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3 - 마케팅 전문가들이 주목한 라이프스타일 인사이트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김나연 외 지음 / 싱긋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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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최신 트렌드의 원인을 분석하고, 2023년에 펼쳐질 각양각색의 라이프스타일을 전망하다!

 

 

 

  트렌드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게 아니라고들 하지만 코로나19는 확실히 우리의 삶 곳곳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켰다. 2022년 9월 말드디어 사회적 거리두기 제한 조치가 해체되었고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코로나19가 가져온 삶의 변화는 보다 더 그 흐름세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을 찾는 MZ세대와 그들이 공유하는 소비 형태는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될 것이고자기 관리의 단계를 넘어 소소한 일상생활까지 관리하면서 자신만의 삶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이들은 늘어날 것이다또한 익숙해진 재택근무 환경에서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자신만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사이드 프로젝트 역시 확대될 전망이다아트테크, NFT 같은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활로를 열어가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히 이루어질 듯하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수준일 뿐급변하는 최신 트렌드와 동향을 읽고 선제적으로 대처해 새로운 방향의 마케팅을 제시해야 하는 현장에서는 보다 정확한 데이터와 소비 심리를 분석한 자료가 필수적이다그런 의미에서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3은 마케팅 현장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에게 참 반가운 책이 될 듯하다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1을 시작으로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해 사회문화적 변화의 흐름을 예측하고 소비자 인사이트를 도출하여 중장기 브랜드 방향성을 수립해왔던 이노션 인사이트그룹은 올해에도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3을 통해 현재의 주목할 만한 트렌드의 원인을 분석하고, 2023년에 펼쳐질 각양각색의 라이프스타일을 전망해놓는다예측에는 늘 정답이 없는 법이지만단순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례에 기반한 것이 아닌 빅데이터 분석을 중심으로 거시적 관점에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변화 방향을 내다보았다는 점에서 트렌드 동향의 바로미터가 되어줄 책이다아울러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에게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떠한 사회?문학적 흐름을 반영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계기이자자기계발의 방향성까지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신 라이프스타일과 미래를 전망하다

 

 

  책은 최신 트렌드를 놀이일상세상마케팅으로 크게 나누어 진단해본다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그 중 ‘MZ세대의 페르소나’ 핫플레이스에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라는 점에서 확실히 도드라진다핫플레이스에 대한 MZ세대의 열정은 신흥 상권 등장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다양한 플랫폼에서 정보를 모으고비교하고예약까지 진행하는 MZ세대는 왜 놀러갈 곳을 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걸까분명한 것은 어느 핫플레이스를 방문했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방법의 하나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어디에서 인증샷을 남기는지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책은 고급 식당 및 명품 매장에서 사진을 남겨 고급스러운 페르소나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어떤 이들은 힙한 클럽 또는 스트릿웨어 팝업스토어를 방문하여 힙한 페르소나를 형성함으로써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게 이들의 특징이라 규정한다.

 

 

 

  대표적인 예로 팝업스토어는 세일즈 프로모션 차원에서 무료로 샘플을 나눠주고 지나가는 소비자를 붙잡으며 호객행위를 하는 가판대 같은 공간이 아니라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더 재미있고 다채로운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디올 성수두껍상회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등등)으로 변화했다이제는 소비자들이 그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브랜드 경험을 위해 오픈런을 하거나 몇 시간 동안 웨이팅을 하는 새로운 핫플레이스가 되었다여기에 다양한 브랜드가 거쳐가는 플랫폼화된 팝업스토어는 더 많아질 것이며디지털 연결성이 증대된 팝업스토어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더 치열하게 핫플을 찾는 MZ세대의 요구를 반영해 데이터로 검증된 맛집 추천 지도와 내비게이션 앱을 활용한 찐핫플’ 찾기 역시 더욱 진화할 것이다새로운 장소새로운 만남이 있는 새로운 시작점에서 자신만의 방식인 컨셉을 잡고 행동하는 컨셉질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의 발전 역시 마찬가지다.

 

 

 

Z세대가 컨셉질을 통해 활약하는 이유는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나다움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세대적 특징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Z세대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현실을 비관하면서도 어려운 현실 속 작은 행복을 찾고자 색다른 경험을 시도한다또한 자신의 일상에서 루틴을 만들어 주어진 하루를 보다 주체적으로 관리하고자 한다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이기 위해 자신에게 더욱 집중하고우울하고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 작은 것에서 성취를 찾기를 원한다.

과거의 세대가 만든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탐구하기 위해 컨셉을 활용한다. / 57p

 

 

MZ세대의 술자리도 변화하고 있다사회적 거리두기로 술을 마시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양적으로 줄어들면서 MZ세대는 높은 질의 술자리를 선호하기 시작했다밀레니얼세대는 양질의 술자리를 위해 프라이빗하고 소수가 모여 즐길 수 있는 술자리에 시간과 돈을 지불하기 시작했고이는 곧 새로운 술자리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 MZ세대가 가지고 있는 성향과 인식도 이들의 주류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이들은 경험을 소비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소비 자체보다 소비의 과정을 더 중요시한다소비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들이 재미있고 값어치 있을 때 좋은 소비를 했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술자리를 위해 시간과 돈을 지불하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술자리 #술스타그램 #한잔 #안주 같은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공유하며 타인에게 과시하기도 한다. / 72p

 

 

 




 

 

 

 

  일상의 작은 노력을 응원하는 갓생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한 점도 인상적이다. ‘알람 듣자마자 일어나기’, ‘하루 5,000보 걷기’, ‘매일 좋아하는 책 다섯 페이지 읽기’ 등 SNS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기계발 영역뿐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계획에 이르기까지 하루에도 수많은 갓생일지가 올라온다. ‘거창한 목표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 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작은 목표를 세우고 계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멋진 삶이라는 의견이 주류로 떠오르게 된 이유다책에 따르면 갓생이라는 키워드는 실제 2020년 상반기부터 검색어에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이는 MZ세대가 코로나 블루의 바닷속에서 표류하지 않기 위해 택한 삶의 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갓생을 선택한 이들은 인스타그램블로그유튜브 같은 소설미디어를 통해 공유하고 루틴을 확산시킨다그렇게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의 피드백과 응원을 받으며 지속시킴으로써 타인과 대면하지 않고도 성공적인 하루로 사회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한 것이다무엇보다 갓생은 성장의 의미까지 변화시켰다타인과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려 노력하는 대신 어제보다 나은 행복한 오늘을 사는 것을 성장이라고 느끼며 삶을 대하는 태도에 집중하기다시 말해 절대적인 지향점을 찾기보다 순간의 행복과 작은 성취감을 쌓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갓생러들이런 갓생들러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관심을 유도하는 콘텐츠와 플랫폼의 개발이 필수가 된 시대에서갓생러 중에 한 명인 나로서도 앞으로 어떤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게 될지 무척 기대가 된다.

 

 

 

최근 전문가들은 NFT 아트에 대한 투자 열기를 과거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불었던 튤립 파동과 비교하기도 한다튤립 파동은 최초의 투기로 인한 거품 경제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1630년대 튀르키예(터키)에서 네덜란드로 새롭게 수입된 튤립은 큰 인기를 끌었고 서민부자 할 것 없이 모두 튤립을 구매해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아졌다또한 튤립 가격을 먼저 계산한 후 나중에 실물을 받는 세계 최초의 선물 거래도 나타났다하지만 이후 튤립의 가치 실용성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자수요가 줄어들어 시세가 폭락하면서 많은 네덜란드 사람이 재산상의 손해를 보게 되었다즉 전문가들은 NFT 아트에 대한 투자는 가치가 아니라 일시적인 가격 상승으로 인기를 끄는 것이므로 관심이 줄어들면 가격이 폭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 228p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은 패션이 단순히 옷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접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명품 브랜드들이 제안하는 패션의 범위가 의상액세서리향수가구소품 등에서 이제는 미식의 범주까지 이르렀다이와 더불어 그들의 정체성이 담긴 공간을 만들고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 전달에 집중하여 당장의 매출 자체보다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명품 브랜드들의 F&B 비즈니스 진출은 점차 활발해지고 있으며그들이 제공하는 프리미엄 미식 경험의 주제와 카테고리 역시 더욱 확장될 것으로 예측된다소비자들의 시간을 사로잡기 쉽지 않은 시대에 명품 브랜드가 미식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통해 MZ세대의 관심과 체류 시간을 확보했다면향후 어떤 취향을 겨냥하여 어떤 새로운 모습과 콘텐츠를 통해 다가갈지 기대된다. / 250p

 

 

최근 들어 에코그래머블(Eco-grammable)’이라는 마케팅 키워드가 주목받고 있다에코그래머블은 환경을 의미하는 에코(Eco)’와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을 합친 신조어다기업들이 친환경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예쁜 굿즈나 새로운 서비스 등을 만들거나 자발적인 공유와 확산을 유도하는 이벤트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이러한 마케팅 방법을 에코그래머블 마케팅이라고 한다에코그래머블은 2022년에 처음 등장한 키워드이다네이버 데이터랩을 통해 검색량을 분석해보면 7월에 등장한 것으로 나타나며향후 친환경 마케팅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사용될 키워드로 예상된다. / 288p

 

 

 





 

 

 

 

  이 외에도 워라밸의 회색지대라 할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 대세가 된 짠테크’, 가상 세계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기 시작한 MZ세대를 위한 버튜버 비즈니스’, X세대만의 힙한 취향을 고려한 플랫폼의 진화명품 브랜드의 F&B 비즈니스로의 확장퍼포먼스 마케팅과 친환경 마케팅의 전망에 이르기까지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3은 명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트렌드에 관한 다양한 인사이트를 제시한다표와 그래프 및 다양한 사진 자료를 활용하여 가독성도 높으니 마케터가 아닌 일반인들까지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특히 최신 라이프스타일과 마케팅 이슈에 관한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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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서의 이별 -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
양수진 지음 / 싱긋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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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과 고인을 둘러싼 삶을 애도하는 일 그것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는 그녀의 글은 그래서 참 귀하다!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에는 심시선 여사의 사망 10주기를 맞아가족들이 심시선 여사가 살았던 하와이를 여행하며 각자에게 기뻤던 순간이나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제사상에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살아생전에 제사는 사라져야 할 관습이라고 강경 발언을 했던 심시선의 뜻에 맞게 이들은 하와이를 상징하는 물건을 찾거나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경험들을 공유하며 저마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미션에 몰두한다그러는 동안에 이들은 가깝지만 먼 듯했던 서로의 관계를 돌아보고존재 자체만으로도 서로가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으며 각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이렇듯 소설은 제사의 의미를 형식적인 것에서 찾는 게 아니라 당신을 어떻게 추억하고 나의 삶에 투영하고 있는지 깨닫는 데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할머니의 임종 앞에서 마냥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고모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형제들 이렇게 다 모일 수 있게 네 할머니가 귀한 시간 주셨데이.” 죽음이 더 이상 우울한 제식이 아닐 수도 있음을당신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만나 다시 한 번 더 껴안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음을나는 할머니와 이별하는 자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배웅인 줄 알았지만 실은 만남이었다.’ 이 별에서의 이별』 속의 이 글귀가 내 마음을 울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죽음 이후 3일 간의 예식을 곁에서 돕는 사람이다.’ / 7p

 

 

 

  죽음이라는 절절한 사연이 모여드는 곳장례식장에서 장례지도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는 오늘도 죽음에서 삶을 배우고 삶에서 죽음을 배운다그녀는 지위의 높고 낮음재산의 규모와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 매번 살다 사라져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본다그렇게 죽음 이후의 순간들을 계속 마주하면서죽음이란 결코 삶에 대한 회의나 완전한 단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현재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체득한다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일이 그저 되풀이할 수 없는 누군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순간을 그저 안녕히 보내드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수많은 임종과 사별그 안에 얽힌 삶의 조각들에 귀를 기울이고 보듬는 것 또한 자신의 몫임을 안다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누군가의 삶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그래서 따스하다.

 

 

 

입관이란 고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육신을 내보이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게 되는 귀한 예식이다그렇기에 입관을 하는 사람은 설령 경험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절대 실수를 하거나 소홀히해서는 안 된다선배들은 농담 삼아 결혼은 두 번 할 수 있어도 장례는 두 번 할 수 없다고 했다되풀이할 수 없는 누군가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을 망쳐서는 안 되는 일이다. / 151p

 

 

 



 

 

 

 

  책 속에는 장례지도사로서 여러 감정으로 마주하게 되는 삶의 마지막 사연들이 담겨 있다설레는 마음으로 새 집에 둥지를 튼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가족에게 닥친 화마일주일 만에 발견된 50대 남성의 고독사세월호 참사 합동 분향소의 먹먹한 풍경 등 죽음 앞에서야 뒤늦게 매만져지는 서글픈 현실이 우리의 눈시울을 적신다때로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같은 것눈을 감지 못한 고인의 눈을 아무리 감아드리려 해도 감기지 않더니 입관 전에야 해외 출장 간 막내아들이 도착하자 그제야 고인의 눈이 감긴 사연 같은 건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부모의 사랑을 어루만지게 한다간혹 자신의 장례 비용을 먼저 물어오는 전화 앞에서는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죽음을 앞두고서까지 주머니 사정과 저울질해야만 하는 고단한 삶에 나라고 예외는 없을 테니까.

 

 

 

  그런 가운데서도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여성이 자신의 장례를 의뢰해온 사연은 잔잔한 울림을 준다그녀는 혼자 살고 있고 부모님 외에 다른 가족이 없어서 일반적인 장례가 아닌자신만의 장례를 원했다첫째는 자신의 이른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둘째는 흔한 수의가 아닌 핑크색 실크로 된 드레스를 입고 싶다는 것셋째는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영상을 틀어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가족이나 찾아오는 지인이 아닌죽음을 마주한 고인 스스로가 주체가 된 예식이라니흔치 않은 일이지만 이 날 장례식만큼은 이제껏 본 여느 풍경과는 달랐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러분들의 사랑 덕분에 저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티 없이 맑은 음성과 환한 고인의 웃음에 장례식장을 찾은 이들은 슬픈 곡이 아니라 미소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가슴을 쥐어뜯으며 비통해하기보다 훗날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이 이별 앞에서 죽음이 한 가지 색채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안치실에 들어가 그녀와 마주했다많이 야위고 수척했지만 희고 고운 피부를 지닌 무척 아름다운 아가씨였다매일 노인분들만 뵙다가 주름살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 위에 화장을 하려니 손의 촉감이 굉장히 낯설다사진 속 발그레한 볼은 온데간데없고 내 앞의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이 야속하기만 하다목을 파고든 짙푸른 멍자국이 유독 창백한 얼굴과 대비된다이 한 줄이 그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인 셈일까그녀가 쓴 삶의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그 멍을 지워나간다. / 17p

 

 

나는 그 마을에서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더욱 행복해진 노인들을 보았다죽음 사이에 일상이 끼어드는 게 아니라일상 속에 죽음이 당연한 듯 머무는 삶친구의 장례식이 열리면 모두 함께 추모하고한낮에 산책을 하며 봉안당을 한번 둘러보는 삶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삶과 죽음을 구분 짓지 않고 하나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그들의 맑은 미소의 원천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죽음을 진정 애도함과 동시에 그것을 수용하고 상실과 변화를 이해할 때 비로소 행복한 삶과 행복한 죽음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 231p

 

 

 



 

 

 

 

  지금이야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편이지만 여성특히나 스물다섯 살의 사회초년생에겐 매사 편견과의 싸움으로 이어졌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내가 장례지도사로서 성숙해지는 과정은 무언가를 얻어 채워가는 더하기가 아니라자존심과 거만함을 버리는 빼기였다고 말한다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먼저 내밀어야하는 손길에 마음을 쓴다고인과 고인을 둘러싼 삶을 애도하는 일 그것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는 그녀의 글은 그래서 참 귀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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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스토리 - 박혜진 비평집
박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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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예민한 촉수로 문학의 가장자리까지 보듬어가며 있는 힘껏 끌어안는 존재!

언더스토리에서 페가수스의 별자리까지덕분에 문학의 드넓은 지대를 사유하는 일은 참 즐겁다!

 

 

 

  비평가란 가장 예민한 촉수로 문학의 가장자리까지 보듬어가며 있는 힘껏 끌어안는 존재가 아닐까문장의 숨결 하나하나시공간을 유영하는 서사 하나하나까지 더듬어 만지며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고 영원성을 부여하는 문학의 자리 곳곳에 이들이 있다박혜진 비평가는 적은 빛으로도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즉 그늘에서 견뎌내야만 하는 하층식물(언더스토리)에게서 가장 문학적인 것을 발견한다그늘을 견디기 위해 곰팡이를 매개로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이들처럼절실하고 애틋한 심층의 연결에서 이야기가 탄생하고 이야기는 우리에게 영향과 영양을 준다고 말하는 그녀의 시선은 그래서 따듯하다.

 

 

 

공생 관계로 살아가는 이 땅의 홀로바이온트들을 위하여

 

 

  급진적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독립적인 개체가 아닌 홀로바이온트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복합적인 유기체로서 문학은 공생 관계로 살아가는 생명체의 존재를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홀로바이온트라는 개념에서 들여다보자면 한강이 그려내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이미 그렇게 존재했다박혜진 비평가는 식물과 식물을 연결해 주는 균사 네트워크가 있는 것처럼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걸 한강의 소설은 믿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작별하지 않는다』 속에서 그려진 제주 4.3 항쟁이라는 거대한 역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고통일 뿐이지만그 이름 없는 고통들을 내 쪽으로 바짝 옮겨 와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넘치는 고통을 내 쪽으로 받아 삼키는 결합이며 싸워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가짐으로써 없애는 극복이다그런 의미에서 보면 공생 관계로 살아가는 이 땅의 홀로바이온트들을 위한연결자로서의 문학에게 우리는 참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은 실패의 언어다그리고 실패의 언어로 문학은 쓴다이때 문학의 무의식은 개인의 무의식이 아니다계급적?사회적?문화적이른바 공동체의 무의식이다문학을 통해 우리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미지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숨겨진 것찾아야 하는 것이 개인의 그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문학에 있어 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사회적젠더적문화적 주체로서의 인 것이다그에 기반한 공동체의 무의식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과거를 재발견하게 한다모든 문학의 형식과 내용은 정치적 무의식이라 불리는 것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으며 모든 문학은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성찰로 읽혀야 한다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결론이 내게는 문학과 문학을 발견하는 비평의 출발인 셈이다문학사는 무의식의 역사다. / 12p

 

 

언더스토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시작과 끝은 탄생과 죽음으로 설명될 수 없다끔찍한 학살로 비참하게 죽었거나 실종되어 죽음조차 완료되지 않은 사람들그들은 더 이상 인간 아닌” 존재이지만 아직 인간인” 존재이기도 하다그들의 인간이거나 인간이지 않은 존재는 이후를 살아가고 있는 인선과 경하에게 연결되어 두 사람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채 서로 연결되는 존재인 나무를 심는 행위는 묘지처럼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는 행위이기만 한 건 아니다오히려 그들의 죽음과 살아 있는 이들의 목숨을 연결시킴으로써 계속되고 있는 시간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한다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이들과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역사적 인간이고 역사 속 인간이다. / 한강작별하지 않는다』 비평 중에서 35p

 

 

 



 

 

 

 

  박혜진 비평가는 올가 토카르추크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속의 두셰이코라는 인물에게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신념임을 자각한다알아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행동하는 사람우리 시대는 지식이 아니라 감정이 더 필요한 시대임을 가까이 느낀다또한 자기 욕망의 화자가 됨으로써 극도로 황폐한 상태에 도달한 허연의 시를 들여다보며 그럼에도 이 잔인한 형벌이야말로 인간을 다른 종류의 생명체와 구분되는 존재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깨닫는다한편이한열 열사의 운동화가 복원되는 과정을 그린 김숨의 L의 운동화에서는 복원가로서의 예술다시 말해 무수하게 사라진 것들을 가까이 불러 모으는 문학에게서 사라짐이란 잃어버림의 동의어가 아님을 헤아려본다.

 

 

 

세계의 부조리함에 대한 간파는 모든 현대소설의 출발점이거나 종착점이다. / 이장욱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비평 중에서 48p

 

 

현대라는 이름의 종교가 있다면 말씀’ 첫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자아를 구분하라. ‘분열의 관리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이 시대의 율법이다자아의 분열은 현대인의 병증을 거쳐 이제는 현대인을 정의하는 본질이 된 것만 같다분열은 현대의 난제이며그런 점에서 현대문학의 역사는 자아분열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 허연론 비평 중에서 61p

 

 

생의 모든 도면은 기억이라는 언어로 쓰인다기억을 뒤적이기 위해 우리는 대화에 나선다기억을 끌어내는 대화란 때로는 삼월의 눈처럼 조용히 내리지만 때로는 위험물을 감추고 있는 지뢰처럼 무섭게 폭발한다시간을 가로지르며 예측할 수 없게 오가는 그들의 대화가 그것을 증명한다일상적이고 이상적인 대화를 통해 소실되었던 과거가 복원되고 빛바래 멈춰 버린 추억이 재생된다여기 실린 다섯 편의 희곡은 개인에 있어또 역사에 있어잘려 나간 시간의 틈새를 메우는 한끗의 숨이다이 숨으로 인해 비어 있던 공간에 이야기가 시작된다접혀 있던 시간이 펴지고 잘려 나간 이야기가 돌아온다없는 줄 알았던 존재들을 환대하는 소박한 목소리의 세계본디 이것은 위대한 대화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배삼식이라는 위대한 문학의 본질이기도 할 것이다. / 배삼식론 중에서 118p

 

 

 

  개인적으로 박혜진 비평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강혜빈의 소설 밤의 팔레트와 김금희의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를 감각하는 지점이다그녀는 밤의 팔레트에서 섞임의 상태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한다꿰매는 것과 섞는 것이다주목할 점은 꿰매는 것은 외부 요소에 의해 일시적으로 고정되는 상태에 지나지 않고 실밥을 풀면 고정된 상태는 금방 해체되고 말지만뒤섞인 물방울은 한번 결합하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섞임은 곧 새로운 상태의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는 사랑은 두 사람이 한 개의 원을 채우는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박혜진 비평가는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의 도식에 따라 사랑의 총량의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사랑은 오히려 한 개의 원이 또 다른 원을 만들어 내는 증식의 연산임을 감각한다한 사람이 더 많이 채우면 다른 한 사람은 적게 채우는 식이 아니라 어떤 마음은 다른 마음과 붙어서 더 커지고 어떤 마음은 조그맣게 사라지는 것즉 수십 수백 개의 원을 만드는 사랑은 차라리 비눗방울을 만드는 행위와 같다고 말한다그렇게 사랑은 계속 비눗방울을 부는 것일시적인 꿰맴이 아니라 섞음으로써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일임을 생각한다면 나는 사랑의 자리에 문학을 끼워 넣어도 무방할 것 같다.

 

 

 

훔쳐보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는 시아무것도 훔쳐보고 싶지 않은 사람”. 이 글의 도입부에 배치한 유계영의 」 일부를 불러 본다아직 서른네 살밖에 안 먹은 화자가 다 죽은 사람처럼 미소를 잃고 아무것도 훔쳐보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할 때 그것은 세상이 지루해서만은 아닐 것이다차라리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있어서 남몰래 보고 싶은 게 없어진 세상을 향한 목소리가 아닐까가장 훔쳐보고 싶은 것은 이고 아직 다 보지 못한 것도 이다내가 쪼개지면서 다른 나와 만나는 것은 인간의 가장자리를 증식하는 일이다가장자리가 많아질 때 세계와의 접점도 많아진다. / 유계영론 중에서 164p

 

 

완전한 끝은 탄생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끝과 끝이 만나 사라지는 소실점은 너머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새롭게 시작되는 점이다이편에서는 사라지는 소실점이지만 저편에서는 생겨나는 출발점이다인간 존재 자체에는 목적이 없다하지만 그러한 무목적성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 무관하게 가치를 지닐 수 있다목적이 없기 때문에 목적과 무관하게 살아갈 수 있고 목적과 무관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이유 없음은 허무가 아니라 자유의 근거다이것은 니체가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에서 했던 말이다. / 양안다론 중에서 335p

 

 

현대의 폭력은 죽이지 않고 죽게 만든다. / 구병모네 이웃의 식탁』 박민정미스 플라이트』 비평 중에서 370p

 

 

 




 

 

  페가수스에 대해 박혜진 비평가는 메두사의 죽음에서 태어났고 번개라는 불길한 예언의 메신저로 일했으며 대체로 난폭하지만 때로는 길들여지기도 하는 존재언제나 누군가에게 속하지만 누구에게도 완전히 속하지는 않는 존재독립적으로 보이지만 고립되어 있고 유연함 이면에 불안정을 숨기고 있는 하얀색의 우울우울의 전령이라 정의한다나는 어쩌면 이 땅의 모든 문학가들이 그런 페가수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번개는 옮겨지고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며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은 우리 정신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겠지만 그들의 계속되는 날갯짓 덕분에 우리는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안내된다다만 나는 그들의 고단한 날갯짓을 다 헤아릴 길이 없어서 비평가들의 언어를 빌려본다저 하늘의 별자리가 페가수스임을 명명해주는 그들이 있어 나는 좀 더 반짝이는 밤하늘을 들여다보게 된다그렇게 언더스토리에서 페가수스의 별자리까지박혜진 비평가가 열어 보여준 문학 세계 덕분에 보다 넓은 지대를 확보하는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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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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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배제’, ‘공동체와 개인의 문제가 빚어내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일면을 객관적이고 냉담한 시선으로 투사하는 김혜진 작가는 이렇게 또 한번 빛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더없이 외로워진 현대인들에게 경청의 시간을 넌지시 제안하는 소설!

 

 

 

 

  지난달 29일 밤이태원의 한 골목에서 156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졌다사망자 대부분은 10대에서부터 30대에 이르는 젊은이들이었다사고 발생 이후 각종 언론에서는 토끼 머리띠를 쓴 남성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참사 당시 밀어!”라고 외쳐 압사 사고의 발단이 된 인물로 의심 받았던 남성이 토끼 머리띠를 썼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이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그로 의심 되는 남성과 인터뷰를 시도했고그는 방송을 통해 여전히 악의적인 메시지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압사 사고 발생 시간 보다 일찍 이태원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있었고방송을 통해 교통카드 결제 내역과 경찰과 CCTV 확인까지 거친 상태였다하지만 모자이크를 하지 않은 영상이 공개되면서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고 모욕적인 욕설을 일삼는 사람들의 거침없는 마녀사냥은 도를 넘어 위협적인 수준으로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특정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을 비유적으로 마녀사냥이라 지칭해왔다. 14세기에서 17세기 기독교를 절대화하여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어났던 이 잔인한 군중심리가 오늘날 인터넷과 매스컴익명성이라는 특성을 등에 업고 더욱 손쉽게 자행되고 있다. “누가 ~했다더라에서부터 시작된 수군거림이 각종 루머와 악의적인 보도들로 이어지면서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집단 히스테리로 양산되고 마는 이 일련의 과정에 브레이크란 없다강경 대응고소 같은 완곡한 언어로 대응하거나 때로는 한 사람의 삶을 마감시키는 참극이 벌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누적된 피로감만 확인할 뿐이다소설 경청이 보여주는 현실 역시 그러하다. ‘세계의 부조리함에 대한 간파는 모든 현대소설의 출발점이거나 종착점(언더스토리박혜진)’이라는 설명을 굳이 곁들이지 않더라도전작 딸에 대하여불과 나의 자서전과 더불어 혐오와 배제’, ‘공동체와 개인의 문제가 빚어내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일면을 객관적이고 냉담한 시선으로 투사하는 김혜진 작가 특유의 의식이 이 작품에서도 도드라진다말 한마디에서 출발한 비극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당한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침묵이 결여된 현대인들의 외로운 소통을 담아낸 우울한 초상이다.

 

 

 

침묵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상담사의 발언이대로 문제 없나.’

  15년 차 심리상담사 임해수는 자신의 삶에서 기대한 수많은 것들꿈꿀 수 있었던 무수한 것들이 이런 식으로 전락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삶이 신중하게 블록을 쌓아 올리는 것과 같다면 단 하나의 블록을 빼는 것만으로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처절하게 실감하고 있을 뿐이다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그 어떤 감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아니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까지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때문에 그들에게 자신감 넘치는 조언까지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하지만 모든 것이 불가능해진 오늘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이전의 삶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 없이마치 다 아는 사람처럼대본에 적힌 대로 다른 패널들과 함께 한 배우의 잘못을 방송에서 논한 것이 그의 자살을 초래한 게 맞는 걸까. “혹시 임해수 박사님 아니에요맞죠?” 무시로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들신경 쓰지 마라고 위로하면서 당시의 일을 번번이 입에 올리는 이들사과를 했어야 한다는 은근한 비난이 섞인 시선들누군가를 만나는 일이란 곧 고통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일이었기에 이제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다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악인인지용서받지 못한 가해자인지아니면 가혹한 누명을 뒤집어쓴 피해자인지 혹은 역경에 굴복한 패배자인지어쩌면 시련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린 얼간이일지도.

 

 

 

전 그런 사람들이 아니에요전 그럼 사람들과 달라요.

남들과 선을 긋는 말들다른 사람들을 멀리 내모는 말들결국 자신의 올바름과 정의로움을 도드라지게 하는 말들그러나 그녀에게 그 모든 말들은 차이가 없다사람들의 말은 그녀가 지나온 시간들을 상기시키니까여전히 모든 게 조금도 잊혀지지 않았다는 증거니까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자신의 이름이 회자될 거라는 경고니까. / 15p

 

 

도대체 누가 이런 걸 만드는 걸까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으면서 이렇게 날 조롱하는 데 혈안이 된 이유가 뭘까태도의 문제말투의 문제예의의 문제인격의 문제신뢰의 문제직업윤리의 문제나에게서 수많은 문제들을 예리하게 찾아낸 사람들이 보여 주는 게 고작 이런 거라니.

(사과니 사죄니 하는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내가 응해야 했다고 생각해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고그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바라는 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 62p

 

 

 



 

 

 

 

  해수는 오늘도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기자에게변호사에게친구에게헤어진 남편에게상담 센터 대표에게상담 센터의 상담자에게안부인지사과인지해명인지 모를 것들을 쓰고 찢어버리기를 반복한다언제나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열기엔 턱없이 부족한 글이고가만히 들여다보면 실은 그럴 마음도 별로 없는 글이고그러므로 폐기되어 마땅한 글이라고 자각하면서도 이따금 마음속 깊이 가라앉은 말들을 꺼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보류하기로 한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일 수 있다면 지금은 뭔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기를 택하기로 한다그렇게 피해자와 유가족진실과 억측호소와 반박 같은 깨진 유리 조각 같은 단어들 너머로 숨 쉬고걷고말하고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이들은 아니살아내야만 하는 이들은 대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이전에는 상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더듬거려본다.

 

 

 

그러나 더 두려운 말은 따로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이 아니라 그녀가 기꺼이 삶을 공유한 이들이 간직한 말들그녀가 표정과 눈빛을 단번에 읽어 낼 수 있는 가까운 사람들조심스러운 표정 뒤에 그들이 감추고 있는 의구심과 안타까움 같은 것들이 그녀를 괴롭힌다. / 67p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완벽하게 구분한다고 믿었을 것이다자신이 집중해야 하는 일과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을 명확하게 구별한다고 여겼을 것이다이제 그녀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어떤 면에서 삶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 106p

 

 

 

  하지만 급진적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의 말처럼 인간은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복합적인 유기체로서 삶의 과제를 함께 조정하고 공동의 삶을 공유하기 마련인가 보다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차단당한 듯했던 해수의 소외된 일상에 상처 입은 고양이 순무와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세이가 눈에 들어온다동정연민연약하고 가여운 동물에게 느끼는 흔한 감정 속에서 자기 연민을 엿보며 자신이 안타까워하는 것이 순무를 사로잡은 고통인지그런 고통에 노출된 삶인지고통을 견뎌 온 지금까지의 시간인지얼마가 될지 모르는 앞으로의 시간인지 알 수 없어진다대체 왜 자신이 이 고양이에게 마음이 쓰이는지구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인지세이의 고통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함으로써 계속 우정을 나누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지난날의 허상을 좇는 것과 다름없는 의미 찾기 놀이는 이제 그만두고 세이와 함께 순무를 구조하는 데 몰두한다.

 

 

 

그녀는 알고 싶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맘이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나아지지도 않고달라지지도 않는 길고양이의 비통한 삶을 매일 마주하는 이유를그 안에서 마루맘이 발견하고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를.

이유 같은 건 없어요이유가 뭐가 있겠어요고양이들도 뭐 이유가 있어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저도 그래요.

마루맘은 끝없이 의미를 쫓아다니는 그녀를 꾸짖듯 그런 대답을 하고는 돌아선다. / 111p

 

 

누가 봐도 이건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이건 명백히 스포츠 정신에 위배된다그러니까 이건 뉴스나 기사에서 보던 괴롭힘과 따돌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녀는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는다그녀는 엄한 어른의 얼굴을 하고곧장 아이들의 세계로 쳐들어가서옳고 그름을 운운하며 사이좋게 지내라는 하나 마나 한 충고를 게 좋은 해결책이 아님을 잘 안다그건 문제를 더 심화시킬 뿐이다그런 외부자의 피상적인 목소리로는 저 아이들의 세계에 균열을 낼 수 없다. / 122p

 

 

어색한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의 발걸음이 교문을 향한다교문 앞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말로언어로아이를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다상담사로서 자신이 가졌던 굳건한 믿음의 실체가 이처럼 허약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그녀는 어떤 말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자신이 한 말이 어떤 식으로 변형되고 왜곡되는지 짐작할 수 없다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진작 깨달아야 했을 말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 123p

 

 

 




 

 

 

 

  언어가 생략된 순무와 교감을 하면서 해수는 수없이 많은 말들로 소란스럽던 세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헤아림과 공감위로와 포용그러한 감정들은 어쩌면 완전한 침묵 안에서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그녀는 이제껏 말에 관해서라면 두려움을 느껴 본 적이 없었고말로써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의심해보지 않았다그런 식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해수는 순무와 세이죽은 배우의 아내를 만남으로써 깨닫는다자신은 그저 넘쳐 나는 말들에 둘러싸여불필요한 말들을 함부로 낭비하는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자신이 한 말이 언제 탄생하고 어떻게 살다가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하는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덕분에 나 역시 깨닫는다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너를 이해해라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얼버무려왔던 왔는지를함부로 선의와 악의를 재단하며 경계를 세워왔는지를아울러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침묵할 줄 아는 것세상을 판단하는 속도를 늦추고 대신 귀를 기울이는 데서 진짜 소통이 시작되는 게 아닌지 헤아려본다이것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더없이 외로워진 현대인들에게 경청의 시간을 넌지시 제안하는 이 소설이 아름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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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과 나의 사막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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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을 잃은 땅에서도 기어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인간이 망친 세상에서 살면서 여전히 인간적인 것들을 그리워하는 존재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부여하는 천선란 식 은유는 이토록 다정하다!

 

 

 

 

  때는 49세기인간은 끊임없이 지구 생태를 위기에 빠뜨렸고 전쟁으로 모든 것을 소실했다여기에 지구 절반을 덮친 대홍수로 이제 바다와 사막만이 인류 환경의 대척점에 위치해 있을 뿐이다랑은 조와 함께 사막 한가운데서 살아가던 아이였다사막은 그저 허허벌판인일직선으로 나아가다 눈 깜빡임으로도 한순간에 길을 잃을 수 있는 곳이었다자신도타인도 믿을 수 없는나의 모든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하는 바로 그런 곳그러던 어느 날랑은 전쟁이 한창 벌어졌던 2844년대에 만들어진 로봇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에게 고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랑은 나를 지나치지 못했다랑의 그 어떤 오지랖.

내 앞에 멈추거나 지나치는 그 한 걸음의 차이로 나는 다시 켜졌다. / 83p

 

 

 

  하지만 이제 이 땅 위에서는 어디서도 랑을 볼 수 없다랑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상실한 고고는랑이 고고에게 다음 목적을 만들어주지 않고 죽은 탓에 덩그러니 놓이고 만다랑의 친구인 지카는 고고와 랑을 땅에 묻고 난 뒤이곳에서 동쪽으로 대략 600킬로미터를 가면 있다던 바다로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묻는다막이 내리는 이 시대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들이 똘똘 뭉쳐 있다는 바로 그곳으로하지만 지카의 제안을 거절하며 고고는 드카르가의 검은 벽을 향해 가기로 결정한다인간의 헛된 희망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를과거로 가는 땅을 향해언젠가 랑도 그곳에 가보고 싶어했지만 조를 두고 갈 수 없었고조 다음에는 고고를 두고 갈 수 없었다던 지카의 말이 고고를 그곳으로 움직이게 한 것이다고고에게 남은 삶의 선택지란 역시 랑이 유일했기에아니어쩌면 고고는 자신이 헤아릴 수 없는 희망이라는 영역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어떤 것이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인지마찬가지로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인간이 품는 희망이란 것 안에서 찾아보기로 한 걸지도.

 

 

 

태어나는 것과 만들어지는 건 그렇게 다르다태어난다는 건 목적 없이 세상으로 배출되어 왜 태어났는지를 계속 찾아야 하는 것이기에오로지 그것뿐이기에 그 해답을 찾는 시간만큼 심장의 시계태엽은 딱 한 번 감겼지만 만들어진다는 건 분명한 목적으로 세상에 존재한다이유를 찾아야 할 필요도 없이 존재하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것그렇기에 목적을 다할 때까지 망가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은 계속 엔진을 교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랑이 말했다그 말은 목적을 다하면 꺼버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 10p

 

 

인간은 헛된 희망을 품는군.”

완벽한 희망을 품어야 하나?”

…….”

그게 말이 되는 문장이기는 하고?”

순간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내가 답할 수 있는 영역의 물음이 아니다나는 희망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어떤 것이 더 인간을 살게 하는지 알 수 없다. / 38p

 

 

 



 

 

 

 

  드카르가의 검은 벽으로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고고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 버진을알아이아이라 불리는 팔이 없는 로봇을마차부자리에서 온 외계인 살리를 만난다이들과의 만남 속에서 고고는 이 사막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건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신호 혹은 나를 부르는 목소리 같은 것임을트랙터로 사막에 길을 내는 것이 아무리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행위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간절함이 나를 그곳으로 인도해주리라는 믿음의 소중함을 어렴풋이 매만지게 된다덕분에 이따금 오류처럼 기억장치가 제멋대로 랑과의 추억을 재생시킬 때면그것이 마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와 인간을 마비시키는 그리움이란 감정임을 감각하게 된다. “내가 만난 인간 중에서 가장 오지랖이 넓은 인간인 랑과의 기억 덕분에 팔이 없는 알아이아이에게 자신의 한쪽 팔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을 얻고생명이 살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 물을 주는 마음 같은 것이 사랑임을 체득한다.

 

 

 

선인장 신이 고고가 마음에 들었나봐소원 들어줬잖아.’

선인장 신?’

우리가 아까 기도했던 신.’

……내가 기도했던 대상이 선인장이라니몰랐는걸.’

() ‘선인장은 사막에서 살아남았잖아그러니까 사막이랑 친한 거지선인장이 말하면 사막은 들어줄 수밖에 없어사막이 선인장을 아낀다는 거니까.’

(사막이 선인장을 아낄 수 있느냐고단지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막이 선인장을 사랑하는 거라면 마찬가지로 억척스럽게 살아남은 인간도 사랑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생각을 음성으로 옮기진 않았다랑의 마지막 말을 깨고 싶지 않았다. / 79p

 

 

속에 주먹만 한 알갱이가 있어.’

조가 죽고야외 의자에 두 다리를 끌어안은 자세로 앉아 있던 랑이 말했다반나절 만에 처음 꺼낸 말이었다.

그 알갱이가 내 속을 막 두드리면서 돌아다녀나는 그게 무척 거슬려고고이게 뭔지 알아이게 울음덩어리야나오고 싶어서 난리가 났지근데 버틸 거야울지 않을 거야나는.’

나는 얼마 걷지 못하고 무릎을 굽혀 앉는다웅크린 자세로 앉아 내 안을 떠도는 응어리를 판단의 오류라 여기며어쩌면 정말 벌레가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고고나중에 주먹이 배를 두드리는 느낌이 나면 나한테 꼭 알려줘그때 같이 있어줄게.’ / 112p

 

 

 

  언젠가 랑은 고고에게 바람이 불지 않으면 사막은 그림이 된다고 말한 적 있다세상을 사진처럼 인식하는 고고에게 랑은 그림에는 감정이 들어가게 하고감정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며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변화하는 것이고변화하는 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고 말한다사진은 현상의 전후를 추측하게 하지만 그림은 그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게 한다고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고고는 드카르가의 검은 벽에 다다를 즈음오아시스가 실재한다고 믿는 인간의 마음을 알려준 랑 덕분에 사막을 그림으로 바라보기에 이른다그렇게 작가 천선란은 삶의 목적을 잃은 땅에서도 기어코 나아갈 수 있는 힘을인간이 망친 세상에서 살면서 여전히 인간적인 것들을 그리워하는 존재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부여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보기에 그럴싸하면 돼네가 감정을 진짜 느끼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내가 느끼기에그 애가 그렇게 느끼기에 그렇다면 된 거야안 그래그냥 다 따라 하는 거야인간이라고 상대방에게 감정이 있는지없는지 어떻게 알겠어영혼을 뺏어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상대방에게 감정이 있다고 믿는 순간 생기는 거야그러니까 너도 시치미 떼감정도 네 것이라는 듯이 행동해.” / 134p

 

 

 




 

 

 

 

  랑을 향한 그리움이 있는 한 나의 사막은 여느 사막과 다름을 느낄 수 있었던 고고처럼랑과 나의 사막은 가장 절망적인 시대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감각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묵묵히 사막을 걸어갔던 고고의 여정이 그러했듯모든 것을 상실한 가운데서도 마음의 목적지만은 잃지 않기를 바라는 천선란 식 은유가 내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거친 사막의 선인장 그 아래 유유히 흐르는 오아시스를 대주는 마음 같은 것그것을 헤아리게 하는 이연미 작가의 표지 그림마저도 다정하다덕분에 나는 또 어느 사막 속을 헤매며 걷고 있을까하고 막막한 생각이 들 때면 랑과 고고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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