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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말하지 않을 것
캐서린 맥켄지 지음, 공민희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5월
평점 :

저마다 나누어 쥐고 있는 진실의 퍼즐을 짜 맞출 것!
거듭되는 추리의 혼선, 마지막까지 향방을 알 수 없는 반전에 반전의 연속!
“추억의 명곡을 들려 드리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라디오 DJ가 말한다. “1998년 여름으로 떠나 보시죠.” 마고는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캠프 마코의 긴 비포장 진입로를 들어서며 1998년의 여름, 그때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의미가 있었고, 차라리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바로 열일곱 살의 그때. 7월의 캠프가 한창 무르익어가던 날 밤, 친구인 아만다가 비밀해변에서 의식을 잃고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발견된 바로 그 날로부터 그녀는 한 발짝도 멀어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 때 범인이 바로 잡혔더라면 그 날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까. 이렇다 할 충분한 증거가 없어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이 때문에 자신을 포함해 캠프 마코의 소유주인 맥알리스터 가족 전체가 그날을 가슴 속에 묻은 채 살아가야 했다.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유언장을 듣기 전까지는.

절대 말하지 않아
둘 중 한 명이 죽음에 관해서 무슨 말을 했다. 시체 혹은 죽은 소녀라고 했다. 그래서 난 살아 있어, 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내 머릿속에서만 울릴 뿐 그들은 듣지 못했다. 움직여, 난 생각했다. 뭐라도 하라고. 하지만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다. 좀 움직여. 움직이라고. 난 온 힘을 다해 집중해서 손을 움직였다. 나는 미친 듯이 손을 흔드는 것 같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또렷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 122p
기차 탈선 사고로 맥알리스터 부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마고와 라이언, 메리, 케이트와 리디가 캠프장으로 모여든다. 이틀 뒤, 추도식이 열리는 날까지 아버지가 남긴 유언장에 따라 캠프장을 계속 운영할 것인가 팔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복잡한 기류가 흐른다. 라이언은 회사 자금을 위해 내심 캠프를 팔고 싶지만, 케이트는 계속 유지하기를 원한다. 마고와 리디는 아직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며 메리는 그저 캠프를 남겨 둔 채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인물,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오갈 데가 없어지자 맥알리스터로부터 도움을 받은 캠프 지기 션은 캠프가 사라지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은 어디에도 갈 곳이 없음으로.
가족 변호사인 케빈 스위프트는 그렇게 캠프 지기인 션까지 함께 동석한 가운데, 가족 모두에게 맥알리스터의 다소 충격적인 내용의 유언을 읽기 시작한다. 문제는 유언장에 캠프를 계속 운영할지 말지 결정권을 맡기겠다는 단순한 내용만 적혀 있는 게 아니었다 것. 아만다의 죽음을 둘러싼 과거의 진실이 무엇인지, 아들인 라이언이 용의자일 것이라 짐작하면서 가족 전체가 라이언이 무죄라는 만장일치의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그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만약 자매들이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라이언의 몫은 션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내용까지 덧붙여서. 자신에게 불리한 아버지의 충격적인 유언에 상처를 입고 화가 난 라이언, 졸지에 라이언 대신 상속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션, 이 모든 게 얼떨떨한 자매들. 과연 그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라이언이 진짜 아만다를 헤친 범인일까 혹은 다른 제3의 인물일까? 다만, 범인이 라이언이든 아니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만다를 헤친 사람이 가족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이미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이제는 정말 저마다 나누어 쥐고 있는 진실의 퍼즐을 짜 맞춰야 할 때가 왔다.
사실 라이언은 한편으론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님이 이해가 갔다. 그를 잘라내고자 하는 마음이 적어도 이해는 되었다. 가족 중에 여성에게 연쇄적으로 해를 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것이 최소한 부모가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그의 운명을 여동생들의 손에 맡기다니?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번거롭게 그럴 거 없이 그냥 그를 경찰서에 넘기고 신경을 꺼도 됐을텐데. 뭐가 어떻게 됐든 그는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다. / 162p
왜 그녀는 라이언이 아만다를 공격했다고 생각했을까? 사실 모든 증거가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20년 전 호수에서 리디는 카누 반대편 끝에 팔을 축 늘어뜨린 아만다와 함께 섬에서 벗어나 노를 젓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았다. 나중에 비밀 해변에서 라이언을 만났을 때 그 점이 더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는 내낸 둘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했다. 마고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하지만 리디는 마고가 한 짓이 아니라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렇게 아만다를 남겨두고 떠난 걸까? 라이언은 결백했던 것일까? / 367p


이처럼 소설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은 20년 전에 캠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둘러싸고 저마다 비밀을 간직한 맥알리스터 가족이 개개인의 시선을 통해서 그날의 진실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심리 스릴러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각자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과 현재를 오가며 알리바이를 완성하고 그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밝혀내는 이러한 전개 방식은 독자들의 추리에 거듭 혼선을 빚게 하여 마지막까지 사건의 향방을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러는 가운데 소설 중간 중간에 사건의 당사자인 아만다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그날의 진실, 가족의 알리바이를 기록한 시간표가 소설이 진행될수록 차츰 채워질 때마다 고조되는 긴장감은 이 소설의 백미다. 특히 작가는 가장 친밀해야 하는 구성원인 ‘가족’이 서로를 믿지 못하거나 때로는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할 때 빚어지는 비극을 꽤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덕분에 서로를 경계하고, 날선 적대감을 드러내며 때로는 가장 이해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대상으로부터 위협을 당할 때 느끼게 되는 이들 인물간의 감정은 그 어떤 잔인한 장면보다 공포스럽다.
“아만다에게 일어난 일은 장난이 아니야.” 션이 말했다. “그 애는 아무 잘못이 없어.”
“꼭 그렇지도 않아요.” 메리가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마고와 메리의 눈이 마주쳤다. 마고는 전에도 아만다에 대해 이런 말을 들었고 그럴 때마다 화가 났다. 아만다가 몰래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아만다가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면…… 아만다가 이랬다면, 아만다가 저랬다면. “아만다에게 벌어진 일은 그 애의 잘못이 아니야.” / 103p
케이트가 고개를 돌렸다. 어쩌다 둘 사이가 이렇게 된 걸까? 마치 자신과 싸우는 것과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그녀가 아는 다른 쌍둥이 자매들은 성인이 된 지금도 똑같은 옷을 입지만 리디는 평생 동안 자신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바보 같은 일을 꾸며서 같이 하자고 꼬드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둘이 DNA를 공유하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201p


소설은 말한다. 가끔 쉽게 밝혀질 거짓말이라도 거짓이 진실보다 더 수월한 경우가 있다고.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그로 인해 벌어진 상처와 비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아물어질 수 있을까.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극적 재미와 묵직한 메시지를 함께 지닌 소설로 심리 스릴러만의 특별한 묘미를 즐겨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