단순히 정치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라면 굳이 그것을 소설에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까. 때문에 정치와는 무관한, 인류 보편의 문화인 '요리'라는 영역을 통해 갈등을 공감과 이해로 풀어나가는 방식을 사용한 점이 무척 흥미롭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지만 그녀가 만들어준 분고규를 그리워하는 야마다 오토조, 일곱 살 때 아버지로부터 조리용 칼을 쥐는 법을 배우고 난 뒤 요리사의 수고로움과 욕망에 사로잡힌 첸, 야마다 오토조가 쫓기어 들어간 공양간에서 길순이 만들어준 고향의 맛 청국장까지. 요리가 상징하는 칼과 혀라는 매개물을 통해 누구나 한번쯤은 아련하게 지니고 있을 맛에 관한 추억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 추억의 자리를 서로가 어루만져줌으로써 공감과 화해의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한 작가의 시도들이 이 소설을 남다른 지점으로 끌어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도마에 놓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의 생명이야. 칼은 그들의 생명을 끊는 도구가 아니라 그들을 굴복시키는 도구야. 칼을 다룰 때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재료들은 접시에 오르는 순간까지 말썽을 부리잖아. 칼은 등을 보여서도 안 돼. 칼날로 재료를 지그시 눌러가면서 놈들의 눈을 제압해. 숨통을 단박에 끊어놓은 듯 위협하면서 동시에 재료 고유의 빛깔과 싱싱함에 다치지 않도록 배려해." / 98p

 

 

"너의 혀를 느껴봐, 뇌가 아니라 스스로 혀가 되어 다가오는 감각을 느껴봐. 혀는 신이 만든 모든 기관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 또한 아름답다. 너는 그 이유를 아니?"

사내는 규칙적인 움직임 속으로 찾아드는 중이야.

"스스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야.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피다. 혀가 붉은 건 세포 속에 피를 한가득 머금고 있기 때문이야. 맛을 갈구하는 것은 혀가 아닌 피다. 인간들이 끝없이 입속으로 음식을 집어넣는 이유를 이제 알겠니?" / 194p

 

마술사과 요리사 모두 손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 다만 마술사는 상대의 눈을 속이지만 요리사는 상대의 혀를 속여야 해. 맛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모든 사물은 그대로 있을 뿐이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 게 맛이야. 의미란 공통의 관습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의미를 부여받기도 하는 거고. 유능한 요리사는 그런 개인의 습성, 집단의 습성을 빠르게 간파하여 그들의 혀를 속일 수 있어야 해. 마술사들이 젊은 연인들을 앉혀놓고 모자 속에서 빨간 장미를 뽑아내듯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맛을 대령하는 거지. 곧 죽어갈 머저리들에게. 응, 알겠나?" / 239p

 

 

 

   <칼과 혀>는 뛰어난 수작으로써 강렬한 서사, 탄탄한 묘사, 가독성이 높은 작법까지 모두 만족스럽게 읽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인물 설정 면에서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으나 이런 과감한 시도들이 칭찬받을만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갑자기 어디서 이런 작가가 탄생했나, 놀라며 다시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눈에 익은 작품이 더러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혼불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그의 작품이 더욱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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