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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스파이 - 나치의 원자폭탄 개발을 필사적으로 막은 과학자와 스파이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3년 7월
평점 :

원자폭탄 개발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독일과 연합국 간의 치열한 경쟁의 역사를 다룬 대중과학서!
전쟁이 남긴 상흔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과, ‘발전 그리고 혁명’이라는 이름 뒤에 따르는 무한한 책임감을 기억하게 하는 책!
원자를 쪼갠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물리학자들은 우라늄 원자를 쪼개면 막대한 에너지(유명한 공식 E=mc²)가 나오며, 인류가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1938년 후반까지만 해도 이것은 그저 이론적 염려에 불과했다. 그런데 독일의 오토 한이 그것을 발견하고 리제 마이트너가 이를 입증했다. 그리고 1939년 4월, 졸리오가 우라늄 원자는 핵분열을 한 번 할 때마다 중성자가 증식하여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따라서 핵폭탄 제조도 가능하다는 것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다수 물리학자들은 이 소식에 전율을 느꼈지만, 정치적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독일은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과 함께 세계 최고의 산업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였다. 만약 핵물리학으로 무기를 만드는 나라가 온다면, 그것은 독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히틀러에게 가공할 만한 무기가 쥐어진다는 뜻이었다. 오토 한은 훗날 자신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기어코 우려할 만한 일은 벌어지고야 말았고, 핵물리학계에서 핵분열 소식은 세계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분수령이 되었다. 원자를 쪼갬으로써 세상이 분열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치의 원자 폭탄 개발을 막아야 한다!
연합국 측은 프랑스와 독일로 진격하기 전에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를 점령하느라 이미 수백만 명을 희생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히틀러가 단지 우라늄 몇 킬로그램만으로 연합국을 유럽 대륙에서 축출하다 못해 세상이 그 가공할 힘에 무너지는 광경을 보게 될까 두려웠다. 독일의 화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이미 핵분열을 발견했고, 우라늄 클럽을 만들어 핵개발에 돌입할 태세를 갖추었다. 여기에 독일은 전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중수 생산 시설인 베모르크를 손에 넣어 핵폭탄 개발에 필요한 중수를 마음껏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벨기에를 점령함으로써 벨기에가 아프리카 식민지들에서 수입한 수천 톤의 우라늄광도 손에 넣었다. 또 졸리오에게서 조건부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사이클로트론(입자가속기)도 얻었다.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강했던 나치는 1939년에 과학자들에게 병역 면제를 거의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수의 화학자와 물리학자에게는 예외를 인정했다. 왜 그랬을까? 디프너가 상관들에게 야심찬 계획에 도박을 걸어보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 계획은 바로 핵분열 폭탄을 만드는 것이었다. 나중에 이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우라페라인, 즉 우라늄 클럽이라고 불렀다. / 136p
만약 독일이 전력을 다해 달려든다면, 1943년 중엽에 히틀러가 핵폭탄을 손에 쥐게 된다는 뜻이었다.
이 보고서는 과학계를 흔들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많은 유명 물리학자들은 핵폭탄의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을 표시했다. 이들은 모두가 간과한 미묘한 요인이나 새로운 자연의 법칙이 그러한 무기를 실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희망적 생각에 사로잡혀 논리적 사고를 도외시한 대표적 사례였다. MAUD 보고서는 그런 희망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 영국 과학자들과 미국 과학자들은 마침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그들은 이미 많이 뒤처져 있었다. 독일은 2년 전부터 핵무기를 연구하고 있었다. / 182p



이제 과학자와 정치가, 군인 모두 원자핵에 숨어 있는 초자연적 힘이 곧 미치광이의 손에 들어갈 것을 확신했다.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오펜하이머를 필두로, 세계 최초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을 통해 미국 과학자들은 미친듯이 원자폭탄 개발에 매진했다. 또 연합국 측은 독일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스파이, 군인, 물리학자, 정치인 등을 투입해 그 어떤 극단적인 전술도 마다하지 않았다. 중수 생산 시설인 베모르크를 파괴하기 위한 프레시먼 작전과 거너 사이드 작전을 비롯해 과학자를 스파이로 만들어 첩보 활동을 감행한 알소스 임무에 이르기까지, 나치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한 비밀 임무가 동시다발적으로 치열하게 펼쳐졌다. 한 역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과학자와 정치인이 이보다 더 큰 이해가 걸린 일에 전력투구한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혹은 숨 막히는 긴박감이 사람들을 이보다 더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게 한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던 패시는 트럭 수송 부대 둘을 징발했다. 그리고 통과 튼튼한 과일 포장용 자루를 만드는 근처 공장으로 달려가 노동자들을 설득해 설비를 가동시켰다. 그들은 며칠 동안 용기를 수천 개나 만들어냈고, 거기에 우라늄을 담는 작업을 도왔다. 가끔 포탄이 날아오고 총격적인 발생했지만, 그들은 일주일 안에 트럭 260대에 우라늄을 남김없이 실었다. 훗날 그로브스 장군은 이 탈취 작전을 전쟁 동안 자신이 느낀 가장 큰 위안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사라졌던 독일의 우라늄 중 대부분을 손에 넣었다. / 514p
그 중에서도 메이저 리그 야구 포수 출신에서 미국 최초의 원자 스파이로 변신한 모 버그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화이트삭스에서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하나로 성장하면서도 오프 시즌에는 컬럼비아 법학 대학원을 다니는 인재였다. 심지어 뉴욕주 변호사 시험까지 치르고 합격까지 했으며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만큼 다재다능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괴짜 같은 그의 면모는 덕아웃을 찾아오는 스포츠 기자들과 후배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까지 했는데, 훗날 야구선수에서 스파이로 변신했을 때 이러한 장점은 확실히 무기가 되어주었다. 다만 주머니에서 권총을 자주 떨어뜨리는 등 비밀요원으로서는 다소 어설픈 행동을 보이기도 했는데, 3년 후 우라늄 클럽의 핵심인물인 하이젠베르크의 턱 밑까지 추격해 그의 목숨을 놓고 저울질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으니 그 이야기가 참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 여행 중에 경험한 한 가지 일 때문에 계속 마음이 심란했다. 1933년 1월 하순에 베를린에 도착한 버그는 즉시 여러 신문을 집어들었다. 모든 신문에 똑같이 헤드라인이 실려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라는 43세의 선동가가 새 독일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버그는 기쁨에 넘친 나치 군중이 거리에서 이 사건을 축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날을 보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버그는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유럽이 큰 불행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 40p



이처럼 『원자 스파이』는 1930년대에 일어난 핵분열의 탄생에서 시작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마지막 날까지, 원자폭탄 개발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독일과 연합국 간의 치열한 경쟁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여기에 스파이와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특공대 ‘알소스 부대’를 중심으로,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험한 무기를 둘러싼 과학 첩보 작전이 한 편의 대서사시처럼 스릴 넘치게 펼쳐진다. 스파이 소설에 관심 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2차 세계 대전사와 원자폭탄 개발을 둘러싼 전말을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무렵의 저명한 과학자인 하이젠베르크, 마리 퀴리, 마리 퀴리의 딸인 이젠 졸리오-퀴리, 오토 한, 가우드스밋 등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특별한 매력이다. 무엇보다 이 역사를 통해 전쟁이 남긴 상흔과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발전 그리고 혁명’이라는 이름 뒤에 따르는 무한한 책임감을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