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파는 가게 1 밀리언셀러 클럽 149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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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공포로 뒤집어버리는 놀라운 이야기꾼의 단편작!

악몽을 파는 가게로 들어서는 순간, 나가는 문은 사라지고 없을 지도!

 

 

   한창 글쓰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누군가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작가가 된다면 어떤 장르의 작가가 되고 싶으냐고. 나는 기꺼이 공포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귀신이 등장하거나 자극적인 연출이 시종일관 지속되는 류의 소설이 아닌, 일상이 공포가 되고 무엇이 현실인지 가늠할 수 없이 모든 가치들이 한순간에 전복되는 놀라운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꿈꾼다. 하지만 정확하고 예측 가능한 일상의 틀을 고집하고 있는 나에게 그럴 만한 기회가 영영 주어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들이 부럽고 짜증이 날 만큼 질투가 난다. 나는 하지 못하는 상상을 어쩌면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냐고. 스티븐 킹, 당신은 어떻게.

 

 

 

자정에만 문을 여는 이야기 노점상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스티븐 킹은 원작이 가장 많이 영화화되어 기네스북에까지 올라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나는 이제야 그의 작품을 글로써 만났다. <미저리>,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1408> 등 그의 작품이 원작인지도 모르고 봤던 영화들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익히 알려진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작품 집필에 몰두하고 있는 현역 작가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일본 추리 소설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의 새로운 작품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원통한 나로서는 스티븐 킹의 <악몽을 파는 가게> 1권을 읽고서 그가 여전히 우리 시대에 살아 숨쉬고 활발히 글을 쓰고 있는 작가란 사실이 이렇게도 기쁘고 반가울 수가 없다. 자정에만 문을 여는 노점상 주인의 모습을 하고서 안 잡아먹을 테니 가까이 와서 내 이야기 좀 들어봐, 하는 그의 손짓에 어느 누가 이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악몽을 파는 가게>는 스티븐 킹의 미출간 신작을 모아 두 권으로 나눠 출간된 소설집이다. 총 20편에 이르는 단편과 함께 해당 작품 앞에는 간단한 해설 및 작품 구상에 관한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혹자들은 스티븐 킹의 작품은 단편에서 보다 더 빛을 발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아직 그의 장편을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단편 소설만이 지닐 수 있는 강렬한 인상과 가슴을 선뜻하게 만드는 놀라운 반전을 여러 편에 걸쳐 만날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라도 이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몽을 파는 가게> 1권에는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자동차의 이야기 「130킬로미터」, 느닷없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능청스럽게 주절대는 유머들이 기분 나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프리미엄 하모니」, 알츠하이머를 겪는 아버지와 그를 돌보는 아들의 단조로운 이야기가 예기치 않은 공포의 상황으로 돌변하는 「배트맨과 로빈, 격론을 벌이다」, 죽음을 예언하는 기묘한 섬 이야기 「모래 언덕」,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집요한 죽음의 그림자 「어느 못된 꼬맹이」, 살해 혐의 앞에서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는 남자의 기막힌 반전과 죽음 앞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 묘한 여운을 주는 「죽음」, 몽환적인 내레이션 작법이 돋보이는 기이한 작품 「납골당」, 거부할 수 없는 환상적인 거래 앞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가 늘 도덕성이라는 시험대에 올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도덕성」, 사후세계와 환생을 다룬 「사후세계」, 잘못 배달되어 온 기계로 인해 현실과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은 대체 현실의 판타지 「우르」까지.

 

 

 

   이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면 「130킬로미터」, 「모래 언덕」을 꼽을 수 있겠다. 「130킬로미터」의 경우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줘야겠다는 인간의 선의를 이용한 잔혹한 공포와 우리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자동차라는 평범한 사물이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로 돌변하는 데에서 오는 섬뜩함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여느 작품보다 유년기에서부터 비롯되는 인간의 가장 말초적인 공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보다 인상적이라 할 수 있다. 우연히 발견한 모래 언덕이 있는 섬이 사실은 데스노트처럼 죽음을 예고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곳이라는 설정의 「모래 언덕」은 예고된 죽음이 현실로 이어지는 오싹한 체험을 하게 한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들의 죽음을 예고하려는 듯 수많은 이름으로 얼룩진 모래 언덕의 광경과 마지막 한 문장의 반전이 가희 압도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작품이니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은 단연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이 외에도 「어느 못된 꼬맹이」와 「우르」 역시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니 기억해두시길.

 

 

 

판사는 생각한다. 그는 플로리다 고속도로 순찰대의 지미 캐슬로에게 들은 말을 기억한다. 그가 말하길 콘도르는 단순히 썩은 고기가 있는 곳을 아는 게 아니라 썩은 고기가 생길 곳을 안다고 했다…(중략)… 이름 없는 이 조그만 섬에는 거의 언제나 콘도르들이 있다. 이곳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 모양인데 왜 아니겠는가. / 「모래 언덕」 중에서 152p

 

 

"사람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악마를 움직일 수는 없다고 하지. 악마는 언제나 살아남아서 커다란 새처럼 날아올라 다른 누군가에게로 옮겨가고. 그게 사람을 진 빠지게 만드는 거야, 그렇지 않니? 그게 정말로 진 빠지게 만드는 거야." / 「우르」 중에서 448p   

 

 

 

 

 

 

   <악몽을 파는 가게>를 읽으며 스티븐 킹은 불안과 상처와 같이 인간이 지닌 가장 연약한 감정에서 파생되는 공포를 재현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평소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악마성과 광기가 극한의 상황에서 얼마나 큰 공포를 불러일으키는지를 보여주는 능력 또한 남다른 듯하다. 요코미조 세이시 이후로 계속해서 만나고 싶은 작가가 생긴 점에 즐겁다. 이제라도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된 점에 감사하며 오랫동안 독자와 함께 하는 작가로 남아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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