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처럼 핀란드 부모처럼
마크 우즈 지음, 김은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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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자녀양육법을 담은 육아 안내서!

다양한 양육 방법의 비교를 통해 바른 자녀 교육법의 방향성을 제시하다!



   아직도 부모라는 이름이 어색하지만 나 역시 한 아이의 부모가 되고 보니 바른 육아법과 기준을 찾고자 끊임없이 도움을 구하곤 한다. 육아 선배들, 맘스 카페, 교육 관련 프로그램 등등. 그 중에서 다양한 육아법과 견해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육아도서인데, 그럼에도 쉽사리 선택하기 어려운 것 또한 그것이다. 자기계발서가 불편할 때가 있듯, 육아도서 또한 그럴 때가 있다. 그들만의 육아법, 현실에 적용하기에 너무 이상적이기만 한 방법론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육아법과 대비되는 경우가 있곤 했다. 그래서 나름의 주관이 없이 이런저런 육아도서에 휘둘리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맞게도 <프랑스 아이처럼 핀란드 부모처럼>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자칫 제목만 보았을 때는 프랑스와 핀란드의 이상적인 육아법을 소개하는 책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임신과 출산, 육아, 음식, 교육, 아이의 정서 등과 관련하여 세계 각국의 육아법을 소개하는 자녀육아도서이다. 기존에 읽어왔던 육아도서와는 분명 차별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아도서의 대부분이 방법론 혹은 이상적인 부모상을 제시하는 것과 달리 동서양의 다양한 육아법을 비교하고, 어떠한 것이 옳다 그르다고 판단하지 않으며 육아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도록 유도한다.



  이를 테면 제 1장에서는 ‘임신의 세계’의 경우 임신과 관련한 각 나라의 신화 및 믿거나 말거나이나 재미삼아 읽어보기에 좋은 출산 기원 의식 등을 살펴보고 늘어나는 불임의 형태와 치료법을 제시한다. 제 2장에서는 아이를 낳은 산모를 가장 잘 배려하는 나라는 어디이며 그 방식은 어떠한지 살펴보고, 세계 여러 나라의 출산 문화를 비교한다. 개인적으로 ‘출산 휴가’를 다루는 내용이 흥미로웠는데 의외로 미국이 유급 출산 휴가를 법적으로 의무화시키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그에 비해 노르웨이의 기업들은 42주에서 52주간, 덴마크의 기업들은 1년간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며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진보가 안 된 나라로 여겨졌던 알바니아의 기업들도 52주 종안 통상임금의 82%를 제공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나의 경우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출산 휴가는커녕 임신은 곧 퇴사임을 암묵적으로 종용하는 곳에서 재직했기에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출산 휴가를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도록 사회와 기업의 변화가 서둘러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보니 더욱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출산 휴가는 단순히 산모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러 연구결과에서는 출산 휴가의 기간과 질이 아이의 남은 인생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동복지재단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 휴가가 더 긴 나라에서는 아이들의 모유수유 기간 및 기대 수명이 더 길다. 이제 우리는 신생아가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의 양은 나라에 따라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며 발달상으로도 매우 중대한 요인임을 알게 되었다. / 62p



  제 3장에서는 아기를 잘 키우기 위해 쓰는 다양한 육아 전략을 살펴본다. 각 나라별로 아기의 이름을 짓는 방법에서부터 수면 교육, 배변 훈련까지 아기를 키우는 동안에 느끼는 부모로써의 애환에 특히 공감하게 된다. 한 생명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일이란 세계 어느 부모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잠’에 관한 한 아기는 물론 부모 본인에게도 육아하는 동안만큼은 가장 피곤한 숙제인 듯하다. 아기가 일어나는 시간에 함께 일어나야 하고, 아기가 자는 동안 집안일이나 개인적인 일을 해야 하며, 스스로 잠에 알아서 들지 않는 한 옆에서 편히 잘 수 있도록 유도해주어야 함은 물론, 이앓이로 인한 잠투정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엄마에게도 고통이 없다. 아기와 언제까지 함께 자야 하는 것인지, 수면 교육은 언제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무엇이 올바른 수면 교육인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고, 내렸다 한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에 대해 여러 나라에서도 열띤 논쟁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수면 훈련은 단계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아이와 함께 자고 있지만 잠만큼은 스스로 들도록 훈련한 결과, 이제 아기를 어르고 달래가며 힘들게 재우지 않으니 덕분에 엄마 입장으로써는 육아가 제법 편해진 셈이다.


   

수면 훈련이 좋은 수면 습관을 가르치고 아기를 평온하게 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일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온 가족이 숙면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믿는다. 갈수록 부부 모두 일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부모도 잘 쉬어서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아기에게 수면 훈련을 시키면 어머니의 산후 우울증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아기들은 모두 잘 운다. 그러므로 잠을 잘 자는 것처럼 평생의 가치 있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논리다. / 139p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의 자녀육아법 및 교육에 관해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저자는 정반대의 형태인 핀란드와 우리나라를 자녀 교육의 대표적인 나라로 꼽는다. 두 나라는 지난 몇 년 동안 세계에서 최고의 교육 체계를 갖춘 나라라는 명예를 얻었지만 방식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핀란드는 창의적이고 자유방임적인 교육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체계적이고 노력형이지만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핀란드에 비해 잔인해 보인다. 교육뿐만 아니라 한국 남성이 집안일에 있어 면목이 없게도 참여율이 가장 저조한 것으로 기록된 것 또한 씁쓸한 일이다. 이렇듯 외부에서 보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그리 좋은 육아환경을 조성하지 못하는 듯하다. 수십 년 전 교육 제도의 개혁이 절실했던 핀란드가 이뤄낸 기적처럼 우리 또한 사회적으로, 구조적으로 변화를 단행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외에도 제 6장에서는 자녀의 자신감과 독립심을 길러줄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고, 오늘날 높아지는 과보호에 문제는 없는지, 자녀 훈육의 방법들도 함께 살펴본다. 나아가 세계 공통의 자녀교육 이슈들 속에서 부모와 조부모의 역할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더욱 진화된 십대들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마무리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책은 저자가 육아에 관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실천하게 하려는 의도로 쓰인 것이 아니다. 세계 각국의 육아법을 한 데에 모아 비교해보고 그 속에서 나름의 방향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위안을 얻는 게 있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고민하는 그 모든 것들이 세상 모든 부모가 느끼고 공감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대단한 육아 비법보다 이런 위안이 육아에 있어 더욱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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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인간학 - 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지음, 이지수 옮김, 이진우 감수 / 다산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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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 비열함, 선량함과 싸우는 까칠한 철학자!

니체를 연구하여 이 시대의 착한 청년들을 통렬히 비판하다!



   많은 철학자들이 있지만 그 중 니체는 특별한 위치에 존재하는 듯하다. 기존의 전통철학의 노선에서 벗어난 이단아답게 생소한 느낌의 견해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철학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신은 죽었다” 고 외친 그의 사상은 당시 기독교적 윤리 사상에 심취한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고, 그의 사상이 한때 파시즘과 나치즘의 선전에 악용되기도 하였으니 그 극단적인 철학 사상은 그야말로 낯설고 껄끄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괴짜 같은 철학자가 오늘날 유독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그의 철학과 삶을 재조명하는 책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니체 관련 도서들 중 <니체의 인간학>은 독특하게도 니체를 혐오하는 저자가 쓴 책이다. 니체를 혐오하는 이가 어째서 니체의 철학을 설파하고 우리에게 그의 목소리를 전한단 말인가. 언뜻 보면 참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고, 그래서 더 호기심이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니체를 정면으로 통과하여 그의 목소리를 빌려야했을 만큼 반드시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이 책의 원제인 <착한 사람만큼 나쁜 사람은 없다>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착한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기존의 관습화된 규범에 도전하는, 그야말로 거침없고 불편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뿐만 아니라 우리는 오랫동안 ‘착함’에 길들여져 왔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어째서 니체는, 저자는 착한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일까.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살아왔던 나도, 그렇다면 나쁜 사람이라는 걸까.


  뭔가 충격적이고 배신감마저 드는 이 혼란 속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다보면 다행스럽게도 니체와 저자가 말하는 ‘착함’이란 기존에 알고 있던 착한 사람과 다르다는 것에 안도하게 된다. 저자와 니체가 혐오하는 착한 사람은 ‘약자니까 어쩔 수 없다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자들, 약해서 옳고 약해서 나쁘지 않다는 등식에 안주하여 강자를 적대시하고 약함을 무기로 삼으려는 자들, 자신의 안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자들, 자신의 신체 보전을 가장 큰 가치로 삼는 사람들’이다. 오늘날엔 강자는 나쁜 사람이고, 약자는 착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저자는 이런 가치전도를 통해 탄생한 착한 사람의 무리를 경멸한다.


     

착한 사람이란 자신이 약자이기 때문에 선량하다고 믿는 사람, 다시 말해 약자이기 때문에 끼치는 해악(아, 이것은 얼마나 심각한 해악인가!)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착한 사람은 절대 스스로 반성하는 법이 없고, 오히려 강자 때문에 영원한 피해자가 된 척한다. 강자에게 끊임없이 농락당하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자화상을 계속 그리는 것이다. 이 이상의 둔감함, 태만함, 비열함, 교활함, 다시 말해 해악이 또 있을까! / 54p


그들은 안전을 바라면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 가혹한 일을 국가가, 정치인이, 관료가, 기업인이, 즉 강자가 해주기를 바란다. 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강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내지 못하는 강자를 조소하고 욕하고 매도하고 내쫓는다. 어째서 이 정도의 폭력이 용서되는가? / 78p



  저자는 니체가 말했다고 해도 곧이들을 정도로 신랄하게 약함을 착함으로 정당화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그들의 약함, 비열함, 선량함 속의 교활함이 사회를 약하게 만들고 피폐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를 조장하는 미디어를 독거미 타란툴라에 비유하여 거세게 비판한다. 미디어의 기획 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진실처럼 보이는 거대한 거짓말이고, 거기에 무지몽매한 약자들이 선동된다는 것이다.



뒤에서 대중을 조작하는 자는 타란툴라라는 이름의 춤추는 독거미다. 대중의 질투심과 복수심을 부추기고, 그 활활 타오르는 증오를 교묘하게 이용해 “평등, 평등!”이라고 외치게 한다. 타란툴라란 누구인가? 모든 저널리스트, 텔레비전에 나와서 의견을 말하는 모든 사람, 아니 지금은 모든 정치가, 모든 관료, 모든 기업인, 모든 교육자가 타란툴라다. / 176p



  이쯤 읽다보니 안도했던 처음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내내 뜨끔한 것이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한다. 결국엔 ‘착한 사람=약자=대중’으로 등식이 성립되는 듯한 이 논리는 특정의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을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각종 미디어에서 선동하는 대로 다수의 의견에 몸을 맡기고, 사회의 안전망 속에 몸을 의지하며, 안락과 이득이 추구되면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하지 않고 방관하는 착한 사람이 곧 나라는 사실에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파격적인 언행과 주장에 모두 동조할 수 없지만, 다수의 약자 틈에 편승해왔던 나란 사람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자신의 신념과 미학을 관철시키려면 대립에 따른 고통을 피해서는 안 된다. 강자는 일부러 이 길을 선택한다. 타인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고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자신의 신념과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 202p



  니체를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을 빌어 약자들이 만연해지는 이 사회를 강렬하게 비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약자라는 사실이 아무리 부조리하다 해도 자신의 약함에 몸을 내맡기는 착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력하고 유약해빠져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약자들에게 “니체를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겁이 많고 약하고 선량하고, 순진한 자기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존재를 필사적으로 추구했던 니체처럼, 우리 또한 비록 약한 존재이나 강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또 투쟁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 많은 청년들이 깨달았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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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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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가족에게 전하는 울림 있는 메시지!

막장 가족에게서 참된 가족의 의미를 되찾다!

 

 

  저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앞에 두면 자연스레 딸게 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있게 마련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가족은 한없이 다정하다가도 때로는 질척거리는, 뭐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찐득찐득한 감정이 앞서는 존재이다. 살갗을 부지고 사는 이상 오가는 감정의 교류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말로 다 하지 못할 만큼 많지 않겠는가. 그래서 많은 문학 작품들이 가족을 소재로 하고 있고 그 속에서 삶의 진정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김종욱 찾기>, <앤>이라는 소설로 대표되는 저자 전아리 작가의 장편소설 <어쩌다 이런 가족> 역시 가족을 주제로 하여 이른바 ‘막장’이라는 코드를 덧입혔다.

 

 

  이 책은 소위 부유층 집안의 금수저 가족을 중심으로 자타공인 품위 넘치는 고상한 첫째딸이 ‘섹스 동영상이 찍힌 것 같다’는 충격발언으로 시작된다. 애지중지 키운 딸에게 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각자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지내왔던 가족의 일상이 뒤흔들린다. 출판사의 편집장을 지내다가 영화 산업과 건축업에까지 손을 뻗고 있는 대기업 대표인 아빠 서용훈, 대대로 교수집안에 대학교 이사장 딸로 태어나 미술관을 경영하는 엄마 유미옥, 금지옥엽처럼 차란 첫째딸 혜윤과 달리 가족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집안의 별종처럼 자라난 모난 성격의 둘째딸 혜란은 혜윤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저마나 나름의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동영상을 유출시키겠다고 협박해오는 자를 잡기 위해 아빠인 용훈은 자신의 집안이 이 사건으로 인해 흠이 가는 것을 막아야했고, 그 와중에도 엄마인 미옥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는 일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듯 고고하게 품위를 지키지만 별난 딸 혜란은 자신이 원하는 대가를 얻기 위해 언니를 뒷조사 하며 사건을 제 손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소설은 가족 구성원과 동영상 유출 협박자 등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인물들을 각자의 시선으로 그려나간다. 흥미로운 것은 혜윤의 충격적인 고백에도 가족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라면 가족 간에 엄청난 파열음이 일어날법한 사건임에도 그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가 추구하는 바대로, 함께 어울리고 살을 부대끼며 살아오지 않았던 지난날의 일상이 그러했듯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뭐 이런 가족이 있나 싶은 ‘막장’이다.

 

 

용훈의 눈에 아내는 이따금씩 특수 종이로 만들어진 인간 같다. 물에 젖지 않고 구겨지지 않으며, 부드러워 보이지만 절대 바람에 나부끼지 않는 인간. 이를테면 책받침 같은 사람이었다. 항상 무엇인가를 계획하며 미래를 적어나가는 용훈에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게 인간인가. / 43p

 

 

  세상에 워낙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많다보니 막장이라는 코드도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게다가 부유층을 중심으로 한 가족소설은 다소 현실감이 없고 그들이 나누는 감정조차 독자에게 쉽사리 공감을 얻지 못하는 함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금수저에 막장이라는 코드를 가져와 전혀 융화되지 않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족 내에서의 ‘목소리’이다. 내가 그러했고 아마도 많은 가정이 또 그러할 듯 가족 내에서의 침묵이 일상인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의 경우를 비추어 서로가 서로에게 외따였던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목소리를 내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사람은 각자 우는 방법이 다르단다. 너처럼 시원하게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우는 법을 잊어버린 친구도 있어. 단지 외로워서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만. 여기 머무르는 동안, 그리고 여길 떠나서도 우리는 가족이란다. 밉다고 따돌려서는 안 되지. 아이들은 속이 상하거나 서러우면 울어야 해. 그런데 친구는 그러지 못해서 화가 나는 거야. 다음에 싸울 때는 너만 울지 말고 그애도 울게끔 도와주어라. 눈물 흘릴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해.” / 152p

 

 

  이 소설은 한 편의 시트콤과 블랙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서로 다른 가족 구성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다보니 굉장히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표현 또한 거침없고 직설적이어서 문장이 난해하거나 어렵게 읽히는 부분도 없다. 개인적으로 ‘잘 읽는 소설’이야 말로 좋은 소설이라 생각해서 이 점을 이 소설의 장점이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 허술한 구석이 두루 있고, 인물 사이의 개연성과 감정 교류가 단순하게 진행되는 감도 없지 않다. 최대한 심플하고, 인물 사이에 질척거리는 감정을 배제하려고 했던 의도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그럼에도 전개상에 있어 치밀함이 약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그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어줄 자세가 필요함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가족이란 결국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존재하는 내 사람들이니 말이다.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우리는 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있지 않다는 걸 알더라도, 그 소리가 가끔을 소음일지라도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대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그 사람이 내는 소리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 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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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하고 매혹적인 쩐의 세계사 - 로마 제국의 붕괴부터 리먼 쇼크까지!
오무라 오지로 지음, 하연수.정선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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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으로 다시 보는 세계사!

12가지 테마로 살펴보는 비정하고 매혹적인 역사의 본질!


  우리가 흔히 잘 사는 나라,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면 재화와 재물이 풍요롭고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청렴하고 바른 정치를 하여 백성 혹은 시민들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라라고 말할 것이다. 특히 재정이 탄탄한 나라야 말로 부국과 빈국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에 ‘돈’은 한 나라의 흥망성쇠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그 옛날 수많은 나라가 건국되고 사라지기까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바로 이 ‘돈’일 것이다. 많은 역사학자 혹은 인문학자들이 세계사 교양서를 집필하였지만 대부분 정치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기술하였을 뿐, ‘돈의 흐름’을 주제로 삼은 도서는 흔치 않다.


 

 

   흥미롭게도 <쩐의 세계사>는 굉장히 이색적인 이력의 저자가 쓴 세계사 교양서이다. 그는 전 국세조서관으로, 일본 국세청에서 10년 동안 법인담당조사관으로 근무하며 비록 학자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돈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하여 역사 저술가로 거듭났다. 아무래도 국세청에 있으면서 경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 남다른 시각이 있었던 만큼 이 책 또한 ‘돈’이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을 하나로 꿰뚫는 통찰력이 빛난 도서였다.


 

   저자는 ‘세계의 역사는 인류가 재물이나 부를 어떻게 추구해왔는지에 대한 역사’라고 말한다. 즉, 돈이 어떤 식으로 흐르고 어디에 축적되었는지를 살펴본다면 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사를 반추해보면 유럽에만 집중되어 있던 조명이 세계 최대의 강국이 된 미국으로 옮겨가고, 이제 중국이 어마어마한 거대 시장으로 떠오른 것 모두 자본력이 크게 한 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유럽을 거쳐 미국, 일본, 러시아까지 돈의 흐름에 집중하여 각 나라의 흥망성쇠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세계사를 경제적인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국가가 융성하고 망하는 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고대 이집트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들은 무려 3,000년 동안이나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를 보냈다고 한다. 어떻게 그 긴 시간동안 국가의 번영을 지탱하였는지는 세금징수 시스템에 근거를 둔다. 중앙정부가 국가의 모든 행정권과 세금징수권을 가지고서 ‘서기’라고 불리는 하급 관료들에게 일정 봉급을 주고 세금을 거두어들이게 했는데, 그들을 감시하는 기관이 존재했음은 물론 징수 기준 또한 매우 세밀하게 정해놓아 엄격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관료조직이 부패하면 나라의 평안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외부의 요인이 아니라 탈세로 인한 내부 경제 정책의 기반이 무너져 제국의 영광이 사라져버리는 과정은 분명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가르침을 주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국가의 흥망성쇠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세금을 제대로 거두어들이는 동안은 번영하지만 공무원들이 부패하면 국가의 재정이 휘청거린다. 국가는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과도한 세금을 거두어 들이고 결국 국민은 불만이 폭발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생겨난 대항 세력이나 외세의 침략으로 인하여 그 나라의 정권(왕)은 멸망한다. / 22p


 

 

  오늘날의 세계금융 시스템을 구축한 유대인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유대인 하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탈무드>인데 거기에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세 가지가 있다. 고민, 말다툼, 텅 빈 지갑. 그 중에서 텅 빈 지갑이 가장 많은 상처를 준다.’ 구절이 있다고 한다. 내가 미처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구절이다. 유대인이 이렇게 돈에 대해 적극적이었던가. 개인적으로는 의외였다. 알다시피 유대인은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지 못하고 오랫동안 박해를 받고 추방당하며 살아왔다. 경제뿐 아니라 문화계, 사상계 등 아주 다양한 방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놀라운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민족성이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더욱 고상하게 느껴졌고 이토록 돈에 유연한 민족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유대인 특유의 부에 대한 감각, 이른바 유대인 상법은 방랑의 민족이라 불리는 그들의 상황적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방랑하는 생활을 하다보면 각 지역의 다양한 정보를 가지게 된다. 또한 세계 곳곳에 동포가 있으므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가 쉽다. 유대인 상법에서 이러한 전 세계적 네트워크는 커다란 무기가 되었다. 또한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모국이 없다는 것은 여러 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점도 있었다. / 42p


 

 

  토지도 없는 방랑의 민족 유대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우 합리적인 처세술이 요구되며 돈이야 말로 그들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다. 유대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금융센터가 생겼고,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도 유대인이었으며 현재 세계 최대의 유대인 거주 도시 뉴욕은 세계의 금융센터라는 점에서 유대인의 역사야 말로 곧 돈의 역사임을 새롭게 깨닫게 된 부분이었다. 이 외에도 영국이 적대국의 배를 나포하는 행위를 인정하는 해적선을 두어 국가적으로 해적의 약탈을 용인해주고 그로부터 재물을 얻어 부를 누렸다는 점도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또한 히틀러가 3년 만에 실업자를 100만 명으로 감소시키고 세계 공황 이전의 상태로 독일 경제를 회복시키며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제껏 그의 악행에 치중된 역사서는 많이 보았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줄 수 있을 만한 내용이 있었다는 점은 새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세계적 규모의 국가붕괴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 예언한다. 최근 선진국의 재정에는 ‘조세 피난처’라 하여 전 세계 부유층, 대기업이 탈세하기에 좋은 곳에 몰려들면서 중간층 이하에게만 엄격한 과세가 돌아가는 공통적인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국가가 붕괴할 때 발생하는 일정한 패턴임을 이 책을 보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저자는 무엇보다 재정 시스템과 징수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과한 세금을 꼬박꼬박 성실하게 내고 있는 애꿎은 시민들만 허리가 휠 지경이다. 특히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누진세 문제만 보아도 징수 시스템의 문제가 확연히 드러난다. 충분히 재검토하여 납득이 될 만한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은 눈 가리고 아웅하듯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쩐의 세계사>를 통해 왜 국가는 경제안정을 중요시 여겨야 하는가, 그 이유를 보다 확실히 깨달은 의미 있는 독서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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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미술관 - 사랑하고 싶은 그대를 위한 아주 특별한 전람회
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 김윤정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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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익히는 사랑과 연애의 모든 것_

사랑하고 싶은 그대를 위한 아주 특별한 전람회_



   어릴 적의 나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표현해낼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그래서 유독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고, 혼자 여행가기를 좋아했는데 그때마다 마음에 드는 미술전을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정하곤 했다. 미술학자들이 그러하듯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를 잘 읽어낼 만큼 작품에 대한 이해능력이 높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저 두근거리게 하는 작품을 만나 잠시나마 마음을 빼앗기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마음과 달리 애석하게도 미술 작품을 자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나 유명 화가의 미술전은 더욱 그러한데, 그나마 교양미술책이라도 가까이 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생각보다 교양미술책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문학과 접목한 교양미술책은 그 철학적 무게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고 미술사학의 흐름을 다룬 책들은 종교와 역사를 포함하고 있기에 미술사라는 영역이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런 중에 이름마저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랑의 미술관>을 접하게 되었다. ‘사랑하고 싶은 그대를 위한 아주 특별한 전람회’라는 부제 때문일까, 수많은 주제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각에만 집중하여 아름다운 전시회를 관람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쾌락, 아픔, 성숙 등 ‘사랑’만큼 이 다양한 관념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있을까. 인류의 역사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만큼 문학과 더불어 미술은 오랫동안 사랑의 민낯을 다루어왔다. <사랑의 미술관>은 바로 이 사랑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미술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전달한다.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면 되는데 먼저 제1관에서는 화가들의 다양한 연애담을 살펴볼 수 있다. 화가에게는 저마다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가 존재하는데, 오랫동안 이어져온 궁핍한 경제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대가의 반열에 오른 화가 르누아르의 곁에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해준 아내가 있었다. 오랜 고난을 함께 이겨낸 아내를 향한 애정과 감사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사랑이 주는 감동이 이렇게 따뜻한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다.


“화가의 인생과 화가의 작품은 별개의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르누아르가 알린에게 보내는 변함없이 따뜻한 시선을 보고 있으면 화가의 애정이나 마음이 그들의 작품을 좌우할 때도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 37p


  르누아르와 달리 숱한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던 나쁜 남자 피카소의 연애담도 재미있다. 그만큼 활동적인 삶을 살았기에 그만의 담대한 화풍을 만들어낸 것일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가의 인생이 화가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음으로 2관에서는 제우스, 비너스, 아폴론, 큐피드 같이 사랑에 얽힌 신화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체로 고전 예술 작품들의 주제가 신화 속 일화에 빗대어 표현된 것이 많기에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비너스를 다룬 작품들이 유독 관심을 끌었는데, 익히 알고 있었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요염하고 관능적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의 아우라를 깨끗하게 담아낸 작품이었다.


신플라톤주의에 흠뻑 빠졌던 보티첼리가 머릿속에 있는 미적 이미지를 관념적으로 시각화한 것에 반해, 아카데미즘의 정신을 이어받은 부그로는 아틀리에에서 모델에게 자세를 취하게 한 뒤 그것을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을 것이다. 실제로 부그로는 프랑스 왕립 미술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미술대회의 최고상인 로마상을 수상한 부상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라파엘로 등의 화가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회화를 배우는 데에 모든 노력을 쏟았다. / 84p


  같은 주제와 인물을 다루더라 하더라도 작풍의 영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진다는 것을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음으로 제3관에서는 키스의 마력, 감정을 전하는 연애편지,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등을 통해 구애를 담아낸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애정표현 중에 ‘키스’만큼 가장 감미롭고 드라마틱한 표현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심지어 동화에서조차 아름다운 키스로 마무리하지 않는가. 마치 이 아름다운 사랑을 완벽하게 표현할 방법이라곤 키스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전부터 생명의 근원을 얻는 입은 역시 ‘생명의 들어오는 문’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생명의 문인 입으로 사랑도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입술이 서로 맞닿는 행동만으로 남녀는 각성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중략) 다치키 다카시가 <키스의 박물지>에 썼듯이 그야말로 “주술이건 연애건 키스에 상상력이 더해지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 121p


  이어 제4관에서는 부부를 캔버스에 담아낸 작품들을 다룬다. 익히 유명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통해 결혼을 증명하는 예비 부부의 모습, 커플의 탄생과 첫날밤을 다룬 작품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어울리지 않는 커플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부부의 모습과 결혼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순히 사랑의 완성형으로 결혼을 미화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기독교 문화권에서 강요했던 아내로서의 역할, 다양한 여성 경시 풍조 현상과 같은 사회적 시각도 폭넓게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의 장점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제5관, 제6관과 같이 부부의 침실과 같은 은밀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나 동성애, 불륜 등과 같은 금기시된 사랑이 담긴 작품까지도 다양하게 소개한다.


  앞서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을 언급했는데, 이와는 다른 느낌의 한 작품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바로 모네의 <임종을 맞은 카미유>다. 이는 제7관에서 다루는 이별에 관한 작품들 중에 하나인데, 모네의 다양한 그림을 보았지만 이 작품은 그의 여러 작품 중 남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내로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곁에서 떠나려고 하는 여성의 최초 이미지를 기록하기 위해 붓을 든 모네. 아내의 죽음을 앞에 두고도 자신이 화가임을 잊지 않은 그의 그림은 나지막한 울림을 주었다.


화가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때때로 보여주는 냉철하기까지한 ‘화가의 시선’에 닿을 때가 있다. 모네의 관찰법은 과학적이면서 철저해 한 치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내일 먹일 식량조차 없어 전전긍긍하던 상황에 놓였지만, 모네는 이제 막 눈을 감은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데스마스크의 미묘한 변화를 남기고자 갑자기 온 정신을 집중해 붓을 놀린다.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으리라. / 293p


  어떤 사랑이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일까. 언젠가 읽었던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책에서 우리에게는 사랑의 대상도, 사랑 그 자체도 아닌, 사랑에 대한 안목이 필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의 미술관>을 찬찬히 둘러보고 보니 작품들 속에서 사랑의 안목을 키워 나의 삶과 사랑에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가치 있게 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내 사랑을 보다 견고하게 다독이고 싶다면 ‘연애의 기술’과 같은 책도 좋지만 이런 미술교양책을 한번쯤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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