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 게임 - ‘좋아요’와 마녀사냥, 혐오와 폭력 이면의 절대적인 본능에 대하여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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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하는 게임의 총합이다!

지위 욕구를 주제로 인간의 본성과 행동을 탐구한 매력적인 책!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는 물질만능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허망한 꿈을 좇는 윌리 로먼이 등장한다번쩍이는 차와 새 집전도유망한 아들 둔 그는 세일즈맨으로 계속해서 승승장구할 줄 알았지만대공황 이후 미국 전역에 퍼진 불황이 그의 목을 죄어온다그의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방금 왕이 걸어 나가시는 걸 본 거요고난을 겪는 훌륭한 왕이죠열심히 일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왕이요무슨 말인지 알아요?” 직업적 성공은 경제적으로는 부를가정에서는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지위를 주었지만 그것을 잃으면 실패는 곧 죽음이라는 자본주의 시대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윌리 로먼이라는 옷을 껴입고 산다직업적 성공뿐만이 아니다명성을, ‘좋아요영향력을 지위의 상징으로 삼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이에 대해 지위 게임의 저자 윌 스토는 우리는 본능적으로 관계를 맺고 지위를 얻으려 한다집단에 수용되고 집단 안에서 지위를 얻으려 한다이것은 인간의 본성이다이것이 인생의 게임이다.”고 말한다대체 우리는 왜 이토록 열심히 지위를 좇는 것일까지위로 평가받는 데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남들을 지위로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이 책은 지위가 인간의 기본 욕구라는 개념에서 출발하여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로서 지위 욕구의 속성을 면밀히 탐구해보고자 한다나아가 지위 게임이 우리의 일상을 비롯해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되어왔는지 살펴본다이는 지위 게임에 휘둘리지 않음으로써 인생을 보다 균형감 있게 살아가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게임의 총합이다

 

 

  지위란사람들이 우리를 추종하거나 존경하거나 추앙하거나 칭찬하거나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도록 허락해주는 상태를 일컫는다이런 상태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하며 이것을 좇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윌 스토는 인간이 어디서든 상징적인 지위 게임을 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존재라 정의한다그도 그럴 것이 인류가 수렵채집의 생활 방식과 부족 집단을 형성된 이래로 생존 가능성과 번식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더 높은 사회적 지위가 요구된 것은 물론집단이 커질수록 타인의 인정과 칭찬으로 얻은 명성 또한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이는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으로 살아남아 우리의 잠재의식과 뇌 속에, DNA양육방식에문화에 새겨져 지위 게임은 그 자체로 우리의 정체성이 된다.

 

 

 

연구자들은 지위를 직접적이라기보다는 궁극적’ 추동이라고 부른다말하자면 일종의 동기의 어머니로서 진화 과정에서 자연선택으로 살아남아 뇌에 새겨진 다른 많은 하위 신념과 행동의 기원인 셈이다. / 19p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는 평가와 판단의 대상이 된다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가 우리에게 중요하다어떤 심리학 연구든 지위와 안녕감이 강력히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123개국 6만 명 이상을 조사한 연구에서 안녕감은 항상 남들에게 존중받는 정도에 달려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지위를 얻거나 잃는 것은 장기간에 걸친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가장 강력한 예측 요인이었다. / 29p

 

 

신경학자 소피 스콧 교수는 지각에는 제로 지점이 없다세계에 대한 절대적 진리를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므로 모두 상대적이라고 말한다따라서 지위 탐지 체계는 경쟁 방식으로 작동한다연구에 따르면 뇌의 보상 체계는 절대적 보상보다 상대적 보상이 주어질 때 가장 많이 활성화된다우리는 그냥 더 많이 얻을 때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보다 더 많이 얻을 때 가장 행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48p

 

 

 



 

 

 

 

  책은 지위 게임이 작동하는 방식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이를 테면 국가의 지위가 개인의 행복에 끼치는 사례는 영국 작가 로리 리가 1920년대의 교실을 회고한 글에서 엿볼 수 있다그 시절 자신들은 지독하게 가난했지만 교실 벽에 붙은 세계지도 속에 그들 제국이 점령한 식민지가 붉게 표시된 것을 보며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집단이 지위 경쟁에서 승리하면 우리도 승리하고우리 집단이 패하면 우리도 패한다.” 우리 집단이 많이 가질수록 우리에게 돌아오는 상도 크다는 이러한 인식은 집단 이기주의나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위 게임의 문제점을 보여준다.

 

 

 

  한편 영국 내전이나 프랑스 혁명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혁명과 시위는 게임에 기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 여파로 혼란의 역사가 시작되는 현상을 확인시켜준다사이비 종교마녀사냥나치 역시 가장 경직된 형태의 지위 게임으로게임이 경직되면 그 게임이 세상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도 경직될 수 있음을 또렷이 보여준다지위 게임의 위력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SNS에서도 나타난다. 2019년에 미국의 스마트폰 이용자 약 200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이용자들이 스마트폰을 하루 평균 96대략 10분에 한 번꼴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다그만큼 우리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고 SNS의 좋아요’ 수를 확인하며 의식적으로 피드를 장식할 만한 콘텐츠를 찾아 나선다그렇게 우리는 매일실시간으로 스마트폰과 SNS의 지위 게임에 노출되어 있지만 더 많은 팔로워 수와 높은 인지도를 좇으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보이게끔 연출하는 일에 소홀하기란 쉽지 않다.

 

 

 

온라인 군중은 희생자를 설득해서 자기네 쪽으로 포섭하려 하지 않는다희생자의 지위와 상징을 최대한 제거하려 하고가장 이상적인 목표로 평판을 죽이려 한다명성의 게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살인 방법이다말소의 궁극적인 표적은 그 당사자가 아니라 그의 신념이다. / 242p

 

 

우리는 지위 게임의 기준이 될 만한 규칙과 상징을 찾으려 한다적합하고 올바르게 보이는 기준을 발견하면 그 안의 이야기가 아무리 난폭해 보여도 순순히 받아들인다악마 사냥꾼들도백신을 반대하는 어머니들도폰페이섬에서 참마를 기르는 남자들도, ISIS온라인 군중도세계 각지에서 종교를 믿는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 269p

 

 

앞서 보았듯이 인생의 게임에는 숨은 규칙과 함정이 있다우리가 사회적 존재로 살면서 마주하는 온갖 문제는 결국 현실과 환상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발생한다뇌의 속임수로 우리는 우리 집단의 신화와 편견을 믿고스스로 게임의 플레이어가 아니라 이야기의 도덕적 영웅이라고 믿는다그래서 인간은 오만하고 공격적이고 쉽게 착각에 빠진다우리는 끝없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우리 자신과 게임을 위해 성자와 악마와 비이성적 신념이 요동치는 자기중심적이고 동기를 자극하는 꿈을 만들어낸다. / 394p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승리하든 지위 게임에서 절대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다만 저자는 우리가 지위를 얻는 방식을 관찰하면 우리의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파악할 수 있으며 거기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내가 참여하는 게임이 게임 안에서든 밖에서든 사람들에게 게임의 규칙과 상징에 순응하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내가 참여한 게임이 자기 집단만 신성시하고 공동의 적을 악마화한 것은 아닌지나의 게임이 대체로 남의 불행에 기뻐하는 마음을 동반하며 타인의 삶을 해롭게 하거나 파괴하려 하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나는 남들을 판단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을까그래서 얻은 지위라는 게 얼마나 허황되고 얄팍한 것인지 점검하며새로운 지위의 상징이 출현할 때마다 그것을 의식하며 누구도 세상의 모든 사람과 경쟁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떠올려보는 거다.

 

 

 

  아울러 인간을 지위의 맥락에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비롯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근거들을 마련할 수 있다이기주의차별배제혐오가 만연하는 세상에서 그 안에서 지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순응이 아닌 거리 두는 법을 선택할 수 있다어쩌면 현대인에게 있어서 지위 게임은 매일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르겠다중요한 것은 지위 게임의 승자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보듬어주는 일이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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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뷰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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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지만 이 묵직함이 좋다!

스파이 소설의 대가가 쓴 유작이자 전직 요원 출신이 쓴 굉장히 사실적인 느낌의 스파이 소설!

 

 

 

  마감을 앞둔 시각챙이 넓은 홈부르크 모자를 쓴 60대 사내가 서점 안으로 들어선다잘 나가는 증권 중개인이었던 줄리언이 런던에서의 화려한 도시 생활을 접고 작은 해변 마을에 서점을 연 지 두 달쯤 된 어느 날이었다목소리가 중후한억양에서는 살짝 이국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은발의 사내는 줄리언에게 호감을 드러내며 서점 이곳저곳에 관심을 보인다그는 자신의 이름을 에드워드 에이번이라 소개한 뒤 지금은 은퇴한 영국이 남긴 잡동사니’ 쯤으로 해두자는 엉뚱한 말을 남긴 뒤 사라진다그저 참견하기 좋아하는 동네 노인이겠거니 했던 줄리언은 다음 날 다시 그와 만난 자리에서 돌아가신 부친과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친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는 그의 선의에 마음이 움직였던 걸까실버뷰라 불리는 집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돌보고 있다는 그의 처지가 신경 쓰였던 걸까줄리언은 비어있는 서점 지하에 대중을 위한 문화 공화국을 마련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에드워드의 의견을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알게 모르게 그를 의지하게 된다그러던 어느 날런던으로 가서 한 여성에게 자신의 편지를 전해달라는 은밀한 부탁을 받는다.

 

 

 

벨사이즈파크 지하역 맞은편의 에브리맨 극장.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 한 권으로 신분을 확인할 것.

제발트를 보고 접근하면 자연스레 편지를 건네주고 나올 것.

 

 

 

  아내 몰래 관계를 유지했던 여성에게 편지를 전해주라니죽어가는 아내를 두고 이게 웬 터무니없는 일인가 싶으면서도 줄리언은 에드워드의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런던으로 향한다하지만 이날을 계기로 자신도 모르게 에드워드의 비밀스러운 일에 가담하게 된 줄리언은 국가안보 수장이자 스파이캐처 팀장인 스튜어트 프록터의 주시를 받게 된다이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줄리언은 에드워드의 가족과도 가까워지고한편에서는 스튜어트가 에드워드의 과거를 비롯해 그를 둘러싼 모든 인물과 접촉하며 포위망을 좁혀 온다플로리안테디에드바르… 이름도직업도 분명치 않은 에드워드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어째서 국가안보 수장인 스튜어트가 에드워드를 쫓는 것일까그렇게 소설은 온통 의문투성이인 남자 에드워드를 둘러싼 비밀에 서서히 다가가고마침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에드워드의 기분이 요동칠 때마다 목소리도 들쑥날쑥했다낭랑했다가 가벼웠다가 때로는 소위 신사 계급의 전통적인 억양까지 오락가락했다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어디까지가 진짜 모습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저런 억양은 어디에서 배운 걸까저렇게 말할 때는 누굴 흉내 내는 거지물론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지금 고통받는 사람에게 도움과 위로를 제공하는 중이 아니던가그가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듯이 도시에서 온 청년이 아버지와의 인연으로 얘기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보답으로 에드워드 또한 줄리언에게 무료로 전문적 조언과 가르침을 전해주었다더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 100p

 

 

에드워드는 홈부르크모자 아래 은발을 휘날리며 다시 한번 폭풍우 속으로 떠나버렸다줄리언은 카운터로 향했다.

오믈렛이 맛이 없었나 봐요.”

정말 최고였습니다양이 많았을 뿐이죠그런데 죄송하지만 두 분이 조금 전 어느 나라 말로 대화를 하셨죠?”

에드바르하고?”

에드바르.”

폴란드어예요에드바르착한 폴란드인몰랐나요?” / 39p

 

 

 



 

 

 

 

  『실버뷰는 영국 첩보원 출신이자 스파이 소설의 대가인 존 르 카레의 유작이다첫 장편소설 죽은 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비롯해 이어지는 여러 편의 소설에서 주로 동서 냉전기를 배경으로 한 스파이의 활약상과 그들의 내밀한 세계를 담았던 작가는 이번 마지막 작품에서도 스파이들을 주인공으로 한다한때는 학자였지만 지금은 죽어가는 아내를 돌보는 평범한 노인인 줄 알았던 남자가 실은 전직 요원 출신이었던 사실이 밝혀지며 그가 지닌 비밀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다만 이 소설은 거대한 사건을 둘러싼 스파이의 활약상이나 스릴러 같은 전형적인 스파이 소설과는 다소 결이 다른 듯하다냉전 직후 일관된 외교정책이 부재한 상태에서 스파이 조직은 정당성을 위협받고 내부에서는 잦은 와해와 알력 다툼이 빚어진다한편에서는 조직과 조국을 향한 충성심만으로 늘 감시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요원으로서의 삶에 회한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이렇듯 소설은 우리가 이제껏 그려왔던 스파이가 아닌비밀과 배신 그리고 음모에 노출되어 있는 삶과 자유롭게 살며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스파이들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무엇보다 나는 이 소설이 스파이를 둔 가족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평생을 비밀 속에서 살아야했던 부모를 둔 자녀는 부모가 죽어서도 마음대로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훈장 하나 걸지 못하는 처지에 마냥 슬퍼할 수밖에 없다집에 도청 장치가 없는지 늘 신경을 써야 하고부모가 서로 제대로 된 진실을 단 한번이라도 나눈 적이 있을지 의심스럽다설령 가족일지라도 스파이들의 세계는 서로 공유하는 비밀이 아니라서로 감추는 비밀이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줄리언의 말에서우리는 그 어느 소설에서도 본 적이 없는 가장 현실적인 스파이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지역 분과위원회가 두어 개 있네구소련 러시아가 하나를 운영하지예전엔 동남아시아가 있었지어느 시점까지는 중동도 계속 돌렸어.”

어느 시점?”

부시-블레어 시대그땐 최고였지그러다가 미국 대통령이 순한 맛으로 변한 다음부터 지지부진해졌네.” / 83p

 

 

아빠 말이 엄마가 무덤에 오지 말라고 했대내가 그랬어아빠가 안 가면 나도 안 갈 거야줄리언도대체 두 사람이 왜 저렇게 된 걸까? / 226p

 

 

다들 짐작하는 대로라네부국장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중동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미국의 결단자기들이 벌인 전쟁의 결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습관냉전의 유물로서의 나토와 그 폐해배짱도 지휘관도 없이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영국영국은 위대함을 꿈꾸지만 그건 달리 어떤 꿈을 꾸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묘사했더군.” / 250p

 

 

 




 

 

 

 

  사실 장르 소설임을 감안하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암호화된 듯 난해한 대화스파이 조직 내부에서 사용할 법한 표현은 몇 번이고 되짚어 읽게 된다보스니아 전쟁을 비롯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하지만 스파이 소설의 대가가 쓴 유작이자 전직 요원 출신이 쓴 굉장히 사실적인 느낌의 스파이 소설로비슷한 소설에서 느낄 수 없었던 긴 여운과 남다른 감흥을 준다그리고 계속해서 그의 전작들을 거슬러 올라가고픈 욕심이 생긴다존 르 카레의 작품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지금이라도 존 르 카레의 작품을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소설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여담이지만에드워드가 추천한 토성의 고리가 자꾸 생각날 것 같다얼른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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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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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멋과 정취를 담은 그 시절 진짜’ 조선을 만나다!

작품을 맛있게 설명해주는 고미술계 최고의 해설가와 떠나는 조선 미술 여행!

 

 

 

 

  『조선 미술관은 고미술계 최고의 해설가인 탁현규가 17~18세기 문화 절정기 속 조선의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를 엮어낸 책이다저자는 풍속화가 사생활이라면 기록화는 공공생활이고 풍속화가 드라마라면 기록화는 다큐멘터리라 표현하며시대를 읽어내는 중요한 단서이자 당대의 생활과 문화를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사료로 이들의 가치에 주목한다무엇보다 조선의 문화 절정기라 불리는 17~18세기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 고유의 색을 문화 전반에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놀라운 관찰력과 묘사력을 갖춘 당대의 뛰어난 화가들이 자신의 붓끝으로 담아낸 조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백성들의 다채로운 일상부터 왕실의 경사스러운 행사까지조선의 멋과 정취를 담은 그 시절 진짜’ 조선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따라가 보자.

 

 

 

조선의 멋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미술관

 

 

  부채를 손에 든 선비가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운다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버드나무를 바라보니 가지 위해 주황색 새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들고 울고 있다가만 보니 모든 새들 가운데 울음소리가 가장 아름답다는 꾀꼬리다그러니 아무리 바빠도 걸음을 멈출 수밖에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번째 꾀꼬리가 오른쪽 아래 잘린 둥치 위로 고개를 빼꼼히 내놓고 첫 번째 꾀꼬리와 호응하고 있다그야말로 선비에겐 눈 호강귀 호강이 따로 없다하지만 나의 시선을 더욱 사로잡는 것은 아무래도 이 그림의 주인공인 선비다호젓한 강둑 어귀에서 지저귀는 새의 노랫소리에 마음을 뺏긴 선비의 호기심어린 표정과 여유로운 몸가짐이 내 바쁜 마음을 붙들고어쩐지 너 거기서 저 꾀꼬리를 좀 보아라.” 하는 것 같다.

 

 

 


 

 

 

  이렇듯 감상자의 마음까지 단번에 동화시키는 이 풍속화는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이다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는 선비의 모습을 이토록 섬세하면서 꾸밈없이 그려낼 수 있다니과연 탁현규 해설가의 말 그대로 평민 풍속의 종결자답다어디 김홍도뿐일까조선의 생각으로 조선의 것을 담고자 한 진경풍속의 창시자 겸재 정선정선의 진경풍속을 이어받은 조영석태평성대 속에서 백성들의 평안한 삶을 담은 단원 김홍도양반들의 놀이 문화를 통해 문화 절정기의 호사스러움과 흥겨움을 담은 양반 풍속의 끝판왕 신윤복까지책은 조선의 문화 자부심을 그대로 보여준 그들의 대표작을 통해 조선의 다양한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한 한다여기에 예리한 해석과 유쾌한 입담 친근한 언어는 조선 미술에 대한 진입장벽을 한껏 낮춰준다.

 

 

 

66세 때 그림을 뒤집으면 80세 때 그림 구성이 되는데 이렇게 그림의 좌우를 반전해 또 한 장을 그리는 것은 조선시대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방법이다정선은 80세에 접어들면서 일체의 색을 버리고 수묵으로만 그림을 그렸는데 이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그래서 66세 때 채색화에서는 하얀 눈을 지붕나무돌다리 위에 칠해 넣었지만 80세 때 수묵화에서는 기와지붕 위를 반쯤 비워두어 눈 쌓인 모습을 표현하였다. / <사문탈사>, 정선 40p

 

 

이 그림은 조선판 그것이 알고 싶다라고 부르면 어떨까농어촌 풍속을 담은 그림에서는 노동이 주는 보람을 그려냈다면 이 그림 <밀회투전>에서는 노름 장면을 적나라하게 포착하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이렇듯 조선시대 풍속화는 사대부들에게 통치 교과서 역할을 하였다만약 정조 임금이 이 그림을 본다면 일체 노름을 금하라는 엄명을 내리지 않았을까임금이 구중궁궐에서 알기 어려운 백성들의 삶을 화원들이 그린 풍속화로 들여다본다면 정치의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 <밀희투전>, 김득신 53p

 

 

시어머니와 과부 며느리가 계곡에 빨래하러 왔다가 맞닥뜨린 낭패를 신육복은 놓치지 않았다신윤복은 재가가 불가능했던 조선시대 과부들의 삶이 얼마나 신산스러웠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신윤복의 화첩 속에는 또 다른 과부 여인이 봄날 후원에서 개들이 짝짓기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태우는 장면이 있는데 이 또한 조선에서 과부들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이것이 신윤복 그림 속에 담은 풍자이다서양이건 동양이건 풍자는 풍속화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고 신윤복은 당대 여인들이 처한 상황을 동정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 <표모봉욕>, 신윤복 101p

 

 

 




 

 

 

 

  풍속화와 더불어 조선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그림이 있었는데 이를 기록화라 한다대부분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그 중에 압권은 임금이 등장하는 궁중기록화이며 그 가운데 희귀성이 높은 것은 임금이 기로소(조선 시대에,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임금은 60)에 들어간 사건을 그린 기사첩이다국왕이 오래 사는 것은 왕조 국가의 가장 큰 경사로문화 절정기 시절 숙종과 영조 임금이 연이어 기로소에 들어가는 모습을 담은 기사첩은 당대 궁중 문화를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 귀중하다개인적으로 영조 시대의 화원과 숙종 시대의 화원들의 솜씨를 비교함으로써 두 시절의 문화 수준 차이를 살펴볼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조선 궁중 행사 그림에서 임금은 그리지 않기 때문에 이때 임금을 상징하는 물건이 일월오봉병이다찬안 위에 술잔을 올리는 이는 사옹원 제조로부터 술잔을 건네받은 내시이다왕세자에게는 부제조가 술잔을 올리고 기로신에게는 집사자가 올린다고 실록에 나와 있다찬안 양쪽에서 푸른 칼집의 장검을 어깨에 메고 있는 이들은 별운검이고 나머지는 내시들이다. 2품 임시직인 별운검은 무반 가운데 임금이 신임하는 자 두 명을 뽑아 임금 자리 양쪽에서 검을 들고 시위하게 하였다. / <경현당석연도> 175p

 

 

그런데 기로신들 관복 등에 흉배 자수가 없다원래 녹포단령에는 흉배 자수가 들어가지만 그림에서 작게 표현하는 것이 여의치 않으니 생략해버린 것이다하지만 숙종대 기해년 화첩 속 녹포단령에는 모두 흉배 자수를 표현했었다이것이 기해년과 갑자년 기사첩의 큰 차이로 세부 표현에서 영조대인 갑자년 화첩이 많이 후퇴하였다그렇다면 그림 솜씨는 영조 시대 화원들보다 숙종 시대 화원들이 더 높았다고 봐야 하는데 이것은 화원들 솜씨만의 문제는 아닐 테고 숙종과 영조 시대 전반의 문화 수준 차이일지 모른다. / <숭정전진하전도> 220p

 

 

 

  단원 김홍도의 <기로세련계도>는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으로 탄성을 내뱉은 작품이다. 1804년 9월 9일 송악산 아래 고려 왕궁터인 만월대에서 개성에 사는 칠십 넘은 노인 64명의 경로잔치를 담은 그림이다. 1607년에 한 번 열린 이래 개성 노인들의 기로회는 이백 년 만의 잔치였다고 한다개성 노인들은 이 경사스런 모임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당대 최고 화원인 김홍도에게 그림을 부탁했는데김홍도가 그린 풍속화 가운데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한 것이라 한다정말이지 절경이고 장관이다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심원법을 사용해 기로회에 모인 모든 사람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명 한 명의 인물 묘사가 살아 있다그러나 이 그림이 김홍도의 마지막 풍속화가 되었을 뿐 아니라진경풍속화의 대미를 장식함과 동시에 종말을 알리는 기념비 같은 그림이 되고 말았으니 통탄할 일이다. 1806년 김홍도가 생을 마감하고 진경산수화와 풍속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며 조선화단의 찬란함도 빛을 잃어갔으니 그 안타까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나타나고 사라짐이야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이 역시 조선의 쇠락과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신윤복 화첩 속에서 선비와 기녀가 여러 번 나왔어도 항상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나온 것은 선비였는데 이 장면에서 그 법칙이 깨지고 말았다더군다나 사대부 여인을 이렇게 민망하게 만들고 말았으니 감정 표현을 더욱 절제할 수밖에 없었던 사대부 여인들의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평민 과부가 아닌 양반 과부를 주인공으로 택한 것이 아닐까그러니까 화가는 조선시대 열녀 이데올로기에 과감히 반기를 들었다고 봐야겠다열녀 수절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스런 욕망을 억압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극단의 연출을 꾀한 것이다. / <이부탐춘>, 신윤복 107p

 

 

왜 스님들과 절 노비들이 길을 막고 북 치고 목탁 치고 꽹과리 치고 권선문을 내밀고 있는 걸까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시주를 받아내기 위해서 현재 탁발 공연을 펼치는 중이다그냥 길을 막고 돈 내라고 하면 누가 주머니를 열겠는가예나 지금이나 무언가 보여주어야 사람들은 주머니를 여는 법이다그렇다면 이 장면을 이렇게 불러보면 어떨까? ‘스님들의 버스킹.’ 조선시대 스님들은 길거리에서 탁발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 수행하랴 탁발하랴 얼마나 힘들었을까이렇듯 신윤복 풍속화는 조선시대 불교계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한 좋은 사료가 된다. / <노상탁발>, 신윤복 148p

 

 

 

  서양 미술을 중심으로 한 교양 미술서는 많이 읽어봤지만 조선의 미술을 담은 책은 처음이라 홀린 듯 단숨에 읽어나갔다여러 곳에 포커스를 둠으로써 세밀하게 그림을 관찰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준 것은 물론쉽고 재치 있는 표현으로 작품을 맛있게 설명해준 탁현규 해설가의 안내도 이 책의 큰 묘미 중에 하나다세상에 없는 특별한 조선 미술관에 꼭 한 번 방문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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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이 행성을 떠납니다 - 제3회 틴 스토리킹 수상작
최정원 지음 / 비룡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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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신선한 설정으로 존재의 다양한 방식과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 보이는 청소년 소설!

 

 

 

 

  우리 동네에 외계인이 산다면청소년 심사위원 100명이 선택한 제3회 틴 스토리킹 수상작인 저희는 이 행성을 떠납니다는 모행성의 기상이변으로 멸종을 피하기 위해 피난을 온 외계 종족과 인류가 지구에서 함께 공존한다는 설정이 눈길을 끄는 청소년 소설이다친구들 사이에서 일명 껍데기는 멀쩡한 레알 찐 또라이로 통하는 원호와반에서 늘 1등을 도맡지만 느리고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친구들에게 소외를 당하는 나래가 우연히 거리에서 외계인 아이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기의 이름은 보보미래 아파트 2단지에서 거주 중나래는 보보의 목에 걸린 이름표와 함께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보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꿈과 희망이 가득한 종족이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무지개라는 것을 알게 된다외계인이지만 차마 길 잃은 아기를 외면할 수 없었던 원호와 나래는 집을 찾아주기 위해 미래 아파트로 향하게 되고그곳에서 무지개 종족들이 지구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그 과정에서 이탈하고 만 아기 보보가 다시 그들 종족에 합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21시 정각장소는 미래 학교 운동장늦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당부의 메시지를 들은 원호와 나래는 보보를 무지개 종족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주기 위해 뜻을 모은다하지만 보보를 노리는 이들이 원호와 나래의 앞길을 막아서고예기치 않는 뜻밖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며 위기에 처한다과연 보보는 무사히 종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저희는 이 행성을 떠납니다.

약속은 깨졌고 이제 비밀은 의미가 없으니,

위협이 가까워 오는군요.

저희 종족은 언제나 행복을 위해 도망쳐야 한답니다.

저희는 그래서, ‘무지개. / 89p

 

 

 

  애석하게도 세상에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의 평화를 깨야만 하는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굳이 상대의 약점을 뒤지고 파헤쳐서 까발리는 부류들남들과 다른’ 점들을 찾아내 그것을 가지고 크게 떠들고재미있다고 웃고놀려내는 사람들그리고 실컷 즐긴 후에 기어코 다음 타깃을 찾아 또 다시 타인의 고통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피난민의 신분으로 지구에 손길을 내밀었던 외계 종족들은 오 년 동안 분석한 결과, ‘지구는 최종 정착지로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미래 아파트 인근에 거주하는 어른들은 저것 때문에 동네 집값 떨어졌다고 눈을 흘기고떼돈을 벌고 싶어 하는 인터넷 방송인들은 그곳을 핫스팟으로 삼아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민다.

 

 

 

  지구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외계인은 우리 내부에도 존재한다나래의 느리고 굼뜬 행동을 비난하는 친구들과 어른들노래를 만들고 부르기를 좋아하지만 넌 재능이 없다는 비웃음을 사는 원호도 지구인의 모습을 한 외계인의 처지와 다름없기 때문이다이처럼 소설은 지구와 다른 행성에서 온 이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모습과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을 나란히 둠으로써 다름을 인정하거나 이해하지 않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이제껏 서로에 대해 잘 몰랐던혹은 반대편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원호와 나래가 상대방을 정면에서 바라보고서툴고 아무리 느려도 이런 우리를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 것처럼 세상 모든 이들이 서로를 좀 더 다정한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기를 응원한다.

 

 

 

다들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해 보면 좋을 텐데가까이서 지내 보면 알게 된단다외계인이나 지구인이나 결국 다 똑같고 사는 모습도 다 비슷하다는 걸 말이지하지만 다들 자기랑 조금만 달라고 거부감부터 가지니까…….” / 64p

 

 

엄마는 늘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했다빠릿빠릿해져야 해주변 친구들 눈치를 잘 봐말할 때 상대방 답답하게 만들지 마다른 애들처럼 해.

다른 애들처럼. / 196p

 

 

엄마는 나래를 주저앉힐 것이다보보에겐 나래와 원호뿐인데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억지로 끌어낸 용기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꺼져 버릴 것이었다엄마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엄마 앞에 서는 순간 나래는 항상 쪼그라들어 버리니까.

지금 저 메시지 안에도 나래를 향한 분노가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부재중 전화 92읽지 않은 메시지 208원호네 엄마는 원호를 믿고 나래와 보보를 맡기는데 나래의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저 숫자들은 불신의 증명이었다. / 221p

 

 

 




 

 

 

 

  빛과 함께 하는 종족인 무지개는 어째서 투명해지는 능력과 보석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걸까나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그 어떤 것도 투과되지 않은순수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거기에 어떤 색을 담든 너는그 자체로 반짝이는 보석 같은 존재라고 말해주고 싶다지금은 내 안의 보석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이 미약할 뿐나래와 원호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발견하고 꺼내줄 수 있는 누군가가 꼭 있을 거라고엄마도 그럴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난 너희랑 다르지.

그렇게 나래는 안전한 거리까지 뒤로 물러났다더 크게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기로 하면서그런데 원호는 어느새 그 도로를 한걸음에 가로질러 넘어와 있었다분명히이 아이도 저쪽 편에서 서 있는 아이였는데늘 누군가와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욕하고 쫓고 쫓기는 그 무리 안에 있었는데그들 중 하나가 지금나래와 자신에게 똑같은 점이 있었다며 기분 좋게 웃고 있다나래는 이 순간을 믿을 수가 없었다. / 150p

 

 

아무리 느려도늦어도…… 분명히 있을 거야.”

원호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저토록 꼿꼿이 서서저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윤나래라니.

이런 우리를 기다려 주는 누군가가.”

느리더라도늦더라도 결국 우리는 늘 해내긴 했다포기하지 않았으니까그리고 기다렸던 것보다도 더아주 오랜 시간을 먼길로 돌아서 오더라도 결국 우리는 목적지에서 서로 만나지 않았던가. / 225p

 

 

 



 

 

 

 

  책을 펼치자마자 단숨에 읽어 내려갈 만큼 흡인력이 높은 작품이다매력적인 캐릭터와 신선한 설정을 통해 존재의 다양한 방식과 무한한 가능성을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지금 당장 10대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한 권을 찾고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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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뒤에 쓴 유서 오늘의 젊은 작가 41
민병훈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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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아픔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을 것!

불행을 익숙한 방법으로 묘사하는 작법을 거부하는 민병훈의 글쓰기!

 

 

 

 

  『달력 뒤에 쓴 유서는 학창시절에 아버지의 자살을 마주한 가 가족의 불행을 소설에 쓰기로 마음먹는 데서 시작한다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날의 기억을 서서히 지웠지만고통은 어떤 식으로든 재현되기 마련이라서 마침내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놓였노라 고백한다그는 자신이 왜 이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지더 나아가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 모든 의문을 좇기 위해 속리산으로 향한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던 그 집이 그 자리에 없기를 희미하게나마 바랐던 것은인식의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고통도 사라지기를 바랐던극복의 또 다른 방편이었을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집은폐가가 되었지만 농약을 먹은 아버지가 은색의 액체를 누런 장판에 쏟아 냈던 안방만은온전히 살아남아 그를 그날의 기억 속으로 데리고 간다이를 테면 밀려드는 잠 속으로 들려왔던 못질 소리 같은 것왜 아버지의 방에서 못질 소리가 들렸는지그때 의문을 가졌어야 했는데아니현관 옆에 걸린 달력 뒤에 적힌 유서를 우연히 발견했던 날 진즉에 알아차렸어야 했는데하고또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나의 불행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된 걸까아니면 죽음의 징후를 미리 발견하지 못한 나의 후회에서 비롯된 걸까하고.

 

 

 

왜 쓰는가왜 쓰려고 하는가.

 

 

  ‘는 출판사 편집자에게 보내는 메일에서 오스트리아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베른하르트는 자신의 작품을 악성종양에 비유하며 글쓰기의 목적이란바로 그 종양을 드러내는 작업이라 말한 바 있다그는 모국이자 자신의 병적이고 신경질적인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문학적 공간인 오스트리아를 지속적으로 부정했고그곳에서 해방되고자 끊임없이 자아를 분리시키고 자기 대상화를 시도했다그래야 자신의 콤플렉스를 해결할 수 있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화자인 ’ 역시 가족력으로 이어진 우울증이 자신에게 당도할 것을 걱정하며 죽음으로 향하지 않기 위해회피하지 않고 이겨내기 위해 그 과정을 소설로 써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실은 이제껏 쓴 모든 글에 그 시절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내내 에두르고 빙빙 돌렸던 것들을회피하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아버지의 죽음으로 비롯된 것인지 그 뒤에 잇따르는 후회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를 불행을 마침내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새롭게 쓰기를 시도한다.

 

 

 

은색으로 물든 수건도 떨어져 있었다입을 막은 수건이었다마당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했다안방 창문이 깨져 있었다유리 조각을 쓸어 한곳에 모았다창문을 깰 때 다치지 않았다안방 문은 못이 박혀 밖에서 열리지 않았다경찰에게도 그렇게 설명했다그래서 창문을 깼다고 말하자 경찰은 잘했다고 말했다잘한 일이 아니다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그대로 시간이 흘러아버지를 발견하지 않았다면겨우 남은 의식으로 괴롭게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 71p

 

 

누가 물어보면 자연사 혹은 사고사라고 말했지 누군가 자신은 이제 사라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우울하고 고독하고 삶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하면 조심스럽게 꺼냈지 나는 남겨졌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는데 달리 도와줄 수가 없었어 너도 예전에 증상이 심했을 때 내가 죽지 말라고 했지 슬리퍼를 가지런히 두면서 생각해 보면 글을 쓰기 이전에는 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내가 읽고 좋아하는 책들의 세계는 몰이해로 넘쳐 무의미의 의미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남겨진 자의 삶을 말하고 싶었던 거야 / 78p

 

 

 



 

 

 

 

    『달력 뒤에 쓴 유서가 여느 소설과 다른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작가는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경험을 비극적이거나 통속적인 방식으로 그리지 않는다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화를 들추어내거나 죽음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옮겨냄으로써 하나의 사건처럼 소비되기를 거부한다실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덤덤하게그러나 형식면에서는 상당히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간 억눌려 있던 기억들을 풀어놓는 쪽에 가깝다메모전화 통화메일누구와 나누는지 알 수 없는 대화 등 불행을 익숙한 방식으로 묘사하지 않는 이러한 다채로운 서술 방식은 하나의 맥락으로 형용할 수 없는 죽음의 수많은 링크를 연상시킨다.

 

 

 

(다시 말해누군가의 입장에감정적으로 가닿기를 바라거추장스러운 단어와불필요한 진술로기억을 꾸미고나도 모르게 관습화된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웠다그렇다면 그것들을 경계하는 것이과연 맞는 것일까그대로 써라있는 그래도겪었던 그대로이것은 소설이지다른 무엇이 아닌 소설이것을 소설이라고 설득해야 한다면지금까지 써 온 대부분의 소설들에이미 비슷한 질문들을 받았지만이 글은 그것들과 어떻게 다른지어떻게 같은지대답을 준비해야 한다하지만 나는 무슨 말을 준비할 수 있을까.) / 33p

 

 

나는 철저히 내게서 기인한 것들로만 문장을 구성하려 하는데이 작업을 진행하는 어떤 순간에는 너무 힘든 나머지다른 방식의 문장을 바랄 때도 있었다사명감책임감정치의욕이 담긴 것들나는 최대한 예민하지 않으려 했다누군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물으면 나와 가족에 대한 글을 쓴다고 짧게 말했다사건에 대해 말한 뒤에는 순간 적막해진 분위기를 깨려고 작업과 상관없는 농담도 던졌다가족이 나오면 다 슬프지누군가는 나의 농담에 그렇게 대답하기도 했다. / 76p

 

 

문학은 제게 불행을 불행으로

말해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불행을 불행으로슬픔을 슬픔으로.

나를 나로. / 68p

 

 

 



 

 

 

 

  작가 민병훈은 소설의 서두에서 글쓰기를 통해 삶을 이해하고 고통을 극복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소설이라면나아가 문학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으면서도 자신의 글쓰기가 그 안에서 생기고 자라났음을 알기에 오히려 더 그 안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간 게 아닐까그가 걸어 들어간 자리가 과거의 불행한 기억으로부터 회복의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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