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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진정한 가족과 관계 맺기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소설!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이 잃어버렸던 기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다!
마흔을 앞두고 있는 요즘, 문득 조바심이 일기 시작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 내게 주어진 기회들도 함께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고 있는 지금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지만 나이의 제한 때문에, 시간의 제약 때문에 망설이거나 포기하게 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듯해서다. 그렇게 소거하고 소거하다보면 정작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은 아닐까 그게 더 두렵기도 하다. 덕분에 나는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잃어버리고만 ‘기회’들이 부쩍 눈에 밟힌다. 소설 『클락 댄스』도 바로 그런 기회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느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거듭 놓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성 그리고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그것은 세상의 많은 엄마와 여성들을 향한 아름답고도 따뜻한 헌사다.
새로운 희망과 자기발견을 위한 메시지
저 학생들은 모두 완벽하게 행복한 집에서 살고 있을까?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 감추고 있는 학생은 한 명도 없을까? 누구도 그런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 30p
이따금 아이들은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하곤 한다. “엄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1967년, 윌라 드레이크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지고 없는 집 안 풍경에 슬쩍 두려워진다. 사실은 늘 있는 일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엄마. 다짜고짜 혼자 집을 나가버리곤 마치 아무 일 아니었다는 듯 돌아와 천연덕스럽게 집안을 누비곤 했던 엄마. 더 슬픈 사실은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또 엄마에게 두 팔 벌리고 다가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건 결국 윌라를 비롯해 여동생인 일레인의 삶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훗날 윌라는 엄마처럼 되지 않기 위해, 자식들이 엄마 기분이 어떤지 몰라서 노심초사하며 아침마다 방문을 살짝 열고 엄마의 기분을 살피며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했으니까. 반면 일레인은 아예 가족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그나마 윌라와 드물게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도 마치 어떤 자연재해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처럼 강박적으로 어린 시절 얘기를 반복하곤 한다. 그나마 소리 한 번 지른 적 없는 자상한 아빠가 늘 곁에 있었다는 것은 두 딸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윌라가 자기중심적인 성격의 데릭과 피터 같은 남자에게 이끌린 이유가 아빠의 우유부단한 성격에 대한 불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괴팍한 엄마 밑에서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제일 슬픈 게 뭔지 알아?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은 또 엄마에게 두 팔 벌리고 다가가 위안을 얻어야 한다는 거야. 정말 불쌍하지 않아?”
“일레인, 이제 그만하고 잊어버려.” 윌라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윌라는 그렇게 매몰차게 말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100p
일레인의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순간 윌라는 동생과 터놓고 소통할 수 있었지만 놓쳐버린 기회들이 떠올랐다. / 106p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의 꿈을 접고 일찍이 데릭과의 결혼을 선택한 윌라는 보복 운전을 하다가 일어난 사고로 인해 그만 남편을 잃게 된다. 뜻밖의 젊은 미망인이 된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상처처럼 끌어안고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피터라는 남자와 재혼한 그녀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쓴 것과 달리 성인이 된 두 아들과는 데면데면하게 지내다 어느 날,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아들 션의 전 여자친구였던 드니즈가 다리에 총을 맞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어린 그녀의 딸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되어 이웃이 윌라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사실 셰릴은 션의 딸이 아니었기에 윌라에겐 볼티모어까지 날아가 셰릴을 돌봐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었지만 윌라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향해 기꺼이 비행기에 오른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알지 못한다. 이렇다 할 만한 일이 없어 다소 무기력해진 상태에 빠져 있던 자신의 삶에 뜻밖의 변화가 찾아올 줄은.
“내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는지 알려줄까?” 아빠가 물었다.
“네, 말씀해주세요.” 윌라가 마음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난 하루를 각각의 개별적인 순간들로 쪼개기 시작했단다.” 아빠가 말했다. “앞으로 더 이상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래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내가 감사히 여길 수 있는 순간들이 존재했지.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첫 커피를 마실 때, 작업실에서 뭔가 근사한 걸 만들고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야구 경기를 볼 때처럼 말이다.” / 108p
“죽음 뒤에도 그런 일이 생겨요.” 윌라가 남자에게 말했다. “남편이 죽은 후 줄곧 저도 그랬어요. 때로는 치매에 걸린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을 정도예요. 아마 이혼도 또 다른 종류의 사별이 아닐까 싶어요.”
“친구들이 제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불편해한다는 게 다르죠.” 남자가 말했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래요. 다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어려워하죠.” / 117p
볼티모어라는 낯선 동네에서 셰릴과 드니즈를 돌보며 윌라는 이제껏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정을 갖게 된다. 자신이 꽤 괜찮은 할머니이자 보호자라는 믿음을 주는 사랑스러운 셰릴, 퉁명스럽게 말하곤 하지만 솔직하고 꾸밈없는 드니즈, 수다스럽고 오지랖이 넓어 보이는 괴짜 같은 마을 사람들까지. 이들과 나누는 따뜻한 정과 연대는 이제껏 데릭과 피터가 앞만 보고 돌진하는 동안 뒤에서 그들이 벌려 놓은 걸 치우고 사과하고 설명하며 세월을 보냈던 윌라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걸 시도해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난 그렇게 어리지도 않아요. 보기보단 훨씬 어른스럽거든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겠지.” 피터가 말했다. “좀 더 커서 지금 이때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러나 윌라는 셰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윌라도 어린 시절에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 조심스럽고 주의 깊은 어른이 어린아이의 몸속에 살고 있는 느낌.
그러나 나이가 든 지금은 모순되게도 성인이 된 어른의 얼굴 뒤에 열한 살쯤 된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 187p
“왜 그냥 바라기만 해요? 왜 우유부단하게 망설이기만 하세요? 왜 모든 일에 정면으로 나서지 않고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 있는 거예요?” / 252p



이처럼 『클락 댄스』는 가족과 타인을 배려하느라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던 한 여성이 새로운 삶과 기회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세상의 수많은 엄마들이 가족들에게 희생하느라 잃어버렸던 기회들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메시지가 참 따뜻하다. 비록 단란한 일상과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에 불과할지라도 소통의 부재, 부모의 자존감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등 진정한 가족과 관계 맺기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잔잔한 힘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따뜻한 봄날, 이 책을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