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
양우석.신윤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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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 상쾌, 통쾌, 기막힌 사회 풍자 소설!

나라를 대신해 백성들을 구하러 대동강을 팔러 나선 위대한 사기극!

 

 

  성실하게 노력을 한 만큼 대가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세상의 마땅한 이치인데 어째서 가문과 돈이 좌우하는 이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소설 <봉이 김선달> 속 19세기 초 무렵의 조선은 일개 백성들은 아무리 성실하게 노력해도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는 세상이었으며, 같은 피를 나눈 가문의 득세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시대였다. 실제 김선달의 이름이 선달이 아니라 대과에 붙고도 관직을 못 받았다 하여 사람들이 그리 부른 것이라 하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당시 상황을 알만한 일이다. 하늘이 내린 재주가 있어도 쓸 수 있어야 빛나는 법이건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거대한 장벽, 즉 부와 권력, 기득권으로 점철된 21세기의 대한민국도 이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세상이라 더욱 원통할 따름이다.

 

 

  정조가 승하한 뒤의 조선은 열한 살 어린 임금의 즉위로 수렴청정과 외척에 의한 세도 정치, 과거제 문란, 매관매직 등 기득권층의 부패가 들끓었다. 임금의 외척 세력들인 김조순과 박종경 두 가문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으니,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보고 있던 조씨 가문의 조덕영은 자금을 모아 중앙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평안감사직을 돈으로 사 백성들로 하여금 착취를 일삼기 시작했다. 이때 김선달은 피폐해진 한양을 뒤로 하고 고향인 평안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조선의 와룡은 정약용이요, 봉추는 김사원이라. 강진에 유배된 다산과 평양 초야의 봉추, 둘 중에 하나만 제대로 써도 조선은 흥할 것이다’고 입을 모아 말할 정도인 평양 초야의 봉추, 바로 그가 김선달이나 몇 안 되는 제자들만 남아 있는 서당을 근근이 운영하며 입에 풀 칠 정도만 하고 사는 처지였다.

 

 

“무릇 벼슬살이란 백성이 위임한 권력을 백성의 행복을 위해 대리 행사하는 것이니, 벼슬자리는 영원히 소유할 대상도 아니고 구한다고 해서 뜻대로 얻어지는 자리도 아니다. 이는 주인인 백성의 뜻에 따라 임시로 관리하는 자리에 불과하다. 공직자의 마음가짐이 이와 같아야 그 자신은 물론 나라가 평안하다.” / 30p

 

 

  자고로 나라가 번성하려면 후생양성에 힘써야 하는 법인데, 구구절절 옳은 말씀만 담은 다산 적양용 선생의 『목민심서』도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평안도의 민심이 흉흉하게 변해버린 것이 예삿일이 아닌 듯 싶을 때였다. 평안감사 조덕영의 횡포로 매일같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자 장사치들이 조덕영을 도모하기 위해 김선달을 찾아왔다. 그들은 그간 조덕영에게 수탈당한 목록이 적힌 치부책을 내밀며 이를 한양으로 가 고발해 줄 것을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한양을 떠난 지 십 년이라 천하의 김선달도 뾰족한 수가 있을까 난색을 표했지만, 아끼던 제자가 조덕영으로부터 초주검이 되어서 돌아오는 사건을 겪으며 그는 그 옛날 한양에서 왈패들과 어울려 양반들을 골려먹을 때 함께 했던 천봉석을 대동하고 한양으로 나섰다.

 

 

  그러다 우연히 한 패거리와 마주쳐 납치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 상대가 다름 아닌 홍경래였다. 홍경래는 김선달에게 서양의 부르주아 혁명을 예로 들며 우리도 난을 일으켜 왕과 귀족들의 나라가 아닌 백성들의 나라를 만들자고 제의를 했다. 하지만 김선달은 이 난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일찍이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난을 겪고서도 백성들 살림살이가 나아졌는지 살펴보았느냐고, 진정 백성의 나라가 되었느냐고 반문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피맺힌 울분은 조정에까지 닿을 듯하나, 세상은 이렇다하게 나아지지 못하고 백성들의 피만 부르게 되는 난이 될 것이라 내다보았다. 끝끝내 무리를 해서라도 돌파해내려는 홍경래와 한때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조롱하고 다녔으나 여전히 무엇이 옳은지 해답을 찾지 못한 김선달, 이 둘의 만남은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파하고 말았다.

 

 

물론 ‘난’이 끝나고 나면 백성들이 흘린 무수한 피의 대가로 세상은 아주 조금 진일보하기는 했다. 김선달은 그 아주 더딘 발걸음이 모이고 모여 세상이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무고한 백성들에게 그 피의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 68p

 

 

  한양에 도착한 김선달은 조덕영과 적대 관계에 있는 병조판서 박종경을 통해서 형조참판 정만석을 찾아가게 되고, 치부책을 내보임으로써 마침내 조덕영의 죄상을 밝혔다. 김선달은 평안도의 영웅이 되었고, 이후 젊은 나이에 홍상 독점권을 쥐게 된 유상옥이란 자를 알게 되어 청나라에 함께 동행을 했다. 청나라에 가는 동안 비적떼를 만나 위기에 처하기도 했는데, 뜻밖에도 묘한 계책을 낸 김선달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는 일도 있었다. 조선의 임선옥처럼 청나라에서 홍삼을 독점적으로 수입하고 있던 진대인이 임선옥을 길들이기 위해 홍삼 값을 한없이 낮추어 사려는 수작을 부리자 이에 시름하고 있던 임선옥을 위해 김선달이 꾀를 내어 청나라와의 홍삼 독점거래에서 조선이 완승하게 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흥미진진했다. 어째서 이런 인물이 조선의 중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통탄할 만한 일이었다. 더욱이 청나라를 둘러보며 고인 물과도 같은 조선의 현실을 떠올리는 김선달의 모습에서도 쓸쓸함이 느껴졌다.

 

 

조선은 고인 물처럼 고요했다. 조선에서는 세상이 이렇게 천지개벽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조선의 사대부란 자들은 아직도 케케묵은 이론에 사로잡혀 있었다. 언제까지고 눈 감고 있을 것인지. 청나라에서 본 세상은 김선달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세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김선달은 조선이란 나라가 이대로 가만히 있다 보면 격변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 침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 123p

 

 

  한편 조덕영은 갖은 술수를 동원해 유배에서 풀려나게 되었고, 복수를 하기 위해 김선달을 죽이라 명령했다. 그 사이 다복동을 근거로 하여 난을 준비하고 있던 홍경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대해보였던 난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아슬아슬했고,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이들은 정주성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립이 되는 바람에 청나라에서 돌아온 김선달은 아끼던 제자를 잃게 되고, 성에 갇힌 딸과 아내마저도 볼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한때 조덕영을 귀양 보냈던 정만석이 홍경래의 난을 수습하고, 관서 지방의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 잡기 위해 평양감영으로 와 사태를 정리하려하지만 이미 이 일대의 백성들을 포함하여 정주성에 갇혀 있던 백성들까지 청나라의 노예로 팔려가고 말았다. 김선달은 이제 자신이 딸과 아내는 물론 삼천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구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은자 이십 육만냥.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마침내 조덕영에게 대동강 물을 팔 기막힌 사기극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흥미진진하고 유쾌, 상쾌, 통쾌한 사기극의 결말이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토록 긴장감 넘치고 조바심을 느끼며 읽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양반들을 조롱하기 위해 대동강 물을 판 이라고만 알고 있던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나라에 대한 시름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담긴 사회 소설이라는 점에서 참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더럽고 치사한 세상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이 인물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시사 하는 바가 큰 듯하다. 아무래도 이 책을 지은 저자가 영화 <변호인>를 쓰고 연출한 사람이라 그런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인물의 이야기를 조명하여 시국을 비판하는 저자의 음성이 과감하고 또한 정곡을 찌르니, 굳이 이 시점에 19세기 초 조선의 인물을 끌어와 글을 쓴 뜻이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매주 전국 곳곳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벌이고 민주주의의 뜻을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실상 달라지는 게 없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김선달이 홍경래에게 ‘난을 일으키면 백성들이 삶이 정말로 나아지겠느냐’ 고 반문했던 것이 생각나 가슴이 따끔거린다. 우리도 삶이 단숨에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이 땅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더럽고 치사한 세상, 하루빨리 국민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해주고 겸허히 뜻을 살펴줄 김선달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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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
마크 월린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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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증명을 통해 트라우마의 유전적 증거들을 밝혀내다!

트라우마의 근원과 이해, 극복으로 나아가는 따뜻한 여정!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혹은 ‘공황장애’라는 정신적 외상을 겪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갑자기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나서 발생하는 불안 장애, 조울증, 우울증, 때로는 자해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 이 심리적 반응은 그 크기가 크건 작건 간에 ‘트라우마’가 남긴 상처들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및 세월호 사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정농단 사건들이 개인과 국민 전체에 강한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하지만, 가족과 부대끼며 사는 동안에 겪는 트라우마가 개인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더욱 강력하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경험하는 트라우마의 대부분은 가족에게서 온다고 한다. 특히, 저자는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 감정적 유대 관계가 가장 높은 가족일수록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과 애착의 결핍 등은 가족 구성원 전체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뿐더러 세대에 걸쳐 유전이 된다고 밝힌다.

 

 

  트라우마의 유전인자가 세대에 걸쳐 이어진다니. 불행의 그림자가 내 아이와 또 다음 세대의 아이에게까지 착 달라붙어 반복해서 나타난다고 생각하니 꽤나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애석하게도 트라우마가 유전된다는 이 충격적인 명제는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는 중이다. 정신의학과 신경과학 교수 레이철 예후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그 자녀들이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신경생물학적으로 연구해왔는데, 자녀들이 부모와 유사한 정도로 코르티솔(트라우마를 경험한 뒤 우리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낮고, 이 때문에 전 세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재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선구적인 세포생물학자 브루스 립턴 역시 부정적인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생각과 믿음, 감정이 DNA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가 산모에게 항상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만 하라고 말하듯, 어머니가 만성적이고 반복적으로 느낀 분노나 두려움 같은 감정은 태아에게 각인되어 아이가 환경에 적응할 방식을 준비하거나 ‘사전 프로그램화’한다는 것이다.

 

 

 

“두려움, 분노, 사랑, 희망 등 어머니의 감정은 자녀의 유전자 발현을 생화학적으로 바꿔놓는다.” / 55p

 

 

 

예전에는 부모에게 받은 염색체의 DNA로만 유전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인간 유전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지금, 과학자들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피부 색깔 같은 신체적 특징을 전해주는 염색체의 DNA가 놀랍게도 전체 DNA의 2퍼센트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머지 98퍼센트는 ‘비부호화DNA’로 이는 우리가 물려받는 다양한 감정, 행동, 성격 특성을 담당한다. / 58p

 

 

  다시 말해 부모의 트라우마가 그대로 아이의 트라우마가 되고 아이의 행동이나 정서 문제는 부모의 문제를 거울처럼 반영한다. 개인적으로 추운 겨울임에도 목까지 올라오는 셔츠를 싫어하고, 집에서도 창문을 조금이나마 열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일종의 ‘갑갑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편이다. 즉,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고 산소가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정도이다. 그런데 나의 트라우마는 나의 아들에게도 어느 정도 같은 증상을 보일 때가 있다. 닫힌 거실 문을 열어놓거나 목에 뭔가를 두르려고 하면 싫어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예로 나의 트라우마가 전이되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아이의 몸에 무엇을 물려주었고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자라서 사랑을 주는 법도 안다고 했던가,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얼마나 사랑을 표현하고 주느냐에 따라 아이가 느끼는 애착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나의 행동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기는 어머니를 세상의 전부로 인식한다. 따라서 아기에게 어머니와 분리되는 일은 삶에서 분리되는 일로 느껴진다. 그러면 공허함과 단절을 경험하고 절망과 체념의 감정을 느끼며 자기 자신과 삶 자체가 무언가 끔찍하게 잘못되었다고 믿게 된다. 아주 어릴 때 분리를 경험하면 이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 트라우마를 처리하기엔 너무 어릴 때라 내면에서 벌어지는 감정과 신체감각을 느끼기만 할 뿐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지 못한다.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상처와 상실, 실망, 단절에는 그러한 감정과 신체감각이 배어 있다. / 128p

 

 

  중요한 것은 앞서 밝힌 나의 트라우마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를 찾아야만 보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남길 만한 사건에 대해 뚜렷하게 알지 못하고, 명료하게 표현하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이미 철학자 융과 프로이트는 감당하기 어려운 기억은 저절로 흐릿해지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모두 ‘무의식’에 저장된다고 하였다. 과학적으로도 트라우마가 일어나는 동안에는 언어중추가 닫히고 현재 순간의 경험을 담당하는 내측 전전두엽 피질도 차단된다고 한다. 즉,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의 증상을 겪거나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괴로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뚜렷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 역시 갑갑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그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인 것인지, 이전 세대의 가족이 겪었던 트라우마가 전이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나와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은 가족이 있었는지에 대해 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불편한 가족사 혹은 이전 세대에 트라우마가 존재한다면 침묵 혹은 외면하기보다 꼭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과 가족사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의 실마리, 즉 핵심 언어 지도를 완성해가다보면 거기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핵심 불평, 핵심 묘사어, 핵심 문장, 핵심 트라우마를 나열해볼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게 있다면 가족 관계도를 만들어 보는 방법이다. 

 

 

 

 

 

 

부계와 모계를 비교해보라. 어느 쪽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가? 어느 쪽이 더 부담스러운 느낌이 드는가? 트라우마 사건을 살펴보라. 힘겨운 운명으로 가장 고통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가장 힘든 삶을 살았는가? 다른 가족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가족 중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일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가? 정보가 완전하지 않아도 걱정 마라.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 신체감각을 안내자로 믿고 따라가라. / 219p

 

 

  이렇듯 가족사가 부모에게 입힌 상처를 아는 것은 곧 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부모의 차가움, 비판적인 태도, 공격성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 사건을 알면 자기 고통뿐 아니라 부모의 고통도 이해하는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나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고, 적어도 나의 탓만은 아니라고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끊어졌던 관계를 복구하는 일이다. 저자가 언급한 치료 방법을 활용해봄으로써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긍정적인 성장 경험으로 삼아보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고난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강인함과 회복탄력성의 유산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이들이 극복하는 길에 한 걸음 다가가고, 가족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을 얻어 나와 아이에게 건강한 감정적 유산을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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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3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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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목소리와 인성, 삶과 얼굴과 눈빛, 그 민낯의 모든 것!

사랑과 육아, 철학과 예술, 일상이 투쟁이 된 크나우스고르적 문학!

 

 

  끊임없이 삶을 반추하고 가감없이 일상을 드러냄으로써 치열한 자기 고백의 글쓰기를 완성한 노르웨이 문학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이 어느새 3권에 이르렀다. 1권이 아버지와 죽음의 존재론적 가치를 탐구하는 것이었다면 2권은 사랑, 결혼과 같은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3권은 2권에서 맺지 못한 이야기의 연장선과 같았다. 벌써 세 권에 달하는 작가의 글을 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이야기는 너무 적나라해서 거침없고 때로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의 이토록 사적인 이야기에 계속해서 열광하게 되는 것은 오롯이 작가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눈앞의 현실과는 다른 장소, 다른 시간,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나는 그 누구도 아니며 그 어떤 사람도 내가 될 수 있는 곳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이라고 하였다. 즉, 국경을 초월하고 세대를 초월하여 너와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 그것이 <나의 투쟁>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낳고 육아를 경험한 부모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일상의 기록들이 퍽 친숙하게 여겨진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남녀가 하나가 되어 유전이라는 놀라운 자산을 잉태하고 낳는 일은 부부에게 꽤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 부부는 그간의 경험 이상의 많은 생각과 예민한 감정들을 주고받는다. 뱃속에 아이가 들어선 것을 굳이 확인해보지 않았는데도 예민한 직감이 앞섰던 그 미묘한 기분, 조금 무리하거나 배에 충격이 가해졌을 때 혹시나 아기가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운 마음, 누구를 더 닮았을까, 손가락과 발가락 모두 이상 없이 건강하게 나오기를 바라는 간절함 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작가 또한 여지없이 마주하곤 했다. 특히, 출산에 임박하여 조마조마한 마음이나 아기가 핏덩이 같은 모습으로 울음소리를 내며 엄마의 가슴팍에 얹어질 때의 그 느낌이란. 마치 세상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다던 작가의 표현은 충분히 공감된다.

 

 

왜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만 최악의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아니, 꼭 그렇게 생각할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침대 위, 린다 옆에 누워 그녀의 배 위에 손을 얹고, 이젠 더 움직일 공간도 없이 자라버린 배 속의 아이를 떠올리니, 실제로 한 생명이 배 속에서 사라져버리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나긴 하니까. 그렇다면 그 작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옳은 일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매사에 조심하는 일은 절대 부끄럽고 민망해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도움이 될 일이 아니었던가. 오히려 타인에게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고 되는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부끄럽고 민망해할 일인 것이다. / 80p

 

아이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두피에 붙어 있었다. 피부는 잿빛에 가까웠고 왁스를 칠해놓은 것처럼 미끌거렸다. 아이가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다. 그것은 바로 내 딸이 우는 소리였다. 나는 세상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은 정적으로 휩싸였고, 어둠 속에 가라앉아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조산원, 인턴, 린다, 나 그리고 우리의 작은 아기. 빛은 거기에 모여 있었다. / 100p

 

 

  하지만 그 충만한 감동과 환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육아라는 피로감을 몰고 오기도 한다. 육체적인 것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와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맞은편에서 줄을 맞잡고 밀고 당기는 정신적 피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아이를 통제할 수도 그렇다고 마음껏 원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빵긋빵긋 웃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심사가 뒤틀려서 으앙 울어대면 어처구니가 없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공황상태가 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몸에 새겨진 기억과 감정은 대물림된다고 했던가, 자신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던 작가처럼 때때로 고스란히 유전되는 감정적 유산으로 인해 불쾌해질 때도 있다.

 

 

린다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나는 린다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가 식탁 앞에 앉아 음식을 던지고 흘린다 해도, 이론적으로 본다면 아이가 아무거나 잘 먹고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거나 바닥에 흘릴 때마다 그것을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 속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접시 밖에 작은 빵조각 하나를 흘려도 참지 못하고 야단을 쳤다. 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아버지를 향한 증오심이 숨어 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내 속에 있는 아버지를 끄집어내 아이에게 전해주려 하는가. / 148p

 

 

  아이를 키우다보면 나의 욕망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분명 사회적으로 능력 있던 사람이고, 또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에 매달리다보니 미루거나 접었던 나의 욕망들이 불시에 과잉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업을 마쳐야 하는 아내를 대신해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다 보니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함이 감정적으로 솟구쳐 오른다. 인간의 목소리 속에 담겨 있는 슬픔과 불만, 만족감과 기쁨, 우리를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을 건드려보고 싶고, 깨워보고 싶은 열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 던 김춘수의 <꽃>처럼 그는 언어를 통해 나에게로 와 의미가 되었던 것들을, 예술을 끊임없이 가까이 하고 싶은 작가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투쟁>은 나의 삶과 맞닿아 있는 주변의 모든 것들, 내게 있어 의미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담고 싶은 작가의 욕망 그 자체로써 결코 우연히 탄생한 것은 아니다.

 

 

숲의 의미는 내 속에 있던 것이다. 숲에서 의미를 찾는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눈으로 한 번 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숲과 관련된 우리의 행위를 거쳐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무는 베어야 하고, 집은 지어 올려야 하고, 모닥불은 피워야 하고, 짐승은 사냥을 해야 한다. 이런 행위들은 내가 만족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는 내 삶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눈앞에 보이는 숲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 243p

 

 

  앞서 1권과 2권에 비해 확실히 3권은 보다 편하게 읽히고 책 전반을 아우르는 분위기도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공감대가 형성되는 일상적이고 친근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어서 그럴 것이다. 어쩌면 그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죽음과 상처들로 가득했던 1권에 비해 사랑으로 가족을 끌어안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정서적 안정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여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편,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에 하나는 친구 게이르와의 대화 내용이다. 게이르는 작가가 작품에 대한 견해 및 철학적 성찰, 삶의 존재론적 가치 등에 대해 유감없이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대이다. 거름망 없이 속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주고 때로는 질타도 해줄 수 있는 친구가 흔치 않은 세상에서 꽤 의미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왜 우리가 그토록 겉으로 보이는 형식과 형태에 집착하는지 알아? 대화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강의하는 방식, 서빙하는 방식, 먹는 방식, 마시는 방식, 걷는 방식, 앉는 방식, 심지어는 섹스하는 방식 등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질과 방법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어. 사람들이 정상적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 왜 고군분투하는지 아니? 상호관계가 맺어질 때 서로에게서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 바로 정상적인 형태와 정상적인 방식이 존재하는 지점이기 때문이야. / 323p

 

 

  이제 <나의 투쟁> 4권이 나아가는 지점은 어디일까. 세 권의 책을 통해 그가 살아낸 모든 시점에 머물러 본 듯한데, 번역되지 않는 책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는 뜻일 것이다. 어쩌면 다시 아버지의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3권 말미에서 어머니가 떠올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1권이 철저히 작가의 시점에서 마주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면 4권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새삼 흥미롭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이 싫은 전부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관점이 차이를 작가가 어떻게 담아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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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성원의 공부원리 패턴학습법 - 30만 학부모가 선택한 교육전문가 민성원의 명품 학습 코칭
민성원.김지현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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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전문 컨설턴트의 노하우가 담긴 전략과 학습법!

우리 아이 상위권으로 키우는 효과적인 학습지도서!

 

 

  세상의 어느 부모든 아이를 가지게 되는 순간 ‘교육’이라는 커다란 산을 마주하게 된다. 임신부가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하여 말과 행동, 마음가짐 등을 조심하는 일을 태교라 하지만, 구태여 뱃속에 있을 때부터 책을 읽어주고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며 좋은 자극을 주려는 것은 이왕이면 아이가 똑똑하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교육에의 노출 시기가 점차 빨라지고 있는 요즘, 극성맞은 부모가 되지 않으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아이의 교육에 관심이 가면서 이와 관련된 미디어나 서적을 참고 삼아 보기 시작했다. 미리 보고 우리 아이 교육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 그 원칙을 세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때마침 EBS 교육 방송에 자주 출현하여 맞춤형 교육 컨설턴트로 활약 중인 민성원 연구소 소장의 책이 출간되어 눈길이 갔다. 그의 우리나라 교육 현실과 대학입시 제도를 꿰뚫어 보고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냉정하지만 솔직한 조언으로 실현 가능한 교육 전략을 제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분이다. 또한 민성원 연구소를 통해 과학적인 진단검사와 일대일 컨설팅을 통해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아이들에게 맞춤형 명문대 입학 로드맵을 설계해주고 있다. <민성원의 공부원리 패턴학습법>의 경우, 공부만이 살길이라며 과열된 교육 경쟁 속에 아이를 밀어 넣는 부모에게도, 공부하라고 다그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의 교육 현실과 이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싶은 부모에게도, 아이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스스로 학습하게 하려는 부모에게도 모두가 그 나름의 조언과 방법을 구할 수 있는 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어떻게 공부시켜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또 낮은 성적을 받는 아이에게 혼을 내고 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면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해결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민성원의 공부원리 패턴학습법>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공부의 가장 기초가 되는 ‘기본력’을 살펴본다. 기본력이란 공부를 하기 위한 기초 체력을 쌓는 셈인데 초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기 위한 기본력을 충분히 다져 놓으면 중고등학교 공부에서 훨씬 수월하게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기본력을 쌓기 위해 민성원 연구소에서 제시하는 자녀교육의 대원칙은 바로 ‘아이를 아는 것에서 모든 변화는 시작된다’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어떠한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자 하는지 명확히 인지했을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의 지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는 지능이 낮은 아이는 절대 지능이 높은 아이의 공부 패턴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밝힌다. 대신 좋은 습관을 들이면 지능을 이긴다고 말한다. 계획을 잘 짜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서 전체 학습량과 질을 높인다면 지능이 높은 아이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1부에서 아이의 기본력을 점검해봤다면, 2부에서는 학습력에 대해 알아본다. 기본력이 상수라면 학습력은 변수라 할 수 있다. 즉, 누구나 키울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때 아이가 자신에게 적합한 학습 계획을 수립하고,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자신만의 학습 패턴을 설정하고, 올바른 학습 원리를 적용하여 공부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대로 된 좋은 계획을 세우기 위한 네 가지 절대 원칙은 ‘공부 계획은 현재 수준과 상황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 장기적인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단기 계획을 세울 것, 평가목표와 행동목표를 함께 고려하여 계획을 짤 것, 작은 계획부터 꾸준히 실천하는 연습을 할 것’이다. 만약, 아이가 계획을 지키지 못한다면 아이의 끈기나 노력을 탓하기보다 사소한 계획부터 실천하는 연습을 들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전교 1등이나 전국 1등도 하지 못할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하루에 수학 문제집 세 장씩 풀기’, ‘하루에 영어단어 10개씩 외우기’ 등과 같이 가벼운 계획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작은 실천을 꾸준히 성공하여 한 단계 수준을 올려 다시 계획하고 실천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에 공부 시간을 한 시간만 더 확보해도 일주일이면 7시간, 한 달이면 약 30시간, 일 년이면 365시간이 된다. 다른 아이들보다 365시간을 더 공부할 수 있다면, 성적 향상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우선 자신만의 공부 시간을 확보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주어진 시간을 누가 더 효율적으로 보낼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 91p

 

 

  에빙하우스가 인간의 기억에 관해 최초로 실험적인 연구를 한 바가 있는데, 최초로 학습한 이후 일주일만 지나도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최초 학습 시간의 80퍼센트를 다시 재학습에 소요하게 된다는 의미 있는 결과를 밝혀냈다. 그런데 아이들은 보통 배운 직후에 바로 공부하지 않는다. 시험 공부를 시작하기 전까지 계속 배우기만 하다가 그동안 배운 내용에 대한 기억이 최저 상태로 떨어진 후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책을 펼친 순간 이미 새롭게 느껴지는 내용과 마주하는 것이다.

 

 

공부한 내용을 또 공부하고, 화수분처럼 분량은 점점 늘어가니 공부가 재미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배운 내용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까? 다음 그래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시점에 하는 반복학습이다. 반복학습을 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처음 배운 내용을 영구기억으로 유도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학습의 효율을 높이려면 반복학습을 실시하는 주기가 중요하다. 비용 대비 효과의 측면에서, 공부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은 최초학습 이후 적절한 시점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재학습이다. / 96p

 

 

  ‘이 정도만 공부하면 돼요’, ‘어차피 시험에서 이런 문제는 안 나와요’, ‘그 부분은 안 봐도 돼요’와 같이 스스로 공부의 한계를 정해버리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습관이 아니다. 상위권이 되길 바란다면 공부의 한계를 한 단계 더 높게 설정하고 필요한 시점을 넘어서 훈련하는 과잉학습이 필요하다. 이는 예습과 수업, 복습 중심의 단순한 패턴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단순히 예습과 수업, 복습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하고 의아해할 사람들이 있겠으나 그가 제시하는 방법들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또 도전해봄직하다. 특히 ‘5분 복습’은 언젠가 나의 아이에게도 꼭 실천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다.

 

 

쉬는 시간 5분을 투자해서 40~50분을 공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5분 복습니다. 5분 복습은 수업이 끝난 직후, 방금 들은 수업 내용을 곧바로 복습하는 것이다. 어떻게 40~50분의 수업 내용을 5분 안에 다시 복습할 수 있을까?

앞서 나는 최초학습 이후 재학습이 빨리 이루어질수록 학습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했다. 수업 직후라면 방금 들은 수업 내용을 5분 안에 충분히 복습할 수 있다. / 116p

 

 

  이렇듯 이해, 정리, 암기, 적용, 점검에 걸친 공부의 원리를 바탕으로 학습력이 높이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봤다면 3부에서는 실전에 강해지기 위해 쌓아야 할 시험력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 이 땅의 많은 수포자들에게 수학을 포기하지 않는 법과 영어를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유용한 공부 지도 방법들을 살펴본다. 그 외에도 과목별 핵심 공부법을 상세히 기록하여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학습법은 물론, 시험 기간에 집중적으로 배워야 할 것들과 계획수립까지 도와주니 이 또한 매우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상위권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가 마련해주어야 할 공부환경에 대해 살펴본다. 부모는 결코 아이의 공부를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공부 의욕에 날개를 달아 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기였을 때, 조금씩 걸을 때마다 격려하던 그때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아기가 걷다가 넘어진다고 해서 아기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지 않은가. 그런데 아이가 자라서 하는 작은 실수에 왜 그리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중략)...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칭찬을 할 때는 즉시 칭찬하고, 잘한 일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자. 이렇게 잘한 일에 대하여 긍정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잘해 나가도록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 225p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절대로 ‘공부하라’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만큼 신뢰를 받았기에 스스로 더욱 노력한 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공부를 미룰 때가 많았다. 이미 공부를 다 했다고 해도 뭐라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나의 실력은 그저 고만고만한 정도에 그쳤고 진짜로 내가 원하는 대학에는 갈 수가 없었다.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공부에 관심을 좀 더 가져주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모의 기대가 자식을 망치기도 하지만 무관심은 자식을 더욱 망칠 수도 있다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지나치지는 않더라도 아이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두고 지지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아이가 부모를 핑계로 대지 않도록, 공부로 인해 아이가 방황하지 않도록 앞으로 이 책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많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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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6 - 구부의 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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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의 대계를 무너뜨리고 고구려의 문명을 세우리라!

동아시아의 정치 판도를 뒤흔들려는 구부의 꿈, 찬란하게 피어나는 고구려의 힘!

 

 

  무릇 왕이란 태양과도 같이 밝아서 스스로 빛나야 하는 법이지만 또한 큰 그릇과도 같아야 한다. 담는 자리 하나 모자람이 없어야 하고, 하나로 모아 그것을 정직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 왕이 갖추어야 할 소양이다. 왕이 온 나라의 꿈을 담는 그릇을 제공해주면, 제 꿈을 저당 잡힌 많은 이들이 알아서 힘을 모아 채워주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왕좌이며 왕은 그러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 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요즘, 소설가 김진명이 마침내 고구려 6권을 들고 나타났다. 무려 4년 만에 미천왕 을불과 고국원왕 사유에 이어, 고구려의 불씨를 키운 천재 태왕 소수림왕(구부)과 함께.

 

 

  때는 고구부 즉위 5년, 고구려는 북방의 세력 다툼에서 탈락하여 이미 다 망해버린 줄로만 안 시기였다. 개국 이래 가장 강력한 군사, 가장 뛰어난 장수, 부여구라는 위대한 왕을 지닌 백제가 전성기를 이루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부는 선왕의 유언으로 오직 내치에만 전념하기로 하여 태학을 설립하고 불교를 들여와 백성의 삶과 마음을 다졌고 스스로 법을 제정하여 나라의 근간을 다졌다. 강력한 왕권과 고구려의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기 위한 그의 노력으로 인해 고구려는 다시금 번영의 물꼬를 틔우고 있었다. 쥐 죽은 듯 발톱을 숨기고 있던 구부는 마침내 백제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는 갑옷조차 입기 싫어하는 왕이고, 이렇다 할 책사와 걸출한 장수도 곁에 없었다. 최고의 지략과 담력을 갖춘 백제군과 달리 고구려군은 허약해 보이기만 했지만 이상하게도 수곡성을 두고 벌이는 이 전쟁은 도무지 결착이 나지 않고 자꾸 미궁으로만 빠져든다. 마치 수십 수의 앞까지 내어다보는 바둑의 기사처럼 이 전장의 모든 수를 읽어내는 그로 인해,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전투는 오직 그의 뛰어난 계책으로 희생 하나 치르지 않고 승리한다. 태왕 고구부에 의해서 다시금 고구려가 북방의 패자에 올라 위대한 패업을 이룰 것만 같은 전조였다.

 

 

장수들은 들떠 있었다. 천하에 위세를 떨치는 백제군을 이토록 시원히 놀려댔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들은 그것이 누구의 덕인지 잘 알고 있었다. 판은 처음부터 짜여 있었고 고구려군과 백제군은 모두 바둑돌에 불과했다. 정말이지 그들의 태왕 구부는 신기한 인물이었다.

사관 하나가 그의 병법을 기록하려 시도했으나 도무지 그 원리를 기술하지 못하여 사직하고 만 사례도 있었다. 무예를 전통의 미덕으로 여겨온 고구려 무장들이었으나 그들은 이 말도 제대로 못 타는 태왕 아래 진심을 다해 머리를 조아리게 된 지 오래였다. / 41p

 

 

  칼보다는 붓이 더욱 어울리는 구부, 그는 왕이라기에는 성정이 자유롭고 쾌활하였으며 어떤 중대사에도 항상 웃는 낯인 매우 보기 드문 이였다. 식견은 누구와도 비할 데가 없이 높아 먼 동진(晉)의 위대한 학사들마저도 구부의 존재가 마음에 걸릴 정도였다. 이렇다보니 그의 속내를 감히 짚어보는 이가 없었고 그에게 쉽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 또한 없어서 모두가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움직였기에, 한편으로는 홀로 많은 중대사를 짊어진 채 외로운 싸움을 하는 왕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었던 존재가 우연히 이불란사에서 만난 비구니, 단청이었는데 그녀는 한때 유학의 엄격한 예법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구부는 유학을 도입하여 그것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지기는 했으나 유학의 그늘, 즉 공자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한(漢)의 문명이 세상을 지배하고 그들의 것이 오로지 천하의 주인인 듯 오만하게 구는 것을 내내 마음에 두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내 그는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한의 유학, 마치 말의 눈가리개 같은 그것을 벗겨내고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이 땅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겠다는 큰 꿈이었다.

 

 

“말의 눈가리개란 제가 어떻게 부림당하는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는 어떤 다른 것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만드오. 이끄는 대로 달리는 일, 제 본분으로 지워진 일에 가장 충실하게 될 뿐이오. 나는 그 눈가리개를 벗기고 백성이 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 것이오.” / 140p

 

 

  “자네는 또 하나의 공자가 되려는 것인가?”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구부가 펼치려는 세상에 놀란 백제의 왕 부여구가 한 말이었다. 구부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백제에 싸움을 걸어 그 왕이 응답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서벌(西伐)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 당시 백제의 우방인 동진과 손을 놓고 고구려와 함께 힘을 모아 요하를 치자는 것이었다. 요하를 차지함으로써 대륙의 패권을 장악한 다음, 두 나라의 백성 모두가 천하 만민이 사랑하고 따르는 새로운 법제, 학문, 사상을 만들어 낼 것을 주장하는 구부의 뜻은 너무나 원대해서 아득하기만 했다. 역사상 이만한 거래가 또 있을까. 모두가 말리고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겠으나 부여구는 이를 받아들인다. 실로 구부만큼이나 백제의 왕 부여구 또한 큰 그릇임에 틀림없었다. 한편 동진의 학사들은 그들이 보낸 학자 백동으로 하여금 구부의 속내를 간파해내고 고구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들의 천 년 대계가 무너지리라는 위협을 느낀다. 천하의 힘을 모아 고구려를 역사에서 지우라는 사안의 명령은 그만큼 고구부의 꿈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위대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방증이었다.

 

 

"듣고도 모르겠느냐? 그가 생쥐를 키우는 자, 게으른 자, 과식하는 자를 벌하는 것이 한(漢)의 세상이라 하지 않았더냐. 그렇다면 그의 세상은 무엇이겠더냐? 법(法)을 추리고, 예(禮)를 줄이고. 백성의 몸을 묶은 수만 관습과 규제, 백성의 눈을 가린 신분의 구분을 없앤 세상. 당당히 걷고 자유로이 공부하며 할 말을 하는 세상. 백성은 어느 세상을 택하겠느냐?“ / 153p

 

 

  동진의 움직임으로 인해 고구려는 사방을 적으로 맞이하게 된다. 심지어 백제의 왕 부여구가 요하로 떠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탓에 수천 년을 내려온 한의 전통과 역사를 깨부수려는 구부의 꿈이 시작도 전에 주춤하게 된다. 홀로 외로운 싸움을 견뎌야 하는 왕의 무게, 이를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것을 가만히 위로하는 단청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홀로 가셔도 홀로 간다 생각지 마소서. 다만 찬찬히 걸으소서. 언젠가 뒤따를 사람이 폐하의 발자국을 좇을 수 있도록. 오늘 사람이 없거든 내일에, 내일에 없거든 그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에는 폐하의 뒤를 따를 사람이 있을 것이옵니다.” / 186p

 

 

  놀랍게도 구부는 그늘을 떨쳐내고 마치 잠시 부린 투정이었다는 듯 오직 부여구와 둘이서만 꿈꾸었던 비밀을 세상 밖으로 꺼낸다. “가자, 우리끼리. 요하로.” 이 짧은 단어 속에 품어놓은 큰 뜻을 알기에 나는 울컥했다. 그는 또다시 마른 모래더미로 거대한 파도와 맞서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위험하지만 돌파해내려는 그의 용기는 반드시 백성들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꿈을 펼치게끔 하려는 그의 신념에서 기인했기에, 무모하지만 아름답고 그래서 더욱 위대하게 느껴졌다. 또한 철옹성 같았던 요동성을 무너뜨리는 기발한 계책, 신의 한 수. 그 놀라운 광경에 몰입하여 나는 단숨에 요하를 점령하려는 구부의 꿈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 같아 기분이 들뜨기까지 했다.

 

 

  하지만 백제도 함께 회유하려 했던 그의 뜻이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완벽한 복안이었고 설계였건만, 무엇 하나 틀어질 일이 없는 그림이라고 생각했건만 치명적인 결점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나 큰 그림이었고 그것을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던 까닭에 그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이가 없었고 이것은 곧 그의 한계가 되고만 것이다. 아무리 왕의 능력이 뛰어난다 한들, 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그 뜻을 받쳐줄 수 있는 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그는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양위를 결정한다. 온 나라의 중지를 모아 대신 실천하는 것이 왕의 역할이므로, 그는 애초에 무리를 대표하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앙, 나의 꿈은 전쟁이 아니다. 고구려라는 나라와 맞지 않아. 더군다나 나는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다. 공론(公論)이라는 투박하고 귀찮은 담론에 얽히고 싶지 않아. 대중이란 눈앞의 일만 보는 짧은 식견, 선동당한 가짜 신념, 순간순간의 감정, 그런 것들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왕이란 그런 대중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포용하여 함께 걸어가는 그릇이다. 나는 대중과 함께 걸을 수 없어. 내 싸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니까. 수백, 수천 년 후에야 드러날 싸움, 나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싸움. 거기에 내 자리가 있어.” / 244p

 

 

  이대로 동생인 이련에게 양위를 물려주고 뒷방에서 그의 해가 저물어가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먹먹해지는 찰나, 그는 뜬금없이 도굴꾼과 풍수사, 선비와 함께 머나먼 여정을 떠나려고 한다. 행색은 꾀죄죄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이들이 천하를 상대로 싸워 이겨낼 영웅들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구부의 의도가 자못 기이하다. 그러나 함께할 사람들을 얻은 구부, 세상 어디에도 엮일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그가 데리고 나타난 사람들이 또한 괴짜들이니 그가 또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미처 마치지 못한 구부의 꿈이 어떻게 갈무리 될지 궁금해서 얼른 다음권이 나왔으면 하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김진명 작가는 역시 탁월하다.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현세를 읽어내는 능력이 시의적절하고 또한 뛰어나다고 생각해왔는데, <고구려>로 하여금 과거와 현세를 하나로 관통하는 통찰력까지 지닌 작가라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다. 이 <고구려> 6권은 뭔가 정점에 다다른 듯한 느낌까지 든다. 그는 이미 우리들의 <삼국지>를 실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단순히 고구려의 역사가 아니라 시대를 읽어내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하기 위해 이 기나긴 글을 써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에게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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