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신회 지음 / 놀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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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어른들을 다독이는 아기 해달 보노보노의 따뜻한 메시지!

꾸밈없는 위로를 건네는 이웃집 언니 같은 에세이!

 

 

 

 

 

   “괜찮아, 엄마 여기 있잖아.” 지난 밤, 잠결에 나쁜 꿈이라도 꾸었는지 느닷없이 엉엉 울어대며 나의 목을 끌어안는 세 살 된 아들을 다독여야 했다. 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맹목적으로 나를 더듬어 찾는 존재에게 늘 너른 품을 내주어야 하는 게 부모라는 것을 누가 가르쳐준 적은 없지만, 그렇게 나는 엄마라는 세계로 진입했다.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있다면 “엄마도 이렇게 나를 키웠을까”, “엄마는 외롭지 않았을까” 였다. 누군가에게 말로 해서는 모두 이해를 구할 길이 없는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해내기 위해, 본인은 얼마나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까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식 마음 다치지 않게 헤아려주는 육아서만 봤지, 아이 키우면서 겪는 숱한 고민과 아픔들을 헤아려주고 보듬어주는 책은 읽어보지 못해서 결국 엄마는 다 그런 거라고 자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이런 글귀가 마음을 두드렸다.

 

 

누군가를 돕는 건 엄청 부자연스러운 일이야.

우리가 하는 일 중에 가장 부자연스러워.

그 부자연스러운 짓을

부모가 되면 평생 해야만 하는 거야. / 125p

 

 

   아, 나는 알고 보면 가장 부자연스러운 일을 자연스럽게 해내려고 애써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힘들었던 거구나, 하고 말이다. 평생 해야만 하는 이 부자연스러운 일을 어떻게 단번에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해낼 수 있겠는가. 이런 위로, 참 위안이 된다.

 

 

 

곤란해도 괜찮아  

 

 

   순박해 보이는 캐릭터 하나가 시선을 끈다. 유명 캐릭터 보노보노를 모티브로 하여 출간된 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표지를 보면 조개를 쥐고 있는 아기 해달의 순박함에 마음이 사로잡힌다. 간혹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는 이 만화를 흘리듯 본 적이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던 까닭에, 마냥 귀엽다기보다는 어쩐지 애잔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노보노는 곤란해질 것에 대해 미리부터 걱정을 하면서 사는 소심한 성격이다. 잘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친구들을 매우 좋아하고, 소심하기 때문에 소심한 마음을 이해할 줄 알며 걱정이 많은 만큼 정도 많아서 친구의 소중함을 잘 안다. 그래서 온갖 걱정을 다 하면서도 누군가에게 미움 받을 것 같다는 걱정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다. 함께 등장하는 너부리는 항상 밉상인 짓을 하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통찰력 있는 말을 던질 줄 알며, 매사 불평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따뜻한 마음씨를 드러내고 상대를 미워하거나 재단하지 않는다. 이처럼 만화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캐릭터들은 나와 우리 주변에 있는 어느 누군가들과 상당히 닮았다. 그래서 저자가 ‘우리는 모두 보노보노 같은 사람들’이라고 했나보다.

 

 

나는 도리도리를 이해한다.

나는 도리도리를 이해한다.

나도 계속 울기만 한 적이 있어서 잘 안다.

내가 운 이유는 배고프고 싶지 않은데 배고파지는 거랑

춥고 싶지 않은데 추워지는 거랑

무섭고 싶지 않은데 무서워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이었다. / 32p

 

 

   무엇보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이웃집 언니 같은 솔직담백한 언어가 매력적인 에세이다. 그녀의 친구, 사랑, 부모 사이의 관계에서 느낀 고민이나 어려움을 보노보노로부터 위로 받은 경험을 통해, 그녀처럼 어른이 되었으나 여전히 서툴기만 한 우리들에게 가벼운 넋두리 속에서 잔잔한 위로와 깊은 울림을 준다.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방송작가이자 다수의 에세이를 집필한 경험 덕분인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사사롭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들을 화두로 꺼내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위로는 내가 받고 싶은 위로’라던 첫 장의 내용이 퍽 마음에 와 닿는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곤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보노보노에게 야옹이 형이 무심코 툭, 내뱉은 말, 살아 있는 한 곤란하게 돼 있다고. 곤란하지 않게 사는 방법 따윈 결코 없다고. 언젠가는 그 곤란함도 끝날 거라며 마음껏 곤란해 할 시간을 마련해주는 야옹이의 모습은 억지로 자신과 타인을 위로하려들지 않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담담한 위로와 닮아있다.

 

 

 

 

 

완벽함보다는 충분함

 

 

   아이를 낳고 나서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에 대한 강박이 늘어났다. 유년시절에 내가 해보지 못한 것들을 아이에게 일찍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다 그렇겠지만, 하루를 심심하게 보내고 나면 그저 무의미하게 보낸 것만 같은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어쩌면 집에서 아이를 보는 일만 하는 탓에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만 같은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와 뭐라도 더 하면, 더 움직이면 무언가를 했다는 일종의 성취감으로 죄책감을 덜어낸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재미있는 일도 재미없는 일도 다 이 세상의 것’이라고, 오늘의 단조로웠던 일상이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것 이상으로 하고 있는 일을 매일 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대견한 일이라고. 매일 똑같은 일상의 육아생활에 지친 나와 오늘도 자신의 업과 새로운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내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주에서. 마음의 숲 출간)“

마치 나에게 들려주는 듯한 문장 앞에서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어떤 일을 매일 한다’는 말은 왜 이리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가. 지루함이나 숨 막힘 따위 안 느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계속해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한 일 아닌가. / 119p

 

 

 

 

 

 

   저자는 보노보노가 좋은 이유는 젠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심오한 이야기를 심오하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심오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특히 엉성한 번역체가 주는 느슨하고 여유로운 느낌으로 인해 슬렁슬렁, 살고 싶다던 그녀의 이야기에 공감을 느낀다. 만화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책에 수록된 단편들과 은은한 그림체만 보아도 가만가만 힐링이 되는 듯하다. 완벽하려 애쓰기보다 재미없는 것은 재미없는 대로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는 대로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충실하게 사는 삶을 살라고 말하는 보노보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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