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서의 이별 - 장례지도사가 본 삶의 마지막 순간들
양수진 지음 / 싱긋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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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과 고인을 둘러싼 삶을 애도하는 일 그것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는 그녀의 글은 그래서 참 귀하다!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에는 심시선 여사의 사망 10주기를 맞아가족들이 심시선 여사가 살았던 하와이를 여행하며 각자에게 기뻤던 순간이나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제사상에 올리는 장면이 나온다살아생전에 제사는 사라져야 할 관습이라고 강경 발언을 했던 심시선의 뜻에 맞게 이들은 하와이를 상징하는 물건을 찾거나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경험들을 공유하며 저마다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미션에 몰두한다그러는 동안에 이들은 가깝지만 먼 듯했던 서로의 관계를 돌아보고존재 자체만으로도 서로가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으며 각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이렇듯 소설은 제사의 의미를 형식적인 것에서 찾는 게 아니라 당신을 어떻게 추억하고 나의 삶에 투영하고 있는지 깨닫는 데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할머니의 임종 앞에서 마냥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역시 큰 고모의 말 한 마디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형제들 이렇게 다 모일 수 있게 네 할머니가 귀한 시간 주셨데이.” 죽음이 더 이상 우울한 제식이 아닐 수도 있음을당신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만나 다시 한 번 더 껴안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음을나는 할머니와 이별하는 자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배웅인 줄 알았지만 실은 만남이었다.’ 이 별에서의 이별』 속의 이 글귀가 내 마음을 울린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죽음 이후 3일 간의 예식을 곁에서 돕는 사람이다.’ / 7p

 

 

 

  죽음이라는 절절한 사연이 모여드는 곳장례식장에서 장례지도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는 오늘도 죽음에서 삶을 배우고 삶에서 죽음을 배운다그녀는 지위의 높고 낮음재산의 규모와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죽음 앞에서 매번 살다 사라져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본다그렇게 죽음 이후의 순간들을 계속 마주하면서죽음이란 결코 삶에 대한 회의나 완전한 단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현재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체득한다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일이 그저 되풀이할 수 없는 누군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순간을 그저 안녕히 보내드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수많은 임종과 사별그 안에 얽힌 삶의 조각들에 귀를 기울이고 보듬는 것 또한 자신의 몫임을 안다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은 누군가의 삶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그래서 따스하다.

 

 

 

입관이란 고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육신을 내보이며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게 되는 귀한 예식이다그렇기에 입관을 하는 사람은 설령 경험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절대 실수를 하거나 소홀히해서는 안 된다선배들은 농담 삼아 결혼은 두 번 할 수 있어도 장례는 두 번 할 수 없다고 했다되풀이할 수 없는 누군가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을 망쳐서는 안 되는 일이다. / 151p

 

 

 



 

 

 

 

  책 속에는 장례지도사로서 여러 감정으로 마주하게 되는 삶의 마지막 사연들이 담겨 있다설레는 마음으로 새 집에 둥지를 튼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가족에게 닥친 화마일주일 만에 발견된 50대 남성의 고독사세월호 참사 합동 분향소의 먹먹한 풍경 등 죽음 앞에서야 뒤늦게 매만져지는 서글픈 현실이 우리의 눈시울을 적신다때로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같은 것눈을 감지 못한 고인의 눈을 아무리 감아드리려 해도 감기지 않더니 입관 전에야 해외 출장 간 막내아들이 도착하자 그제야 고인의 눈이 감긴 사연 같은 건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부모의 사랑을 어루만지게 한다간혹 자신의 장례 비용을 먼저 물어오는 전화 앞에서는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죽음을 앞두고서까지 주머니 사정과 저울질해야만 하는 고단한 삶에 나라고 예외는 없을 테니까.

 

 

 

  그런 가운데서도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여성이 자신의 장례를 의뢰해온 사연은 잔잔한 울림을 준다그녀는 혼자 살고 있고 부모님 외에 다른 가족이 없어서 일반적인 장례가 아닌자신만의 장례를 원했다첫째는 자신의 이른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둘째는 흔한 수의가 아닌 핑크색 실크로 된 드레스를 입고 싶다는 것셋째는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영상을 틀어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가족이나 찾아오는 지인이 아닌죽음을 마주한 고인 스스로가 주체가 된 예식이라니흔치 않은 일이지만 이 날 장례식만큼은 이제껏 본 여느 풍경과는 달랐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러분들의 사랑 덕분에 저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는 티 없이 맑은 음성과 환한 고인의 웃음에 장례식장을 찾은 이들은 슬픈 곡이 아니라 미소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게 가슴을 쥐어뜯으며 비통해하기보다 훗날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이 이별 앞에서 죽음이 한 가지 색채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안치실에 들어가 그녀와 마주했다많이 야위고 수척했지만 희고 고운 피부를 지닌 무척 아름다운 아가씨였다매일 노인분들만 뵙다가 주름살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 위에 화장을 하려니 손의 촉감이 굉장히 낯설다사진 속 발그레한 볼은 온데간데없고 내 앞의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이 야속하기만 하다목을 파고든 짙푸른 멍자국이 유독 창백한 얼굴과 대비된다이 한 줄이 그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인 셈일까그녀가 쓴 삶의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지만 나는 그 멍을 지워나간다. / 17p

 

 

나는 그 마을에서 죽음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더욱 행복해진 노인들을 보았다죽음 사이에 일상이 끼어드는 게 아니라일상 속에 죽음이 당연한 듯 머무는 삶친구의 장례식이 열리면 모두 함께 추모하고한낮에 산책을 하며 봉안당을 한번 둘러보는 삶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있었다삶과 죽음을 구분 짓지 않고 하나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그들의 맑은 미소의 원천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죽음을 진정 애도함과 동시에 그것을 수용하고 상실과 변화를 이해할 때 비로소 행복한 삶과 행복한 죽음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 231p

 

 

 



 

 

 

 

  지금이야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편이지만 여성특히나 스물다섯 살의 사회초년생에겐 매사 편견과의 싸움으로 이어졌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내가 장례지도사로서 성숙해지는 과정은 무언가를 얻어 채워가는 더하기가 아니라자존심과 거만함을 버리는 빼기였다고 말한다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먼저 내밀어야하는 손길에 마음을 쓴다고인과 고인을 둘러싼 삶을 애도하는 일 그것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는 그녀의 글은 그래서 참 귀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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