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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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를 가름하는 시대 속에서 분투하는 화자들!




  상충하는 ‘진짜’의 문제들로 들끓는 세계. 이것이 내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쉬이 감별해내기 어려워진 시대, 때로는 진짜가 자신이 진짜임을 보다 치열하게 증명해야만 하는 세계. 진짜란 무엇인가, 진짜와 가짜를 가름하는 시대 속에서 분투하는 화자들을 다룬 성해나의 소설집 『혼모노』를 읽으며 나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한 이야기가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진짜, 라는 신화



  맞은편에 새로운 신당을 차린 신애기가 제 부모와 함께 인사 차 문수의 신당을 방문한 것이 얄궂은 인연의 시작이었다. 올해로 신을 받은 지 삼십년 차가 된 박수무당 문수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간 정성을 다해 모셨던 장수할멈이 최근 들어 좀처럼 화답을 해주지 않아 찜찜하던 차였다. 문수가 건넨 보이차를 시큰둥한 표정으로 밀쳐내기에 신애기의 몸에 애기동자가 들어 섰겠거니 하고 달콤한 사탕 하나 건네려는 찰나에, 신애기가 느닷없이 살기 어린 조소를 날린다. 신빨이 다했다더니 진짠가보네. 할멈이 나한테 온 줄도 모르고.



  소설 「혼모노」는 소위 신빨이 다한 박수무당 문수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저 번아웃이 왔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집에 신당을 차린 신애기에게 할멈이 옮겨가 “흉내만 내는 놈”이란 소릴 듣고 나니 마음이 착잡해진다. 더 이상 장수할멈과 접신할 수 없는 이 몸은 ‘가짜’일 뿐이란 말인가. 그럼 여기에 존재하는 나는 누구란 말인가. 마침 문수에게 굿을 부탁한 황보 의원이 이를 철회하고 돌연 신애기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문수의 이러한 고뇌는 정점에 달한다. 결국 문수는 신애기가 주도하는 굿판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자신만의 굿판을 펼치기 위해 잔뜩 벼린 칼날 위에 오른다. 더 이상 진짜냐, 가짜냐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나’로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므로.




유튜브를 보며 접신 연습을 한다. 과장되게 눈을 뒤집고 몸을 부르르 떨다 자괴감을 느끼고 그만두길 몇차례. 도대체 그동안은 어떻게 했던 걸까. 신의 출입이 어찌 그리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걸까. 모형 작두와 칼은 주문해놓은 지 오래다. 이제 연습만이 살길이다. 해원경을 크게 틀어두고 주악에 맞춰 칼춤을 춘다. / 「혼모노」 중에서 141p



신애기가 두 손을 입을 틀어막고 웃는다. 큭큭큭큭, 큭큭큭. 손가락 사이로 기분 나쁜 웃음이 새어나온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린다. 종아리가 풀리고 손이 저려온다. 모르겠다.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 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 「혼모노」 중에서 145p











  ‘진짜’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들은 또 다른 작품 속에서도 계속된다. 그 중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의 화자인 ‘나’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김곤 감독의 열렬한 팬으로, 그를 추종하는 팬클럽 길티 클럽의 멤버다. ‘나’는 한순간의 불미스러운 일로 감독이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자, 진짜 팬이라면 당연히 그를 믿어야 한다며 진실을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토록 필사적으로 추앙했던 진짜를 향한 마음이 허무해지는 순간,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일이 아니라, 진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겠느냐고.




어떻게 작품을 본 적도 없으면서 ‘안 봐도 비디오’ 따위의 평을 내리는 걸까. 어째서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을 나락으로 떨구려 그토록 안간힘 쓰는 걸까. 도대체 왜 사실관계도 명확하지 않은 사건을 멋대로 공론화하고 거짓말까지 덧붙여 온갖 데로 퍼 나르는 걸까. /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중에서 14p


실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나 자신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근데 그래도 되는 건가. 실수라고 해도 일곱 살 난 아이에게 그럴 수 있는 걸까. 친구들의 말처럼 만약 그게 내 아이의 일이었대도 김곤의 영화를 몇 번씩 관람하고 굿즈를 소비할 수 있었을까. /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중에서 28p




  이쯤 되면 진짜는 어쩌면 신화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반드시 성취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우리 인생이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 이상향이기라도 한 것처럼 왜 우리는 이토록 진짜에 진심인 것일까. 때문에 진짜는 무엇인지, 진짜라고 ‘믿는 것’들을 끊임없이 욕망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계속해서 진지한 물음을 건네야만 한다. 성해나의 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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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병(氣象病) 안내서 - 날씨에 흔들리지 않는 컨디션 관리법
쿠데켄 츠카사 지음, 정나래 옮김 / 성안당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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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에 따라 컨디션의 변화가 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기상병을 이해하고 셀프 케어를 도와주는 아주 특별한 건강 실용서!





  몸이란 참으로 정직해서, 비가 내릴 즈음이면 어김없이 머리가 무겁고 두통이 시작된다. 동시에 뭉친 어깨가 욱신거리기까지 하는데… 왜 하필 비만 오면 이런 증상을 앓는 걸까. 설마, 이게 기상병? 『기상병 안내서』라는 제목의 책을 본 순간, 내가 겪는 일련의 증상들이 어쩌면 기상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도쿄에서 현직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쿠데켄 츠카사는 기상병에 대해 ‘기압·기온·습도 등의 변화로 몸과 마음의 상태가 고르지 못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라고 소개한다. 날씨가 궂으면 현기증이나 이명 증상이 나타나는 분들, 해가 짧아지는 계절이면 유독 계절성우울증을 겪는 분들, 환절기만 되면 두통에 시달리는 분들, 혈압이 낮아지면 몸 상태가 좋지 않는 분들, 강한 권태감을 느끼거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분들 중 여기에 하나라도 해당되는 게 있다면 기상병에 주목해보시길 바란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경험하는 기상병에 대하여



  기상병이란 병명은 낯설지만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를 경험하는 듯하다. 그 중에서도 기상병 환자의 70~80%가 여성이라고 한다. 호르몬 변화, 저혈압, 근육량 부족 등으로 기상병에 더욱 취약하기 때문이다. 10~12세 정도의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들이 유독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거나 두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도 기상병이 아닌지 의심해볼 것을 추천한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과중한 스트레스, 자율신경이 교란되기 쉬운 생활 습관, 빈번한 기상이변 등으로 기상병에 취약한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기상병 환자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상병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기상병 환자의 50~60%는 현기증 증상을 호소합니다. 두통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무척 높은 비율이지요. 비가 내리면 원래 현기증이 있던 분들은 증상이 더 심해집니다. 특히 날씨가 변화하는 시기에만 현기증이 난다는 분들은 몸이 떠오르는 듯한 느낌의 비회전성 현기증을 호소하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 24p



낮은 습도는 물론 높은 습도 역시 기상병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상병이 미치는 영향이 큰 요인을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기압 차>기온 차>습도의 순입니다. 저희 병원 환자의 비율을 살펴보면 기압 차10:기온 차 1:습도 0.5 정도로,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67p










  이 책은 기상 변화로 인한 불편한 증상을 줄이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율신경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율신경이란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날씨 변화에 따라 작용하기 때문에 기상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한다. 따라서 평소 자율신경의 균형을 맞추는 생활습관이 중요한데, 식습관은 물론 자세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니 책에서 일러주는 주의점들에 꼭꼭 유의해야겠다.




기온이 높아지면 땀을 흘려 체온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압이 내려가면 몸과 대기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자율신경이 작용해야 합니다. 자율신경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날씨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몸에 이상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이처럼 자율신경은 날씨 변화에 따라 작용하므로 기상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상병을 이해하려면 자율신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 78p



체온은 하루 중 한창 잠에 빠져 있는 오전 3~5시 무렵이 가장 낮고 기상 직후부터 서서히 높아지기 시작해 오후 5~6시쯤에 정점에 다다른 뒤 다시 서서히 낮아집니다. 핵심은 교감신경이 우세한 상태에서 부교감신경이 우세한 상태로 전환되는 시점에 욕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목욕법은 38~40℃ 정도의 미온수에 대략 10~15분, 목까지 몸을 담그는 것(반식욕은 20~30분간 명치까지 담금)입니다. 욕조 안에서 가벼운 마사지나 스트레칭을 하는데요. 특히 종아리는 붓기 쉬운 부위이므로 발목→종아리→뒷무릎 순으로 주물러줍니다. / 118p











  이처럼 『기상병 안내서』는 자가진단을 비롯해 기상병의 원인과 증상에 대한 이해, 셀프 케어까지 돕는 건강 실용서다. 실제 사례로 이해를 돕고, 구체적인 사진 자료로 누구나 쉽게 따라해 볼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날씨, 특히 기압의 변화에 따라 컨디션 난조에 시달릴 때마다 ‘너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정신적인 문제야’ ‘좀 쉬면 나아’ 같은 말을 들은 경험이 있다면, 이 책으로 하여금 내 몸 상태를 파악하고 치료하는 데 꼭 도움을 얻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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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 - 강세형의 산책 일기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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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나섰을 뿐인데 내 마음이 훌쩍 자라버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 현관 너머의 세상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상상했다!





  총 2547.20km, 3,813,458걸음. 하루 평균 6.96km, 10,419걸음, 걸음걸음으로 쌓아온 1년이란 시간들. 강세형 작가의 산책일기,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는 매일 현관문을 열고 나가 마주했던 어떤 시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싫증을 잘 내고, 포기가 빠르고, 모든 것을 편식하는 사람. 베체트의 발병으로 바깥세상의 소요를 잘 견디지 못하는 데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지나치게 좋아해서 히키코모리 같은 삶을 살던 저자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 걷기 시작한 건 아주 사소한 우연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제 조금씩 운동을 시작해 봐도 좋을 것 같다던 의사 선생님의 말, 모든 페이지에 운동 부족이 찍혀 있던 건강 검진 결과지, 코로나가 잦아들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즈음 자꾸만 현관문에 시선이 갔다고….




  그렇게 현관문을 나서고 나니 어제와는 또 다른 사계의 언어들이, 어제는 체력이 다해 가보지 못한 횡단보도 너머의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이, 공원 오솔길에서 만나는 검은 얼룩 고양이와 종일 매캐한 냄새를 맡으며 붕어빵을 굽고 있는 아주머니의 오늘이 궁금해서 매일 현관문을 열게 되었노라 고백한다. 이따금 생각을 하기 위해 걷는 건지 생각을 멈추기 위해 걷는 건지 의아할 때가 있지만, 걷는 동안 나에게로 와 말을 거는 수많은 단어들이, 조금씩 나의 지도가 확장되는 듯한 기분들이 한 발짝 더 내디뎌 볼 힘을 주었던 게 아닐까.




요즘 나는 매일 현관문을 연다.

마음도, 머리도, 조금씩 딱딱해져 가는 내가 지루하다 느껴진 걸까. 무엇을 보고 웃게 될지, 무엇을 보고 또 아파할지, 내 안의 어린아이를 찾아 현관문을 연다. 놓치면 또 지나가버릴 오늘의 밤하늘을 기억하기 위해, 깜빡 눈을 감았다 뜨면 또 사라져 버릴 오늘 하루를 기억하기 위해, 한글창을 열고 기록을 남긴다. / 74p



길은 고요한데, 마음이 시끄럽다.

수많은 단어가 내 머릿속을 떠돈다.

내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오염된 단어들이 떠돌고 있을지, 조심스럽게 한 단어 한 단어를 꺼내 살펴보며 또 걷는다. / 271p









  산책을 하다보면 의외의 것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작고, 허름하고, 가여운 것들이…. 목적지를 향해 바쁜 걸음을 내딛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받침 하나가 빠진 낡은 간판과 그 세월을 지키고 있었을 오래된 이름의 상호들, 사람을 피해 주차된 자동차 아래만 집요하게 파고드는 길고양이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몸집의 종이박스를 굽은 허리로 나르는 할머니까지. 임시휴업 안내가 붙은 가게의 존폐를 걱정하고, 캣맘을 기다리는 듯 오도카니 앉아 있는 고양이가 신경 쓰여 괜히 한 바퀴를 더 돈다던 저자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내가 아무리 작고 약한 존재라 해도 세상엔 나보다 더 작고 약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조금만 무례해져도 나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는 약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산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어느 가게 앞 화분들 위에 쓰여 있던 ‘화분 가져가지 마세요.’ 어느 골목길 어귀 가로등 밑에 적혀 있던 ‘여기에서 주무시면 안 됩니다.’, 어느 네일샵 앞엔 이런 글귀가 붙어 있었다. ‘어깨 수술로 당분간 쉽니다.’ 그냥 ‘개인 사정으로 엽니다’라고 쓸 수도 있었을 텐데, 어깨 수술이라는 구체적인 이유를 써 놓은 글쓴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렇게 길에서 만나는 손 글씨에는 글쓴이의 기분, 글쓴이의 사연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늘 흥미롭다. / 100p



낮 산책이 조금 늦어지거나, 밤 산책이 조금 빨라져 저녁 6시와 7시 사이 길을 걷고 있을 때면,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보게 된다. 요즘은 그 시간에도 해가지지 않아 더 잘 보인다.

퇴근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저녁이. / 109p



밤에 길을 걷다 보면, 내 그림자에 내가 놀라는 경우가 생긴다. 분명 내 그림자는 앞에 있었는데, 가로등이 다른 각도에서 들어오는 순간 뒤에도 내 그림자가 생겨 나를 따라올 때 흠칫.

(…) 역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도,

제일 경계해야 할 존재도, 나인 걸까.

다른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 235p









  산책이란 단어의 어감을 좋아한다. 의도가 묻어 있지 않은, 여유로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그 무해함이 참 좋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무해함이 주는 다정한 기운들을 내내 생각했다. 고관절통증과 족저근막염으로 인해 한동안 잊고 지냈던, 꾸준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밟아 나아간 걸음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을 다시금 떠올렸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제껏 망설여왔던 걸음을 나도 내딛어봐야겠다. 현관문을 더 자주 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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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 - 노르웨이부터 아이슬란드까지 신비롭고 환상적인 북유럽 동화 32편 드디어 시리즈 6
페테르 크리스텐 아스비에른센 지음, 카이 닐센 그림,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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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만의 신비로운 매력을 담아낸 아름다운 동화책!




“우리가 늪을 건널 용기를 내지 못하면 

어떻게 햇빛을 찾겠어?” 

/ 무민 연작 소설 「작은 무민과 큰 홍수」 중에서



  책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에 따르면 이야기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여러 일화를 통해 보여주는 생존 기록’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실질적 지침의 역할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해결을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류가 축적한 지식과 지혜를 고스란히 담은 동화야말로 시대와 장소, 세대를 불문하고 이야기의 가장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위대한 자산이 아닐까 싶다. 불완전하고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일수록 동화 속에 담긴 사랑과 우정, 연대와 용기와 같은 삶의 중요한 가치들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는 노르웨이부터 아이슬란드까지 신비롭고 환상적인 북유럽 동화 32편을 수록한 책이다. 환상적인 이야기, 신비로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세계 3대 삽화가 카이 닐센의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일러스트와 만나 한 권의 아름다운 동화책으로 탄생되었다. 밤에는 사람으로, 낮에는 흰곰으로 변하는 저주에 빠진 왕자를 자신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놓친 막내딸이 왕자를 찾아 모험에 나서는 이야기 <태양의 동쪽과 달의 서쪽>, 자신이 기르던 송아지를 진짜 아들이라고 여긴 어느 노부부의 웃픈 이야기 <황소 피터>, 선량한 마음으로 쥐에게 친절을 베푼 덕분에 마법에 걸린 공주를 신부로 맞게 된 <숲속의 신부> 등 재미와 교훈이 넘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럼 집에 도착하시거든 절대 멈춰 서지 마세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려고 멈추는 것도 안 돼요. 곧장 마구간으로 가서 말을 몰아 되도록 빨리 돌아오세요. 사람들이 당신을 막아서더라도 못 본 척하셔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음식을 드시면 안 됩니다. 제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시면 우린 둘 다 불행해질 거예요.” / <거인의 안주인> 중에서 52p



“이번에도 네 입으로 꺼낸 말이니 어서 하프를 가져거라. 이번 일을 성공한다면 왕국의 절반을 주겠노라. 내 딸과 결혼도 시켜주지. 다만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전 추호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조차 한 적도 없고요.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으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혹시 엿새만 여유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 <청년과 거인> 중에서 159p









  인류가 동일한 사고 체계로 무리지어 이동하며 문명을 일궈온 탓에 대체로 비슷한 형태의 서사가 전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곤 하는데, 이를 테면 신데렐라 유형의 이야기가 북유럽 동화에도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소금을 만드는 맷돌 이야기와 같이 우리나라 전래 동화와 거의 흡사한 내용의 이야기가 먼 북유럽에서까지 등장하는 점도 신기할 따름이다. 여기에 특별한 조력자의 등장, 주인공을 방해하는 트롤들, 북유럽의 자연 경관과 신비로운 자연 현상 등 이야기의 다양한 요소들이 읽는 맛을 더하니 북유럽 동화만의 독특한 매력까지 즐길 수 있다.



“그럼 집에 도착하시거든 절대 멈춰 서지 마세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려고 멈추는 것도 안 돼요. 곧장 마구간으로 가서 말을 몰아 되도록 빨리 돌아오세요. 사람들이 당신을 막아서더라도 못 본 척하셔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음식을 드시면 안 됩니다. 제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시면 우린 둘 다 불행해질 거예요.” / <거인의 안주인> 중에서 52p



“이번에도 네 입으로 꺼낸 말이니 어서 하프를 가져거라. 이번 일을 성공한다면 왕국의 절반을 주겠노라. 내 딸과 결혼도 시켜주지. 다만 실패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전 추호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조차 한 적도 없고요.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으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혹시 엿새만 여유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 <청년과 거인> 중에서 159p



배가 어느 정도 나아가자 선장은 갑판 위에 맷돌을 꺼내놓고 말했습니다.

“소금을 만들어내라. 아주 빨리, 많이 만들어라!”

맷돌은 소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곧 소금이 물처럼 쏟아져 나왔습니다. 소금이 배를 가득 채우자 선장은 맷돌을 멈추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갖은 방법을 다 써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맷돌은 계속해서 소금을 쏟아냈고 소금은 산처럼 불어나 결국 배는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바닷물이 짠 이유는 지금도 바닷속 깊이 가라앉은 맷돌에서 계속 소금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 <바닷물이 짠 이유> 중에서 311p










  북유럽 특유의 신비롭고 매력적인 요소들이 담긴 동화를 만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소장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이라 주변에 꼭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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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5.3.4 - no.59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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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라는 단단한 지대를 밝고 선 기분이란 건 이런 것이다!

애써 수고로움을 들여 정성을 다해 무언가를 보존하려는 마음들에 대하여!




* 피클링: 피클 만들기. ‘저소비 코어’를 이끌고 있는 잘파 세대가 배달 음식 소비를 줄이고자 보관 기간이 긴 절임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유행하며 알려진 말.



  왜 피클링인가. 비건 레시피를 소개하는 비건 인플루언서 정고메는 <수고로움으로 절여지는 소중한 것들>이라는 칼럼에서 ‘피클링이란 신맛을 바탕에 두고 단맛과 짠맛의 균형을 맞춘 절임 물에 채소를 보존하는 요리 방식’이라고 소개한다. 산성화된 환경으로 미생물의 활동이 억제되면서 채소가 물러지지 않고 고유의 식감과 풍미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숙성 과정을 통해 한층 부드럽고 깊은 신맛을 이끌어내는 요리법이다. 단순히 신맛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넉넉해진 제철 채소들이 빛을 잃기 전에 절임 물에 담가 둠으로써 오랫동안 계절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삶의 지혜가 여기에 녹아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지키고 보존하려면 

절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 51p



  이렇게 피클링에 대해 알고 보니 “애써 수고로움을 들여 정성을 다해 무언가를 보존하려는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것은 감정적 경험을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던 이서수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책이야말로 일상과 기억, 감정과 경험을 켜켜이 담아 보존하려는 우리의 마음과 자연히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 덕에 우리는 누군가가 써놓은 책 한 권의 힘으로 삶의 생기를 되찾고 회복할 수 있는 마음의 자원을 얻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혹시… 매번 시간을 들여 읽은 책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나의 수고로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면, 나는 지금 책으로 하여금 내 안에서 절여진 생각들을 하나의 글로 정리함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보존하기 위한 피클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쇼츠, 릴스, 2배속 시청처럼 점점 더 빨리 얻고, 소비하는 일에 익숙해진 요즘 세태에 이토록 성가시고 귀찮을만큼 긴 문장의 글을 쓴다는 건 어쩐지 미련해보이지만, 이 정성이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 것이라 믿기 때문은 아닐까. 느리지만 정성껏 시간을 들이는 일의 가치와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이번 호의 주제가 여느 때보다 크게 와 닿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번 호에서는 소설가 정수읠의 「이 시점에 문필로 일억을 벌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와 남의현의 「공과 놀이와 공놀이」를 인상 깊게 읽었다. 전작의 경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문학이라는 언어가 행정이라는 언어와 만나면 곧잘 무기력해지고 마는 현실이 냉랭하게 파고든다. 글로 벌어먹고 살기 힘들지, 라는 말을 나도 한때 밥 먹듯 하고 다녔으니까. 후작에서는 필사적으로 엄마가 죽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내려가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그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동안 정작 번번이 죽임을 당한 건 엄마가 아니라 아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무거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너에게 공을 주면, 네가 다시 나에게 공을 주는 거야.”

“왜요?”

“그런 놀이야.”

놀이? 노올이이? 노오올이이이? 나는 그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되뇌었다. 처음으로 내가 공을 던질 수도 있다는 것을, 또 부모와 놀이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남의현 「공과 놀이와 공놀이」 중에서 148p


“그러면 저랑 캐치볼 하러 가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런 즐거움들은 언제나 언젠가는, 이라는 형태로 나에게 다가왔다. 엄밀히 말하자면 멀어져갔다. 이후로 나는 틈만 나면 엄마에게 캐치볼을 하러 가자고 졸랐고 처음에는 엄마에게서도 “언젠가는”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몇 번이고 그와 같은 대답을 듣고 나서, 나는 참지 못하고 야구공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 남의현 「공과 놀이와 공놀이」 중에서 151p




  매번 느끼지만 항상 새로운 키워드로 다양한 종류의 글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큰 즐거움인 것 같다. 다음 호에서는 또 어떤 주제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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