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도감 - 목욕탕 지배인이 된 건축가가 그린 매일매일 가고 싶은 일본의 대중목욕탕 24곳
엔야 호나미 지음, 네티즌 나인 옮김 / 수오서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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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기억 속 목욕탕의 모습은 어떤 풍경을 담고 있나요?

이 책 덕분에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목욕탕의 온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목욕탕 도감은 도쿄지바교토미에 등 지역 내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일본 목욕탕의 풍경을 담은 책이다한때 건축가였던 저자는 번아웃이 오자 친구와 의사의 권유로 목욕탕을 다니기 시작했고그때부터 목욕탕이 가진 특별한 매력과 온기에 빠져들었다고 한다목욕탕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점점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그녀는이때부터 목욕탕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친구에게 그 매력을 전하기 위해 목욕탕을 그려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책을 펼쳐보다 보면 목욕탕을 향한 저자의 각별한 애정이 곳곳에 오롯이 담겨 있다아이소메트릭이라고 하는 건축도법을 사용해 대중목욕탕 건물 내부를 부감하듯 그려냄으로써 목욕탕이라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게 구성한 것은 물론, 24곳의 목욕탕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 다른 풍경을 구석구석까지 섬세하게 담아낸 다정다감한 그림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단숨에 목욕탕의 세계로 퐁당 빠져들게 한다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릴 적부터 주말마다 찾아갔던 우리 동네 목욕탕의 풍경이그 안에서 메아리쳤던 어른들의 수다가목욕탕을 나오면서 꼭 마셔주었던 바나나 단지우유 같은 것들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당장 목욕탕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목욕탕에는 확실히 사람을 살리는 무언가가 있다.”

 

 

 

  JR고엔지역 북쪽 출구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어가면 1933년에 창업해 9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고스기유를 만날 수 있다이곳은 실제 건축사를 그만두고 목욕탕 지배인으로 이직한 저자가 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우리나라 대중목욕탕이 흔히 냉탕과 열탕으로만 구분된 것과 달리이곳은 우유탕제트탕열탕 외에도 맥주탕이나 영귤탕과 같은 신선한 소재의 욕탕을 자주 기획한다고 한다또 정기휴일이나 영업시간 전에는 댄스이벤트라이브공연토크이벤트를 개최할 뿐만 아니라대합실과 갤러리에서는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무료 전시가 항시 진행된다는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곳이다.

 

 

 




 

 

 

 

  고스기유만이 아니다책을 넘기다보면 일본은 정말 목욕탕 문화에 진심인 곳이구나!’ 하고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그 정도로 이색적이고 개성 넘치는 목욕탕이 상당히 많다목욕 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맥주를 제공하기 위해 아사히 맥주에서 맥주 마이스터 공인을 받기도 한 도쿄 닛포리 사이토유’, 나무데크에 설치된 해먹에 누워 천정 저편으로 스카이트리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노천탕 도쿄 오시아게 다이코쿠유’, 벚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온천과 벚꽃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도쿄 가마타 사쿠라칸’, 베르사유 궁전이 연상되는 기상천외한 지바 나라시노 구아팔레스’, 호박탕이나 보졸레 누보 와인탕똠양꿍탕과 같이 특색 있는 욕조를 운영하는 도쿄 스미다 야쿠시유’ 등 일본 곳곳에서 목욕탕의 다양한 매력을 즐길 수 있다.

 

 

 

골목 안쪽에 자리한 도고시 긴자 온천은 빌딩형 목욕탕으로 1960년에 창립했다. 2007년 건축가 이마이 겐타로의 설계로 리뉴얼하면서 질리지 않는 목욕탕’ 콘셉트로 여탕과 남탕이 매일 바뀌는 츠키노유(달의 탕)와 히노유(해의 탕)를 만들었다두 욕탕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전혀 다른 목욕탕에 온 기분이 든다. / ‘도쿄 도고시 긴자 온천 치키노유’ 편 중에서 37p

 

 

발끝으로 깊이를 확인해가면서 욕조 안의 계단을 내려가 안쪽 벽에 등을 가져다 댄다기분 좋은 온도에 몸의 긴장이 스르륵 풀린다천장을 올려다보니 조금 높은 위치에 창문이 활짝 열려 있고 벚꽃이 만개해 있다바깥에서 실내까지 뻗어 들어온 나뭇가지에서 벚꽃 잎이 바람결에 살랑살랑 춤을 추며 검은 온천수에 내려앉는다몽환적인 광경이다바깥에서 들어온 바람 소리사람들이 몸에 물을 끼얹는 소리조용히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우아하게 벚꽃놀이를 즐겼다. / ‘도쿄 가마타 사쿠라칸’ 편 중에서 59p

 

 

 





 

 

 

 

  책을 읽다보면 목욕탕을 공동체의 커뮤니티이자 도심의 문화공간으로목욕탕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완성해낸 그들의 마인드가 참 인상적이다감각적인 현대 문화와 과감하게 융합하는 모습도변화가 빠른 이 시대에 우직하게 살아남아 역사와 전통을 맥을 이어가는 모습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참신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그들의 열의에 감탄하게 된다무엇보다 일본에는 목욕탕 벽화 장인이나 목욕탕 전문 건축가가 따로 있는 것을 보면 목욕탕에 애정이 얼마나 남다른지 느낄 수 있다덕분에 일본에 간다면 한 번쯤 목욕탕에 꼭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발가벗은 채로 대화를 나누는 이 커뮤니티가 소중하게 여겨집니다서로 발가벗은 채라면 나이도 직업도 상관없이 한 명의 사람으로서 대화를 나눌 수 있거든요무엇보다 욕실에서만 주고받는 대화니 그 뒤는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관계가 얕은 것도 아니예요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만큼 따스하고 견고한 관계가 형성됩니다그래서 대중목욕탕의 커뮤니티는 남다른 점이 있어요이런 얕으면서도 견고한 관계에 마음이 놓이는 것은 평소 SNS를 통해 익명성 커뮤니티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여러분도 다정하지만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독자적이고 특별한 대중목욕탕만의 커뮤니티를 경험해보세요. / 104p

 

 

 

  이 외에도 책에는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목욕탕을 즐기는 방법들을 만나볼 수 있다목욕탕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일본의 독특하고 특별한 목욕탕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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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황모과 지음 / 래빗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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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이 뜨거운 역사가 우리에게 건네는 목소리!

형용할 수 없는 이 통증의 기록이 더 이상 돌림노래가 되지 않기를!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9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 지역에 진도 7.9급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했다관동 지역 일대가 궤멸되다시피 했다사망자를 비롯해 행방불명자만 해도 14만 명이재민이 340만 명에 달하는 국가 초유의 재난이었다그런데 이 혼란스러운 상황과 사회 불안 속에서 이상한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다조선인이 밭에서 작물 훔쳐 갔다상점 약탈했다여성들을 강간하는 것도 모자라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낭설이 불길처럼 일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이민자나 유학생을 제외하고서도 그해에만 대략 2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노동자로 이주해 있던 때였다지진이 발생한 당일경찰이 주도해 유언비어를 공식적으로 확산시키기 전부터도 조선인을 공격하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목격되었다다음 날에는 간토 지역 전체에 급조된 자경단과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 간토 지역에서만 무려 1,593개의 자경단이 일제히 활동을 개시했다. “좋은 조선인도 나쁜 조선인도 죽여라.” 그들은 조선인과 마주치기만 해도 무기를 들었다조선인으로 의심받았던 중국인이나 조선인을 도운 일본인까지도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을 무참히 죽였다무간지옥이 따로 없었다.

 

 

 

새롭게 쓰인다는 것에 대하여

 

 

  마침 올해가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가 되는 해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나는 부끄럽게도 관동 대지진은 알았으나 조선인 대학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지진이라는 거대한 이미지에 경도되어 있었던 것인지학살의 피해자들을 위한 조직적인 목소리가 나에게까지 미처 미치지 못한 것인지나는 어째서 까마득하게 이 사실을 모른 채 살아왔을까실제로 공권력이 독려하여 덮어버린 사건이었으며 대부분이 불문에 부쳐져 아직까지도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니 학살의 피해자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줄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다.

 

 

 



 

 

 

 

  이에 작가 황모과는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껏 묵인되고지워지고은폐됨으로써 무수하게 사라진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복원한다그러나 단순히 기술적인 재건을 의미하는 것이 복원이라면황모과는 단순히 광기와 혐오의 역사를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형용할 수 없는 이 통증의 기록이 더 이상 돌림노래가 되지 않도록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연거푸 제안한다. ‘타임 루프(주인공 및 주변인물들이 특정 시간대에 갇혀서 똑같은/비슷한 일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상황)’라는 소설적 장치를 통해 과거를 바꾸고 싶은 욕망과 끝내 바꿀 수 없는 역사의 괴리 사이에서 고뇌하고 환기하고 침묵을 부수어 회복을 모색하는 심리적 토대를 마련해나간다.

 

 

 

싱크로놀로지 채널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현장을 관찰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다일어난 현상을 되돌릴 수는 없다과거의 현상 사이를 탐험할 수 있을 뿐 과거 자체에 변형을 가할 수는 없다하지만 민호는 기대했다시스템을 통해 당대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하다면그 순간 말을 전할 수 있다면최소한 도망치라고 소리라고 지를 수 있다면 한두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는 건 아닐까자신이 간 곳에서라도 학살을 막아낸다면 그건 진상을 밝히는 일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 19p

 

 

민호는 사료의 신빙성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다 자주 나가떨어지곤 했다증거를 가져오라는 사람일수록 진상을 알고도 외면하거나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민호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검증된 증거가 있어야만 증면된다면 100년쯤 지나 생존자들이 모두 사망하고 기억조차 희미해지면 민간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한 일도 없던 일이 되리라는 기대 섞인 믿음과 닿아 있다모두의 기억이 퇴색되어 자신들의 죄악까지 희미해지길 원하는 것이다. / 68p

 

 

다카야는 이번 생에도 목격했다그해 일본인을 살해한 자 몇몇이 지극히 가벼운 형 집행을 받았을 뿐조선인을 살해한 자들은 대부분 무죄로 석방되었다공권력이 작정하고 공문서를 소멸하는 것을생사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유족들이 영영 찾을 수 없도록 치밀하고 오나벽하게 유해를 은닉하는 것을어린이들의 수기까지 꼼꼼하게 삭제하는 것을 보았다철저하게 기획된 은폐였다전부 똑똑히 지켜보았다. / 182p

 

 

 




 

 

 

 

  순사들이 동네를 돌며 확성기로 조선인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다선동된 광기와 위협에 교육받지 못한 하층민들뿐 아니라 지역 유지대학 교수아름다운 글을 쓰던 작가들도 무기를 들었다이에 저항하기 위해 백정 출신인 조선인 달출은 죽을 줄 알면서도 저들에게 달려들며 속으로 외친다. ‘끈질긴 놈들이라 그냥은 안 죽었다고 알려줘야 허니께앞으로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큰일을 저질렀다고 기억하게 해줘야제죽어가면서도 눈을 부라려줘야제!’ 그의 울분에당시 조선인들이 겪었을 분함과 애통함에 눈물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그럼에도 도무지 누구의 묘비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능욕의 흔적들을 뒤로 하고새로 새워진 달출의 추모비가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역사는 바뀌지 않아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리라이것이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며 이 불온한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의 메시지가 미더운 이유다.

 

 

 

약자에 대한 혐오가 조장되고 장려되는 한민중의 민중에 대한 학살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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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 - 할머니의 손맛과 손녀의 손길로 완성되는 소박한 채식 밥상
예하.임홍순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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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로 인생을 배우게 되는 책!

사람과자연과사랑이 있는 예하 작가와 홍순 할머니의 정다운 밥상 이야기!

 

 

 

 

  ‘홍순씨와 저의 리틀포레스트함께 하실래요?’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속에서나 나올 법한 제철 채식 밥상 피드에 눈이 황홀해진다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의 저자인 예하 작가의 인스타그램에는 할머니의 손맛과 손녀의 손길로 완성된 요리들이 한 가득이다계절의 변화가 오롯이 담긴향기 가득 몸과 마음을 다채롭게 채워줄 것 같은 아름다운 밥상이다그 가운데 예하 작가와 임홍순 할머니가 다정하게 포토 카드를 찍어 올린 사진이 또 한번 눈길을 끈다할머니와 손녀만이 나눌 수 있는다정함과 애정이 담뿍 담겨 있는 사진이다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에서아니 우리 일상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이라 괜스레 마음이 울컥거린다문득 그들이 함께 만든 음식만큼이나 두 사람의 사연이 더 궁금해진다.

 

 

 

음식과 인생을 배우고 싶어 할머니의 요리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책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는 대학 대신 진주에 있는 할머니 요리학교에 입학해 세월로 쌓인 요리와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는 예하 작가의 음식에세이다계절마다 산과 들을 누비며 직접 따온 채소들새벽시장에서 넉넉하게 담아온 채소들로 정성껏 만든 임홍순 할머니의 요리에 손녀의 손길을 더해 완성된 소박한 밥상을 소개한다한때 진주를 휘어잡을 정도로 30년 넘게 떡집을 운영했다던 홍순 할머니는 대충이라고는 하지만 온 신경을 세워 요리하는 손녀에게 늘 힘을 빼라고 하신다. “몸에 힘을 빼고시장 들락날락거리면서 먹고 싶은 요리를 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정확한 조리법도 없고어림짐작에 오로지 으로 만들어진 기록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지만 할머니의 요리에는 수십 결의 세월이 쌓이고 겹쳐진그래서 계속 듣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짜면 물을 더 넣으면 되고달면 달달한 대로 그 매력을 즐기면 되는 그런 사람 사는 이야기가.

 

 

 

내가 대단한 응원이 되어줄 수는 없지만그래요리요리가 예하의 응원이 된다면 얼마든지 보태줄게나는 못 그랬지만 너는 세월의 흐름 따라 하고 싶은 대로 살어.”

언제까지고 나의 응원이 되고 싶다는 사람. / 61p

 

 

풀을 태우면 연기가 나잖어울 할머니가 그 연기에 부채질을 하면서 우리한테 보내셨어모기한테 물리지 말라고그렇게 한참을 보냈어휘이휘이물리지 말어라우리 아가들 편안하게 잠들어라어찌 그런 정성을 쏟으셨을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하나의 세상을 그려나간다할머니의 부채질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의 단어를당연하게 먹어온 집밥으로부터 맛의 세계를들어온 말로부터 언어의 온도를. / 123p

 

 

 

  책 속에서는 시금치 부침개에서부터 아카시아 시루떡호박꽃 갈레트에 이르기까지 채식 요리 90가지가 수록되어 있다평소 무침으로만 해먹던 시금치를 부침개 재료로 만들어 볼 생각은 왜 안했을까여기에 달달한 고구마 하나양파를 채 썰어 넣어 부침가루와 감자전분을 3대 1비율로 섞어 골고루 가루를 먼저 묻혀준다재료에 가루를 먼저 묻히면 최소한의 반죽으로 얇은 부침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니나도 이대로 도전해 먹어봐야겠다그리고 전이 남으면 토스트 재료에 얹어 부침개 토스트도 해 먹을 수 있다니 이번 주말에 꼭꼭 해먹어야지.

 

 

 

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당신은전을 구울 때면 식구들 먼저 먹이느라 한두 입 먹고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기 바빴어요처음으로 그런 당신을 붙잡고 말해요. “우리 천천히 먹자음식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우리 둘만 있고한 장씩 구워서 가장 맛있을 때 천천히따뜻하게 먹자.” 당신은 가만히 전을 바라보다이내 나를 바라보더니 맑게도 웃어요. / 21p

 

 

 




 

 

 

 

  두 달 전엄마가 독감에 걸려 응급실에 입원까지 하게 되어 그 주를 꼬박 병간호를 다녔다퇴원 후 재검을 위해 한 번 더 병원에 가야 했는데피를 뽑아야 한다고 미리 세 시간이나 일찍 병원에 가 있어야 했다엄마는 아침도 안 먹고 달려왔을 딸을 생각해서 기다리는 동안 먹을 도시락으로 호박잎 쌈밥을 넉넉하게 만들어오셨다이제야 숨 좀 돌리며 지낼 만 하셨을 텐데 그 와중에 딸 먹일 도시락을 싸온 정성에 울컥하면서도 나는 신나게 먹었다어릴 땐 우엉잎호박잎배추잎이 뭐가 맛있다고 자꾸 권하는지 참 그렇게도 싫었는데… 양념고추장을 더해 향긋하게 즐기는 쌈밥은 이젠 엄마가 해주는 게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거라 그리운 맛이 되어버렸다홍순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우엉잎 쌉밥과 호박꽃 주먹밥도 예하 작가에게 그런 의미가 아닐까그리움을 담은 그런 맛.

 

 

 

예하야천 원짜리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천 원보다 백 원이 더 중요하고백만 원에서 백 원이 없으면 그건 백만 원이 아닌 거거든큰 보따리도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지고는 하니까그러니 작은 일작은 돈에 무뎌지지 말고 신중하게.”

삶과 사람이 엿보이던 우엉잎그리고 천 원. / 21p

 

 

파는 누룽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한 맛과 향이 집 안 가득 퍼지던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누룽지백 원 하나쌀 한 톨지나가던 한마디도 귀하게 여기는 할머니를 보며 생각해요.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찬밥을 가득 안고서 누룽지를 구워야겠다.’ / 56p

 

 

너는 이 평범한 걸 뭐 그리 열심히 적어예전엔 노다지 이것만 해 먹었어!”

그래서 적어요평범해서 지나쳤던 순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하고어루만지고전하고묻혀 있던 보석을 캐는 마음으로 요리하고 싶어서요.

이거 다아 멋진 당신 보면서 배운 거야내가 살아가는 모든 방식들은 다아 그 손에서 시작된 거야.” 할머니만 모르더라고요. / 127p

 

 

 

  결혼을 하고 시집의 음식 문화에 적응을 해야 했던 때가 있다그 중에 하나가 토란이었다경상도에서는 토란 하면 토란 줄기로 육개장 같은 국물 요리나 고사리처럼 무침으로 해먹는 경우가 많다나는 어머니가 토란국을 해주신다기에 당연히 토란 줄기가 들어있는 국인 줄 알았는데 감자 같은 게 한 가득 들어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니이거 감자인가요?” 하고 물은 내게 어머니는 한껏 웃어 보이셨다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게 토란이라는 걸 알았다이 책 속에서 홍순 할머니는 토란으로 토란병이라는 걸 만들어주셨다삶은 토란을 부드럽게 으깨어 찹쌀가루와 반죽한 다음 참기름에 지지는 방식인데그 위에 땅콩호박과 홍옥을 설탕에 달달하게 절여서 만든 정과와 꽃조청과 메밀꽃을 얹으니 작품이 되었다언젠가 어머님이 토란을 주시면 나도 홍순 할머니의 토란병을 만들어봐야겠다.

 

 

 

여든 해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적혀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적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그 기나긴 세월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달려온 당신의 이야기를 기억해요살아도 살아도 세상이 궁금하다는 당신의 눈빛을 기억해요인생의 비법은 속도가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는느려도 괜찮다는 할머니의 말로 오늘의 수업을 마칩니다. / 103p

 

 

너는 이 평범한 걸 뭐 그리 열심히 적어예전엔 노다지 이것만 해 먹었어!”

그래서 적어요평범해서 지나쳤던 순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하고어루만지고전하고묻혀 있던 보석을 캐는 마음으로 요리하고 싶어서요.

이거 다아 멋진 당신 보면서 배운 거야내가 살아가는 모든 방식들은 다아 그 손에서 시작된 거야.” 할머니만 모르더라고요. / 127p

 

 

 




 

 

 

 

  이 외에도 남편이 좋아해서 처음 만들어봤다가 이제는 내가 좋아서 봄만 되면 만들어 먹는 달래장채식 감자탕유무 나물 말이 등은 채식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해먹어보기 좋은 음식인 것 같다그 중에서도 파개장은 내가 꼭 해먹어보고 싶은 음식이라 다가오는 주말에 꼭 만들어볼 생각이다홍순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파를 무작정 많이 넣으면 칼칼하니 맵지만데쳐서 넣으면 달짝지근해져서 얼마든지 더 넣을 수 있다고 하니 할머니의 비법을 빌려 해봐야겠다.

 

 

 

  “할머니는 제일 친한 친구가 있어?” 예하 작가의 물음에 홍순 할머니는 있지너잖아.” 하고 대답하신다망설임 없이손녀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친구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따뜻한 음성이 듣지 않아도 들리는 것 같다사람과자연과사랑이 있는 예하 작가와 홍순 할머니의 정다운 밥상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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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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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 개발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독일과 연합국 간의 치열한 경쟁의 역사를 다룬 대중과학서!

전쟁이 남긴 상흔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과, ‘발전 그리고 혁명이라는 이름 뒤에 따르는 무한한 책임감을 기억하게 하는 책!

 

 

 

 

  원자를 쪼갠다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물리학자들은 우라늄 원자를 쪼개면 막대한 에너지(유명한 공식 E=mc²)가 나오며인류가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1938년 후반까지만 해도 이것은 그저 이론적 염려에 불과했다그런데 독일의 오토 한이 그것을 발견하고 리제 마이트너가 이를 입증했다그리고 1939년 4졸리오가 우라늄 원자는 핵분열을 한 번 할 때마다 중성자가 증식하여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따라서 핵폭탄 제조도 가능하다는 것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다수 물리학자들은 이 소식에 전율을 느꼈지만정치적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독일은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과 함께 세계 최고의 산업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였다만약 핵물리학으로 무기를 만드는 나라가 온다면그것은 독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히틀러에게 가공할 만한 무기가 쥐어진다는 뜻이었다오토 한은 훗날 자신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하지만 기어코 우려할 만한 일은 벌어지고야 말았고핵물리학계에서 핵분열 소식은 세계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분수령이 되었다원자를 쪼갬으로써 세상이 분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치의 원자 폭탄 개발을 막아야 한다!

 

 

  연합국 측은 프랑스와 독일로 진격하기 전에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를 점령하느라 이미 수백만 명을 희생한 상태였다하지만 그들은 히틀러가 단지 우라늄 몇 킬로그램만으로 연합국을 유럽 대륙에서 축출하다 못해 세상이 그 가공할 힘에 무너지는 광경을 보게 될까 두려웠다독일의 화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이미 핵분열을 발견했고우라늄 클럽을 만들어 핵개발에 돌입할 태세를 갖추었다여기에 독일은 전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중수 생산 시설인 베모르크를 손에 넣어 핵폭탄 개발에 필요한 중수를 마음껏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또 벨기에를 점령함으로써 벨기에가 아프리카 식민지들에서 수입한 수천 톤의 우라늄광도 손에 넣었다또 졸리오에게서 조건부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사이클로트론(입자가속기)도 얻었다.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강했던 나치는 1939년에 과학자들에게 병역 면제를 거의 해주지 않았다그런데 이 소수의 화학자와 물리학자에게는 예외를 인정했다왜 그랬을까디프너가 상관들에게 야심찬 계획에 도박을 걸어보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그 계획은 바로 핵분열 폭탄을 만드는 것이었다나중에 이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우라페라인즉 우라늄 클럽이라고 불렀다. / 136p

 

 

만약 독일이 전력을 다해 달려든다면, 1943년 중엽에 히틀러가 핵폭탄을 손에 쥐게 된다는 뜻이었다.

이 보고서는 과학계를 흔들었다그전까지만 해도 많은 유명 물리학자들은 핵폭탄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을 표시했다이들은 모두가 간과한 미묘한 요인이나 새로운 자연의 법칙이 그러한 무기를 실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이것은 희망적 생각에 사로잡혀 논리적 사고를 도외시한 대표적 사례였다. MAUD 보고서는 그런 희망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영국 과학자들과 미국 과학자들은 마침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그들은 이미 많이 뒤처져 있었다독일은 2년 전부터 핵무기를 연구하고 있었다. / 182p

 

 

 




 

 

 

 

  이제 과학자와 정치가군인 모두 원자핵에 숨어 있는 초자연적 힘이 곧 미치광이의 손에 들어갈 것을 확신했다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미국의 물리학자인 오펜하이머를 필두로세계 최초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을 통해 미국 과학자들은 미친듯이 원자폭탄 개발에 매진했다또 연합국 측은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스파이군인물리학자정치인 등을 투입해 그 어떤 극단적인 전술도 마다하지 않았다중수 생산 시설인 베모르크를 파괴하기 위한 프레시먼 작전과 거너 사이드 작전을 비롯해 과학자를 스파이로 만들어 첩보 활동을 감행한 알소스 임무에 이르기까지나치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비밀 임무가 동시다발적으로 치열하게 펼쳐졌다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과학자와 정치인이 이보다 더 큰 이해가 걸린 일에 전력투구한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혹은 숨 막히는 긴박감이 사람들을 이보다 더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게 한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던 패시는 트럭 수송 부대 둘을 징발했다그리고 통과 튼튼한 과일 포장용 자루를 만드는 근처 공장으로 달려가 노동자들을 설득해 설비를 가동시켰다그들은 며칠 동안 용기를 수천 개나 만들어냈고거기에 우라늄을 담는 작업을 도왔다가끔 포탄이 날아오고 총격적인 발생했지만그들은 일주일 안에 트럭 260대에 우라늄을 남김없이 실었다훗날 그로브스 장군은 이 탈취 작전을 전쟁 동안 자신이 느낀 가장 큰 위안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이렇게 해서 사라졌던 독일의 우라늄 중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 / 514p

 

 

 

  그 중에서도 메이저 리그 야구 포수 출신에서 미국 최초의 원자 스파이로 변신한 모 버그가 특히 인상적이었다그는 화이트삭스에서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하나로 성장하면서도 오프 시즌에는 컬럼비아 법학 대학원을 다니는 인재였다심지어 뉴욕주 변호사 시험까지 치르고 합격까지 했으며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만큼 다재다능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여기에 괴짜 같은 그의 면모는 덕아웃을 찾아오는 스포츠 기자들과 후배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까지 했는데훗날 야구선수에서 스파이로 변신했을 때 이러한 장점은 확실히 무기가 되어주었다다만 주머니에서 권총을 자주 떨어뜨리는 등 비밀요원으로서는 다소 어설픈 행동을 보이기도 했는데, 3년 후 우라늄 클럽의 핵심인물인 하이젠베르크의 턱 밑까지 추격해 그의 목숨을 놓고 저울질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으니 그 이야기가 참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 여행 중에 경험한 한 가지 일 때문에 계속 마음이 심란했다. 1933년 1월 하순에 베를린에 도착한 버그는 즉시 여러 신문을 집어들었다모든 신문에 똑같이 헤드라인이 실려 있었다아돌프 히틀러라는 43세의 선동가가 새 독일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버그는 기쁨에 넘친 나치 군중이 거리에서 이 사건을 축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날을 보냈다미국으로 돌아온 뒤버그는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유럽이 큰 불행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 40p

 

 

 




 

 

 

 

  이처럼 원자 스파이는 1930년대에 일어난 핵분열의 탄생에서 시작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마지막 날까지원자폭탄 개발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독일과 연합국 간의 치열한 경쟁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여기에 스파이와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특공대 알소스 부대를 중심으로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험한 무기를 둘러싼 과학 첩보 작전이 한 편의 대서사시처럼 스릴 넘치게 펼쳐진다스파이 소설에 관심 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2차 세계 대전사와 원자폭탄 개발을 둘러싼 전말을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이 무렵의 저명한 과학자인 하이젠베르크마리 퀴리마리 퀴리의 딸인 이젠 졸리오-퀴리오토 한가우드스밋 등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특별한 매력이다무엇보다 이 역사를 통해 전쟁이 남긴 상흔과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발전 그리고 혁명이라는 이름 뒤에 따르는 무한한 책임감을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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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자이언트 스텝 2
김서해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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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목소리가 내 마음을 밝힌 거야!

감각적인 언어와 감성으로 세상의 모든 해인과 공명하는 이야기!

 

 

 

  누나는 이름이 뭐예요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뭐예요미술은 언제 시작했어요어떻게 시작했어요글은 언제 쓰고 싶었어요소설누나는 어떻게 발산해요완전히 새로운 감정을 알게 된 적 있어요영원의 끝없는 질문은 해인으로 하여금 세상을 비추는 사람이라는 이름에 비해 어엿하지 못한 삶을 떠올리게 한다서른을 넘긴 나이와 텅 빈 커리어학창 시절 추었던 춤과 대학 시절 그렸던 그림몰래 쓴 글엎질렀는데 흐르지 않은 꿈들로 자책이 새까맣게 몰려오는 듯한 기분이 든다마치 자신을 해체하려 드는 것만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해인은 이 질문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란다해인 스스로도 자신을 긍정할 수 없을 때마다 영원의 질문이뜻 모를 대화가 자신의 곁을 맴도는 듯한 것이 어쩌지 나쁘지 않다. ‘무의식은 꿈이고 꿈은 푹 꺼진 사랑이에요기쁨도 똑같이 예행연습이 많이 있을 거예요그래도 자기만의 질서가 있을 거예요영원을 갈망하는 마음이 가치를 만드는 거죠죽지 않으면 뭐든 될 수 있어요’ 이런 말들이 해인의 오기를 달래주고 욕심을 받아주고 영원히 자신의 주변에 있을 것처럼 굴었기에.

 

 

 

슬픔도 리허설이 있구나밴드 같네.”

밴드 같아요?”

근데기쁨도 똑같이 예행연습이 많이 있을 거예요.”

나는 모든 감정이 그런 식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영원의 말을 듣자마자 그럴지도 모른다고 작은 가능성을 열어 두게 되었다. / 34p

 

 

무의식은 꿈이고 꿈은 푹 꺼진 사랑이라고 했다수수께끼 같은 말에 꽂혀 나는 그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보았다영원이 지갑을 꺼내 교통카드 단말기에 갖다 댈 때 나는 다소 초조하게 물었다.

부풀어오른 사랑도 있어요?”

영원은 뭐겠어요하며 웃었다꿈이 아닌 사랑은 다 부푼 사랑이라고 했다남이 묻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사랑은 항상 눈에 잘 띈다고그런 것들이 바람이 빠지면 무의식 속으로 사라지는 거라고 했다. / 39p

 

 

 



 

 

 

 

그가 물으면 나에게 답이 생기는 마법 같은 시간

 

 

 

  ‘질문은 를 늘리며 확장하는 행위다. ‘이미 알고 있는 나와 미처 알지 못한 나가 서로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시간이다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나도미처 알지 못한 나도 결국엔그 어떤 자아도 무용한 것은 없다해인은 영원과 나누는 질문과 대화를 통해 바닥까지 가라앉다 못해 늘 얼얼하기만 했던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고모른척하고 묻어두기만 했던 스스로와 화해하며 자신만의 질서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깨달아간다그리고 마침내 가짜로 점철된 이야기들이 아닌 자신의 글을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게 된다.

 

 

 

난 한 번도 내 말들을 믿은 적이 없었어그런데 너와 있을 때면네 목소릴 지금까지 찾아 헤맸단 걸 알게 돼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 / 172p

 

 

 




 

 

 

 

  이렇듯 너는 내 목소리를 닮았어는 자아 찾기라는 고전 문학의 클리셰를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 소설이다서사로 이야기를 쌓아올리는 익숙한 전개가 아닌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숨겨두었지만 언제라도 드러내길 바라왔던 한 사람의 내면을 서서히 길어 올리는 듯한 방식이다. ‘과거 어느 인간이 경험한 통증의 기록이 훗날 유사한 질병을 앓는 다른 인간에게 손을 내미는 것우리는 이것이 문학의 쓸모이며 문학의 효용이라던 박혜진 비평가(언더스토리)의 말처럼김서해 작가는 끝없는 우울감으로 어디에도 나아가지 못하고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던 해인을 통해 또 다른 이름의 해인들에게 손을 내민다우리 모두는 얼마쯤 해인을 닮았다는 점에서조금씩 자신과 조우하는 해인의 마음과 저절로 공명하게 된다.

 

 

 

혼자 지어낸 거라도이야기는 위로가 돼.” / 148p

 

 

 

  반짝이는 첫 소설을 응원하는 <자이언트 스텝>의 두 번째 책으로새로운 감각을 선사하는 특별한 작품을 만나 반가웠다김서해 작가의 다음 행보를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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