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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먹는 존재들 - 온몸으로 경험하고 세상에 파고드는 식물지능의 경이로운 세계
조이 슐랭거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10월
평점 :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마다 놀라움으로 가득한 책!
식물, 그 신비를 밝히는 아름답고 진중한 탐구 여정!
한때 호밀은 밀 농사를 짓던 농부들에게는 잡초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래서 밀이 건강하게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잡초인 호밀을 뽑아야 했다. 이로 인해 살아남아야 했던 몇몇 호밀들은 엄청난 모방의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다. 농부의 매서운 눈을 속이기 위해 밀과 매우 비슷한 형태로 진화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존을 위해 선택한 모방 능력 덕분에 호밀은 마침내 작물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고, 우리의 훌륭한 먹거리가 되어주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해변달맞이꽃은 꿀벌이 윙윙 날아다니는 소리에 맞춰 꽃꿀의 당도를 스스로 높일 수 있고, 나사 포이소니아나는 수분 매개자가 나타나리라 예상한 때에 맞춰 꽃가루를 내놓을 줄 안다. 심지어 한 번에 조금씩만 꽃가루를 내놓아 나방이나 벌 한 마리가 너무 많이 가져가는 일이 없도록 신중하게 할당하는 능력까지 지니고 있다. 갯냉이는 남남 사이인 식물들 사이에서는 공격적으로 뿌리를 내려 근처의 영양분을 독점하지만, 가족 옆에서 자랄 때는 예의 바르게 뿌리 성장을 제한하여 형제자매가 살아갈 공간을 남겨두는 이타적인 모습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 나무가 무엇을 한 건지,
언어를 써서 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네.
- 로버트 해스, <나무를 묘사하는 일의 문제> / 405p
『빛을 먹는 존재들』은 보고, 듣고, 감지하고, 적응하고, 더 나은 것을 선택하고, 계략을 꾸미고, 경험을 공유하며, 대지의 기억을 대물림하는 식물들의 세계를 탐구한 놀라운 책이다. 식물은 어떻게 주변에 관한 정보를 얻고, 통합하며, 자신에게 유익한 행동으로 번역하는가. 그 모든 정보를 해석할 중추적인 장소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세계를 감각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그간 알고 있었던 식물의 능력과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특히, 대부분 식물은 우리가 밟거나 꽃을 꺾어도 그리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자기들과 접촉하는 것을 온전히 알아차리며 그에 반응해 자신의 삶을 재조정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 세계에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반성하게 한다. 나아가 우리가 이 특별한 존재들과 지구를 함께 쓰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우리의 생명을 빚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일깨워준다.
한 자리에 붙박여 있으니 식물이 수동적일 거라는 생각은 화학 무기를 만들어내는 식물들의 엄청난 능력을 살펴보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식물은 합성해 낼 수 있는 화학물질의 미묘함과 복잡성 측면에서 인간의 가장 뛰어난 기술마저 능가하는, 그야말로 합성 화학자들이다. 잎은 누군가 자기를 갉아먹고 있음을 감지하면 공기로 운반되는 화학물질을 만들고 뿜어내 가장 멀리 있는 가지들까지 면역계를 가동하라고 알린다. 이어서 모든 가지들은 자기에게 접근하는 진딧물 및 식물을 먹는 각종 벌레들을 단념시킬 더욱 고약한 화학물질들을 만들어낸다. / 68p
“어쩌면 그저 우리 눈에 그 구조물이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요. 혹은 식물의 몸 전체에 속속들이 퍼져 있고, 개별적인 하나의 구조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어쩌면 그게 식물의 속임수일지도 모르죠. 유기체 전체가 뇌일 수도 있다는 것요.” / 218p
식물의 주의와 의식은 각 부분에 국소화되어 있지만 그 각각의 부분들이 서로 의사소통하며 하나의 전체로서 전략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우리 못지않게 의식을 만들어낸다. 그는 이렇게 썼다. “수백만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개별 식물은 자기조직화하는 복잡계로서, 분산 제어를 통핸 국소적으로 환경을 활용할 수 있지만 이런 활용은 전체 식물 시스템의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들의 의식은 국소화된 것이 아니라 식물 전체에서 공유되는 것인데, 이는 동물의 의식이 뇌에 중앙집중화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 230p


느리고 수동적이라 여겨왔던 식물들이 이토록 신비롭고, 우아하다 못해 창의적이기까지 하다니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마다 놀라움으로 가득한 책이다. 여기에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경고까지. ‘모든 식물은 상상도 못 할 정도의 행운과 창의력이 이뤄낸 위업이다. 일단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다시는 그 앎을 지울 수 없다. 당신의 마음속에 새로운 도덕의 주머니가 생긴다.’ 이 글귀에 마음을 기울 수 있는 이들이 더 많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