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홀 2 - 맨부커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작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2
힐러리 맨틀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정 수준 높고 세련된 정치 드라마를 이제야 만났다!

갖은 위협과 모욕으로부터 철저하게 감정과 얼굴을 단속해가며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야만 하는 정치가로서의 숙명과 분투!






이건 난치성 싸움꾼들의 세계, 

사체로 달려드는 늑대와 그리스도교도를 놓고 싸우는 

사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다. 

그 안에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그대여, 얼굴을 단속하고 또 단속하라.





  『울프홀』 2권은 헨리 8세 치하의 권력 핵심이었던 울지 추기경이 실각한 뒤, 그를 보좌하던 크롬웰이 헨리 8세의 지지와 신임을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국정 전반을 장악해가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크롬웰을 도와라, 그럼 그도 당신을 도울 것이다. 충성하라, 성실히 임하라, 그를 대신해 기지를 발휘하라. 그럼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자는 출세하고 보호받을 것이다.’ 라던 프랑스 대사의 묘사에서 알 수 있듯, 이제 크롬웰은 법안을 상정하고 왕과 왕실의 자금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수도원을 개혁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폐쇄할 권한까지 거머쥐며 막강한 권력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미천한 신분인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 왕실의 최상층에 오르는 이 신분 상승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잔인하고 교활한 성격으로 묘사되었던 여타의 작품과 달리, 행정의 귀재로 중세 궁정의 복잡한 정치사를 타협 없이 이끌어갔던 토머스 크롬웰의 유능함과 명민함에 주목한 점도 극의 몰입도를 더한다. 갖은 위협과 모욕으로부터 철저하게 감정과 얼굴을 단속해가며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야만 하는 정치가로서의 숙명과 분투를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해낸 작품이 또 있을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신랄하고 날카롭게 권력의 구조와 속살을 샅샅이 탐색해가는 힐러리 맨틀의 필력 덕분에 우리는 진정 수준 높고 세련된 정치 드라마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왕이 원하는 건 쟁기를 끌 황소가 아니다. 왕의 총애를 놓고 벌이는 전쟁에서 정면으로 승부하고 부상당하고 불구가 되기를 자처하는 야생의 짐승이다. 그가 가드너와 잘 지낼 때보다 그러지 못할 때 국왕과의 관계에서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은 불 보듯 뻔하다. 분열시켜 지배하라. / 58p


그러나 자기정당화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구구절절 설명해서 좋을 것도 없다. 옛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나약한 것이다. 과거는 감추는 것이 현명하다. 설령 감출게 전혀 없더라도. 사람의 힘은 어스름 속에서, 보일락 말락 하는 손의 움직임에서,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표정에서 나온다. 엄연히 있어야 할 사실이 빠져 있을 때 사람들은 겁을 먹는다. 당신이 벌려둔 간극에 자신의 공포와 망상과 욕망을 쏟아붓는다. / 115p


세상을 움직이는 건 성벽 안이 아니라 회계실이고, 나팔소리가 아니라 주판알이 딸깍거리는 소리고, 총포 장치가 긁히고 딱딱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그 총포와 제작업자와 화약과 탄환의 값을 치를 약속어음에 깃펜으로 서명하는 소리라고. / 143p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서 그랬다는 거요?” 그가 묻는다. 그녀는 동의한다. 맞아요, 실망시킬 수 없어요. 일단 시작하면 계속 가는 수밖에 없어요. 돌아가려고 하면 저들이 도륙할 테니까. / 318p


사람들의 운명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좁은 방안의 두 남자에 의해. 대관식도, 추기경단의 교황 선출 회의도, 화려한 볼거리도, 행렬도 잊어라. 세상은 이런 식으로 바뀐다. 테이블 위를 오가는 수판, 깃펜의 놀림 한 번으로 달라지는 구문의 위력, 한숨을 쉬며 지나는 여자와 공기 중에 길게 남은 오렌지 꽃잎 혹은 장미수의 향기. 침대 커튼을 당겨 닫는 그녀의 손, 살과 살을 맞대며 내는 은밀한 신음이 세상을 바꾼다. / 475p












  앤 불린과 헨리 8세를 중심으로 왕실의 치정과 애욕에만 집중하다보면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을 발견하기 어렵다. 도륙당하지 않으면 도륙해야만 하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 수장령( 영국 국왕을 영국 교회의 최고 수장으로 하는 법)을 관철시키려는 자(크롬웰)와 막으려는 자(토머스 모어)의 집요한 수 싸움이야말로 2권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이니 이에 주목해 읽어보시길 바란다. ‘메리’, ‘토머스’라는 이름의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해 야바위하듯 정신을 혼란케하고, 낯선 중세 영국사가 또 한번 나를 압박하니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지만, 그래서 그 곤란함을 너끈하게 이겨낼 수 있었더라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래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크롬웰과 앤 불린의 대결이 다음 작품인 『시체들을 끌어내라』를 통해 이어진다고 하니 이 역시 서둘러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 - 수동적으로 공격하는, 보이지 않는 악인들에 대하여
데비 미르자 지음, 김미덕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는 나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다정함을 가장한 우리 주변의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존재를 감지하게 하는 심리서!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성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부 자기애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높은 수준의 자아도취 성향을 지녔음은 물론, 공감 능력 부족과 과대망상 등 여러 병리학적인 증세와 문제점을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이 가리키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란 과연 무엇일까?





  회복력 코치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정신건강 분야를 연구해온 저자 데비 미르자는 나르시시스트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바로 외현적 나르시시스트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다. 외현적 나르시시스트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고,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남들에게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과시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유형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위장을 잘하고 교묘해서 진단하기 어렵다. 외현적 나르시시스트와는 달리 타인의 평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신의 나르시시스트 특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고, 매력적이고 친절하며, 겸손하고 공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공감 능력이 없지만 공감적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연기한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은밀한 전술을 사용하여 관계를 통제하고, 조종하여 장악한다.










“누군가가 은밀하게 공격적일 때,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계산적이고 

비밀스러운 수단을 사용하거나 

공격적인 의도를 숨긴 채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조작한다.” 

- 조지 K. 사이먼, 《양의 탈을 쓰다》 / 40p




  『그 사람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입니다』는 다정함을 가장한 우리 주변의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존재를 감지하고, 뒤틀리고 혼란스러운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심리책이다. 연인, 가족, 친구, 직장 내에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실제 사례를 분석하고,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타인을 통제하고 조종하는지 정밀하게 살펴본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 파트너가 당신을 대하는 태도가 이제는 당신에게 일상(정상)이어서, 그 태도가 눈에 띄지 않는다. 폄하가 너무나 교묘해 당신은 지속적인 폄하를 깨닫지 못하며, 당신이 느끼는 감정이 학대자와 함께 사는 트라우마의 결과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 53p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으로 하여금 ‘내가 뭘 잘못했나’ 궁금하게 하려고,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기분, 시선, 겉으로는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당신 스스로를 나쁘게 느끼게 하는 발언을 통해 당신을 통제하려 한다. 당신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폄한 당계에서 피해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도록 프로그램에 짜맞춰진다.

또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실제로 그들 자신의 문제인 일을 당신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당신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를 ‘투사’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문제를 당신에게 투사하고, 당신은 이를 눈치채지 못한 채 결국 비난받는다. 피해자의 정서적 요구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에게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의 욕구, 요구, 우선순위만이 중요하다. / 57p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이 지닌 일련의 특징들 속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것은 이들이 ‘두려움’을 상대와 공유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한다는 점이다. “당신이 바람을 피울까 두려워.” “당신이 너무 예민해서 걱정 돼.”라는 말로 두려움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가진 문제를 도리어 상대에게 투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것이 워낙 교묘해서 상대가 ‘정말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내가 이 관계를 망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자책하게 된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엄청난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 대해 끔찍한 감정을 품게 만든다는 것이 괴이하고 섬뜩하다.




  여기에 나르시시스트가 부모라면 더더욱 끔찍하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도움을 주고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녀의 의지와 행동을 무시하고 가르치려는 이들의 태도는 자녀가 상황을 해결할 힘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믿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그렇게 자신이 일을 잘 못하고 있다는 미묘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나르시시스트 부모로부터 받다보면 삶에 무기력해지고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당신이 자신을 탓하게 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당신 삶 속에서 만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가 끊임없이 당신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암시했기 때문이다. 둘째, 당신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 않은 자기 성찰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 얽혀 일어난 일로 당신이 받는 대우는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특성이 착취당하고 해를 입었으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 254p












  이 책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 얽혀 일어난 일로 당신이 받는 대우는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교묘하게 꾸며진 말들로 인해 너무 많은 비난을 받아왔거나 스스로를 자책했다면 이제는 그들로부터 벗어나 나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지 진실을 들여다보자. 아울러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관계가 있다면 그 속에 내현적 나르시시스트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이 의외로 우리 주변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타인과의 관계에 휘둘리거나 더 이상 자신을 자책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진실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피해자들이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미스트 바운드 1~2 세트 - 전2권 미스트 바운드
대릴 코 지음, 정보라 옮김 / 올리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아버지의 기억을 찾기 위해 신비한 나라 ‘미스트’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환상문학만의 특별한 감수성과 매력을 잘 담아낸 작품!







  “아메리카 대륙의 틀링기트 부족 사람들에 따르면, 아주 옛날에 사람 고기를 야식으로 즐겨 먹는 거인이 살았단다….” 옛날 이야기다! 알렉시스에게 있어 할아버지는 마술 양탄자와도 같은 존재다. 순식간에 멀고도 엄청난 세상으로 데려가 주는 마술 양탄자. 알렉시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면 외국으로 출장을 간 아버지를 따라 또 다시 이사를 가야만 하는 괴로움과 불안감을 잊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늘 유쾌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항상 말하지만 그냥 믿으면 된단다. 믿음을 가져, 그러면 모든 것이 진짜가 돼!”





‘아, 공주님, 하지만 이야기는 꿈을 키우는 밭이며, 

꿈이야말로 희망이 머무르는 봉오리이지요.’ / 29p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산책을 하던 중, 갑자기 담요처럼 두꺼운 청회색 안개가 이들을 감싸기 시작한다. 언뜻 숲이 이전과는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무렵, 할아버지가 황급히 알렉시스를 집으로 재촉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헐레벌떡 뛰던 알렉시스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에 부딪쳐 미끄러진다. 그때 안개를 헤치고 두 사람 앞에 어떤 조그맣고 낯선 존재가 느닷없이 나타나는데…. 아니?! 지난주에 읽은 이야기책 속의 꼬마 도깨비 케니트? 당황한 알렉시스가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케니트는 화가 잔뜩 난 모습으로 그들이 자신의 집을 부쉈다며 이내 할아버지의 기억을 앗아가버린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케니트가 앗아간 할아버지의 기억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할아버지의 기억을 찾기 위해 신비한 나라 ‘미스트’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미스트 바운드』는 이렇게 시작된다.






신비한 존재들로 가득한 환상 세계, 미스트




  『미스트 바운드』는 바다 사이렌인 두융과 두융의 주술에 걸린 옴바크족, 독을 묻힌 작살촉을 들고 다니는 낭마이 전사들, 푸르스름한 털복숭이에 멧돼지 같은 긴 송곳니를 가진 오니, 코끼리 형체의 짐승 유메 등의 신비로운 존재와 위험천만한 장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미스트를 배경으로, 할아버지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갖은 난관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의 활약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환상 소설이다. 두 권에 걸친 긴 이야기 속에서도 몰입도 높은 전개가 시종 펼쳐지는 것은 물론, 아시아 신화나 전설 그리고 민담 속 괴물과 요정들이 이야기와 잘 어우러져 어린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중에서도 정직함의 가치를, 말보다는 행동의 중요성을,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무엇보다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하는 책 속의 메시지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아니, 아니, 착하게 굴어라, 아가야. 가장 작은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의 제일 좋은 모습과 제일 나쁜 모습이 나타나거든.” / 38p



“해 보지도 않으면 절대로 못 풀지.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듯이 마주치는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 대부분은 마주하지 않으면 바꿀 수가 없어.” / 140p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건 두려움 그 자체다.’

할아버지는 고장 난 레코드처럼 이 말을 되풀이하곤 했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는 거야. 계속, 계속 나아가야 해.’ / 2권 64p











  알렉시스가 기억풀 재료를 얻기 위해 숱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힘은 그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녀인 알렉시스에게 사랑을 담아 전한 이야기와 삶의 지혜 속에 존재했다. 이 소설의 빛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옛이야기가, 그들의 오랜 삶의 경험 속에서 길어 올린 목소리가, 알렉시스로 하여금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이자 나아갈 방향을 비추는 빛이 되는 장면들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래, 조그만 공주님. 늑대 수수께끼의 정답은 대답이 너의 손안에 있다는 것이었어. 네가 믿는 것이 미래이고, 혹은 너의 미래라는 것이지. 그리고 네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지는 너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고.” / 2권 152p



“삶이 너에게 돌을 던지거든 그걸로 다리를 지어라, 벽을 쌓지 말고. 너의 그 벽 바깥으로 나올 때가 됐어. 리프, 이제는 네가 뒤로 물러서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걸 지어 올려야 해. 그러면 아무 데도 못 가고 붙잡혀 있는 대신 어딘가로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알리사를 위해서라도 이제 너는 다리를 지어야 해, 리프.” / 2권 180p





  『너의 유토피아』와 『저주토끼』를 쓴 정보라 작가가 왜 이 책에 주목하고 번역하고 싶어했는지 알 것 같다. 근래에 읽은 작품 중에서 환상문학만의 특별한 감수성과 매력을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인 듯하다. 어른인 나조차도 흠뻑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을 만큼 재미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환상 소설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과 신문 읽고 쓰는 초등 탄탄 논술 - 교과 연계 초등 필독서 48권을 한 권에! 책과 신문 읽고 쓰는 초등 탄탄 논술 1
오현선 지음, 피넛 그림 / 체인지업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등 필독서와 관련 기사를 읽고, 생각하고, 쓰기까지 한 권으로 알차게!

다양한 주제로부터 질문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초등 논술책!







  첫째 아이가 4학년에 접어들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걸 느낀다. 공부도 공부지만 각종 스마트 기기가 점령한 시간을 온전히 독서로 채운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나마 문해력 문제집이라도 풀면 이거라도 했으니 되었다고 위안을 삼는 수준이니, 소위 ‘문해력이 떨어지는 요즘 아이들’에 우리 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듯하다.




  그런데 마침맞게도 이런 엄마의 고민을 해결하고, 독서와 논술 그리고 문해력과 사고력을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는 책이 출간되어 반갑다. 『책과 신문 읽고 쓰는 초등 탄탄 논술』은 라온쌤 오현선 선생님이 24년 동안 초등 독서 논술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48권의 초등 필독서와 관련 기사를 연계해 우리 아이들이 더 깊고 폭넓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글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하는 책이다. 인간의 심리와 갈등을 다룬 ‘문학’, 삶의 진리를 다룬 ‘철학’,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 자연 세계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원리를 알려주는 ‘과학·환경’, 실제 우리가 살아온 모습을 알려주는 ‘역사’, 세상에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인물’에 이르기까지, 6가지 주제로 나뉜 다양한 책을 통해 논리적으로 사고하며 자신의 의견을 글로 써보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복잡해 보이는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해요. 이 세상에는 답이 없는 문제가 많기 때문에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하는 만큼 보는 눈이 밝아지고 그래야 옳은 길을 찾아갈 수 있지요. 만약 이렇게 열심히 생각하지 않으면, 주체성이 없어 다른 사람의 생각대로 살 수밖에 없어요. 이런 사람이 너무 많으면, 그들이 모여 사는 ‘사회’라는 공동체도 생각 없이 흘러가게 된답니다. 그러면 그 공동체 속에 속한 개인은 더욱 주체성을 잃게 되고, 결국 인간의 본질을 잃어버릴 수 있어요. / 52p





우리 아이의 생각 그릇을 키우다




  언젠가 아이가 침울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 울먹거리는 표정을 보아하니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알고 보니 친구가 느닷없이 나타나 아이가 공들여 만든 미술 작품을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키득거리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친구의 태도에 더 화가 났던 아이는 “내가 왜 네 사과를 받아줘야 하는데!”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이렇게 학교에서 아이가 친구와 갈등을 겪을 때면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를 깊이 고민하게 된다. 물론 때마다 공감해주고 유연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잘 돌보면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찾는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오현선 선생님은 미샤 다미안의 책 『아툭』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누군가를 미워하게 되어 되갚아 주고 싶은 마음을 느끼지만, 결국 용서와 사랑이 더 큰 가치가 있음을 전하는 동화책이다. 오현선 선생님은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빨리 버리라거나, 복수가 무조건 나쁘니 용서하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방법을 찾지 못한 사람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가 너무 밉다면, 이 책을 읽으며 아툭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고 천천히 느껴보기를 독려한다. 그리고 갈등이 생겼을 때 복수와 용서 중 어떤 것에 더 마음에 평화를 줄 수 있을지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하면 보다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글로 써보기를 제안한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자기 생각이 들어간 글쓰기를 연습해보는 과정은 논술 실력 향상을 떠나 마음 근육을 단련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 책으로 하여금 아이와 함께 자주 연습해봐야겠다.




생각은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나누면 더 좋아요. 우리는 서로 비슷한 대답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생각이 같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가만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이럴 때는 ‘무슨 뜻이지’, ‘반대로’, ‘예를 들면’과 같은 철학 안경을 쓰고 더 이야기해요. 그러면 당장 답을 얻을 수 없을지는 몰라도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에 의문을 품고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답니다. / 76p



정치, 경제, 인권 이 세 가지를 모두 합쳐서 우리는 ‘사회’라고 부른답니다. 물론 사회에는 역사나 지리도 있고 문화, 교육, 법, 보건, 도덕 등 더 다양한 주제가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크게 정치, 경제, 인권을 중심으로 필독서와 뉴스를 살펴볼 거예요.

사실 이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가 먹고 입고 살아가는 것이 경제 활동인데,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인간다운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인권 문제가 돼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 바로 정치랍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하나로 이어져요. 그래서 사회를 이해하려면 이런 연결을 보는 눈이 필요해요. / 90p










  이 외에도 정의란 무엇인지, 인권이 왜 중요한지, 지구 환경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다른 민족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책을 읽다보면 다양한 주제로부터 질문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사회 등 각각의 주제에 따라 책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제대로 읽을 수 있는지 독서팁도 잘 정리되어 있어 매우 유용하다. 초등 4학년부터 6학년에 이르기까지, 초등 글쓰기와 관련된 좋은 교재를 찾으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디어 만나는 영국 동화 - 곰 세 마리부터 아기 돼지 삼 형제까지 흥미진진한 영국 동화 50편 드디어 시리즈 3
조셉 제이콥스 지음, 아서 래컴 외 그림,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옛날 옛적에~ 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늘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국 동화만의 독특한 문학적 색채를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옛날 옛적에 돼지들은 시를 읊고,

원숭이들은 담배를 피고,

암탉들은 거칠게 보이려고 코담배를 들이쉬고,

오리들은 꽥 꽥 꽥 시끄럽게 돌아다녔네. 오! 

/ 「아기 돼지 삼 형제」 중에서 264p




  우리는 모두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동화를 듣고 읽으며 자라났다. 흥미로운 모험, 재미있는 우화, 이상한 전설, 신묘한 괴물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엿보고, 위기를 이겨낼 힘을 기르고, 커다란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렇게 시대와 세대, 나라를 불문하고 동화라는 문화적 자산을 오랫동안 공유해왔다는 사실은 놀랍도록 신기하다.




  『드디어 만나는 영국 동화』는 ‘영국의 그림 형제’로 불리며, 우리가 흔히 ‘유럽 동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인 「잭과 콩나무」, 「아기 돼지 삼 형제」, 「피리 부는 사나이」 등의 동화들을 수집해 세계에 널리 퍼뜨린 조셉 제이콥스가 엮어 쓴 책이다. 편집되거나 각색되지 않은 원작이 생생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은 물론, 전에 접한 적이 없는 신기하고 신선한 다른 영국 동화들이 따뜻한 일러스트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용기, 사랑, 욕망, 재미, 운명을 주제로 나뉜 50편의 동화 속에 담겨진 교훈과 지혜는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삶에 큰 영감을 제공해 줄 것이다.




문의 쇠고리를 두드리고 옆의 종을 당기세요.

잠시 쥐 죽은 듯 조용히 있으면

문에서 아주 자그마한 소리가 들릴 겁니다.

“열쇠를 집어넣어요.”

열쇠는 마음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열쇠 홈에 J.J.(조셉 제이콥스의 약자)라는 표시가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요.

이제 열쇠에 열쇠 구멍에 넣으세요, 꼭 들어맞을 테니. / 12p




  「잭과 콩나무」에서부터 「캔터베리의 공주」에 이르기까지, 시험에 드는 주인공과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사랑과 행복을 쟁취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무엇보다 이렇게 한 데 엮어놓고 보니 그 속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일련의 패턴들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를 테면 주인공이 시기와 오해를 받아 집에서 내쫓기거나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떠나다, 우연히 머물게 된 곳에서 여러 해를 묵묵히 일하고 나면 큰 보상을 받는 내용들이 그러하다. 이는 우리가 성장하고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전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읽는 동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잔혹한 장면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통제할 수 없는 악의와 고단한 현실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짐작된다. 주인공들이 이를 극복해가는 여정은 잔혹한 현실을 뒤로 하고 언젠가는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희망을 제시하고 싶었던 이야기꾼들의 바람은 아니었을까.




“어떻게 하면 누나와 형들을 구할 수 있는지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더 알려주세요.”

“이보게. 딱 두 가지만 지키면 되는데, 이 방법이 보기에는 단순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라네. 하나는 꼭 해야 하고, 하나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 먼저 해야 할 일이란 이렇다네. 요정의 땅으로 들어가거든 자네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의 목을 부친의 검으로 모조리 베어버려야 하네. 그리고 아무리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더라도 빵 한 조각, 물 한 방울도 절대 입에 대서는 안 된다네. 만약 요정의 나라에 있는 동안 빵을 한 조각이라도 먹거나 물을 한 방울이라도 마신다면 다시는 인간 세상을 보지 못할 걸세.” / 「막내 로울랜드」 중에서 45p


 


내 머리를 베어버려요, 내 사랑.

내 머리를 베어버리라니까요, 내 사랑.

차가운 우물가에서 그렇게 지쳐

내게 했던 약속을 잊지 말아요. / 「세상 끝의 우물」 중에서 160p

 



“식초 남편, 이 멍청한 양반아, 바보, 얼간이. 장에 가서 암소를 사는 데 돈을 몽땅 써버렸지. 그런데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암소를 백파이프로 바꿔버렸지. 하지만 그것을 볼 줄 모르니 산 돈의 10분의 1 가치도 없지, 이 멍청이. 그러고는 얼마 안 되어 그 백파이프를 4분의 1 값도 안 되는 장갑으로 바꿔버렸지. 그 장갑은 하찮은 지팡이로 바꿔버리고. 그러니 이제 금화 40닢도, 암소도, 백파이프도, 장갑도 아무것도 없고 그저 보여줄 거라고는 어느 덤불에서도 꺾어낼 수 있는 쓸모없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구나.” / 「식초 부부」 중에서 320p












  “나를 위해 갈 길을 좀 줄여줄 수 없느냐?” 「선견자 고본」에서 주인공인 고본은 자신의 아들 잭에게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한다. 왕의 명령으로 성을 지으러 가야 하는 길고 고단한 여정에 막 오른 참이었다. 아들인 잭은 길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자 고본은 너는 전혀 도움이 안 되니 집으로 가라며 잭을 돌려보낸다. 집으로 돌아온 잭을 보고 아내가 의아해 묻자, 잭은 아버지가 했던 요구와 자신의 대답을 들려준다. 그러자 지혜로운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아, 어리석긴요! 아버님에게 이야기를 해드렸더라면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으셨을 거 아니에요!” 먼 길을 가는 여정을 단축하려면 필요한 것은 지름길이 아니라 이야기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현실의 고달픔과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힘을 이야기에서 찾았다. 수많은 어린이들의 잠자리를 밝히고, 또 성장한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화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오랜만에 동화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영국 동화만의 독특한 색채와 이제껏 어디에서도 읽어보지 못한 다양한 동화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