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 1
이철환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의 무늬를 냉철하면서도 따스한 언어로 담아내는 작가!

불신과 폭력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다!

 

 

오래전 하마를 길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하마는 성질이 사나워 길들이기 어려웠다. 하마를 길들이려면 채찍으로 하마의 몸에 선명한 기억을 남겨야 한다. 가장 좋은 채찍 재료는 하마 가죽이었다. 하마 가죽으로 만든 채찍을 맞으며 하마는 얼마나 난감했을까? 자신이 자신을 착취하는 꼴이 되었다. 하마가 의도한 것은 아니다. 하마는 자신을 지키려고 강인한 가죽을 만들었는데 그 강인한 가죽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굴복시킨 것이다.

대한민국엔 수많은 하마가 살고 있다. / 127p

 

 

 

  대한민국이 소란스럽다. 오늘은 또 어떤 뉴스가 나를 위협할지 두려울 지경이다. 하마를 길들이기 위해 하마 가죽으로 만든 채찍을 휘두르던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휘두른 채찍에 우리가 옭아매어지고 상처를 입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심각해지고 있는 소득격차, 대학 서열화와 입시 경쟁, 양극화된 정치와 신념, 저출산에 따른 인구 절벽의 현실화, 여기에 1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대유행까지. 이따금 뉴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의 영역 밖에서 벌어지는 뜻밖의 사건일 뿐이라고 여길 수 있었던 때에는 그래도 희망이란 것이 있었는데, 치솟는 부동산세에 내 집 마련이 점점 힘들어지는 청춘의 미래와 애초에 출발선부터 달랐던 부의 경쟁 속에서 이미 멀찌감치 밀쳐져있는 현실을 실감할 때면 이렇게 내내 아등바등하며 사는 게 다 무엇인가 이내 절망스러워지곤 한다. 그러나 이 캄캄한 현실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면,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듯 불신과 폭력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나의 서사는, 우리의 서사는 좀 더 단단해지겠지. 소설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에서 작가 이철환 역시 이렇게 말한다. “어둠은 어둠이 아니었다. 어둠이 감추고 있는 빛의 실체가 있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그것을 ‘어둠의 빛’이라 명명했다. 캄캄한 시간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다. 오직 어둠을 통해서만 인도되는 빛이었다. 어둠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

 

 

 

대한민국의 무늬를 언어로 담아내다

 

 

 

  소설 『연탄길』로 익히 잘 알려진 이철환 작가의 신작이다. 평범한 이웃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내며 그 속에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었던 작가의 전작이 그러하듯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 역시 대한민국의 현실과 소시민들의 애환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잘 녹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 속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서 만난 용팔과 영선 부부는 고래반점이라는 중국집을 30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초등학생인 동배와 고등학생인 동현을 둔 학부모이자, 건물주인 최대출의 비위에 맞춰가며 해마다 돌아오는 임대비 상승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세입자다. 부모를 잃은 남매 인혜와 인석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고, 용팔의 지인인 인하는 시각장애인으로 일하고 있던 학교를 그만둔 처지다. 용팔의 아들인 동현은 같은 반 친구인 서연을 짝사랑하고 있지만 학력과 가정형편의 차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멀찍이 바라만 볼 뿐이다. 반면 최대출의 딸인 서연은 도망간 엄마가 그러했듯 아빠인 최대출의 육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이렇듯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디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우리네 이웃 중에 흔히 볼 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당신이 정직한 재료로 음식 만들겠다고 약속했어. 내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이런 말도 했던 것 같아. 누군가 ‘비밀의 문’을 통해 항상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누군가 비밀의 문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세상 사람들은 내 속마음을 환히 다 알고 있다는 뜻이었어. 근사하게 속여도 근사하게 속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는 말이었던 것 같아.” / 35p

 

 

자연은 더 이상 종교가 될 수 없지만 자연 속엔 종교적 제의가 가득하다. 제비의 생존 방식에도 자연의 말씀은 있고,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오는 연유 속에도 자연의 말씀은 있다. 집을 짓기 위해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 나를 때 이외에는 인간에게 오해 받기 싫어 땅에 잘 내려앉지 않는 제비의 강박적인 일상 속에도 자연의 말씀은 있고, 흙과 지푸라기를 자신의 침으로 비벼 한 조각 한 조각 정성껏 붙여나가는 제비의 집 짓는 방식에도 자연의 말씀은 있다. 겨울이 가고 삼월 삼짇날이면 어김없이 돌아왔던 제비가 더 이상 오지 않는 이유 속에도 자연의 말씀은 있다. 그래서 자연을 제2의 성서라고 말했던 것일까? / 56p

 

 

“대학 입시가 없어지면 교실에서 진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건 경쟁지상주의가 아냐. 부당한 억압을 비판할 수 있는 힘을 가르쳐야 하고,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길러줘야 돼.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학교는 학생 한 명 한 명이 강한 자아를 가진 자존감 높은 아이가 될 수 있도록 교육의 방향을 대전환해야 돼. 학교는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곳이잖아.” / 64p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는 언뜻 소설이라기보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서사와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한 구성이 아니라 용팔과 그의 지인들이 나누는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가장의 무게, 불공정한 현실, 불안과 불신으로 얼룩진 사회에 대한 그의 푸념과 자조에는 병들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을 향한 날카로운 통찰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그의 통찰에는 “작은 돌멩이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지만 어둠을 뚫고 날아간 작은 돌멩이가 그 거대한 벽에 부딪힐 때 나는 ‘탁’ 하는 소리는 어둠 저편에 우리가 넘어야 할 혹은 우리가 부수어야 할 거대한 벽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엔 충분”하다던 신영복 교수의 말처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서려 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이해하려는 이웃이 있는 한 우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이견 없는 합일보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이 땅의 역동성을 더 신뢰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을 엿본다. 그래서일까, 소설 속에서 “자족감이 주는 충만을 나는 사랑한다. 결핍이 주는 열망을 나는 더욱 사랑한다. 문제아를 만드는 문제어른들이 가득한 나라, 대한민국.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바다는 푸르다.”는 문장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서울에서 몇 년 동안 살았던 적이 있어요. 머리 아플 정도로 사람도 많고 차도 많지만 가끔씩 서울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저는 분주한 서울의 모습이 좋아요. 가끔씩 서울 가면 이곳처럼 고요하지 않아 좋았어요. 인구 1,000만 명이 살고 있는 서울이 늘 고요하다면 죽은 도시 아닌가요? 공존할 수 있는 차이는 이견 없는 합일보다 역동적입니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서울의 역동성을 저는 신뢰합니다. 대한민국이 더 좋은 나라로 가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 149p

 

 

“나도 처음엔 콩가루 집안이라고 생각했거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족이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내며 싸울 수 있다는 것은 그 집안에 억압이 없다는 거잖아. 엄마나 아빠 목소리만 크게 들리면 그 집은 위험한 집이야. 그 집에 억압된 자아가 있다는 뜻이잖아. 피를 나눈 식구지만 여러 사람이 한집에 붙어 사는데 싸움이 없으면 비정상이지. 지나치지 않다면 소리 지르며 싸우는 가족이 건강한 가족이야. 시끌벅적한 집안에 상처받은 자아도 있지만 그 상처는 일방적인 상처가 아닐 테니 그 집안은 무너지지 않을 거야.” / 149p

 

 




 

 

 

 

 

  소설의 말미에 서연이 아버지인 최대출의 폭력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나쁜 마음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는 그녀에게, 최대출과 같은 권력자들로부터 폭력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위안과 희망을 줄까. 왠지 그라면 좀 더 따뜻하고 건강한 희망을 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알래스카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아이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소설!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함으로써 용기를 얻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따뜻한 이야기!

 

 

 

나에게는 도우미견이 있고, 우리 집은 이층집인데 내 방은 일 층에 있고, SOS 호출 밴드가 손목에 걸려 있고, 약통을 들고, 헬멧을 쓰고 있다.

나는 스벤이다. 취미는 뇌전증이다. / 170p

 

 

 

  나는 두렵지 않다. 전혀 두렵지 않다. 스벤은 차가운 콘크리트 계단 앞에 우뚝 선채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 되뇐다. 친구들은 전부 중학교 1학년이 되지만 자신은 다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구석에 처박혀야 한다는 현실에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 구급차에서도 뇌전증 센터에서도 교실에서도 느닷없이 발작을 일으키며 자주 기절하는 아픈 아이. 카메라, 경보기, 도우미견까지 온갖 안전장치의 감시와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긋지긋한 시선들, 때문에 이사를 하고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교실로 가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언제고 발작을 일으키는 날이면 반 아이들은 몸속에 귀신이 들기라도 한 듯 끔찍하게 바라보거나 장애인 취급을 하며 불쌍한 아이라고 여길 테니까. 그나마 학교가 뒤집힐 만한 어마어마한 짓을 벌이거나 못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두렵지 않은 척 해보는 수밖에.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애들은 모두 다른 학교로 갔다. 이 교실에는 나를 아는 애도 하나도 없고, 지난여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애도 없다. 그래,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신호등이 늘 초록 불일 수만은 없어.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라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 13p

 

 

 

  부모님이 운영하는 사진관에 총기를 든 강도들이 습격한 사건을 계기로 세상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파커. 새 학년 새 교실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보려고 하지만 첫 날부터 계획이 삐끗거린다. 서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개의 울음소리로 징글벨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가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스벤, 저 못된 녀석이 유독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이럴 때 알래스카라도 곁에 있다면 좋았을 텐데. 동생의 개털 알레르기 때문이 아니었다면 알래스카와 이별할 일은 없었을 텐데. 지난 넉 달간 알래스카를 찾으려고 온 사방을 들쑤시고 다녔지만 대체 누구에게 갔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그리운 마음만 더욱 커져가는 가운데, 마치 기적처럼 학교 운동장에서 알래스카를 발견한다. 너무나 끔찍하게도, 하필 알래스카의 주인이 스벤이라는 사실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소설 『안녕, 알래스카』는 뇌전증 앓고 있는 소년 스벤과 불의의 사고를 겪은 소녀 파커가 각자가 지닌 상처 때문에 세상을 향한 벽을 세우고 원망하는 마음을 키우고 있는 가운데, 한때는 파커의 반려견이었던 알래스카가 스벤의 도우미견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데리고 오기 위한 계획을 세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 어울릴 수 없을 것 같던 이들은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상처를 상대방에게 터놓기 시작함으로써 함께 아픔을 나누고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네덜란드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황금연필상과 은손가락상, 독일 청소년문학상 등 유럽 내 주요 문학상을 수차례 수상한 작가의 작품답게 소설은 반려견과 소년 소녀의 우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냄과 동시에 십대 청소년들이 성장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내적, 사회적 고민들을 촘촘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반복적인 발작을 특징으로 하는 만성적인 뇌 장애를 가리키는 ‘뇌전증’을 소재로 하여 흔히 갖게 되는 장애에 관한 편견과 시선, 그로인해 뇌전증 환자들이 겪게 되는 소외와 상처를 들여다보게 한다. 비록 그들이 처한 현실과 환경은 다를 수 있지만 함께 함으로써 용기를 얻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깊은 울림을 준다.

 

 

 

도우미견을 못 본 체하고 지나가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의 볼을 꼬집고 지나가지는 않잖아? 또 비행기 조종 중인 조종사의 겨드랑이를 간지럼 태우지 않잖아? 알래스카도 경찰이나 비행기 조종사와 다를 게 없다. 알래스카가 덮개를 두르고 있으면, 도우미견으로서 일하는 중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멍청한 구경꾼들의 무례한 손놀림을 기다리느라 가만히 있는 게 결코 아니란 말이다. / 112p

 

 

“너는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야. 누구나 가끔은 화성을 왔다 갔다 하거든. 네가 그랬잖아. 다들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흠, 정신 나간 것도 마찬가지야. 사람은 다들 조금씩 정신이 나가 있어. 나도 내가 어떻게 숨 쉬는지 온종일 설명해야 하지. 그렇게 죽어라 설명하는데도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 / 167p

 

 

 




 

 

 

 

  소설 속에는 스벤이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아이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여러 사람에게 공유하는 바람에 스벤이 학교를 그만두는 장면이 나온다. 파커 역시 개의 울음소리로 징글벨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가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자칫 친구들로부터 소외를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워질 때가 있다. 누군가는 너무 튄다는 이유로, 반대로 누군가는 너무 소극적이라는 이유로도 따돌림을 당할 수가 있다. 나 역시 겪어본 일이기에. 더욱이 휴대폰이라는 그럴 듯한 도구가 한 사람을 따돌리고 괴롭히는 일이 너무나도 쉬워진 요즘일수록 아이가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을지, 부모인 나는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어쩌면 이 책이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이 책을 꼭 함께 읽어보자고 권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절대 말하지 않을 것
캐서린 맥켄지 지음, 공민희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마다 나누어 쥐고 있는 진실의 퍼즐을 짜 맞출 것!

거듭되는 추리의 혼선, 마지막까지 향방을 알 수 없는 반전에 반전의 연속!

 

 

  “추억의 명곡을 들려 드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라디오 DJ가 말한다. “1998년 여름으로 떠나 보시죠.” 마고는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캠프 마코의 긴 비포장 진입로를 들어서며 1998년의 여름, 그때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의미가 있었고, 차라리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바로 열일곱 살의 그때. 7월의 캠프가 한창 무르익어가던 날 밤, 친구인 아만다가 비밀해변에서 의식을 잃고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발견된 바로 그 날로부터 그녀는 한 발짝도 멀어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 때 범인이 바로 잡혔더라면 그 날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까. 이렇다 할 충분한 증거가 없어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이 때문에 자신을 포함해 캠프 마코의 소유주인 맥알리스터 가족 전체가 그날을 가슴 속에 묻은 채 살아가야 했다.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유언장을 듣기 전까지는.

 

 

 


 

 

 

 

절대 말하지 않아

 

 

 

둘 중 한 명이 죽음에 관해서 무슨 말을 했다. 시체 혹은 죽은 소녀라고 했다. 그래서 난 살아 있어, 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내 머릿속에서만 울릴 뿐 그들은 듣지 못했다. 움직여, 난 생각했다. 뭐라도 하라고. 하지만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다. 좀 움직여. 움직이라고. 난 온 힘을 다해 집중해서 손을 움직였다. 나는 미친 듯이 손을 흔드는 것 같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또렷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 122p

 

 

 

  기차 탈선 사고로 맥알리스터 부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마고와 라이언, 메리, 케이트와 리디가 캠프장으로 모여든다. 이틀 뒤, 추도식이 열리는 날까지 아버지가 남긴 유언장에 따라 캠프장을 계속 운영할 것인가 팔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복잡한 기류가 흐른다. 라이언은 회사 자금을 위해 내심 캠프를 팔고 싶지만, 케이트는 계속 유지하기를 원한다. 마고와 리디는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며 메리는 그저 캠프를 남겨 둔 채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물,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오갈 데가 없어지자 맥알리스터로부터 도움을 받은 캠프 지기 션은 캠프가 사라지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은 어디에도 갈 곳이 없음으로.

 

 

 

  가족 변호사인 케빈 스위프트는 그렇게 캠프 지기인 션까지 함께 동석한 가운데, 가족 모두에게 맥알리스터의 다소 충격적인 내용의 유언을 읽기 시작한다. 문제는 유언장에 캠프를 계속 운영할지 말지 결정권을 맡기겠다는 단순한 내용만 적혀 있는 게 아니었다 것. 아만다의 죽음을 둘러싼 과거의 진실이 무엇인지, 아들인 라이언이 용의자일 것이라 짐작하면서 가족 전체가 라이언이 무죄라는 만장일치의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그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만약 자매들이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라이언의 몫은 션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내용까지 덧붙여서. 자신에게 불리한 아버지의 충격적인 유언에 상처를 입고 화가 난 라이언, 졸지에 라이언 대신 상속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션, 이 모든 게 얼떨떨한 자매들. 과연 그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라이언이 진짜 아만다를 헤친 범인일까 혹은 다른 제3의 인물일까? 다만, 범인이 라이언이든 아니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만다를 헤친 사람이 가족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이미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정말 저마다 나누어 쥐고 있는 진실의 퍼즐을 짜 맞춰야 할 때가 왔다.

 

 

 

사실 라이언은 한편으론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님이 이해가 갔다. 그를 잘라내고자 하는 마음이 적어도 이해는 되었다. 가족 중에 여성에게 연쇄적으로 해를 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것이 최소한 부모가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그의 운명을 여동생들의 손에 맡기다니?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번거롭게 그럴 거 없이 그냥 그를 경찰서에 넘기고 신경을 꺼도 됐을텐데. 뭐가 어떻게 됐든 그는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다. / 162p

 

 

왜 그녀는 라이언이 아만다를 공격했다고 생각했을까? 사실 모든 증거가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20년 전 호수에서 리디는 카누 반대편 끝에 팔을 축 늘어뜨린 아만다와 함께 섬에서 벗어나 노를 젓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았다. 나중에 비밀 해변에서 라이언을 만났을 때 그 점이 더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는 내낸 둘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했다. 마고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하지만 리디는 마고가 한 짓이 아니라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렇게 아만다를 남겨두고 떠난 걸까? 라이언은 결백했던 것일까? / 367p

 

 

 



 

 

 

 

  이처럼 소설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은 20년 전에 캠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둘러싸고 저마다 비밀을 간직한 맥알리스터 가족이 개개인의 시선을 통해서 그날의 진실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심리 스릴러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각자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과 현재를 오가며 알리바이를 완성하고 그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밝혀내는 이러한 전개 방식은 독자들의 추리에 거듭 혼선을 빚게 하여 마지막까지 사건의 향방을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러는 가운데 소설 중간 중간에 사건의 당사자인 아만다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그날의 진실, 가족의 알리바이를 기록한 시간표가 소설이 진행될수록 차츰 채워질 때마다 고조되는 긴장감은 이 소설의 백미다. 특히 작가는 가장 친밀해야 하는 구성원인 ‘가족’이 서로를 믿지 못하거나 때로는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할 때 빚어지는 비극을 꽤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덕분에 서로를 경계하고, 날선 적대감을 드러내며 때로는 가장 이해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대상으로부터 위협을 당할 때 느끼게 되는 이들 인물간의 감정은 그 어떤 잔인한 장면보다 공포스럽다.

 

 

 

“아만다에게 일어난 일은 장난이 아니야.” 션이 말했다. “그 애는 아무 잘못이 없어.”

“꼭 그렇지도 않아요.” 메리가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마고와 메리의 눈이 마주쳤다. 마고는 전에도 아만다에 대해 이런 말을 들었고 그럴 때마다 화가 났다. 아만다가 몰래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아만다가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면…… 아만다가 이랬다면, 아만다가 저랬다면. “아만다에게 벌어진 일은 그 애의 잘못이 아니야.” / 103p

 

 

케이트가 고개를 돌렸다. 어쩌다 둘 사이가 이렇게 된 걸까? 마치 자신과 싸우는 것과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그녀가 아는 다른 쌍둥이 자매들은 성인이 된 지금도 똑같은 옷을 입지만 리디는 평생 동안 자신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바보 같은 일을 꾸며서 같이 하자고 꼬드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둘이 DNA를 공유하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201p

 

 

 



 

 

 

 

  소설은 말한다. 가끔 쉽게 밝혀질 거짓말이라도 거짓이 진실보다 더 수월한 경우가 있다고.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그로 인해 벌어진 상처와 비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아물어질 수 있을까.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극적 재미와 묵직한 메시지를 함께 지닌 소설로 심리 스릴러만의 특별한 묘미를 즐겨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진정한 가족과 관계 맺기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소설!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이 잃어버렸던 기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다!

 

 

  마흔을 앞두고 있는 요즘, 문득 조바심이 일기 시작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 내게 주어진 기회들도 함께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고 있는 지금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지만 나이의 제한 때문에, 시간의 제약 때문에 망설이거나 포기하게 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듯해서다. 그렇게 소거하고 소거하다보면 정작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은 아닐까 그게 더 두렵기도 하다. 덕분에 나는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잃어버리고만 ‘기회’들이 부쩍 눈에 밟힌다. 소설 『클락 댄스』도 바로 그런 기회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느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거듭 놓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그것은 세상의 많은 엄마와 여성들을 향한 아름답고도 따뜻한 헌사다.

 

 

 

새로운 희망과 자기발견을 위한 메시지

 

 

 

저 학생들은 모두 완벽하게 행복한 집에서 살고 있을까?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 감추고 있는 학생은 한 명도 없을까? 누구도 그런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 30p

 

 

 

  이따금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하곤 한다. “엄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1967년, 윌라 드레이크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지고 없는 집 안 풍경에 슬쩍 두려워진다. 사실은 늘 있는 일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엄마. 다짜고짜 혼자 집을 나가버리곤 마치 아무 일 아니었다는 듯 돌아와 천연덕스럽게 집안을 누비곤 했던 엄마. 더 슬픈 사실은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또 엄마에게 두 팔 벌리고 다가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결국 윌라를 비롯해 여동생인 일레인의 삶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훗날 윌라는 엄마처럼 되지 않기 위해, 자식들이 엄마 기분이 어떤지 몰라서 노심초사하며 아침마다 방문을 살짝 열고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했으니까. 반면 일레인은 아예 가족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그나마 윌라와 드물게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도 마치 어떤 자연재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처럼 강박적으로 어린 시절 얘기를 반복하곤 한다. 그나마 소리 한 번 지른 적 없는 자상한 아빠가 늘 곁에 있었다는 것은 두 딸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윌라가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데릭과 피터 같은 남자에게 이끌린 이유가 아빠의 우유부단한 성격에 대한 불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괴팍한 엄마 밑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제일 슬픈 게 뭔지 알아?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또 엄마에게 두 팔 벌리고 다가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거야. 정말 불쌍하지 않아?”

“일레인, 이제 그만하고 잊어버려.” 윌라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윌라는 그렇게 매몰차게 말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100p

 

 

일레인의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순간 윌라는 동생과 터놓고 소통할 수 있었지만 놓쳐버린 기회들이 떠올랐다. / 106p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의 꿈을 접고 일찍이 데릭과의 결혼을 선택한 윌라는 보복 운전을 하다가 일어난 사고로 인해 그만 남편을 잃게 된다. 뜻밖의 젊은 미망인이 된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상처처럼 끌어안고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피터라는 남자와 재혼한 그녀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쓴 것과 달리 성인이 된 두 아들과는 데면데면하게 지내다 어느 날,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아들 션의 전 여자친구였던 드니즈가 다리에 총을 맞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어린 그녀의 딸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되어 이웃이 윌라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사실 셰릴은 션의 딸이 아니었기에 윌라에겐 볼티모어까지 날아가 셰릴을 돌봐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지만 윌라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향해 기꺼이 비행기에 오른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알지 못한다. 이렇다 할 만한 일이 없어 다소 무기력해진 상태에 빠져 있던 자신의 삶에 뜻밖의 변화가 찾아올 줄은.

 

 

 

“내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는지 알려줄까?” 아빠가 물었다.

“네, 말씀해주세요.” 윌라가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난 하루를 각각의 개별적인 순간들로 쪼개기 시작했단다.” 아빠가 말했다. “앞으로 더 이상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래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내가 감사히 여길 수 있는 순간들이 존재했지.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첫 커피를 마실 때, 작업실에서 뭔가 근사한 걸 만들고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야구 경기를 볼 때처럼 말이다.” / 108p

 

 

“죽음 뒤에도 그런 일이 생겨요.” 윌라가 남자에게 말했다. “남편이 죽은 후 줄곧 저도 그랬어요. 때로는 치매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을 정도예요. 아마 이혼도 또 다른 종류의 사별이 아닐까 싶어요.”

“친구들이 제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불편해한다는 게 다르죠.” 남자가 말했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래요. 다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어려워하죠.” / 117p

 

 

 

  볼티모어라는 낯선 동네에서 셰릴과 드니즈를 돌보며 윌라는 이제껏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갖게 된다. 자신이 꽤 괜찮은 할머니이자 보호자라는 믿음을 주는 사랑스러운 셰릴, 퉁명스럽게 말하곤 하지만 솔직하고 꾸밈없는 드니즈, 수다스럽고 오지랖이 넓어 보이는 괴짜 같은 마을 사람들까지. 이들과 나누는 따뜻한 정과 연대는 이제껏 데릭과 피터가 앞만 보고 돌진하는 동안 뒤에서 그들이 벌려 놓은 걸 치우고 사과하고 설명하며 세월을 보냈던 윌라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걸 시도해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난 그렇게 어리지도 않아요. 보기보단 훨씬 어른스럽거든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겠지.” 피터가 말했다. “좀 더 커서 지금 이때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러나 윌라는 셰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윌라도 어린 시절에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 조심스럽고 주의 깊은 어른이 어린아이의 몸속에 살고 있는 느낌.

그러나 나이가 든 지금은 모순되게도 성인이 된 어른의 얼굴 뒤에 열한 살쯤 된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 187p

 

 

“왜 그냥 바라기만 해요? 왜 우유부단하게 망설이기만 하세요? 왜 모든 일에 정면으로 나서지 않고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 있는 거예요?” / 252p

 

 

 




 

 

 

 

  이처럼 『클락 댄스』는 가족과 타인을 배려하느라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던 한 여성이 새로운 삶과 기회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이 가족들에게 희생하느라 잃어버렸던 기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메시지가 참 따뜻하다. 비록 단란한 일상과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에 불과할지라도 소통의 부재, 부모의 자존감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등 진정한 가족과 관계 맺기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잔잔한 힘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따뜻한 봄날, 이 책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한 행복
김미원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쓸쓸하며, 때로는 서글퍼지는 삶의 여운이란 이렇게나 길다!

소소한 듯하지만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삶이라는 글쓰기!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당연히 주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아무리 원해도 내 것이 아닌 것은 오지 않는다든 것, 내가 누군가를 저울질할 때 나도 저울질을 당하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 삶이란 결국 그 안에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해를 거듭하면서 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다. 어쩌면 이 원숙한 작가에게도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즐거운 고통』, 『달콤한 슬픔』 그리고 『불안한 행복』에 이르기까지, 삶의 이면과 아이러니 사이를 헤매며 매순간 흔들리는 연약한 우리의 숙명을 응시하는 그 시선이 꽤나 깊다. 살아 있는 것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가까이 느끼고, 가고 있는 길보다 가지 않은 길에 더 마음이 쓰일지라도 끊임없이 인생을 관조하며 ‘쓰기’를 통해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심중이 묵직하다.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다짐한다. 살면서 부닥치는 모든 것들, 그 인생의 기미를 나 역시 놓치지 않고 살며 읽고 쓰겠다고.

 

 

 

‘자기만의 방’이 있는 삶에 대하여

 

 

 

  이따금씩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딸이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들만 둘이 있는 나에게 그렇게 말할 때 마다 나는 괜한 말을 한다며 핀잔을 준다. 딸이라고 다 살가운 것도 아니고, ‘친구 같은 딸’이란 그럴 듯한 말로 딸에게 부담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서다. 다만 엄마에게 딸이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여자이자, 친구이자 동지이고 또 다른 ‘나’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된 딸은 어머니의 눈물과 삶을 이해한다고. 그녀 역시 한 어머니의 딸이자, 이제는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된 딸을 둔 어머니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삶’이라는 것이 내내 눈에 밟히는 모양이다. 내가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며 자랐고 이제는 내가 어머니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또 어머니가 되어가는 딸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이제야 엄마라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자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까.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하지 못한 것들에 대신 미련이 남아서, 이제는 딸에게 의지하고 어깨를 기대는 순간이 많아질 것 같다던 고백이 꼭 나의 엄마가 하는 말인 것 같아서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가져다주러 갈게.”라는 말에 “그것 가져다주려고 여기까지 뭐 하러 와.” 하는 말 대신 “응. 조심히 와. 기다릴게.”라고 말해주어야지. 그리고 마주 앉아서 푸념이든 하소연이든 뭐든 들어나 주어야지, 하고.

 

 

 

때론 인생이 너무 가벼워 날아가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로 행복한 적도 있었고, 때론 인생을 힘겹게 메고 지고 올라간 적도 있었다. 내가 가벼울 땐 누군가 삶의 무거움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내가 가파른 고개를 올라갈 때는 누군가 콧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숲길을 거닐고 있었을 것이다.

평안과 평안하지 않음이 교직되어 내 인생의 옷을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행복에 취해 있지도 말 것이며, 힘들다 해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니 투정을 부리지 말아야 할 일이다. / 16p

 

 

내가 냉소적인가. 하지만 나는 늙음이란 “우리가 마음속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바깥에서는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이란 마르케스의 말에 한 표를 던진다. 이것만큼 노인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나는 알지 못한다.

몸이 늙어 노인인 것을. 아이의 욕망과 노인의 욕망이 같은 것이라 해도 아이의 욕망은 귀여워 보이고 노인의 욕망은 추해 보인다. 어찌 생각하면 노인은 이성이 배제된 탐욕과 세상 경험으로 인해 축적된 오기와 고집덩어리일 수도 있다. / 25p

 

 

이제, 아침에 검던 머리 저녁에 희어지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읊었던 이백을 떠올리고, 태아에게서 죽음을 보았던 릴케를 떠올린다. 내가 우울한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기억하면서 삶이 더 행복해졌다. 한시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연필로 진중하게 꼭꼭 눌러 쓴 일기장처럼 인생을 살 수 있다. 어느 한순간도 흘려보내지 않고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 솔직하게, 에두르지 않고. 돌아가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아름다운 것들은 넘쳐나지 않는가. / 31p

 

 

 




 

 

 

 

  남편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듬성듬성 흰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아빠의 것이 아니라 남편의 흰 머리카락을 뽑고 있으려니 세월이 참 무상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의 나는 멋도 모르고 아빠의 흰 머리카락을 뽑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 중 꽤나 의미 있는 일처럼 느껴졌는데, 아빠는 그때 자신의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지금 남편의 얼굴을 보니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부는 같은 초등학교를 나와 어린 시절부터 쭉 같은 동네에서 자랐는데, 그 세월이 켜켜이 쌓여 이제는 흰 머리카락을 뽑아주는 사이가 되었으니 신기한 일이다. ‘노가다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현실 감각과 솔직함을 그가 지녔기 때문’이라던 책 속의 글귀처럼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것도 꼭 그 이유였다.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남편은 섬세하면서도 생활력이 강하고 현실적이어서 나와는 정반대인 구석이 있지만 그래서 믿음직하고 신뢰가 갔다. 한량처럼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지지해주어서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은 바쁜 시간을 쪼개 매일 빠듯하게 움직이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버릴 만큼 갖은 스트레스를 떠안고 살고 있으니 많이 미안해진다. 그게 다 우리를 품기 위한 노력이라는 걸 알기에 더 고마워지는 요즘이다. 지금은 비록 두 아이들 돌보느라 남편보다는 아이들에게 모든 걸 맞추고 있지만,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온전히 당신을 보살피고 사랑해주겠노라 이 글을 빌려서 약속해야지.

 

 

 

젊을 때는 경험한 것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살아온 세월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어 노인의 기억은 누더기가 된다. 이렇게 보면 노인은 거짓말쟁이라는 이야기는 일견 억울할 수 있다.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정당화하고, 기억을 왜곡하고 재구성하지 않으면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이 불완전할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 50p

 

 

나이 들어가며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모든 것이 내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하여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지혜를 배운다. 두려운 것은 내가 행복하다고 충만한 감정에 빠져 있을 때 타인의 아픔을 망각하는 것이다. 행복에 도취되어 다른 중요한 것을 잃을까, 놓치는 게 있을까 경계한다. / 84p

 

 

 



 

 

 

 

  어쩌다보니 책에 대한 감상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꽤나 길어지고 말았는데, 수필이란 건 그런 것 같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가장 진솔한 이야기 중에 하나라고. 결혼, 엄마, 가족, 중년과 노년의 경계에 선 자아, 삶과 죽음, 내가 가지 못한 수많은 길에 대한 담담하고 솔직한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삶을 더듬어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나만의 죽음 방식을 생각하며 카를 힐티처럼 맑은 정신으로 경치 좋은 곳에서 책을 읽다가 동백꽃처럼 꺾어지고 싶다던 그 고백을, 더 늙기 전에 노아처럼 불가능한 것을 한번 꿈꾸고 기다려보겠노라는 바람을 나도 기억하고 몸에 새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여담이지만 여행지 속에서 예술가의 삶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성찰해낸 마지막 장은 또 다른 형식의 책으로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여기서 쓰지 못한 마지막 장에 대한 리뷰는 꼭 나중에 다른 책으로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독자가 있다는 건 작가에게 또 다른 책을 써볼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