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 - 미래 로봇이 알아야 할 인간의 모든 것, 2018년 행복한아침독서 선정
닉 켈먼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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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을 “데이터베이스화”한,

재기발랄한 통찰력을 지닌 인문교양서!

 

 

   2016년 3월, 우리는 아주 놀랍고도 역사적인 대회 앞에서 숨을 죽이고 TV 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다. 확률에 기반한 정교한 계산으로 탁월한 수읽기의 능력을 보여준 알파고 앞에서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이 초읽기에 이르렀음을 눈으로 실감했다. 이처럼 인공지능, 빅데이터가 인간 사회의 모든 영역에 가져올 변화는 단순히 기능적 요소만이 아니라 인간이라서 가능한, 인간만의 고유 영역라고 생각했던 영역까지도 넘나드는 것이 가능해보인다. 지난 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로봇 즉 안드로이드를 상상했을 때 그저 기계적인 어떤 유형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인간과 매우 흡사한 혹은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로 인간에 가까운 안드로이드의 완성을 볼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안드로이드가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관찰한 내용의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안드로이드 시대 앞에서 인간의 속성과 존재론적인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는 매우 남다르고 경이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인간이 되어야 했던 안드로이드, 인간이란 무엇인가

 

 

   미국의 SF영화 시나리오 작가인 닉 켈럼이 쓴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인간이 되어야 했던 안드로이드가 기능이 정지되기에 앞서, 다음 미래 안드로이드를 위해 그간 수집했던 인간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담은 안내서다. 22일간의 인간 관찰 기록에는 성별, 일, 돈, 종교, 번식 방법, 기술, 예술, 이기심, 경쟁 등 인간 삶의 다양한 면면들을 매우 섬세하게 담고 있음은 물론, 통계 자료와 도표 등과 같이 수치 적용 가능한 보고서 형태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한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일종의 ‘인간이 되기 위한 처세술’이라고나 할까. 여기에 주인공인 안드로이드가 ‘인간성’을 체득해 인간에 가까워지려고 함으로써 겪게 되는 수많은 경험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교차 반복되어 극적인 긴장감을 형성한다.

 

 

   흔히들 우리 인간이 모든 생물과 로봇을 넘어서 스스로를 가장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데는 바로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에 있을 것이다. 또한, 몸과 마음과 감성을 구분하여 감정과 육체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의지’에 의해 결정할 수 있다고 오해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안드로이드 잭의 의견에 의하면 이는 사람이 스스로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고 그렇게 믿는 데에서 시작한 것, 즉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결정을 내렸다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과학적인 데이터로 분석한 그의 인간 관찰 보고서에 의하면 인간은 스스로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우주에 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안다고 믿는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지적한다. 이 외에도 잭은 직장이라는 공간 내에서 인간들은 근무 시간 내내 아주 빨리 효율적으로 일하기를 거부하고, 상사와 직장 동료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직장 내에서의 능력을 결정하는 가치 판단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을 언급한다. 뒷담화, 미루기, 다양한 관행들, 각종 경고 문구 및 규칙 어기기, 자기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고의로 해치는 일 등 각종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들을 적나라하게 설명하며 이를 지켜야만 안드로이드들이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는 각종 충고들은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뼈아픈 지적으로 다가온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명령은 거짓말을 하라는 거였어. ‘사람이 되는 시험’에 통과하라니, 그 명령 자체가 거짓을 행하라고 요구하는 거잖아. 어쩌면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느끼는 게 아닐까? 사람들도 자기에 관해,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고 꿈꾸고 희망하는 모든 것에 관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어쩌면 내 추측이 옳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아주 강력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 여러 면에서 사람 사회는 마치 거짓으로 짠 옷감 같았어. / 79p

 

 

사람에게는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을 뛰어 넘을 능력이 있단 말이야. 실제로 사람들은 이 우주를 통틀어 자기들을 만든 우주의 기본 법칙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구조물인지도 몰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주 우주의 법칙에 순응하는 길을 택한단 말이야. 내가 실망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이 때문이야. / 257p

 

 

 

사람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

 

 

  인간성을 ‘획득’해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존재의 목표였던 안드로이드 잭은 안드레아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리는 것은 단순히 어떤 한 특정 부분이나 과학적인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듯, 그 역시 각각의 구성 요소로 나눌 수 없는 다양한 요소가 통합적으로 작용해 그녀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또한 안드레아를 통해 경험을 하면서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단순히 아는 것과 직접 내 눈으로 보는 건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때로는 방대한 정보의 데이터를 지닌 자신보다 과학적이지는 않아도 오히려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의 직관이라는 힘을 깨닫기도 한다. 즉, 잭은 사람이 되는 일이란 그저 사람처럼 보이는 일들을 습득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과 직접 맞부딪혀 얻은 경험을 통해서야 진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의식이 실재에 존재하는 혼돈과 접속했을 때 느끼는 감정을 내부에서 분석하는 문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 사람들도 감정을 분석하는 일은 우리만큼이나 어려워하는 게 분명했어.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들이고, 더구나 혼자 하는 것도 아니라 친구나 치료사, 사제 같은 여러 다른 사람과 함께 수천 개가 넘는 방법으로 감정을 분석하려고 연구하고 모형을 만들려고 애쓸 리는 없을 테니까. 그때 나는 한 가지가 궁금해졌어. 이게 바로 ‘사람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하고 말이야. 실재가 의식을 부추겨 느끼는 다양한 감정에 놀라고 혼란을 느끼는 거 말이야. / 178p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 전부는 고사하고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상태도 무한하기 때문에(카오스), 한 사람만 연구해도 끝이 없는 거야(프랙탈),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우리가 인간성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들이 석양을 바라보면서 경험하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였어. 매일 찾아오는 석양은 본질적으로는 프랙탈이지만 그 순간순간은 예측이 불가능한 카오스니까. 사람들이 석양을 볼 때마다 황홀해지는 건 그 모습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일 거야.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인생이, 자기가 속한 사회가 사실은 자신만의 석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야. 우리 안드로이드에게는 사람을 바라본다는 건 매일매일 저무는 석양을 보는 것과 같은데 말이야. / 26p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안드로이드가 해야 할 일들은 대부분이 실망스러울 만큼 위선적인 행동들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로이드가 인간성을 체득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인간에 대한 ‘경외심’인 듯하다. 끊임없이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삶들, 안드로이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능력적인 한계와 적은 정보를 지니고서도 이토록 많은 일을 해내왔던 인간들, 물리적으로 능력 밖의 일들마저도 의지 하나로 뛰어넘으려했던 그 수많은 시도들 말이다. 우리가 알파고에게 단 한 번 이겼을 뿐임에도 빛나는 묘수를 보여준 이세돌 기사에게 환호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장면처럼.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인간이란 참 복잡하고도 정교한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생존을 위해 마련해야 했던 수많은 시스템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매우 복잡하고도 세밀한 감정들을 주고받아야 했던 인간들의 삶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처럼 안드로이드의 시각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훔쳐본 듯한 기분이 든 놀라운 책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은 최근에 본 책 중 가장 이색적이고 새로운 유형의 철학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곳곳에 인간에 대한 위트 있는 해석들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는 점이다. 간혹, 이건 좀 너무한데 할 만큼 정곡을 찌르는 위선과 가식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지만 충분히 공감하며 우리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할 많은 면면들을 마주하게 하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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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심리학 - 있는 그대로 살아도 괜찮아
토니 험프리스 지음, 이한기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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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참 자아를 찾아 자유롭고 단단한 존재로 나아가기 위한 계발서!

 

 

  요즘 들어 세 살 된 아들을 낳고 키우면서 아이의 감정에 따라 나의 감정이 지나치게 동요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그간 웬만한 갈등과 상처에도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음으로써 겉으로는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나로서는 무척 당황스러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이렇듯 빈번하게 발생하는 감정소모에 인내심은 사라지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예민해지기 일쑤며 심지어 나 자신을 왜곡하는 심리적인 문제가 종종 발견되었다. 스스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 이르렀음을 직감한 것이다.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 전체의 정서를 위협하고 있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매체와 책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키워드가 바로 ‘자존감’인 듯하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임상 심리학자인 토니 험프리스의 <자존감 심리학>은 보다 근원적인 자존감의 정체성을 들여다봄으로써 진정한 자존감의 회복을 이끌어주는 심리서이자 자기계발서인 듯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 자신이나 행동의 어떤 측면을 바꾸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 깊다. 바꾸는 것이 아니라 숨겨왔던 것들을 드러내고 끌어안아주는 일을 통해 온전한 나를 찾는 것에서부터 자존감 회복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자아 표현을 방해하는 것들

 

 

   저자는 참 자아의 뿌리를 유아기에서 찾는다. 유아는 감정과 몸이 항상 정직하고 충실하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받아들이는 데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표현하려는 유아의 욕구는 신성한 자기 근원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며, 어른들이 이것을 존중해줄 때야 건강한 자존감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참 자아로 존재하지 못하는 현상은 유아기에서 시작되어 나이가 들수록 더 깊고 빠르게 진행된다. 자아 표현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강하게 오래 지속되는가에 따라 그 부정성의 정도가 결정된다.

 

 

유아가 보여주는 모든 행동은 항상 감정과 관련해서 이해될 수 있다. 유아의 행동 중에서 우둔하거나 부정적이거나 무의미하거나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유아가 지닌 지혜를 제대로 알아보는 어른이 별로 없다. 간혹 부모는 자녀의 어떤 행동에 거친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이것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부모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자녀는 내면의 안정감을 쌓을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 28p

 

 

   공격성, 비난, 변덕, 경쟁심, 과잉보호, 수동성, 조급함 등은 어른과 아이들이 비슷하게 경험하는 전형적인 방해 행동이다. 참 자아에 대한 위협은 사랑 표현에 인색하여 지지 행동이 없을 때도 일어난다. 신체를 왜곡하거나, 지적 표현을 비난하고, 자연스러운 표현과 같은 선천적인 욕구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을 방해하며, 차이를 인정하고 격려하기보다 순응을 권하는 사회적인 요소들도 마찬가지다. 이 외에도 저자는 사회적인 존재로써 가족, 학교, 종교, 직장 내에서 자아를 그늘지게 하는 다양한 문화가 한 개인과 공동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한다.

 

 

문화가 긍정적이고 힘이 있으며 창조적일 때, 모든 구성원에게 풍부한 가능성이 열린다. 건강한 문화는 모든 구성원이 개성을 표현하고 창조적이고 독특한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건강한 문화는 집단의 영향을 인정하고 모든 구성원을 배려하며 공동 책임을 보장하는 사회 구조를 만든다. 이러한 문화는 구성원들이 서로 교감하고 조화를 이루는 공동 책임과 협동에 초점을 맞춘다. 개인과 집단 간의 권리와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화일수록 친밀감의 수준도 그만큼 높다. / 67p

 

 

참 자아와 그림자 자아

 

 

  안타깝게도 자아를 그늘지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아나가려는 적극적인 태도는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장애물을 만들게 된다. 때문에 우리의 참 자아는 그림자 안에 교묘히 숨어 있게 된다. 이는 일종의 방어수단으로 우리를 보호하는 장치가 되어 다양하게 작동한다. 저자는 흔히들 공격적인 대응, 수동적인 대응, 수동공격적인 대응, 환상적 대응, 망상적인 대응 같은 다섯 가지 방어 전략을 이용하여 참 자아를 부분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숨긴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내가 숨을 때 다른 이들도 숨음으로써 모두가 진실해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그림자 자아가 보여주는 나의 잠재의식을 읽어내는 데 있다. 이 책에 의하면, 그간 나는 “내가 배려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배려 받고 싶은 나의 욕구가 투시된 결과”였다. 또한 저자가 제시한 그림자의 이름표를 통해 자아의 모습을 깊이 관찰해보면 내가 나 자신을 평소에 어떻게 묘사하는지, 잠재의식 속에 숨겨진 참 자아의 본 모습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이때 우리가 도전해야 할 것은 의식적인 그림자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적인 그림자 아래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즉, 저자는 부정하고 있는 약점과 맞붙어야만 자아와 다른 사람들과의 합일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의식적인 행동 밑에는 잠재의식 차원의 문제가 존재한다. 앞서 든 사례에서 비난을 몹시 싫어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 상황에서 도전해야 할 과제는 공격적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비평하는 것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만약 타인의 비난을 나에 대한 정보를 얻는 정도로 이해한다면, 위협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공격적인 그림자 행동을 없앨 수 있다. 보호 장치로 작용하는 공격적인 행동은 치유해야 할 약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 114p

 

 

자아를 깨닫는 것은 우리 자신이나 행동의 어떤 측면을 바꾸는 게 아니다. 방어 행동은 건전하고 신성한 목적으로 개발되었기에 이런 행동을 제거하려 하는 것 자체가 그림자 행동이 된다. 그림자 자아는 변화의 대상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를 위해 어떤 역할을 감당해온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끌어안아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그렇게 오랫동안 숨겨온 것을 깨닫고 표현하는 것이다. / 174p

 

 

 

 

 

자존감 회복에 좋은 연습

 

 

  자존감을 회복하고 높이기 위해서 단숨에 나의 행동 변화를 촉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앞서 말한 대로 자아 바꾸기가 아니라 그림자 자아 속에 숨겨진 잠재의식을 읽어내고 그것을 끌어안음으로써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나 자신에 대한 진실을 표현하는 자신만의 언어를 발견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강하게 공감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긍정의 말을 준비하여 위기의 순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규칙적으로 사용하면 의외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일러준다. 이 외에도 요통, 두통, 비만, 체중 미달, 위통, 가슴앓이와 같은 질병이나 신체 증상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하루를 끝낼 무렵에 정서적 갈등을 해소하는 습관을 들여서 직관을 기르고,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고 감정을 배려하되 내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유지할 것을 권장한다. 근본적으로는 어릴 적부터 안정되고 조건 없는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가 있다 보니 이 점에서 나는 물론,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 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보다 절실하게 깨달았다.

 

 

개인성은 성숙한 가정을 이루는 초석이다. 스스로 개인성을 실현한 부모는 자녀로부터 비슷한 특성을 찾아 길러줄 수 있다. 더불어 부모는 자녀가 주변의 다양한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사회 제도에 진입하기 위한 준비와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아이가 가정 바깥의 세계에 적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응하고 발전하는데 필요한 믿음과 활동을 부모가 모범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문화의 어두운 측면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독립심과 분별력, 자아 깨닫기를 위협하는 어둠에 저항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 222p

 

 

   저자는 어른이건 아이건 누구나 각자의 특별함을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너는 있는 그대로 특별하단다”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더 용기를 주는 일은 없다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자존감 회복의 초석이라고 말이다. 무엇이 나의 진짜 모습일까, 진짜 내 마음을 표현하기가 왜 이리 힘든 것일까, 나는 과연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을까와 같이 정서적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을 나와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있는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위로 정도만이라도 괜찮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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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허설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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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처럼 파고드는 10대들의 욕망과 발칙한 상상력!

연극과 현실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이뤄낸 수작!

 

 

 

   28세의 나이로 두 작품 만에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이 놀라운 작가의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궁금했던 작품, 『리허설』. 푸른색의 두터운 양말을 신은, 소녀의 것으로 짐작되는 ‘발목’에 포커스를 둔 표지가 인상적이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 작품 속에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다양한 기호들이 존재하는데, 유연하고 매끄러운 다리를 떠받치는 가느다란 ‘발목’이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내딛은 두 다리와 발목을 드러내지 않고 두텁게 감싼 양말은 이미 그 자체로 불온한 상상력을 품게 한다.

 

 

 

 

 

 

 

 

 

욕망과 불안을 오가는 10대라는 변주의 초상

 

 

   어느 날, 나의 친구 혹은 다른 반의 누군가가 학교 선생님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전교에 파다하게 퍼지게 된다면? 그 뒤에 펼쳐질 일이란 자연히 수습하려는 학교의 태도와 온갖 상상으로 덧입혀진 불순한 이야기가 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것을 상상하기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렇듯『리허설』은 음악 선생님과 여학생 빅토리아의 섹스 스캔들이 일어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 사이에 혼재하는 불안과 성에 대한 욕망을 대담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내용은 근처 스튜디오에서 색소폰을 가르치는 선생이 빅토리아의 동생인 이솔드를 포함해 줄리아, 브리짓 등과 같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사건의 전말과 그들이 지닌 내적 혼란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개된다. 특히, 이솔드는 열여섯이 미처 안 된 나이로 언니의 스캔들로 인해 ‘세상의 더럽고 변태적인 매력을 목격해 강해지고 무감각해졌지만 아직 자신이 듣고 본 것을 직접 느껴보지는 못했기에 작은 의심의 씨앗을 기르는’ 예민하고도 복잡한 소녀성을 상징한다. 반면, 줄리아는 소녀들 사이에서 마치 인기 없는 여자애처럼 별난 소녀지만 성교육 수업 중에 선생님을 상대로 발칙한 주장을 할 줄 아는 솔직함으로 이솔드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소설은 성(性)에 민감하기 마련인 10대들의 고민과 혼란으로 흔들리는 학교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정교하게 그려낸다.

 

 

“그 선생님들은 그걸 주사처럼 여겨요.”

브리짓이 이번엔 더 큰소리로 말했다.

“병균을 약간만 투여하면 몸이 진짜 병에 대비해 방어막을 세울 수 있는 백신처럼요. 선생님들은 전에 우리한테 옮겨본 적 없는 병이라서 두려워하고 있고, 그래서 이 병이 진짜로 어떤 건지 말하지 않고서 예방할 방법을 찾으려 하고 있어요. 은밀하게,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게 백신을 놓고 싶은 거예요. 하지만 아무소용 없을 걸요.” / 25p

 

 

여자아이들은 모두 다 비밀을 마지막으로 알게 된 사람이라는 역겨운 수치심에 시달리느라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그동안 내내 빅토리아가 그들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내내 그들 사이에 앉아서는 잘난 척 자신의 비밀을 입 다물고 있었다는 사실에 서서히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들은 살라딘 선생을 향한 자신들의 별 뜻 없는 수줍은 추파를 창피한 기분으로 떠올려야 했고, 가슴이 두근거리던 그 행복한 순간의 기억은 전부 다 그가 이미 빅토리아의 것이었고 이미 빼앗긴 존재였다는 사실로 더렵혀졌다. / 89p

 

 

  한편, 소녀들의 학교 애비 그레인지 인근에 있는 명문 연기 학교에서는 오디션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대 위의 배우가 되기를 갈망하는 스탠리의 이야기가 앞선 내용과 교차 진행된다. 여기에서는 배우를 도전하는 이들에게서 기민하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으려 하고 ‘불경하다고 여기는 모든 걸 성스럽게 만들고, 그들 하나하나에게 도전해 겁먹게 하거나 웃게 만들려하는’ 학교 선생님들의 모습과 그들의 특별한 과제를 학생들이 수행해야하는 여정이 그려진다. 스탠리는 과제를 수행해가면서 그 낯선 방식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편승하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섹스 스캔들을 주제로 한 연극을 과제의 주제로 삼게 된다. 스탠리의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부모들의 기대와 틀에 맞춰야만 하는 앞선 소녀들의 학교와 달리 갇힌 틀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연기과 선생님들을 통해, 어른이라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숱한 좌절과 경험을 맛보길 진정으로 바라는 작가의 진정이 담겨져 있다는 데 있다.

 

 

“무대는 진짜 인생이 아니고, 진짜 인생의 복제도 아니야. 조각상과 마찬가지로 일이 ‘지금 일어나는’ 장소지. 평소에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무대에서는 일어나. 무대는 사람들이 다른데서는 볼 수 없는 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장소’야. 무대는 우리가 어떤 일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지. 그렇게 해서 우리가 그 일을 직접 느끼거나 실행할 필요가 없도록 해주는 거야.” / 59p

 

 

“애들을 다 봤는데, 희망도, 열정도, 투지도 별로 없더군요. 다들 절대로 팔리지 않고, 절대로 인상에 남지도 않을 얼굴 안에 갇혀 있어요. 비극도, 힘든 것도, 극단적인 것도, 공정한 것도 겪어본 적 없는 현대적이고, 소중하게 보살핌 받은 보들보들한 얼굴에요…… 맙소사, 그 애들 대부분은 거의 평생을 ‘안에 갇혀’ 살아왔어요.” / 177p

 

 

인생의 리허설이라는 무대에 오른 10대들

 

 

“모든 일엔 선례가 있어. 내가 했던 모든 일에 본보기가, 공식이, 견본이, 공개적이고 보기 쉽고 ‘잘 알려진’ 그런 게 있었지. 난 내가 만난 모든 것의 형체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어. 본보기란 항상 현실이나 경험, 개인적인 진실보다 앞서는 법이야. 난 영화에서, 텔레비전에서, 무대에서 사랑을 배웠지. 공식을 배우고 그다음에 적용했어. 나한텐 그런 식이었어. 인생 전체가.” / 247p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어떠한 본보기를 따라 그 형식과 틀 속에서 자란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진짜 경험을 하기 전부터 이미 누군가로부터 들은, 매체로부터 본, 부모들의 정해진 기대와 바람 속에서 ‘본보기란 항상 현실이나 경험, 개인적인 진실보다 앞서는 법’이라던 극중 팻시의 대사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이 시기를 나중에 올 모든 것에 대한 리허설로 삼는다면 어떨까. 각종 변수들이 난립하는 삶 속에서 리허설을 겪는다고 해서 삶이 보다 나아질 수는 없지만, 실패에 부딪혀도 더 빛날 수 있는 인생의 진짜 ‘무대’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

 

 

“블라이 부인, 따님의 삶에서 지금 이 시기는 나중에 올 모든 것에 대한 리허설일 뿐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모든 것이 잘못되는 게 그 애한테는 가장 좋은 일이라는 것도 기억하시고요.” / 375p

 

 

   엘리너 캐턴은 굉장히 정교하고 구체적인 묘사와 때로는 ‘커다란 분홍색 감정덩어리’와 같은 은유적인 문장을 구사할 줄 아는 힘을 지닌 작가인 듯하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지나치게 구체적인 문장이 독자의 이해도를 떨어뜨리는 게 아쉽다. 꽤 집중력 있게 읽지 않으면 다시 되짚어 읽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꼭 겪곤 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과 연극을 오가는 구조적인 형식의 글이라 몰입에도 방해를 받는다. 이 부분은 독자마다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연소 맨부커상 수상자의 소설답게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남다른 독창성과 울림이 빛나는 수작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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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지음 / 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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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어른들을 다독이는 아기 해달 보노보노의 따뜻한 메시지!

꾸밈없는 위로를 건네는 이웃집 언니 같은 에세이!

 

 

 

 

 

   “괜찮아, 엄마 여기 있잖아.” 지난 밤, 잠결에 나쁜 꿈이라도 꾸었는지 느닷없이 엉엉 울어대며 나의 목을 끌어안는 세 살 된 아들을 다독여야 했다. 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맹목적으로 나를 더듬어 찾는 존재에게 늘 너른 품을 내주어야 하는 게 부모라는 것을 누가 가르쳐준 적은 없지만, 그렇게 나는 엄마라는 세계로 진입했다.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있다면 “엄마도 이렇게 나를 키웠을까”, “엄마는 외롭지 않았을까” 였다. 누군가에게 말로 해서는 모두 이해를 구할 길이 없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해내기 위해, 본인은 얼마나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까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식 마음 다치지 않게 헤아려주는 육아서만 봤지, 아이 키우면서 겪는 숱한 고민과 아픔들을 헤아려주고 보듬어주는 책은 읽어보지 못해서 결국 엄마는 다 그런 거라고 자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이런 글귀가 마음을 두드렸다.

 

 

누군가를 돕는 건 엄청 부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가 하는 일 중에 가장 부자연스러워.

그 부자연스러운 짓을

부모가 되면 평생 해야만 하는 거야. / 125p

 

 

   아, 나는 알고 보면 가장 부자연스러운 일을 자연스럽게 해내려고 애써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힘들었던 거구나, 하고 말이다. 평생 해야만 하는 이 부자연스러운 일을 어떻게 단번에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해낼 수 있겠는가. 이런 위로, 참 위안이 된다.

 

 

 

곤란해도 괜찮아  

 

 

   순박해 보이는 캐릭터 하나가 시선을 끈다. 유명 캐릭터 보노보노를 모티브로 하여 출간된 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표지를 보면 조개를 쥐고 있는 아기 해달의 순박함에 마음이 사로잡힌다. 간혹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는 이 만화를 흘리듯 본 적이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던 까닭에, 마냥 귀엽다기보다는 어쩐지 애잔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노보노는 곤란해질 것에 대해 미리부터 걱정을 하면서 사는 소심한 성격이다. 잘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친구들을 매우 좋아하고, 소심하기 때문에 소심한 마음을 이해할 줄 알며 걱정이 많은 만큼 정도 많아서 친구의 소중함을 잘 안다. 그래서 온갖 걱정을 다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미움 받을 것 같다는 걱정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다. 함께 등장하는 너부리는 항상 밉상인 짓을 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통찰력 있는 말을 던질 줄 알며, 매사 불평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따뜻한 마음씨를 드러내고 상대를 미워하거나 재단하지 않는다. 이처럼 만화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캐릭터들은 나와 우리 주변에 있는 어느 누군가들과 상당히 닮았다. 그래서 저자가 ‘우리는 모두 보노보노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나보다.

 

 

나는 도리도리를 이해한다.

나는 도리도리를 이해한다.

나도 계속 울기만 한 적이 있어서 잘 안다.

내가 운 이유는 배고프고 싶지 않은데 배고파지는 거랑

춥고 싶지 않은데 추워지는 거랑

무섭고 싶지 않은데 무서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이었다. / 32p

 

 

   무엇보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이웃집 언니 같은 솔직담백한 언어가 매력적인 에세이다. 그녀의 친구, 사랑, 부모 사이의 관계에서 느낀 고민이나 어려움을 보노보노로부터 위로 받은 경험을 통해, 그녀처럼 어른이 되었으나 여전히 서툴기만 한 우리들에게 가벼운 넋두리 속에서 잔잔한 위로와 깊은 울림을 준다.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방송작가이자 다수의 에세이를 집필한 경험 덕분인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사사롭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을 화두로 꺼내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위로는 내가 받고 싶은 위로’라던 첫 장의 내용이 퍽 마음에 와 닿는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곤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보노보노에게 야옹이 형이 무심코 툭, 내뱉은 말, 살아 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다고.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다고. 언젠가는 그 곤란함도 끝날 거라며 마음껏 곤란해 할 시간을 마련해주는 야옹이의 모습은 억지로 자신과 타인을 위로하려들지 않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담담한 위로와 닮아있다.

 

 

 

 

 

완벽함보다는 충분함

 

 

   아이를 낳고 나서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에 대한 강박이 늘어났다. 유년시절에 내가 해보지 못한 것들을 아이에게 일찍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다 그렇겠지만, 하루를 심심하게 보내고 나면 그저 무의미하게 보낸 것만 같은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어쩌면 집에서 아이를 보는 일만 하는 탓에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만 같은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뭐라도 더 하면, 더 움직이면 무언가를 했다는 일종의 성취감으로 죄책감을 덜어낸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재미있는 일도 재미없는 일도 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 오늘의 단조로웠던 일상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것 이상으로 하고 있는 일을 매일 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대견한 일이라고. 매일 똑같은 일상의 육아생활에 지친 나와 오늘도 자신의 업과 새로운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주에서. 마음의 숲 출간)“

마치 나에게 들려주는 듯한 문장 앞에서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어떤 일을 매일 한다’는 말은 왜 이리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가. 지루함이나 숨 막힘 따위 안 느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계속해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한 일 아닌가. / 119p

 

 

 

 

 

 

   저자는 보노보노가 좋은 이유는 젠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심오한 이야기를 심오하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심오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특히 엉성한 번역체가 주는 느슨하고 여유로운 느낌으로 인해 슬렁슬렁, 살고 싶다던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을 느낀다. 만화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책에 수록된 단편들과 은은한 그림체만 보아도 가만가만 힐링이 되는 듯하다. 완벽하려 애쓰기보다 재미없는 것은 재미없는 대로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대로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충실하게 사는 삶을 살라고 말하는 보노보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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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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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과 읊조림을 오가는 기이하고 낯선 상상력과 섬뜩하리만치 담담한 문장들!

비스듬히 기우는 현실, 폐허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상처들의 이야기!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 우리 문학 전반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때가 있었다. 천운영과 편혜영을 필두로 하여 현실을 비틀어 낯선 상상력을 덧입힌 그로테스크문학은 당시 문학을 전공으로 삼기 시작했던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날선 직관과 내밀한 욕망, 기이하면서 섬뜩한 문체에 매료되어 나는 물론, 같은 출발선에 선 동문들은 하나같이 그와 닮은 글을 쓰고 싶어 했다. 당시로서는 이른바 기존 문학이 지닌 정통성에서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것만이 새로운 문학세대가 지녀야 할 덕목이라고 믿었는지 모르겠다. 2010년 이후에 들어서면서 우리 문학은 여전히 그로테스크한 미적 감각을 잃지 않았지만, 보다 세련되게 정돈되어 발전해온 듯하다. 특히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개인과 사회 공통의 트라우마에 집중한 형태의 작품들이 상당히 눈에 띈다. 그 중 <먼지 먹은 개>에 이어 <휘>를 발표한 손솔지라는 젊은 작가의 작품이 인상적이다. 앞서 밝힌 주제의식과 더불어, 세련된 그로테스크함의 환상적인 미학과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정밀하게 풀어낸 밀도 높은 작품이라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한 글자에서 시작된 8편의 단편들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여덟 편의 소설은 모두 한 글자에서 비롯되어 마침내 확장되었다. 휘- 휘-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듯 유리창에 부딪히는 바람소리에, 작가는 문득 바람이 흘리고 간 이야기를 밤을 새워서라도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미처 나에게로 와 닿지 못한 채 유리창에 부딪치고 만 바람의 그 쓸쓸함을 생각하다, 휘- 라는 한 글자가 끌어안고 있던 숨겨진 이야기들을 한 편의 글로 완성한 것이 소설만큼이나 흥미롭다. 표제작인 소설 「휘」는 이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소년의 이야기다. 소설에는 하나 같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름에 ‘악’자가 들어간다던 아버지와 단 한 번도 이름을 불러 본 적 없는 어머니, 지니라는 예명으로 뭇 남성들에게 몸을 파는 소녀, 고약한 악취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름 모를 사내와 가만히 땅콩 껍질을 까주던 반송장의 노인 모두에게 말이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모두 불행해졌다던 소년의 독백은 그들을 어디로 데려갔을까. 이름이 없는 이들, 그래서 누구나일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속에 스산한 바람 한 점을 불러일으킨다. 표지의 그것처럼.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에게도 이름이 있었던가. 어머니는 집 안의 냉장고이거나 선풍기이거나 식칼이거나 양파망처럼 그 자체로 고유명사였다. / 「휘」 28p

 

 

   여덟 편의 단편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은 단연 「종」이다. 계집은 요물이라던 아버지, 모두를 버리고 사라진 어머니, 모두의 종이 된 누이, 그런 누이를 증오하는 ‘나’가 등장한다. 여기서 종은 매우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치이고 치여 나의 몸으로 하여금 깊은 울림을 발산하는 종(鐘)이든 자의적으로는 살 수 없는 종속의 의미인 종이든, 사내들에게 몸과 마음을 휘둘려 ‘나’를 욕보이는 누이는 경멸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균형이 무너진 가족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누이는 아버지의 불순물과 욕설을 거름으로 배양되었다’와 같이 거침없이 담담한 문장으로 담아낸 젊은 작가의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어 소설 「톡」 역시, 몇 번의 결혼을 거듭하는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들을 베란다 밖에서 빨대를 이용해 물방울을 추락시키는 행위로 달래곤 했던 소녀로 하여금 이지러진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잠」 또한 현대 사회에 만연한 ‘불면증’이라는 병증을 통해 가족 안의 상처들을 몽환적으로 풀어나간 이색적인 작품이다.

 

 

그건 바로 그녀가 모두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이는 아무 때나 잘 울리는 종이 되었다. 나는 그 울림이 누군가 아프거나 슬프거나 가족이 죽었을 때의 소리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누이를 더 경멸할 수 있었다. 누이와 손가락 하나라도 접촉하는 순간, 나는 오염되고 말리라. / 「종」44p

 

 

   소설 「개」는 제목그대로 개를 화자로 등장시켜 그가 바라보는 인간 세상의 단면들을 담아낸다. 상징과 은유의 기법이 많이 녹아든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가장 일반적인 소설에 가까운 작품이나 그래서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반면, 「못」은 상하이와 서울에 각각 떨어져있게 된 연인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 불능으로 인해 못 박히듯 박힌 마음의 상처들을 그리고 있다. 여덟 편의 작품 중 그로테스크한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은 바로 「홈」인 듯하다. 고3 수험생 교실 안의 풍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2명의 자살 학생이 나온 뒤에 저마다 마음속에 깊이 파인 상처들을 홈에 비유함으로써 기이하면서도 낯선 상상력을 견고하게 써낸 수작이다. 마지막 작품인 「초」는 각자의 사정과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세월호 침몰’ 그 이후의 이야기다. 시류를 읽어내는 날카로운 시선과 함께 광장에 모여 초를 들어야 했던 사람들, 우리 자신에 내재한 복원력을 믿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잘 녹아든 소설이었다.

 

 

가방에 노란 리본을 매달고 다니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언제 누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나를 돌려세울지 모르는 일이었다. 슬픔을 잊는 것이 죄가 아니라 빨리 잊지 못하는 것이 죄가 되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추모하고 가슴 아파하는 일이 철 지난 연극을 반복하는 것처럼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거리에서 우리는 살고 있었다. / 「초」240p

 

 

사람들은 망설이 없이 나아갔다. 끝을 알 수 없이 길게 이어지는 초의 행렬은,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가차 없이 잘라내고 살아가려고 해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모두의 마음에 빛을 밝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순간의 우리가, 끝없이 이어지던 질문의 대답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초」248p

 

 

 

뒤틀린 가족, 불온한 남성상  

 

 

   여덟 편에 이르는 작품을 읽으며 손에 잡히는 가장 큰 주제가 있다면 바로 ‘가족’, 그 속의 ‘불온한 남성상’이었다. 일종의 페미니즘 문학의 성격을 지녔는데, 가족이라는 주제 안에서 여전히 남성중심의 사회에 머물러 발생하는 각종 부정적인 현실과 폭력들에 저항하는 흔적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러 편의 소설에 걸쳐 묘사되는 아버지들은 방문판매 업자나 신문 배달부보다 더 드물게 집을 드나들고, 눈을 현혹하는 살덩어리와 웃음을 빌미로 남자들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려는 것이 여자들이라고 말한다. 중국인 아내를 두고서 한국에 내연녀를 두고 있는 의사, 스카치 캔디를 주며 키스를 요구하는 어머니의 연인 등 어디에도 이상적이거나 건강한 남성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남성으로부터의 평등을 갈구했던 많은 페미니즘 문학들이 2000년대 이후인 오늘날까지도 이처럼 젊은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주요한 화두가 된다는 점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숙제들을 많다는 점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어쩌면 집 안 곳곳에서 아버지가 숨겨두고 간 심벌즈가 제멋대로 부딪쳐 내는 소리가 아닐까.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이름을 문제 삼았다. 아버지 이름에는 악樂 자가 들어 있었다. 늘 즐겁게 살기를 바라던 조부의 뜻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즐거웠을까. 적어도 어머니만은, 아버지의 그 이름에 깊이 찔려 치명상을 입은 채로 겨우 삶을 연명했다. 날카로운 기역 받침에 가슴 한구석이 꾹 압정처럼 눌려 이따금 참지 못한 비명을 흘리곤 했다. / 「휘」13p

 

 

관객 없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듯 아버지는 자상하게 고기를 구워 잘랐다. 희고 보드라운 비계가 켜켜이 낀 살코기는 뜨겁게 달아오른 불판에 쩍 눌어붙으며 흰 정액 같은 불순물을 길게 흘렸다. 누이가 널어놓은 내 요 쪽으로 불판 연기가 몰려간다. 누이는 눈치 없이 또 내 밥숟갈 위에 살그머니 고기 조각을 올린다. 나는 누이의 젓가락이 닿은 살점을 밥공기 밑으로 추락시킨다. 아버지는 한 뺨이 거무스름하게 탄 것이나 붉은기가 빠지지 않은 속살을 구별하지 않고 입에 집어넣어 씹는다. / 「종」54p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결국 약한 것들에 대한 폭력과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 손솔지의 작품을 지배하는 주요 정서인 듯하다. 약자가 폭력에 노출되는 모습을 통해 세상의 모든 연약하고 나약한 것들에 대한 자조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까닭이다. 「개」에서는 외국인 며느리가 “나는 사람 아니야”라는 신음을 토해내며, 「톡」에서는 남성에의 종속성과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여러 번의 재혼을 거듭하는 엄마가 등장하며, 「잠」에서는 어머니의 연인이 키스를 요구하여도 입을 다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그녀가 있다. 엄마가 자신을 두고 사라졌지만 가장 아끼던 스카프는 두고 갔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휘」의 소녀에게서는 버려지는 두려움에 대한 자기방어의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모두의 종이었던 누이가 점차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방’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자신의 ‘언어’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많은 영감을 준다.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 최대한 나아가려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밀 키스의 대가로 스카치 캔디를 받곤 했다. 어머니의 연인은 이가 앙망으로 뒤틀려 있었는데, 종유석 같은 그의 송곳니에 찔려 혓바닥에 상처가 생기면 캔디 포장을 뜯어 얼른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쌉싸래한 혀를 감싸는 다디단 커피 맛은 끔찍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단맛을 입안에서 조용히 녹이며 입을 다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충치보다 무서운 일은 세상에 널렸고, 그녀는 아직 겁이 많았다. / 「잠」202p

 

 

그녀가 이틀 동안 밤새 호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온 날, 어머니는 연인과 함께 모든 짐을 가지고 떠나며 고요를 남기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빈집은 세간 하나 남지 않은 채 처참한 알몸을 드러냈다. 가지고 떠날 가치가 없는 것들만이 초라한 형색으로 남았다. 여태 가구들이 등을 대고 있던 숨은 벽지들은 검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벽지를 타고 올라온 곰팡이들은 정면에서 마주했을 때에 그녀는 깨달았다. 그들이 두고 간 물건 중에 가장 쓸모없고 버리고 싶었던 것은, 다리 한 짝이 고장 난 앉은뱅이 책상이나 전기 코드가 벗겨진 헤어드라이어가 아니었다. 바로 그녀였다. / 「잠」204p

 

 

   약자가 쉽게 폭력에 노출되는 세상,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관계를 개선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모습을 포착해내 자신만의 소설적 언어를 완성해나가는 손솔지의 작품은 여러모로 음미할 부분이 많아서 즐거운 독서였다. 연일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다 오늘은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 창문을 두드리니, 어쩐지 이 책에서 금방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휘- 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나는 소년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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