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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행복
김미원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평점 :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쓸쓸하며, 때로는 서글퍼지는 삶의 여운이란 이렇게나 길다!
소소한 듯하지만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삶이라는 글쓰기!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당연히 주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아무리 원해도 내 것이 아닌 것은 오지 않는다든 것, 내가 누군가를 저울질할 때 나도 저울질을 당하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 삶이란 결국 그 안에서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해를 거듭하면서 보다 절실히 깨닫고 있다. 어쩌면 이 원숙한 작가에게도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즐거운 고통』, 『달콤한 슬픔』 그리고 『불안한 행복』에 이르기까지, 삶의 이면과 아이러니 사이를 헤매며 매순간 흔들리는 연약한 우리의 숙명을 응시하는 그 시선이 꽤나 깊다. 살아 있는 것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가까이 느끼고, 가고 있는 길보다 가지 않은 길에 더 마음이 쓰일지라도 끊임없이 인생을 관조하며 ‘쓰기’를 통해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심중이 묵직하다.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다짐한다. 살면서 부닥치는 모든 것들, 그 인생의 기미를 나 역시 놓치지 않고 살며 읽고 쓰겠다고.
‘자기만의 방’이 있는 삶에 대하여
이따금씩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딸이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들만 둘이 있는 나에게 그렇게 말할 때 마다 나는 괜한 말을 한다며 핀잔을 준다. 딸이라고 다 살가운 것도 아니고, ‘친구 같은 딸’이란 그럴 듯한 말로 딸에게 부담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서다. 다만 엄마에게 딸이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여자이자, 친구이자 동지이고 또 다른 ‘나’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된 딸은 어머니의 눈물과 삶을 이해한다고. 그녀 역시 한 어머니의 딸이자, 이제는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된 딸을 둔 어머니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삶’이라는 것이 내내 눈에 밟히는 모양이다. 내가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며 자랐고 이제는 내가 어머니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또 어머니가 되어가는 딸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이제야 엄마라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자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니까.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엄마가 하지 못한 것들에 대신 미련이 남아서, 이제는 딸에게 의지하고 어깨를 기대는 순간이 많아질 것 같다던 고백이 꼭 나의 엄마가 하는 말인 것 같아서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가져다주러 갈게.”라는 말에 “그것 가져다주려고 여기까지 뭐 하러 와.” 하는 말 대신 “응. 조심히 와. 기다릴게.”라고 말해주어야지. 그리고 마주 앉아서 푸념이든 하소연이든 뭐든 들어나 주어야지, 하고.
때론 인생이 너무 가벼워 날아가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로 행복한 적도 있었고, 때론 인생을 힘겹게 메고 지고 올라간 적도 있었다. 내가 가벼울 땐 누군가 삶의 무거움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내가 가파른 고개를 올라갈 때는 누군가 콧노래를 부르며 아름다운 숲길을 거닐고 있었을 것이다.
평안과 평안하지 않음이 교직되어 내 인생의 옷을 만들어냈다. 그러므로 행복에 취해 있지도 말 것이며, 힘들다 해도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니 투정을 부리지 말아야 할 일이다. / 16p
내가 냉소적인가. 하지만 나는 늙음이란 “우리가 마음속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바깥에서는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이란 마르케스의 말에 한 표를 던진다. 이것만큼 노인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나는 알지 못한다.
몸이 늙어 노인인 것을. 아이의 욕망과 노인의 욕망이 같은 것이라 해도 아이의 욕망은 귀여워 보이고 노인의 욕망은 추해 보인다. 어찌 생각하면 노인은 이성이 배제된 탐욕과 세상 경험으로 인해 축적된 오기와 고집덩어리일 수도 있다. / 25p
이제, 아침에 검던 머리 저녁에 희어지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읊었던 이백을 떠올리고, 태아에게서 죽음을 보았던 릴케를 떠올린다. 내가 우울한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기억하면서 삶이 더 행복해졌다. 한시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연필로 진중하게 꼭꼭 눌러 쓴 일기장처럼 인생을 살 수 있다. 어느 한순간도 흘려보내지 않고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 솔직하게, 에두르지 않고. 돌아가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고 아름다운 것들은 넘쳐나지 않는가. / 31p



남편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듬성듬성 흰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아빠의 것이 아니라 남편의 흰 머리카락을 뽑고 있으려니 세월이 참 무상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의 나는 멋도 모르고 아빠의 흰 머리카락을 뽑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 중 꽤나 의미 있는 일처럼 느껴졌는데, 아빠는 그때 자신의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지금 남편의 얼굴을 보니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고 보면 우리 부부는 같은 초등학교를 나와 어린 시절부터 쭉 같은 동네에서 자랐는데, 그 세월이 켜켜이 쌓여 이제는 흰 머리카락을 뽑아주는 사이가 되었으니 신기한 일이다. ‘노가다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현실 감각과 솔직함을 그가 지녔기 때문’이라던 책 속의 글귀처럼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것도 꼭 그 이유였다.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남편은 섬세하면서도 생활력이 강하고 현실적이어서 나와는 정반대인 구석이 있지만 그래서 믿음직하고 신뢰가 갔다. 한량처럼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지지해주어서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은 바쁜 시간을 쪼개 매일 빠듯하게 움직이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버릴 만큼 갖은 스트레스를 떠안고 살고 있으니 많이 미안해진다. 그게 다 우리를 품기 위한 노력이라는 걸 알기에 더 고마워지는 요즘이다. 지금은 비록 두 아이들 돌보느라 남편보다는 아이들에게 모든 걸 맞추고 있지만,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온전히 당신을 보살피고 사랑해주겠노라 이 글을 빌려서 약속해야지.
젊을 때는 경험한 것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살아온 세월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어 노인의 기억은 누더기가 된다. 이렇게 보면 노인은 거짓말쟁이라는 이야기는 일견 억울할 수 있다.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정당화하고, 기억을 왜곡하고 재구성하지 않으면 우리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이 불완전할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 50p
나이 들어가며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모든 것이 내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하여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지혜를 배운다. 두려운 것은 내가 행복하다고 충만한 감정에 빠져 있을 때 타인의 아픔을 망각하는 것이다. 행복에 도취되어 다른 중요한 것을 잃을까, 놓치는 게 있을까 경계한다. / 84p


어쩌다보니 책에 대한 감상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꽤나 길어지고 말았는데, 수필이란 건 그런 것 같다.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가장 진솔한 이야기 중에 하나라고. 결혼, 엄마, 가족, 중년과 노년의 경계에 선 자아, 삶과 죽음, 내가 가지 못한 수많은 길에 대한 담담하고 솔직한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삶을 더듬어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나만의 죽음 방식을 생각하며 카를 힐티처럼 맑은 정신으로 경치 좋은 곳에서 책을 읽다가 동백꽃처럼 꺾어지고 싶다던 그 고백을, 더 늙기 전에 노아처럼 불가능한 것을 한번 꿈꾸고 기다려보겠노라는 바람을 나도 기억하고 몸에 새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여담이지만 여행지 속에서 예술가의 삶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성찰해낸 마지막 장은 또 다른 형식의 책으로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여기서 쓰지 못한 마지막 장에 대한 리뷰는 꼭 나중에 다른 책으로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독자가 있다는 건 작가에게 또 다른 책을 써볼 이유가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