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6 - 구부의 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漢)의 대계를 무너뜨리고 고구려의 문명을 세우리라!

동아시아의 정치 판도를 뒤흔들려는 구부의 꿈, 찬란하게 피어나는 고구려의 힘!

 

 

  무릇 왕이란 태양과도 같이 밝아서 스스로 빛나야 하는 법이지만 또한 큰 그릇과도 같아야 한다. 담는 자리 하나 모자람이 없어야 하고, 하나로 모아 그것을 정직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 왕이 갖추어야 할 소양이다. 왕이 온 나라의 꿈을 담는 그릇을 제공해주면, 제 꿈을 저당 잡힌 많은 이들이 알아서 힘을 모아 채워주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왕좌이며 왕은 그러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 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요즘, 소설가 김진명이 마침내 고구려 6권을 들고 나타났다. 무려 4년 만에 미천왕 을불과 고국원왕 사유에 이어, 고구려의 불씨를 키운 천재 태왕 소수림왕(구부)과 함께.

 

 

  때는 고구부 즉위 5년, 고구려는 북방의 세력 다툼에서 탈락하여 이미 다 망해버린 줄로만 안 시기였다. 개국 이래 가장 강력한 군사, 가장 뛰어난 장수, 부여구라는 위대한 왕을 지닌 백제가 전성기를 이루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부는 선왕의 유언으로 오직 내치에만 전념하기로 하여 태학을 설립하고 불교를 들여와 백성의 삶과 마음을 다졌고 스스로 법을 제정하여 나라의 근간을 다졌다. 강력한 왕권과 고구려의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기 위한 그의 노력으로 인해 고구려는 다시금 번영의 물꼬를 틔우고 있었다. 쥐 죽은 듯 발톱을 숨기고 있던 구부는 마침내 백제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는 갑옷조차 입기 싫어하는 왕이고, 이렇다 할 책사와 걸출한 장수도 곁에 없었다. 최고의 지략과 담력을 갖춘 백제군과 달리 고구려군은 허약해 보이기만 했지만 이상하게도 수곡성을 두고 벌이는 이 전쟁은 도무지 결착이 나지 않고 자꾸 미궁으로만 빠져든다. 마치 수십 수의 앞까지 내어다보는 바둑의 기사처럼 이 전장의 모든 수를 읽어내는 그로 인해,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던 전투는 오직 그의 뛰어난 계책으로 희생 하나 치르지 않고 승리한다. 태왕 고구부에 의해서 다시금 고구려가 북방의 패자에 올라 위대한 패업을 이룰 것만 같은 전조였다.

 

 

장수들은 들떠 있었다. 천하에 위세를 떨치는 백제군을 이토록 시원히 놀려댔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들은 그것이 누구의 덕인지 잘 알고 있었다. 판은 처음부터 짜여 있었고 고구려군과 백제군은 모두 바둑돌에 불과했다. 정말이지 그들의 태왕 구부는 신기한 인물이었다.

사관 하나가 그의 병법을 기록하려 시도했으나 도무지 그 원리를 기술하지 못하여 사직하고 만 사례도 있었다. 무예를 전통의 미덕으로 여겨온 고구려 무장들이었으나 그들은 이 말도 제대로 못 타는 태왕 아래 진심을 다해 머리를 조아리게 된 지 오래였다. / 41p

 

 

  칼보다는 붓이 더욱 어울리는 구부, 그는 왕이라기에는 성정이 자유롭고 쾌활하였으며 어떤 중대사에도 항상 웃는 낯인 매우 보기 드문 이였다. 식견은 누구와도 비할 데가 없이 높아 먼 동진(晉)의 위대한 학사들마저도 구부의 존재가 마음에 걸릴 정도였다. 이렇다보니 그의 속내를 감히 짚어보는 이가 없었고 그에게 쉽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 또한 없어서 모두가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움직였기에, 한편으로는 홀로 많은 중대사를 짊어진 채 외로운 싸움을 하는 왕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기댈 수 있었던 존재가 우연히 이불란사에서 만난 비구니, 단청이었는데 그녀는 한때 유학의 엄격한 예법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구부는 유학을 도입하여 그것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지기는 했으나 유학의 그늘, 즉 공자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한(漢)의 문명이 세상을 지배하고 그들의 것이 오로지 천하의 주인인 듯 오만하게 구는 것을 내내 마음에 두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내 그는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 한의 유학, 마치 말의 눈가리개 같은 그것을 벗겨내고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이 땅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겠다는 큰 꿈이었다.

 

 

“말의 눈가리개란 제가 어떻게 부림당하는지,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는 어떤 다른 것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만드오. 이끄는 대로 달리는 일, 제 본분으로 지워진 일에 가장 충실하게 될 뿐이오. 나는 그 눈가리개를 벗기고 백성이 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 것이오.” / 140p

 

 

  “자네는 또 하나의 공자가 되려는 것인가?”

  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구부가 펼치려는 세상에 놀란 백제의 왕 부여구가 한 말이었다. 구부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백제에 싸움을 걸어 그 왕이 응답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서벌(西伐)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 당시 백제의 우방인 동진과 손을 놓고 고구려와 함께 힘을 모아 요하를 치자는 것이었다. 요하를 차지함으로써 대륙의 패권을 장악한 다음, 두 나라의 백성 모두가 천하 만민이 사랑하고 따르는 새로운 법제, 학문, 사상을 만들어 낼 것을 주장하는 구부의 뜻은 너무나 원대해서 아득하기만 했다. 역사상 이만한 거래가 또 있을까. 모두가 말리고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겠으나 부여구는 이를 받아들인다. 실로 구부만큼이나 백제의 왕 부여구 또한 큰 그릇임에 틀림없었다. 한편 동진의 학사들은 그들이 보낸 학자 백동으로 하여금 구부의 속내를 간파해내고 고구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들의 천 년 대계가 무너지리라는 위협을 느낀다. 천하의 힘을 모아 고구려를 역사에서 지우라는 사안의 명령은 그만큼 고구부의 꿈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위대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방증이었다.

 

 

"듣고도 모르겠느냐? 그가 생쥐를 키우는 자, 게으른 자, 과식하는 자를 벌하는 것이 한(漢)의 세상이라 하지 않았더냐. 그렇다면 그의 세상은 무엇이겠더냐? 법(法)을 추리고, 예(禮)를 줄이고. 백성의 몸을 묶은 수만 관습과 규제, 백성의 눈을 가린 신분의 구분을 없앤 세상. 당당히 걷고 자유로이 공부하며 할 말을 하는 세상. 백성은 어느 세상을 택하겠느냐?“ / 153p

 

 

  동진의 움직임으로 인해 고구려는 사방을 적으로 맞이하게 된다. 심지어 백제의 왕 부여구가 요하로 떠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 탓에 수천 년을 내려온 한의 전통과 역사를 깨부수려는 구부의 꿈이 시작도 전에 주춤하게 된다. 홀로 외로운 싸움을 견뎌야 하는 왕의 무게, 이를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것을 가만히 위로하는 단청의 말이 가슴을 울린다.

 

 

“홀로 가셔도 홀로 간다 생각지 마소서. 다만 찬찬히 걸으소서. 언젠가 뒤따를 사람이 폐하의 발자국을 좇을 수 있도록. 오늘 사람이 없거든 내일에, 내일에 없거든 그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에는 폐하의 뒤를 따를 사람이 있을 것이옵니다.” / 186p

 

 

  놀랍게도 구부는 그늘을 떨쳐내고 마치 잠시 부린 투정이었다는 듯 오직 부여구와 둘이서만 꿈꾸었던 비밀을 세상 밖으로 꺼낸다. “가자, 우리끼리. 요하로.” 이 짧은 단어 속에 품어놓은 큰 뜻을 알기에 나는 울컥했다. 그는 또다시 마른 모래더미로 거대한 파도와 맞서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위험하지만 돌파해내려는 그의 용기는 반드시 백성들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꿈을 펼치게끔 하려는 그의 신념에서 기인했기에, 무모하지만 아름답고 그래서 더욱 위대하게 느껴졌다. 또한 철옹성 같았던 요동성을 무너뜨리는 기발한 계책, 신의 한 수. 그 놀라운 광경에 몰입하여 나는 단숨에 요하를 점령하려는 구부의 꿈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 같아 기분이 들뜨기까지 했다.

 

 

  하지만 백제도 함께 회유하려 했던 그의 뜻이 어긋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완벽한 복안이었고 설계였건만, 무엇 하나 틀어질 일이 없는 그림이라고 생각했건만 치명적인 결점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나 큰 그림이었고 그것을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던 까닭에 그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이가 없었고 이것은 곧 그의 한계가 되고만 것이다. 아무리 왕의 능력이 뛰어난다 한들, 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그 뜻을 받쳐줄 수 있는 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그는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양위를 결정한다. 온 나라의 중지를 모아 대신 실천하는 것이 왕의 역할이므로, 그는 애초에 무리를 대표하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앙, 나의 꿈은 전쟁이 아니다. 고구려라는 나라와 맞지 않아. 더군다나 나는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다. 공론(公論)이라는 투박하고 귀찮은 담론에 얽히고 싶지 않아. 대중이란 눈앞의 일만 보는 짧은 식견, 선동당한 가짜 신념, 순간순간의 감정, 그런 것들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왕이란 그런 대중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포용하여 함께 걸어가는 그릇이다. 나는 대중과 함께 걸을 수 없어. 내 싸움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니까. 수백, 수천 년 후에야 드러날 싸움, 나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싸움. 거기에 내 자리가 있어.” / 244p

 

 

  이대로 동생인 이련에게 양위를 물려주고 뒷방에서 그의 해가 저물어가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먹먹해지는 찰나, 그는 뜬금없이 도굴꾼과 풍수사, 선비와 함께 머나먼 여정을 떠나려고 한다. 행색은 꾀죄죄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이들이 천하를 상대로 싸워 이겨낼 영웅들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구부의 의도가 자못 기이하다. 그러나 함께할 사람들을 얻은 구부, 세상 어디에도 엮일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그가 데리고 나타난 사람들이 또한 괴짜들이니 그가 또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지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미처 마치지 못한 구부의 꿈이 어떻게 갈무리 될지 궁금해서 얼른 다음권이 나왔으면 하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김진명 작가는 역시 탁월하다.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현세를 읽어내는 능력이 시의적절하고 또한 뛰어나다고 생각해왔는데, <고구려>로 하여금 과거와 현세를 하나로 관통하는 통찰력까지 지닌 작가라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다. 이 <고구려> 6권은 뭔가 정점에 다다른 듯한 느낌까지 든다. 그는 이미 우리들의 <삼국지>를 실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단순히 고구려의 역사가 아니라 시대를 읽어내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하기 위해 이 기나긴 글을 써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에게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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