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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미술관 - 사랑하고 싶은 그대를 위한 아주 특별한 전람회
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 김윤정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7월
평점 :
그림으로 익히는 사랑과 연애의 모든 것_
사랑하고 싶은 그대를 위한 아주 특별한 전람회_
어릴 적의 나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표현해낼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그래서 유독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고, 혼자 여행가기를 좋아했는데 그때마다 마음에 드는 미술전을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정하곤 했다. 미술학자들이 그러하듯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를 잘 읽어낼 만큼 작품에 대한 이해능력이 높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저 두근거리게 하는 작품을 만나 잠시나마 마음을 빼앗기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마음과 달리 애석하게도 미술 작품을 자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나 유명 화가의 미술전은 더욱 그러한데, 그나마 교양미술책이라도 가까이 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생각보다 교양미술책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인문학과 접목한 교양미술책은 그 철학적 무게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졌고 미술사학의 흐름을 다룬 책들은 종교와 역사를 포함하고 있기에 미술사라는 영역이 너무나 거대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런 중에 이름마저 참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랑의 미술관>을 접하게 되었다. ‘사랑하고 싶은 그대를 위한 아주 특별한 전람회’라는 부제 때문일까, 수많은 주제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각에만 집중하여 아름다운 전시회를 관람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쾌락, 아픔, 성숙 등 ‘사랑’만큼 이 다양한 관념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있을까. 인류의 역사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만큼 문학과 더불어 미술은 오랫동안 사랑의 민낯을 다루어왔다. <사랑의 미술관>은 바로 이 사랑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미술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전달한다. 미술 전시회를 관람하는 마음으로 따라가면 되는데 먼저 제1관에서는 화가들의 다양한 연애담을 살펴볼 수 있다. 화가에게는 저마다 자신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가 존재하는데, 오랫동안 이어져온 궁핍한 경제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대가의 반열에 오른 화가 르누아르의 곁에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해준 아내가 있었다. 오랜 고난을 함께 이겨낸 아내를 향한 애정과 감사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사랑이 주는 감동이 이렇게 따뜻한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다.
“화가의 인생과 화가의 작품은 별개의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르누아르가 알린에게 보내는 변함없이 따뜻한 시선을 보고 있으면 화가의 애정이나 마음이 그들의 작품을 좌우할 때도 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 37p
르누아르와 달리 숱한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던 나쁜 남자 피카소의 연애담도 재미있다. 그만큼 활동적인 삶을 살았기에 그만의 담대한 화풍을 만들어낸 것일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화가의 인생이 화가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확률이 더 높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음으로 2관에서는 제우스, 비너스, 아폴론, 큐피드 같이 사랑에 얽힌 신화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체로 고전 예술 작품들의 주제가 신화 속 일화에 빗대어 표현된 것이 많기에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비너스를 다룬 작품들이 유독 관심을 끌었는데, 익히 알고 있었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요염하고 관능적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의 아우라를 깨끗하게 담아낸 작품이었다.
신플라톤주의에 흠뻑 빠졌던 보티첼리가 머릿속에 있는 미적 이미지를 관념적으로 시각화한 것에 반해, 아카데미즘의 정신을 이어받은 부그로는 아틀리에에서 모델에게 자세를 취하게 한 뒤 그것을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을 것이다. 실제로 부그로는 프랑스 왕립 미술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미술대회의 최고상인 로마상을 수상한 부상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라파엘로 등의 화가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회화를 배우는 데에 모든 노력을 쏟았다. / 84p
같은 주제와 인물을 다루더라 하더라도 작풍의 영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느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진다는 것을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음으로 제3관에서는 키스의 마력, 감정을 전하는 연애편지,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등을 통해 구애를 담아낸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애정표현 중에 ‘키스’만큼 가장 감미롭고 드라마틱한 표현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심지어 동화에서조차 아름다운 키스로 마무리하지 않는가. 마치 이 아름다운 사랑을 완벽하게 표현할 방법이라곤 키스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전부터 생명의 근원을 얻는 입은 역시 ‘생명의 들어오는 문’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생명의 문인 입으로 사랑도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입술이 서로 맞닿는 행동만으로 남녀는 각성하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중략) 다치키 다카시가 <키스의 박물지>에 썼듯이 그야말로 “주술이건 연애건 키스에 상상력이 더해지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 121p
이어 제4관에서는 부부를 캔버스에 담아낸 작품들을 다룬다. 익히 유명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을 통해 결혼을 증명하는 예비 부부의 모습, 커플의 탄생과 첫날밤을 다룬 작품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어울리지 않는 커플들의 모습까지 다양한 부부의 모습과 결혼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순히 사랑의 완성형으로 결혼을 미화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기독교 문화권에서 강요했던 아내로서의 역할, 다양한 여성 경시 풍조 현상과 같은 사회적 시각도 폭넓게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의 장점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제5관, 제6관과 같이 부부의 침실과 같은 은밀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나 동성애, 불륜 등과 같은 금기시된 사랑이 담긴 작품까지도 다양하게 소개한다.
앞서 부그로의 <비너스의 탄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을 언급했는데, 이와는 다른 느낌의 한 작품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바로 모네의 <임종을 맞은 카미유>다. 이는 제7관에서 다루는 이별에 관한 작품들 중에 하나인데, 모네의 다양한 그림을 보았지만 이 작품은 그의 여러 작품 중 남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내로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곁에서 떠나려고 하는 여성의 최초 이미지를 기록하기 위해 붓을 든 모네. 아내의 죽음을 앞에 두고도 자신이 화가임을 잊지 않은 그의 그림은 나지막한 울림을 주었다.
화가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때때로 보여주는 냉철하기까지한 ‘화가의 시선’에 닿을 때가 있다. 모네의 관찰법은 과학적이면서 철저해 한 치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내일 먹일 식량조차 없어 전전긍긍하던 상황에 놓였지만, 모네는 이제 막 눈을 감은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데스마스크의 미묘한 변화를 남기고자 갑자기 온 정신을 집중해 붓을 놀린다.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으리라. / 293p
어떤 사랑이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랑일까. 언젠가 읽었던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책에서 우리에게는 사랑의 대상도, 사랑 그 자체도 아닌, 사랑에 대한 안목이 필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랑의 미술관>을 찬찬히 둘러보고 보니 작품들 속에서 사랑의 안목을 키워 나의 삶과 사랑에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을 가치 있게 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면, 내 사랑을 보다 견고하게 다독이고 싶다면 ‘연애의 기술’과 같은 책도 좋지만 이런 미술교양책을 한번쯤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