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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 - 할머니의 손맛과 손녀의 손길로 완성되는 소박한 채식 밥상
예하.임홍순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7월
평점 :

요리로 인생을 배우게 되는 책!
사람과, 자연과, 사랑이 있는 예하 작가와 홍순 할머니의 정다운 밥상 이야기!
‘홍순씨와 저의 리틀포레스트, 함께 하실래요?’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에서나 나올 법한 제철 채식 밥상 피드에 눈이 황홀해진다.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의 저자인 예하 작가의 인스타그램에는 할머니의 손맛과 손녀의 손길로 완성된 요리들이 한 가득이다. 계절의 변화가 오롯이 담긴, 향기 가득 몸과 마음을 다채롭게 채워줄 것 같은 아름다운 밥상이다. 그 가운데 예하 작가와 임홍순 할머니가 다정하게 포토 카드를 찍어 올린 사진이 또 한번 눈길을 끈다. 할머니와 손녀만이 나눌 수 있는, 다정함과 애정이 담뿍 담겨 있는 사진이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에서, 아니 우리 일상에서도 보기 드문 장면이라 괜스레 마음이 울컥거린다. 문득 그들이 함께 만든 음식만큼이나 두 사람의 사연이 더 궁금해진다.
“음식과 인생을 배우고 싶어 할머니의 요리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책 『할머니와 나의 사계절 요리학교』는 대학 대신 진주에 있는 할머니 요리학교에 입학해 세월로 쌓인 요리와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는 예하 작가의 음식에세이다. 계절마다 산과 들을 누비며 직접 따온 채소들, 새벽시장에서 넉넉하게 담아온 채소들로 정성껏 만든 임홍순 할머니의 요리에 손녀의 손길을 더해 완성된 소박한 밥상을 소개한다. 한때 진주를 휘어잡을 정도로 30년 넘게 떡집을 운영했다던 홍순 할머니는 대충이라고는 하지만 온 신경을 세워 요리하는 손녀에게 늘 힘을 빼라고 하신다. “몸에 힘을 빼고, 시장 들락날락거리면서 먹고 싶은 요리를 하면 되는 거야.” 그래서 정확한 조리법도 없고, 어림짐작에 오로지 ‘감’으로 만들어진 기록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지만 할머니의 요리에는 수십 결의 세월이 쌓이고 겹쳐진, 그래서 계속 듣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짜면 물을 더 넣으면 되고, 달면 달달한 대로 그 매력을 즐기면 되는 그런 사람 사는 이야기가.
“내가 대단한 응원이 되어줄 수는 없지만, 그래, 요리! 요리가 예하의 응원이 된다면 얼마든지 보태줄게. 나는 못 그랬지만 너는 세월의 흐름 따라 하고 싶은 대로 살어.”
언제까지고 나의 응원이 되고 싶다는 사람. / 61p
“풀을 태우면 연기가 나잖어. 울 할머니가 그 연기에 부채질을 하면서 우리한테 보내셨어. 모기한테 물리지 말라고…. 그렇게 한참을 보냈어. 휘이휘이, 물리지 말어라. 우리 아가들 편안하게 잠들어라. 어찌 그런 정성을 쏟으셨을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하나의 세상을 그려나간다. 할머니의 부채질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의 단어를, 당연하게 먹어온 집밥으로부터 맛의 세계를, 들어온 말로부터 언어의 온도를. / 123p
책 속에서는 시금치 부침개에서부터 아카시아 시루떡, 호박꽃 갈레트에 이르기까지 채식 요리 90가지가 수록되어 있다. 평소 무침으로만 해먹던 시금치를 부침개 재료로 만들어 볼 생각은 왜 안했을까? 여기에 달달한 고구마 하나, 양파를 채 썰어 넣어 부침가루와 감자전분을 3대 1비율로 섞어 골고루 가루를 먼저 묻혀준다. 재료에 가루를 먼저 묻히면 최소한의 반죽으로 얇은 부침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하니, 나도 이대로 도전해 먹어봐야겠다. 그리고 전이 남으면 토스트 재료에 얹어 ‘부침개 토스트’도 해 먹을 수 있다니 이번 주말에 꼭꼭 해먹어야지.
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당신은, 전을 구울 때면 식구들 먼저 먹이느라 한두 입 먹고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기 바빴어요. 처음으로 그런 당신을 붙잡고 말해요. “우리 천천히 먹자. 음식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우리 둘만 있고. 한 장씩 구워서 가장 맛있을 때 천천히, 따뜻하게 먹자.” 당신은 가만히 전을 바라보다, 이내 나를 바라보더니 맑게도 웃어요. / 21p



두 달 전, 엄마가 독감에 걸려 응급실에 입원까지 하게 되어 그 주를 꼬박 병간호를 다녔다. 퇴원 후 재검을 위해 한 번 더 병원에 가야 했는데, 피를 뽑아야 한다고 미리 세 시간이나 일찍 병원에 가 있어야 했다. 엄마는 아침도 안 먹고 달려왔을 딸을 생각해서 기다리는 동안 먹을 도시락으로 호박잎 쌈밥을 넉넉하게 만들어오셨다. 이제야 숨 좀 돌리며 지낼 만 하셨을 텐데 그 와중에 딸 먹일 도시락을 싸온 정성에 울컥하면서도 나는 신나게 먹었다. 어릴 땐 우엉잎, 호박잎, 배추잎이 뭐가 맛있다고 자꾸 권하는지 참 그렇게도 싫었는데… 양념고추장을 더해 향긋하게 즐기는 쌈밥은 이젠 엄마가 해주는 게 아니면 먹을 수 없는 거라 그리운 맛이 되어버렸다. 홍순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우엉잎 쌉밥과 호박꽃 주먹밥도 예하 작가에게 그런 의미가 아닐까. 그리움을 담은 그런 맛.
“예하야, 천 원짜리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 천 원보다 백 원이 더 중요하고. 백만 원에서 백 원이 없으면 그건 백만 원이 아닌 거거든. 큰 보따리도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지고는 하니까. 그러니 작은 일, 작은 돈에 무뎌지지 말고 신중하게.”
삶과 사람이 엿보이던 우엉잎, 그리고 천 원. / 21p
파는 누룽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한 맛과 향이 집 안 가득 퍼지던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누룽지. 백 원 하나, 쌀 한 톨, 지나가던 한마디도 귀하게 여기는 할머니를 보며 생각해요.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순간이 오면 찬밥을 가득 안고서 누룽지를 구워야겠다.’ / 56p
“너는 이 평범한 걸 뭐 그리 열심히 적어? 예전엔 노다지 이것만 해 먹었어!”
그래서 적어요. 평범해서 지나쳤던 순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어루만지고, 전하고, 묻혀 있던 보석을 캐는 마음으로 요리하고 싶어서요.
“이거 다아 멋진 당신 보면서 배운 거야. 내가 살아가는 모든 방식들은 다아 그 손에서 시작된 거야.” 할머니만 모르더라고요. / 127p
결혼을 하고 시집의 음식 문화에 적응을 해야 했던 때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토란이었다. 경상도에서는 토란 하면 토란 줄기로 육개장 같은 국물 요리나 고사리처럼 무침으로 해먹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머니가 토란국을 해주신다기에 당연히 토란 줄기가 들어있는 국인 줄 알았는데 감자 같은 게 한 가득 들어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니, 이거 감자인가요?” 하고 물은 내게 어머니는 한껏 웃어 보이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게 토란이라는 걸 알았다. 이 책 속에서 홍순 할머니는 토란으로 토란병이라는 걸 만들어주셨다. 삶은 토란을 부드럽게 으깨어 찹쌀가루와 반죽한 다음 참기름에 지지는 방식인데, 그 위에 땅콩호박과 홍옥을 설탕에 달달하게 절여서 만든 정과와 꽃, 조청과 메밀꽃을 얹으니 작품이 되었다. 언젠가 어머님이 토란을 주시면 나도 홍순 할머니의 토란병을 만들어봐야겠다.
여든 해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적혀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적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 기나긴 세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달려온 당신의 이야기를 기억해요. 살아도 살아도 세상이 궁금하다는 당신의 눈빛을 기억해요. 인생의 비법은 속도가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느려도 괜찮다는 할머니의 말로 오늘의 수업을 마칩니다. / 103p
“너는 이 평범한 걸 뭐 그리 열심히 적어? 예전엔 노다지 이것만 해 먹었어!”
그래서 적어요. 평범해서 지나쳤던 순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어루만지고, 전하고, 묻혀 있던 보석을 캐는 마음으로 요리하고 싶어서요.
“이거 다아 멋진 당신 보면서 배운 거야. 내가 살아가는 모든 방식들은 다아 그 손에서 시작된 거야.” 할머니만 모르더라고요. / 127p



이 외에도 남편이 좋아해서 처음 만들어봤다가 이제는 내가 좋아서 봄만 되면 만들어 먹는 달래장, 채식 감자탕, 유무 나물 말이 등은 채식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해먹어보기 좋은 음식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파개장은 내가 꼭 해먹어보고 싶은 음식이라 다가오는 주말에 꼭 만들어볼 생각이다. 홍순 할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파를 무작정 많이 넣으면 칼칼하니 맵지만, 데쳐서 넣으면 달짝지근해져서 얼마든지 더 넣을 수 있다고 하니 할머니의 비법을 빌려 해봐야겠다.
“할머니는 제일 친한 친구가 있어?” 예하 작가의 물음에 홍순 할머니는 “응, 있지. 너잖아.” 하고 대답하신다. 망설임 없이. 손녀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친구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따뜻한 음성이 듣지 않아도 들리는 것 같다. 사람과, 자연과, 사랑이 있는 예하 작가와 홍순 할머니의 정다운 밥상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