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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하고 매혹적인 쩐의 세계사 - 로마 제국의 붕괴부터 리먼 쇼크까지!
오무라 오지로 지음, 하연수.정선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돈의 흐름으로 다시 보는 세계사!
12가지 테마로 살펴보는 비정하고 매혹적인 역사의 본질!
우리가 흔히 잘 사는 나라,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면 재화와 재물이 풍요롭고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청렴하고 바른 정치를 하여 백성 혹은 시민들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나라라고 말할 것이다. 특히 재정이 탄탄한 나라야 말로 부국과 빈국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에 ‘돈’은 한 나라의 흥망성쇠에 있어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다. 그 옛날 수많은 나라가 건국되고 사라지기까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바로 이 ‘돈’일 것이다. 많은 역사학자 혹은 인문학자들이 세계사 교양서를 집필하였지만 대부분 정치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기술하였을 뿐, ‘돈의 흐름’을 주제로 삼은 도서는 흔치 않다.
흥미롭게도 <쩐의 세계사>는 굉장히 이색적인 이력의 저자가 쓴 세계사 교양서이다. 그는 전 국세조서관으로, 일본 국세청에서 10년 동안 법인담당조사관으로 근무하며 비록 학자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돈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하여 역사 저술가로 거듭났다. 아무래도 국세청에 있으면서 경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 남다른 시각이 있었던 만큼 이 책 또한 ‘돈’이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을 하나로 꿰뚫는 통찰력이 빛난 도서였다.
저자는 ‘세계의 역사는 인류가 재물이나 부를 어떻게 추구해왔는지에 대한 역사’라고 말한다. 즉, 돈이 어떤 식으로 흐르고 어디에 축적되었는지를 살펴본다면 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사를 반추해보면 유럽에만 집중되어 있던 조명이 세계 최대의 강국이 된 미국으로 옮겨가고, 이제 중국이 어마어마한 거대 시장으로 떠오른 것 모두 자본력이 크게 한 몫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유럽을 거쳐 미국, 일본, 러시아까지 돈의 흐름에 집중하여 각 나라의 흥망성쇠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익히 알고 있던 것과 달리 세계사를 경제적인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국가가 융성하고 망하는 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고대 이집트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들은 무려 3,000년 동안이나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를 보냈다고 한다. 어떻게 그 긴 시간동안 국가의 번영을 지탱하였는지는 세금징수 시스템에 근거를 둔다. 중앙정부가 국가의 모든 행정권과 세금징수권을 가지고서 ‘서기’라고 불리는 하급 관료들에게 일정 봉급을 주고 세금을 거두어들이게 했는데, 그들을 감시하는 기관이 존재했음은 물론 징수 기준 또한 매우 세밀하게 정해놓아 엄격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관료조직이 부패하면 나라의 평안은 무너지게 마련이다. 외부의 요인이 아니라 탈세로 인한 내부 경제 정책의 기반이 무너져 제국의 영광이 사라져버리는 과정은 분명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가르침을 주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국가의 흥망성쇠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세금을 제대로 거두어들이는 동안은 번영하지만 공무원들이 부패하면 국가의 재정이 휘청거린다. 국가는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과도한 세금을 거두어 들이고 결국 국민은 불만이 폭발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생겨난 대항 세력이나 외세의 침략으로 인하여 그 나라의 정권(왕)은 멸망한다. / 22p
오늘날의 세계금융 시스템을 구축한 유대인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유대인 하면 생각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탈무드>인데 거기에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세 가지가 있다. 고민, 말다툼, 텅 빈 지갑. 그 중에서 텅 빈 지갑이 가장 많은 상처를 준다.’ 구절이 있다고 한다. 내가 미처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구절이다. 유대인이 이렇게 돈에 대해 적극적이었던가. 개인적으로는 의외였다. 알다시피 유대인은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지 못하고 오랫동안 박해를 받고 추방당하며 살아왔다. 경제뿐 아니라 문화계, 사상계 등 아주 다양한 방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놀라운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민족성이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더욱 고상하게 느껴졌고 이토록 돈에 유연한 민족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유대인 특유의 부에 대한 감각, 이른바 유대인 상법은 방랑의 민족이라 불리는 그들의 상황적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방랑하는 생활을 하다보면 각 지역의 다양한 정보를 가지게 된다. 또한 세계 곳곳에 동포가 있으므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가 쉽다. 유대인 상법에서 이러한 전 세계적 네트워크는 커다란 무기가 되었다. 또한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모국이 없다는 것은 여러 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점도 있었다. / 42p
토지도 없는 방랑의 민족 유대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우 합리적인 처세술이 요구되며 돈이야 말로 그들의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다. 유대인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금융센터가 생겼고,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도 유대인이었으며 현재 세계 최대의 유대인 거주 도시 뉴욕은 세계의 금융센터라는 점에서 유대인의 역사야 말로 곧 돈의 역사임을 새롭게 깨닫게 된 부분이었다. 이 외에도 영국이 적대국의 배를 나포하는 행위를 인정하는 해적선을 두어 국가적으로 해적의 약탈을 용인해주고 그로부터 재물을 얻어 부를 누렸다는 점도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또한 히틀러가 3년 만에 실업자를 100만 명으로 감소시키고 세계 공황 이전의 상태로 독일 경제를 회복시키며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제껏 그의 악행에 치중된 역사서는 많이 보았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줄 수 있을 만한 내용이 있었다는 점은 새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세계적 규모의 국가붕괴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 예언한다. 최근 선진국의 재정에는 ‘조세 피난처’라 하여 전 세계 부유층, 대기업이 탈세하기에 좋은 곳에 몰려들면서 중간층 이하에게만 엄격한 과세가 돌아가는 공통적인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는 국가가 붕괴할 때 발생하는 일정한 패턴임을 이 책을 보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저자는 무엇보다 재정 시스템과 징수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과한 세금을 꼬박꼬박 성실하게 내고 있는 애꿎은 시민들만 허리가 휠 지경이다. 특히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누진세 문제만 보아도 징수 시스템의 문제가 확연히 드러난다. 충분히 재검토하여 납득이 될 만한 해결책을 내놓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은 눈 가리고 아웅하듯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쩐의 세계사>를 통해 왜 국가는 경제안정을 중요시 여겨야 하는가, 그 이유를 보다 확실히 깨달은 의미 있는 독서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