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 오늘을 마지막 날로 정해두었습니다 -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오자와 다케토시 지음, 김향아 옮김 / 필름(Feelm)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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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나에게 물어오는 것들!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삶의 진지한 물음들!

 

 

 

  죽음을 앞둔 환자가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 호스피스 의료법 중에 존엄치료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환자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완화 치료의 한 방법으로자신의 인생이 본인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치료 기법이라 할 수 있다인생에서 가장 추억할 만한 일이 무엇인지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통해 환자가 스스로 인생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게 하는 방식이다이때 질문에 대답하려면 환자들은 자신의 다양한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는데막연하게 떠올려서는 정리되지 않는 생각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글로 쓰면 점차 윤곽이 또렷해진다고 한다덕분에 환자들은 자신이 살아온 의미를 깨닫거나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치료법이라 할 수 있다.

 

 

 

  25년 동안 3,500명이 넘는 환자들을 돌본 호스피스 의사 오자와 다케토시는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존엄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좋은 인생이었다고 수긍하며 평온하게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왔다고 한다하지만 매일 바쁜 나날을 살고 있는 우리는 좀처럼 자신의 인생관을 다시 살펴보거나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 알아차리지 못한다하지만 1년 후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 온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호스피스 환자들이 그러했듯인생의 마지막이라는 큰 고비가 다가오면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어 지금까지 몰랐던 인생의 의미와 자신이 살아온 이유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게 되지 않을까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가정하고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해보길 제안하며 앞으로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후회하지 않고 살기 위해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보게 한다.

 

 

 

인생의 마지막을 설정하면 일상이 변합니다.

모든 것이 소중해지죠.

하지만 그중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 29p

 

 

 



 

 

 

 

  책에 따르면, 2020년에 실시한 인생 만족도 조사에서 약 36%, 즉 3명 중 1명 이상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나 생활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한다특히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이전과 비교했을 때 생활 만족도가 큰 폭으로 낮아졌고생활의 즐거움과 사회와의 유대감 같은 분야에서도 감소폭이 매우 커졌다인생의 기쁨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이후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고아이들과 함께 외출을 자제하고 제한된 생활을 계속하게 되자 나 역시 잦은 무력감을 느끼곤 했다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자연 재해치솟는 물가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좁아지는 현실 등 다가올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욱 막막하게 했다.

 

 

 

  이에 저자는 앞으로 1년 후 나의 인생이 끝난다고 가정해보기를 제안한다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다보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분명 보일 것이라고 말이다. ‘내 인생에는 의미가 없어.’, ‘나에게는 가치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만약 1년 후 끝난다면?” 하고 가정해봄으로써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면지금까지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고정관념과 속박에서 해방되어 눈에 보이는 풍경이 변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한다어쩌면 성장 과정에서 잊거나 포기하거나 참을 수밖에 없던 일 중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또 인생이 앞으로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불필요한 일이 사라지고 현재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볼 수 있다고 한다그렇게 하면 수많은 해야 하는 일 중에서도 우선순위가 매겨지고 우선도가 낮은 일은 손에서 놓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게 되어 마음에도시간에도 여유가 생길 수 있다고.

 

 

 

나답다.”라는 것은 결코 좋은 모습,

원하는 모습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싫은 모습까지 포함한 모든 면이 나다움입니다.

다만 지나친 배려와 인내로 힘들다면

자신을 위한 시간을 조금씩 늘려 봅시다. / 95p

 

 

내가 하는 일과 일하는 방법이 누군가의 기쁨으로 이어지는지 꼭 돌아보세요만약 누군가의 기쁨으로 이어진다고 느낀다면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현재 일을 통해 일인칭 행복만 얻었다면 일하는 방법과 업무 내용을 어떻게 바꿔야 누군가의 기쁨으로 이어질지 생각해 봅시다. / 127p

 

 

인간에게는 미래를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자유가 있으며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꿈과 희망이 없으면

인간은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반대로 건강할 때도병과 죽음이라는

큰 괴로움을 안고 있을 때도

미래를 꿈꾸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됩니다. / 157p

 

 

 

  프랑스의 고생물학자이며 가톨릭 사제인 테야르 드 샤르댕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아름다운 자수를 뒤에서 보는 것과 같다.” 자수를 뒤에서 볼 때는 한 땀 한 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하지만 그것을 앞에서 보면 비로소 그 의미와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저자는 이 말을 통해 사람은 고통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배운다고 한다그가 만난 환자와 가족들은 처음에는 본인이나 가족이 큰 병에 걸린 사실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에 매우 힘들어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과 선함감사함일상의 위대함자연의 아름다움지금껏 살아온 의미와 존재의 가치 등을 점차 알게 되었다고 한다고통에 직면하기 전에는 몰랐던 것당연해서 놓쳤던 것들을 죽음에 직면하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그런 뜻에서 보면 죽음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나의 의미와 인생의 길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싶은가요나다움을 발견하셨나요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있나요호스피스 환자가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듯책에 수록된 삶에 대한 다채로운 질문들은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진지한 물음들이다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삶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자신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 이 책으로 하여금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들을 생각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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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 않은 사랑 - 사랑을 선택하면 가난해진다는 편견
주서윤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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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탈한 나의 하루를 응원하는 책!

나쁜 우연에 상처를 입을지라도 좋은 우연에 다시 회복될 수 있다!

 

 

 

  몇 달 전독서지도사 자격증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자격증을 딴 뒤 당장 독서지도사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일단 자격증이라도 따놓고 보자는 심정이었다고나 할까두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내고 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아니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책읽기와 글쓰기뿐인데그나마도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지체계적인 계획이나 지식이라고는 없는 내가 학생들을 제대로 지도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때문에 독서지도사란 무엇인지 미리 알아놔 두자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이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과연 내가 이걸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곤 했다좋아하는 것이 반드시 잘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는 않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나의 미숙함만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이런 고민을 지인들에게 토로하자, “네가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해서 그런 거야.” 하나같이 입을 맞춘 듯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나의 기준대로라면 결코 시작할 수 없다고, ‘잘 한다에 대한 기준이 높은 나머지 나의 부족함만 보이는 거라고아니다어쩌면 나는 정말로 완벽을 추구하려는 자가 아니라 그저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속은 사람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가난하지 않은 사랑』 속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있어도완벽한 사람은 없다완벽주의자들은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완벽히 속은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완벽해 보이는 데 나는 왜 이리도 부족한 것투성일까그런 생각들이 오히려 완벽주의자로 가장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그래사실 나는 진짜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완벽히 속은 사람이었던 거야하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진짜 완벽주의자도 아니면서 완벽주의자인 척 하는데 나의 감정과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오늘 하루 무탈하다면 그걸로 된 거야

 

 

 

  『가난하지 않은 사랑은 작은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고 싶은 주서윤 작가의 청춘 에세이다그녀는 사랑을 선택하면 가난해진다는 편견을 가진 세상을 향해 내가 사랑하는 걸 사랑한다라고 당당히 밝히며서로가 오해하지 않고 보다 나답게 살기를 희망한다그래서 그녀의 글에는 사랑할 때만 만날 수 있는 무수한 나날과 소소하지만 끝내 좌절하지 않는 우리네 일상과 꼭 닮은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따금 혼자 카페나 식당에 가면 옆 테이블의 일행들로부터 의자를 좀 빌려가도 되겠느냐는 부탁을 받을 때가 있다그녀 역시 2인용 식탁에 앉아 햄버거 세트를 먹고 있을 때 한 일행에게 의자를 빌려주었다고 한다남자 다섯 명이 북적북적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앞 테이블과 달리 그나마 빈 자리였던 의자마저도 없는 테이블이라니없어진 건 고작 의자 하나뿐인데 마음이 더 쓸쓸하고 허전해졌다고 한다누군가 곁에 있을 가능성까지 잃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그도 그럴 것이 탁자에 의자가 있는 이유는 누군가 앉을 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자의 부재로 확인받는 순간 느껴진 외로움이란 감각들그 헛헛한 마음을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무시로 느끼면서도 가볍게 생각할 때가 있다하긴우리 인간이란 이런 사소한 순간들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인데나는 그간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내 안의 감정들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하지는 않았는지 문득 반성해보게 된다.

 

 

내 취향은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이 좋아하지 않을 때 은근한 소외감을 느낀다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부끄러워할 때 은근한 수치심도 든다. / 22p

 

 

행복은 순간과 닮아있다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건 행복을 놓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예전 일기장에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행복한 삶이 아닌행복한 순간들에 집중하자.

불행에 민감한 것보다 행복에 민감한 게 훨씬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행복 센서를 조금 더 민감하게 작동해 봐야겠다일상에 묻어있는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 83p

 

 

 

  나 또한 그러했듯 그녀 역시 대부분의 문제 앞에서 내가 더 잘했더라면내가 더 신경 썼더라면’ 하고 자책하던 때가 있었다하지만 차츰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깨달아간다또 나쁜 우연에 상처를 입지만 좋은 우연에 회복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현실은 깰 수 없는 두꺼운 벽이었지만 떠올려보면 문은 언제나 벽에 있었고벽을 만났다는 건 곧 문을 만난 것과 같다고 긍정해보기도 한다무엇보다 나는 지구의 78억 명 중 한 명으로 태어났고나는 나라서 유일하다는 것능력이 있어야 가치 있는 게 아닌존재 자체가 유일하기에 가치 있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를 사랑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과거의 어느 한 장면과 그때 덮어두었던 나의 감정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했다나와 비슷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의 글을 읽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미래가 더 반짝일 그녀의 글을 이번엔 내 쪽에서 응원해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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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리커버)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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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글과 시를 낳아 다시 우리의 추운 삶을 견디게 하였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길어 올리는 따스한 문장들!

 

 

 

  “어딜 그렇게 열심히 가?”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채듯 나를 붙든다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이곳에서 마주칠 일이라고는 없을 것 같았던 지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지인은 나의 걸음이 너무 빠르다 못해 매몰차서 달려오면서도 몇 번이나 망설였다고 한다어딜 그렇게 바삐 가는지 붙잡아서 인사하는 것조차 실례가 될 것 같았다나내 걸음이 그렇게나 빨랐던가그때의 나는 사실 이렇다 할 약속이 있었던 게 아닌데도스스로 정해놓은 시간과 일정에 맞춰 움직이느라 걸음을 재우치고 있었다오전 몇 시까지 필요한 물건을 사놓고집에 와서 글을 쓴 후 오늘까지 하려던 일을 몇 시 안에 다 끝내야… 늘 머릿속으로 그날의 일정을 계산하고 그 계산대로 움직이는 편인 나는 꽤 자주 스스로를 몰아붙이곤 했다때문에 그날도 역시 목적지까지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걸었던 게 틀림없다.

 

 

 

  지인의 말을 듣고 난 이후 나는 그때서야 내 뒷모습이나의 걸음걸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타인에게는 느긋하게 해도 된다고 관대하게 말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내 성격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동안 뒷모습에서 드러나고 있었던 게 아닐까하고 말이다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느리게 걸어보기로 했다목적지를 향해 나를 몰아붙이기보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기웃거려보고 일부러 둘러 가보기도 하면서그리고 이제는 의식하지 않아도 제법 느릿한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아마도 그건 두 아이를 낳고 난 후부터였던 것 같다아이들을 중심으로 움직이다보니 내가 계획했던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기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아이들이 그 계획에 잘 따라주지 않을 때 유독 예민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그 뒤로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내려놓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했다뒷모습으로도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고, ‘빨리빨리라는 말보다는 기다릴게기다려줄게라는 말을 더 자주 할 수 있는 여유를 내게 주자고. ‘순간을 단숨에 지나치려 하지 않고모든 순간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순간이 나를 붙잡을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꽤 괜찮은 삶의 태도라던 고수리 작가의 말처럼.

 

 

 

어떤 순간에는,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기도 했다.

 

 

  지난 해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통해 모든 이야기가 절망에서 끝나버리지 않도록 잠시나마 손바닥에 머무는 조금의 온기 같은 이야기를 울더라도 씩씩하게 쓰려한 고수리 작가의 글을 아직도 기억한다불운한 가정사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삶이란 어떤 특별한 목표를 이뤄내는 것보다 평탄하게 이어가는 일이 더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기에 소소한 일상 속에서 삶의 중요한 가치를 길어 올릴 줄 아는 그녀의 문장은 참 따스하다추운 바깥을 떠도는 생명 하나에도 쉬 지나치지 못하는 세상의 다정함과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타인에게조차 잔잔한 애정을 느낄 줄 아는 그녀의 온기 어린 시선은에세이집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에서도 잘랑거리며 내 마음 속으로 흘러든다.

 

 

 

순간을 단숨에 지나치려 하지 않고모든 순간을 잡으려 애쓰지 않고순간이 나를 붙잡을 수 있도록 천천히 걸어가는 것은 꽤 괜찮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어쩌다 순간에 붙잡힌다 해도 좋을 일이다내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삶이 나를 살아가게 하기도 하니까어떤 순간에는살아 있음 그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기도 했다. / 21p

 

 

가까운 사이라서 더욱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날들마음이 마음에게 말했다다정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에게.

미안해하지 마.

잘 지내니.

많이 힘들지.

기운 내.

그런 말들이 소리도 없이 지나갔었다수국이 피던 계절에. / 31p

 

 

 

  우리는 이따금 이름 모를 타인이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예상치 못한 큰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고수리 작가가 열여덟 살이었을 때부모님과 헤어져 멀고 낯선 이모네 집으로 주소를 옮기고 기숙사 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그녀는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서를 적기 위해 이모네 집 관할 동사무소를 찾아야 했다부모님의 이혼으로 친권과 양육권이 어떻게 되었는지혼자 다른 곳에 떨어져 살게 된 자신의 행정 처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던 그녀는 신청서를 앞에 두고 어느 것 하나 적을 수 없었다동사무소 직원들은 다시 적어오라는 냉랭한 대답만 할 뿐이었고 괜히 주눅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 때금테 안경을 쓴 한 직원이 그녀에게 손짓했다그는 여느 직원들처럼 무뚝뚝해 보였지만 엄마와 이모를 번갈아 가며 통화하고 컴퓨터를 두드리며 뭔가를 검색한 뒤 신청서를 채워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그는 학교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 지 모르는 그녀를 걱정하며 자신의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실은 내가 다리 하나가 없었어.” 직원 아저씨는 다리가 없었노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며 가는 동안 내내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었다시종 유쾌하고 다정하게 그녀의 안부와 사정을 물어봐준 그는 그러니까 힘내서 살아라.”고 응원해주었다앞으로도 불행은 다가올 테지만그래도 힘내서 살면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겨우 주민등록증 하나 발급받는 일조차 힘겨워했던 그녀를자신의 불행을 어디에도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던 그녀를 위로해준 유일한 어른이었다덕분에 그녀는 살면서 위로라는 말을 마주칠 때 어김없이 그를 떠올렸다고 한다또 그 덕분에 어른이 된 그녀는 우리 사는 세상이 여전히 다정하다고 믿는다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옆자리 사람에게서거리에서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관공서에서내 곁을 스쳐 가는 수많은 타인에게 잔잔한 애정을 느낀다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우리는 사실누군가의 곁에 잠시 머물다 가는 신일지도무표정 속에 날개를 숨기고 걷는 천사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어쩌면 이런 믿음이 너와 나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아닐까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그 소박한 믿음이 우리를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건 아닐까.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은 올이 나갔다고 해서 밖에 내보이지 않으면 그만일 수 없다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따끔거린 날이 있었다그날 나는 그 마음을 입은 채로 돌아다녔다어깨를 펼 수 없고 대화할 수 없고 웃을 수 없었다상처받은 마음은 그렇게 티가 났다내색하지 않았어도 나와 마주친 사람들은 힐끔 쳐다보았을 것이다떼어주고 싶은 부스러기 같은가려주고 싶은 얼룩 같은정리해주고 싶은 보풀 같은 나의 마음을. / 86p

 

 

곧 사라질 소수언어 헤레로어에는 베바라사나(VEVARASANA)’라는 말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늘 통한다는 의미이다지금은 옆에 없지만 느낄 수 있다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이해할 수 있다이 소수언어가 사라진다 해도 나는 이 단어만은 기억하고 싶다베바라사나이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우리는 조금만 외로울 것이다견딜 수 있을 만큼 슬플 것이다만나지 못한다 해도 생각하고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 206p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커튼은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일화 중 하나다스물두 살 무렵대학생이 된 남동생과 사는 집으로 처음 엄마가 온 날이었다한쪽 벽면이 여러 개의 창문으로 뚫려 있는 원룸이었다서울에서 창문 있는 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어서 저렴한 가격에 좋은 집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웃풍이 어마어마하게 센 집이었다이사를 물릴 만큼 다녀본 엄마는 단박에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커튼이 있어야겠다고뜬금없이 한지와 유성 매직을 사 오라고 했다엄마는 방바닥에 한지를 깔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여기에 시를 쓰자.”

 

 

 

  세상에시 커튼이라니어떻게 한지에 시를 써 붙여 커튼을 만드실 생각을 했을까고수리 작가 특유의 감성은 아마도 엄마의 유산이 아니었을까쏟아질 것 같은 하늘그 아래 햇살을 머금은 한지 위에 까만 글자들이 어룽어룽 춤을 추는 공간시인이 열여덟에 썼다던 애틋한 연서가(황동규 <즐거운 편지>), 꽃 필 차례가 그대 앞에 있다는 위로가(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흰 당나귀 응앙응앙 우는 사랑의 풍경이(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내가 돌아누우며 네 손을 더듬어 찾는 줄 알라는 당부가(김용택 <>) 하늘에 걸려 있는 방매일 아침 눈을 뜨면 엄마와 동생의 손길이 닿은 시가 하늘에 걸려 있었던 나날들겨우 몇 줄의 문장에 불과한 글자들이 따뜻함이 되었을 순간들이 떠올라 나의 마음도 짜르르해진다덕분에 나는 나의 두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는 엄마가 될까를 생각해본다.

 

 

 

김용택의 <>을 다시 찾아 읽었다이불 속에 껴안고 누워 있던 우리 셋이 떠올랐다금세 서늘해진 공기에 거실 창문을 닫았다햇살은 이렇게나 따스한데 겨울은 아직 힘이 세다.

블라인드를 내렸다드르륵하얀 블라인드가 소리를 내며 내려왔다이 하얀 공간 위에 시가 쓰여 있었지그때 하늘에 걸려 있던 시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걸려 있던 거구나엄마가 우리에게 주었던 건추운 바람을 막아주는 커튼이 아니라 추운 삶의 견디게 해준 시였다. / 70p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사랑하라고미워하라고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어떤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에게 말을 건다쓰기 위해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내내 맴돌고 사무치다가 끝내 손끝으로 써지는 것이다누구에게나 그런 이야기 하나쯤은 있다쓰게 될 테지만 쓰기까지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결국 방법은 하나뿐계속해서 쓸 수밖에 없다. / 111p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서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든 생각이라고 한다이 문장을 읽으니 문득 학창시절 아빠가 나에게 줄곧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빠는 공부를 잘 했지만 일찍 돈을 벌어야 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어.”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학업 능력이 상당히 우수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그리고 그때 하지 못한 공부가 미련이 남아서 딸인 나에게 기대가 컸다나는 내내 아빠의 꿈을 짐처럼 짊어지고 살았다아빠의 꿈을 이뤄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까지그래서 나는 부모가 이루지 못한 것을 대신 자식을 빌어 꿈꾸게 하지는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그런데 내가 막상 부모가 되어 보니 아빠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꾸게 하려는 게 아니라 어쩌면 나의 약한 점을 닮지 않기를나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래서 이제는 어느 작가가 SNS에 올렸다던 글귀처럼 가 아닌 너는 자라 네가 되어라고 빌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사는 세계는 이토록 아름답고 경이롭단다그 안에서 너는 자유롭게 살아온전히 너 자신으로 자라렴’ 하고 격려해주고그저 아이를 믿고 껴안아 줄 유일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나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고유한 나로 살기를 바랐던 것처럼내 아이도 고유한 그 자신으로 살 수 있기를 응원해주어야겠다고.

 

 

 




 

 

 

 

  에세이가 지닌 힘은 이런 건가 보다당신의 삶을 빌어 내 삶을 바라보는 것고수리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내 삶의 어떤 장면과 순간들이 떠올라 잠시 읽기를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게 된다그리고 새로운 다짐과 함께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그래서 지금가장 추운 곳에서 나를 데워줄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가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내내 안녕하시라는 안부와 함께.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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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내러티브 - 더 이상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하마모토 다카시 지음, 박정연 옮김, 이정민 감수 / 효형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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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고 신비한 신데렐라 백과사전!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 너머의 세상을 통찰하는 시간!

 

 

 

  아름다운 드레스와 유리 구두를 신고 화려한 무도회에서 춤을 추는 신데렐라밤 12시가 되면 요정의 마법은 사라지지만잃어버린 유리 구두를 되찾고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된다는 내용의 이 동화책을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이른바 신데렐라 서사로 지칭되는 플롯의 기본 구조는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등의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각색되며 회자되고 있다백마 탄 왕자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고 성 평등에 관한 왜곡된 시각을 지니게 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우리가 계속해서 신데렐라 이야기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학민속학신화학문화인류학적 시각에서 바라본 신데렐라 이야기

 

 

  『신데렐라 내러티브는 신데렐라에 관한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신데렐라 서사의 원형을 탐색하고다양한 문화권에서 나타난 신데렐라 서사의 독특한 특징과 역사와의 연관성을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왜 이토록 오랫동안 신데렐라 이야기에 열광하는지 그 이유에 다가간다먼저 책에서는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서사로 알려진 고대 이집트의 로도피스의 신발에서부터 신데렐라 서사의 원조가 유럽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샹드리용그림형제 판 신데렐라 이야기 재투성이미국판 신데렐라로 아메리칸 드림과 연결되어 전 세계에 널리 정착하게 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신데렐라 서사의 다양한 유형을 추적해나간다뿐만 아니라 아라비안 나이트』 속의 신데렐라 이야기인 발 장식 이야기유럽이 아니라 아시아 발상설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을 짐작케 하는 중국의 예시엔과 베트남의 떰과 깜우리나라의 콩쥐 팥쥐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속에서 발견되는 신데렐라 서사의 유형도 함께 살펴본다.

 

 

 

부모를 잃고 차별받으며 의지할 데 없던 유대인 소녀는 고난을 이겨 내고 막강한 왕의 아내가 된다이 이야기는 성경판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다유대인들의 고난은 신데렐라 서사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역경과 비슷하게 느껴진다그러나 에스델의 진의는 왕비의 지위와 명예를 얻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신의 뜻을 받아 유대인을 구제하는 데에 있었다. ‘(에스델)’이라는 이름답게 에스델은 유대인의 희망이었다. / 33p

 

 

샹드리용은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불우한 신세가 되었지만 계모와 의붓자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간다그러다 요정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데이 조력자는 대모였다고 설명한다중세 이후의 유럽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세례 의식을 받았고 이때 부모 외에 아이를 돌볼 대부와 대모를 정했다출산 후 산모가 사망하거나 병에 걸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이런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 요정 대모가 탄생했다. / 49p

 

 

 




 

 

 

 

  저자는 고대 이집트에서 유럽아시아에 걸쳐 나타나는 신데렐라 서사를 분석하면서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다르지만 상당히 공통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계모의 학대주인공의 시련조력자의 등장비현실적인 무도회신부 시험결혼해피엔딩이 그러하다흥미롭게도 이들 구조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으면 신데렐라가 단순히 허구가 아니라 당대의 생활과 풍습을 고스란히 반영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가령 주인공이 어머니를 일찍 여의는 장면은 이른 나이에 사망하는 일이 잦았던 과거의 상황을 보여준다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흔들린 가족관계 속에서 가장은 결핍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재혼하게 되고이때부터 가족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며 계모의 학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주인공은 대체로 요리와 바느질을 하고 콩껍질을 까는 등 하녀처럼 혹독하게 일하는 처지에 몰린다여러 문화권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재를 뒤집어쓰고 일한다는 의미의 재투성이에서 유래된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주로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력자는 요정나무물고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특정 문화권의 종교관이나 토착 애니미즘을 대변하는 존재들임을 알 수 있다한편잃어버린 구두의 주인을 찾는 장면은 일종의 신부 시험에 해당한다구두즉 신발은 오래전부터 결혼의 상징으로써 주인공에게 나머지 구두 한 짝이 돌아오게 되면 이야기 속 남녀는 완벽한 한 쌍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결혼으로써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 역시 각자 혼자일 때는 불완전하지만 결혼을 통해 완전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이 반영된 결과물이다결혼을 자연의 섭리이자 다음 세대를 이을 자손을 만들어 내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인류에게 필요한 가장 근원적인 행위라 여긴 것이다.

 

 

 

샹드리용에서도 신발이 결혼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그런데 많은 구두 중에서 왜 하필 유리구두여야 했을까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대표적으로 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의 비판이 유명한데그는 페로가 동화를 개편할 때 원작에 쓰여 있던 다람쥐 모피vair’를 같은 발음인 유리verre’로 잘못 썼다고 주장했다다람쥐 모피는 왕비만 신을 수 있었던 값비싼 구두 재료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대로라면 구두는 샹드리용이 고귀한 신분임을 암시하는 요소라고 해석할 수 있다. / 51p

 

 

크리스트교의 가면 규제에 따라 신데렐라 서사도 영향을 받는다아무리 군중이 가면을 사랑한다고는 해도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등장시킬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이때 가면 모티브를 은근히 감추는 요소로써 변신이라는 장치를 고안해 낸 결과가 바로 페로의 샹드리옹이었다.

(페로는 가면극을 변신 이야기로 교묘하게 가장했다페로는 궁중에서 시중을 들었기 때문에 궁중인을 비롯한 민중이 얼마나 가면을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며 동시에 크리스트교가 가면을 싫어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 덕분에 사람들은 신데렐라 서사를 가면극처럼 즐길 수 있었다. / 181p

 

 

 

  그런데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어째서 이토록 비슷한 구조를 가지게 된 것일까저자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인류즉 호모 사피엔스의 대이동에서 그 이유를 발견한다인류의 관점에서 보면 아프리카에서 나와 세계 각지로 대이동을 할 때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거듭 행복을 추구하는 고대인들의 꿈과 희망의 과정이 신데렐라 서사 구조를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어머니의 죽음계모의 구박고단한 생활초능력을 가진 조력자의 등장그리고 고귀한 존재와의 결합이라는 해피엔딩 스토리는 간단히 말해서 곤경에서 탈출해 행복해지고자 하는 인류의 오랜 희망과 염원이 반영되었음을 의미한다다만 빠르게 수정되고 퍼지는 언어의 특성상 특정 지역과 세계관에 맞추어 변형되기 쉬웠는데엄밀히 말하자면 각 시대적 특성과 신화적 발상종교적 관습문화상을 반영하여 각 나라마다 신데렐라 서사에서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신데렐라 내러티브는 전 세계의 다양한 신데렐라 이야기를 살펴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문화인류학민속학종교학역사학 등의 관점을 통해 신데렐라 이야기를 새롭게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결혼이라는 환상여성의 자립과 거리가 먼 남성 의존증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젠더론적 비판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왜 여전히 신데렐라 서사가 매력을 잃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지 되새겨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특별한 가치가 있다행복해지고 싶은 욕구꿈과 이상을 향한 동경그 오랜 인류의 염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어떠한 형태로든 계속되지 않을까어쩌면 그건 이야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중요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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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걷힌 자리엔
홍우림(젤리빈) 지음 / 흐름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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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상처를 내내 움켜쥐고 있으면 어둠 너머의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판타지이나 과거의 과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인들의 삶을 매우 현실감 있게 그려낸 작품!

 

 

 

  1900년대 초 경성점차 가혹해지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과거와 현재 그리고 시대의 아픔과 의지가 한 데로 뒤섞인 격동의 시대안국정(안국동큰길을 따라 한 골목 들어가면 오월중개소라 불리는 올리브색 2층 양옥 건물이 있다주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중개하는 상점으로 알려져 있지만여기에는 보통 사람들은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최두겸이 있다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기이한 고민이 있거나 곤란을 겪을 때면 그를 찾아온다신이라 불리는 자들과 영물들억울함을 달랠 길이 없어 저승에도 가지 못하는 원혼들까지.

 

 

 

당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있나요?

그렇다면 오월중개소를 찾아가보세요.

 

 

  경성 외곽유독 화려해 보이는 어느 대저택에서 수상쩍은 모임 하나가 열린다. ‘저절로 움직이는’ ‘한밤중에 흐느끼는 소리’ ‘이유 없는 열병…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란 게 보통 예사로운 게 아니다참가자가 기이한 사연이 얽힌 물건을 소개하면 사례금을 주고가장 흥미로운 사연을 지닌 물건을 가져온 이에겐 상금을 수여하는 행사로이른바 <괴기 물건 대회>라는 이름의 모임을 주최한 이는 젊은 사업가 장영주다이 날 장영주의 소개에 따라 앞에 나선 김천호라는 청년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범 잡아먹는 함이란 별칭이 지닌 오래된 함 하나를 선보인다그는 함에 얽힌 소름끼치는 전설과 함께 부모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금기사항에 대해 이야기한다첫째함에 모신 신을 극진이 모실 것둘째신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신의 내력을 말하지 말 것하지만 금기를 무시한 탓일까청중들 앞에서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김천호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얼굴을 시작으로 온몸에 멍이 찍히더니 비틀거리기 시작한다엉거주춤 얼어붙었던 손님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김천호는 피를 토하며 뻣뻣한 통나무처럼 굳어 바닥에 쓰러진다.

 

 

 

  장영주가 보낸 자동차를 타고 두겸이 장 씨 저택에 도착한 건 자정이었다두겸은 천천히 함이 들어 있는 응접실 안에서 김천호가 말한 이 아니라 험한 죽음을 맞은 한 여자의 원혼을 마주한다함에 묶인 이 원혼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그대로 저주로 돌려준 게 분명했다심지어 원혼은 두겸에게도 살을 날리지만 이 원혼의 오랜 고통이 무엇인지왜 이 함에 묶이게 되었는지 사연을 들려주어야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망설임 끝에 원혼은 두겸에게 개갈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개갈촌은 사냥꾼들의 마을로그곳의 부는 사냥에서 왔고 사냥은 하늘에서 내려준 붉은 눈썹을 가진 남자들만의 권리였다큰 짐승들이 사는 윗산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오로지 눈썹 붉은 개갈촌 남자들뿐이었다외지인여자검은 눈썹의 남자들이 들어가면 산이 노하신다부정에 노한 산은 사냥꾼들을 잡아먹는다는 게 이유였다그것은 사냥이 유일한 부를 쌓는 수간인 마을에서 사냥을 소수끼리 독점하려는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금기였다하지만 부를 독점하다시피 하는 사냥꾼들과 달리 늘 곤궁에 시달렸던 어정은 죽은 아버지가 가르쳐줬던 총 쏘는 법을 몰래 익혀 사냥을 시도하려 했다그리고 때를 봐서 사람들에게 누구나 사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사냥꾼들만이 아닌우리 모두 귀한 사람이며 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하지만 이 계획을 눈치 챈 촌장이 일을 꾸몄고어정은 금기를 깨 신을 노하게 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발길질에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두겸은 어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린 듯 싸늘해진다개갈촌의 붉은 눈썹 사내들이 하는 짓이 꼭 조선의 양반 지배층들이 하는 행동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양반들 외엔 인간 취급도 하지 않겠다는 그들만의 규칙을 만들어놓고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양반 될 기회까지 철저히 차단해 원하는 것마저도 죄악으로 만들어버린 시절이었으니까이 외에도 뿌리 깊은 악습과 부당함에 희생당한 자들의 회환은 소설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사내로 태어났으나 반골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자로 키워진 고오가 그러했고몸이 아팠던 것인데 귀신에 들린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로 인해 우물에 내던져진 두겸의 동생도 그러했다바다에 빠져 죽은 어부들의 념인 구앙을 물리치기 위해 대대로 자신의 몸을 바쳐야 했던 무녀도 마찬가지였다.

 

 

 

두겸은 고오의 손을 바라보았다거친 손이지만 젊다작게는 오 씨 가문의크게는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뿌리 깊이 뒤틀린 가부장제에 오고오는 보란 듯이 커다란 한 방을 먹였다그러나 그것이 과연 통쾌한 것이었을까속 시원한 승리였을까아니그랬을 리 없다지금 오고오는 젊디젊은 모습으로 혼령이 되어 내 앞에 있지 않나원통함에 저승으로 넘어가지도 못하고. / 38p

 

 

바람()은 강력하단다.”

은자는 얼핏손님에게서 기쁨을 읽었다.

원망 하나원망 둘원망 셋바람이 모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 89p

 

 

도망친 정이 누님이 붙잡혀 왔을 때 사람들은 누님이 귀신 들린 꽃신 때문에 미쳐서 도망쳤다고 했다그러나 실상은 남편의 잦은 주먹질 때문이었다그가 걸핏하면 누님을 죽도록 두들겨 패는 걸 마을 사람들도 모르지 않았다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사람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왜 애꿎은 식칼이며 꽃신을 탓하는 것인지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고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말했을 뿐인데그래서 소년은 마을의 눈엣가시 같은 아이였다. / 115p

 

 

 




 

 

 

 

  소설을 읽다보면 귀신’, ‘영물을 소재로 한 흥미 위주의 기담집이 아닌개화기를 맞은 경성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과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인들의 삶을 매우 현실감 있게 그려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원혼들이 품은 한은 한 개인의 사적인 염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악이라는 사실에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진다하지만 시작은 죄책감이었을망정 네 아이를 거두어 살린 온내가 있었고작은 짐승인 담비를 거두고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는 보살님들이 있었으며대철을 미워하면서도 그의 죽음에 대해 괴로워하던 은자와 소작제 개선을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추진하던 조기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어둠이 걷힌 뒤에 다가올 빛을 볼 수 있는 법이다그들은 보이지 않지만 더 나은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 믿고 세상과 화해했다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해내왔어요정말 느리지만 우리는우리 중 누군가들은… 아주 천천히 혐오와 차별그리고 폭력과 맞서 왔어요제가 사는 세상은제 아이들이 사는 세상과 다를 테고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또 다를 겁니다.” 라던 두겸의 말을 믿고서.

 

 

 

비구니는 여러 해에 걸쳐 피폐해진 전국을 떠돌며 사람들을 구했다비구니가 살았던 당시엔 다려가귀라는 악귀가 많았다그것은 죽은 이가 하도 많아 피와 원념한숨이 깊이 서린 땅에서 솟아난 것들로원혼을 넘어서 사람을 해치는 악귀가 된 것이었다그것은 땅 아래서 불쑥 나타나 사람들을 끌고 들어갔다다려가귀로 인해 사람들이 떠나간 지역들은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폐촌이 됨으로써 수탈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많은 백성들에게는 가혹한 관리가 다려가귀보다 무서웠던 것이다. / 293p

 

 

 



 

 

 

 

  불안과 상처를 내내 움켜쥐고 있으면 어둠 너머의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때로는 불가항력의 고통에 어쩔 수 없이 휘말릴 때도 있지만내 안의 어둠을 걷어낼 수 있는 의지만은 나에게 있다카카오웹툰에서 누적 조회수 2천만 뷰를 기록한 동명 웹툰을 소설로 각색한 작품이라 해서 그냥 가볍게 읽기 좋은 작품일 거라 생각했는데사연 하나하나에 담긴 메시지가 꽤나 묵직하게 다가왔다드라마 같은 제3의 작품으로도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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