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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김선달
양우석.신윤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11월
평점 :
유쾌, 상쾌, 통쾌, 기막힌
사회 풍자 소설!
나라를 대신해 백성들을
구하러 대동강을 팔러 나선 위대한 사기극!
성실하게 노력을 한 만큼 대가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세상의 마땅한 이치인데 어째서 가문과 돈이 좌우하는 이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소설 <봉이
김선달> 속 19세기 초 무렵의 조선은 일개 백성들은 아무리 성실하게 노력해도 아무 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는 세상이었으며, 같은 피를 나눈
가문의 득세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시대였다. 실제 김선달의 이름이 선달이 아니라 대과에 붙고도 관직을 못 받았다 하여 사람들이 그리 부른 것이라
하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당시 상황을 알만한 일이다. 하늘이 내린 재주가 있어도 쓸 수 있어야 빛나는 법이건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거대한 장벽, 즉 부와 권력, 기득권으로 점철된 21세기의 대한민국도 이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세상이라 더욱 원통할 따름이다.
정조가 승하한 뒤의 조선은 열한 살
어린 임금의 즉위로 수렴청정과 외척에 의한 세도 정치, 과거제 문란, 매관매직 등 기득권층의 부패가 들끓었다. 임금의 외척 세력들인 김조순과
박종경 두 가문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으니,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보고 있던 조씨 가문의 조덕영은 자금을 모아 중앙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평안감사직을 돈으로 사 백성들로 하여금 착취를 일삼기 시작했다. 이때 김선달은 피폐해진 한양을 뒤로 하고 고향인 평안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조선의 와룡은 정약용이요, 봉추는 김사원이라. 강진에 유배된 다산과 평양 초야의 봉추, 둘 중에 하나만 제대로 써도 조선은
흥할 것이다’고 입을 모아 말할 정도인 평양 초야의 봉추, 바로 그가 김선달이나 몇 안 되는 제자들만 남아 있는 서당을 근근이 운영하며 입에 풀
칠 정도만 하고 사는 처지였다.
“무릇 벼슬살이란 백성이 위임한 권력을 백성의 행복을 위해 대리 행사하는 것이니, 벼슬자리는
영원히 소유할 대상도 아니고 구한다고 해서 뜻대로 얻어지는 자리도 아니다. 이는 주인인 백성의 뜻에 따라 임시로 관리하는 자리에 불과하다.
공직자의 마음가짐이 이와 같아야 그 자신은 물론 나라가 평안하다.” / 30p
자고로 나라가 번성하려면 후생양성에
힘써야 하는 법인데, 구구절절 옳은 말씀만 담은 다산 적양용 선생의 『목민심서』도 뜬구름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평안도의 민심이
흉흉하게 변해버린 것이 예삿일이 아닌 듯 싶을 때였다. 평안감사 조덕영의 횡포로 매일같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자 장사치들이 조덕영을 도모하기
위해 김선달을 찾아왔다. 그들은 그간 조덕영에게 수탈당한 목록이 적힌 치부책을 내밀며 이를 한양으로 가 고발해 줄 것을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한양을 떠난 지 십 년이라 천하의 김선달도 뾰족한 수가 있을까 난색을 표했지만, 아끼던 제자가 조덕영으로부터 초주검이 되어서 돌아오는 사건을
겪으며 그는 그 옛날 한양에서 왈패들과 어울려 양반들을 골려먹을 때 함께 했던 천봉석을 대동하고 한양으로 나섰다.
그러다 우연히 한 패거리와 마주쳐
납치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 상대가 다름 아닌 홍경래였다. 홍경래는 김선달에게 서양의 부르주아 혁명을 예로 들며 우리도 난을 일으켜 왕과
귀족들의 나라가 아닌 백성들의 나라를 만들자고 제의를 했다. 하지만 김선달은 이 난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일찍이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난을 겪고서도 백성들 살림살이가 나아졌는지 살펴보았느냐고, 진정 백성의 나라가 되었느냐고 반문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피맺힌 울분은
조정에까지 닿을 듯하나, 세상은 이렇다하게 나아지지 못하고 백성들의 피만 부르게 되는 난이 될 것이라 내다보았다. 끝끝내 무리를 해서라도
돌파해내려는 홍경래와 한때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조롱하고 다녔으나 여전히 무엇이 옳은지 해답을 찾지 못한 김선달, 이 둘의 만남은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파하고 말았다.
물론 ‘난’이 끝나고 나면 백성들이 흘린 무수한 피의 대가로 세상은 아주 조금 진일보하기는 했다.
김선달은 그 아주 더딘 발걸음이 모이고 모여 세상이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할 무고한 백성들에게
그 피의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 68p
한양에 도착한 김선달은 조덕영과
적대 관계에 있는 병조판서 박종경을 통해서 형조참판 정만석을 찾아가게 되고, 치부책을 내보임으로써 마침내 조덕영의 죄상을 밝혔다. 김선달은
평안도의 영웅이 되었고, 이후 젊은 나이에 홍상 독점권을 쥐게 된 유상옥이란 자를 알게 되어 청나라에 함께 동행을 했다. 청나라에 가는 동안
비적떼를 만나 위기에 처하기도 했는데, 뜻밖에도 묘한 계책을 낸 김선달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는 일도 있었다. 조선의 임선옥처럼 청나라에서 홍삼을
독점적으로 수입하고 있던 진대인이 임선옥을 길들이기 위해 홍삼 값을 한없이 낮추어 사려는 수작을 부리자 이에 시름하고 있던 임선옥을 위해
김선달이 꾀를 내어 청나라와의 홍삼 독점거래에서 조선이 완승하게 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흥미진진했다. 어째서 이런 인물이 조선의 중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통탄할 만한 일이었다. 더욱이 청나라를 둘러보며 고인 물과도 같은 조선의 현실을 떠올리는 김선달의 모습에서도
쓸쓸함이 느껴졌다.
조선은 고인 물처럼 고요했다. 조선에서는 세상이 이렇게 천지개벽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조선의 사대부란 자들은 아직도 케케묵은 이론에 사로잡혀 있었다. 언제까지고 눈 감고 있을 것인지. 청나라에서 본 세상은 김선달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세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김선달은 조선이란 나라가 이대로 가만히 있다 보면 격변하는 세상의 흐름 속에 침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 123p
한편 조덕영은 갖은 술수를 동원해
유배에서 풀려나게 되었고, 복수를 하기 위해 김선달을 죽이라 명령했다. 그 사이 다복동을 근거로 하여 난을 준비하고 있던 홍경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대해보였던 난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아슬아슬했고,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이들은 정주성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립이 되는 바람에 청나라에서 돌아온 김선달은 아끼던 제자를 잃게 되고, 성에 갇힌 딸과 아내마저도 볼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한때
조덕영을 귀양 보냈던 정만석이 홍경래의 난을 수습하고, 관서 지방의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 잡기 위해 평양감영으로 와 사태를 정리하려하지만 이미
이 일대의 백성들을 포함하여 정주성에 갇혀 있던 백성들까지 청나라의 노예로 팔려가고 말았다. 김선달은 이제 자신이 딸과 아내는 물론 삼천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구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은자 이십 육만냥.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마침내
조덕영에게 대동강 물을 팔 기막힌 사기극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흥미진진하고 유쾌, 상쾌, 통쾌한 사기극의 결말이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토록 긴장감 넘치고 조바심을 느끼며 읽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양반들을 조롱하기 위해 대동강
물을 판 이라고만 알고 있던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나라에 대한 시름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담긴 사회 소설이라는 점에서 참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더럽고 치사한 세상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이 인물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시사 하는
바가 큰 듯하다. 아무래도 이 책을 지은 저자가 영화 <변호인>를 쓰고 연출한 사람이라 그런지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인물의
이야기를 조명하여 시국을 비판하는 저자의 음성이 과감하고 또한 정곡을 찌르니, 굳이 이 시점에 19세기 초 조선의 인물을 끌어와 글을 쓴 뜻이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매주 전국 곳곳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벌이고 민주주의의 뜻을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실상 달라지는 게 없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김선달이 홍경래에게 ‘난을 일으키면 백성들이 삶이 정말로 나아지겠느냐’ 고
반문했던 것이 생각나 가슴이 따끔거린다. 우리도 삶이 단숨에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이 땅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더럽고 치사한 세상, 하루빨리 국민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해주고 겸허히 뜻을 살펴줄 김선달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