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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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아름다우면서 두려웠던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눈부신 친구가 되었던 소녀들의 이야기! 

 

 

 

 

   이른바 ‘얼굴 없는 작가’로 정체를 숨긴 채 나폴리 4부작을 출간한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를 향한 찬사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때 얼굴 없는 가수라는 특유의 기획으로 우리 음악 시장에도 파문을 일으킨 전례가 있듯, 이 역시 철저히 기획된 노림수인지 혹은 대중의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작가 특유의 고집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뜻하는 바를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나를 비롯하여 뭇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기 전에는 이 부분에서 회의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작가의 정체가 작품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접근법을 간과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스스로를 자조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는다’는 코멘트를 통해 오로지 작품으로 모든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역량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인생은 너로 하여금 설명될 수 있었던 거야

 

 

   <나의 눈부신 친구>는 나폴리를 배경으로 60년간 이어져온 두 소녀의 우정을 그린 자전 소설로 4부작 중 1권에 해당한다. 소설은 노년이 된 엘레나 그레코(레누)가 라파엘라 체룰로(릴라)의 아들인 리노로부터 친구인 릴라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는 데서 시작한다. 평생 나폴리를 벗어난 적이 없는 릴라는 30년 전부터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마치 자신이 살아온 66년이라는 세월을 통째로 지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감쪽같이 증발해버렸다. 레누는 사라진 릴라의 흔적을 다시 붙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들이 자라온 유년시절부터의 기억들을 회상해나간다.

 

 

 

   앞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한 릴라의 이 극단적인 행동은 사실 과거의 이력에 비추어 크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릴라는 예측할 수 없는, 이른바 못된 아이였고 화자인 레누는 모두가 좋아하는 아이가 되고 싶었던 진중하고 착한 아이였다. 그러나 릴라는 여자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자 아이들 보다도 강한 의지를 지녔고, 날카롭고 도발적일 만큼 완벽한 지성을 지녔으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치명적이면서 자신의 의지에 확고한 태도를 지닌 남다른 아이인 것은 분명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려는 모방심리가 있는데, 레누는 릴라를 보며 그녀를 향한 모방과 경쟁 심리로 끊임없는 충동을 겪는다. 그들은 누가 더 용기 있는 아이인지 입증하려는 놀이에 빠져 위험을 자초하기도 하고, 「작은 아씨들」과 같이 좋아하는 책을 탐독함으로써 문학과 학문의 성취감에 몰두하기도 하며 때로는 다른 친구와 더 다정하게 지내면서 서로의 관계에서 상처와 질투를 공유하기도 한다. 책을 읽다보면 모든 것이 아름다우면서도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던 시절, 그들이 관통해야 했던 유년 시절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단순히 그녀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도 겪었고, 또 누구나 겪었을 이야기.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이 그저 떠밀리듯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던 우리 모두는 그렇게 그녀들처럼 시절을 통과해왔다.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을 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어제, 그제, 길어봤자 한 주 전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들은 그 이상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어제의 의미, 엊그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내일의 의미도 알지 못한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이고 지금이다. 여기가 길이고, 우리 집 현관이고, 이 사람이 엄마이고, 아빠이고, 지금은 낮이거나 밤인 것이다. / 29p

 

 

‘우리 이전’이라는 화두가 재등장했다. 초등학교 때와는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릴라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네에 있는 모든 것이, 돌멩이 하나에서부터 나무 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했지만 우리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성장해온 것이라고. / 210p

 

 

 

   그러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명석하고 뛰어난 학업 실력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학을 할 수 없었던 릴라는 집안의 가업인 구두수선이나 집안일을 도와야했다. 이와 달리 레누는 비록 집안의 반대는 있었으나 꾸준히 학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면서 둘의 길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라의 명민하고 총명한 기질은 혼자서라도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익혀 레누를 능가할 만큼 뛰어난 것이어서, 그들은 내면에 서로 다른 열등감을 지니면서도 서로가 자극제가 되어 학교를 넘어서 둘 만의 정신적 공동체를 지속한다. 하지만 릴라는 학교 밖의 현실이라는 냉혹한 세계를 몸으로 체감하고, 결혼이라는 상징적인 제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한계를 일찍 깨닫는다. 결국,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돈 아킬레의 아들인 스테파노와 약혼을 함으로써 두 소녀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결혼식을 앞두고 자신의 많은 것을 잃어버린 듯 회의감에 젖은 릴라가 레누에게 건네는 말은, 일종의 라이벌 같은 관계였지만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상대에게 투영시킴으로써 서로가 우정 이상의 존재였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결국, 그들의 삶은 어느 한쪽이 있지 않고서는 설명되거나 채워지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넌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2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해. 그러면 끝이지.”

“아니. 절대로 멈추지 마. 필요한 돈은 내가 줄게. 넌 항상 공부해야 해.”

나는 조그맣게 웃어 보인 후 릴라에게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언젠가는 학교 공부를 마칠 수밖에 없어.”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 416p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에는 이것을 크게 체감할 수 없는 편이기는 하나, 이 소설의 배경인 1950년대에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세계의 중심이었고 그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있던 시대와 다름없었다. 이 소설 역시 단순히 소녀의 우정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과 가족군이 등장하고, 그들의 복잡다단한 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수많은 스토리를 자아낸다. 특히 부모들로부터 시작된 증오와 경쟁, 경제적 종속 관계들은 후대인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는데 그들의 무절제한 경쟁심이 화를 자초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에 있었던 어두운 일들을 극복하고, 사회로부터 겪는 부조리함을 극복하려는 일련의 자세들은 변화를 맞이하려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주기도 한다.

 

 

 

릴라의 말로는 스테파노가 원하는 것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었다. ‘우리 이전’에 일어난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며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가 한 일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제 아버지 자리에는 나와 내 가족이 있으니 그만 멈추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222p

 

 

하지만 나는 해내야만 한다. 이제는 복종만 할 수는 없다. 언젠가 올리비에로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와서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을 내 부모님에게 강요했을 때처럼, 나도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전히 내 한쪽 팔을 붙잡고 있는 어머니를 무시해야 한다. 나는 이탈리아어, 라틴어, 그리스어에서 1등을 한 데다 종교학 선생님께 맞섰고, 내 이름이 적인 기사가 잘생기고 영리한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의 글과 함께 잡지에 게재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 430p

 

 

 

   두 소녀의 유년과 사춘기 시절에 집중된 1부작에 이어 2부작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그들을 어떤 세계로 이끌어갈지 무척 기대된다. 근래에 읽은 책 중 문학적 성취와 대중적 취향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점에서 4부작이라는 꽤 긴 장편 연재라는 점이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곧 3부작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2부작으로 서둘러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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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티커스의 기묘한 실종 사건 - 모든 것은 마드리드에서 시작됐다
마멘 산체스 지음, 김고명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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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사 폐간을 막기 위한 다섯 여인의 유쾌한 범죄 코미디!

시종일관 예기치 못한 전말과 좌충우돌 스토리의 매력에 빠져들다! 

 

 

 

   만약 내가 몸을 담고 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된다면? 보스의 아들이 그 충격적인 비보를 들고 영국에서 스페인으로 날아오고 있다면? 이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면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당장 생계유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일단 미뤄두고, 어떻게 하면 보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 먼저 궁리하게 되지 않을까. 혹 이렇다 할 수단이 없다면 보스의 주변에 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벌어져서 이 일이 관심에서 제외되길 바라거나, 그의 아들이 타고 있을 비행기의 사고 소식 따위를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잡지사 <리브라르테>를 숙명처럼 여기며 몸담았던 다섯 명의 여직원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영국의 출판 명문 크라프츠먼사에서 파견된 보스의 후계자, 애티커스가 유일하게 적자를 내고 있는 이 잡지사를 폐간시키기 위해 마드리드로 향하고 있다는 비보였다. 큰 키에 잘생긴 금발 머리를 한 이 영국 사내의 출몰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은 머리를 맞대고 잘리지 않기 위한 방법들을 강구해야만 했다. 이미 소설은 크라프츠먼사의 보스인 말로가 마드리드 경찰인 만체고 경위에게 아들의 실종을 신고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과연 애티커스는 어디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일까, 그의 실종에 정말로 그녀들이 연루된 것일까. 만체고의 시선을 따라 애티커스의 행방을 쫓아가다보면 이렇다 할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어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어만 간다.

 

 

 

   이렇듯 《애티커스의 기묘한 실종 사건》은 갑자기 마드리드에서 종적을 감춘 애티커스의 행방을 쫓아가는 추리 및 범죄소설의 형식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소설, 추리 소설이라 하기에는 어딘지 우스꽝스럽고 엉뚱 발랄한 매력들이 다분하다. 소설은 애티커스가 사라진 경위를 추적하면서도 <리브라르테>의 다섯 여인들, 만체고 경위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일상을 매우 유쾌하면서 사랑스럽게 펼쳐나간다. 특히 50대가 되도록 모태솔로 노처녀로 살고 있는 편집장 베르타,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경력기자 아순시온, 잡지사의 경리를 담당하는 똑순이지만 세 아이의 엄마로 가계를 책임지며 살아온 탓에 사랑받으며 살기를 원하는 위기의 주부 마리아, 애정 넘치는 결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늘 조바심을 느끼는 가비, 뛰어난 몸매와 외모를 갖춘 매력 넘치는 신입기자 솔레아의 이야기는 때로는 <섹스 앤 더 시티>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때로는 나와 내 이웃 여성들의 고민을 들을 때처럼 공감을 산다.

 

 

 

둘은 말없이 와인만 홀짝였다.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어떤 문제를 두고 딱히 해결책은 모색하지 않고 그저 몇 시간씩 대화만 나눌 수도 있다. 다음 행보를 계획하지 않고 그저 입안이 마르고 눈물이 멈추고 눈동자가 아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될 때까지 주야장천 수다만 떠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서 헤어지면 어깨를 짓누르는 고민의 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있는 것이다. / 164p

 

 

 

   실종 사건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사건의 전말이 유출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뒷 내용을 쓸 수는 없지만, 폐간을 막기 위한 다섯 여인의 좌충우돌 이야기와 허당미 넘치는 캐릭터들의 반전미가 어우러진 이 책은 여성들이 더욱 선호할 만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여성 작가이다 보니 여성들의 고민이나 습성을 잘 다루고 있음은 물론, 로맨스 소설처럼 곳곳에 녹아든 러브 스토리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영국과 스페인이라는 나라의 상반되는 풍토와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습성을 매우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국적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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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력 - 사람을 얻는 힘
다사카 히로시 지음, 장은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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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관계를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일곱 가지 마음습관!

잘못도 결점도 있는 미숙한 자신을 안고 살아가는 법!

 

 

 

 

   나는 타인으로부터 미움 받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유독 인간관계를 평화롭게 지속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 편이다. 이를 테면 상대방의 표정이나 말투를 읽어내는데 민감하게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거나 나의 입장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일을 우선으로 두는 일 따위이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늘 평탄하게 흘러가는 편이었고, 다툼 또한 일어나지 않으니 늘 대인관계가 좋은 편이라는 평을 듣곤 했다. 그러던 내게 뜻밖의 일이 찾아왔다. 그 무렵 몸담고 있던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거의 폭발할 지경에 이르면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일에 잠시 소홀해졌다고 생각했을 즈음, “너, 변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만 것이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 관계를 놓아버렸다. 이 정도에 흔들릴 관계라면 굳이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굳이 다시 끊어진 관계를 이어 붙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때의 일을 계기로 나는 일종의 허탈함을 느꼈고, 그 뒤로 관계에 연연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문제는 다소 불편하거나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특유의 유연함을 발휘해 끌어안았던 노력들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면서, 넓었던 대인관계가 얄팍해지고 지속력도 떨어지더라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습관은 생각보다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인간관계의 갈림길 앞에 선 당신에게    

 

 

   일본 직장인들이 가장 현실적인 멘토로 꼽는다는 저자 다사카 히로시의 <인간력>은 나와 같이 인간관계를 성숙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마음 습관 실천법을 알려준다. 그는 ‘인간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사회를 구성해 운영하는 것은 물론, 자립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잘 살아가기 위한 종합적인 능력”을 기를 것을 제안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력을 기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잘못도 결점도 없는 인간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도 결점도 있는 미숙한 자신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라는 점이다. 즉, 흠결이 없는 사람은 없으므로 자신의 미숙함을 찾고 다듬어 겸허히 인간력을 키우기 위한 수행에 정진할 것을 권한다. 특히, 인간관계에서의 불화와 불신, 미움과 반발, 대립과 충돌, 혐오와 증오 등 괴로운 경험은 대처 방법만 올바르게 기른다면 인간을 수양하고 인간력을 높이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대처 방법이란 대체 무엇일까? 저자는 크게 일곱 가지의 마음습관을 소개한다.

 

 

 

인간관계가 원활해지는 마음습관 일곱 가지

1. 자신이 미숙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2. 먼저 말을 걸고 눈을 맞춘다.

3. 마음속 작은 자아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4. 상대방의 결점을 개성으로 바라본다.

5. 말의 두려움을 알고 말의 힘을 살린다.

6. 멀어져도 영원히 인연을 끊지 않는다.

7. 악연의 의미를 깊이 생각한다. / 39p

 

 

 

 

 

 

인간을 수양한다는 것은 바로 ‘마음의 거울’을 닦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습관으로 ‘수용’의 자세를 앞세운다. 즉,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이에게 끌리는 법이라고 말이다. 한때 완벽한 우등생이라 자만하고 스스로의 행동에 단 하나의 의심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던 저자가 원숙한 노교수로부터 “자네는 붙임성이 없어!” 라는 지적을 받은 일을 회상한다. 여기서 말하는 붙임성이란,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과 결점을 인정하고 미숙함을 인정하는 유연함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사람인 이상 누구나 잘못이나 결점 그리고 미숙함을 지니기 마련이다. 이러니 미숙한 인간끼리 서로의 감정이 부딪치거나 마음이 멀어지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저자는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먼저 ‘미안하다’고 말할 것을 제안한다. 서로 감정이 부딪쳤을 때 상대방도 나처럼 불편하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이런 경우 내가 먼저 사과하면서 관계의 물꼬를 튼다면 어긋났던 관계가 전보다 훨씬 깊어지는 뜻밖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이는 수용감각을 열리게 함으로써, 상대방이 나의 결점과 미숙함까지 받아주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안정감 있는 관계형성을 마련할 수 있다는데 근거를 둔다.

 

 

 

인생이란 원래 다른 사람과 엮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타인과 부딪치지 않는 인생, 가까웠던 누군가와 마음이 멀어지지 않는 원만한 인생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타인과 부딪치고 마음이 멀어졌다가 그것을 또 초월하여 깊이 이어지는 인생. 그것이야말로 좋은 인생이다. / 86p

 

 

 

 

 

 

 

 

   일곱 가지 마음습관 중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새겨두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말의 힘을 터득하면 관계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다. 웃으니까 즐거운 것이다”는 말처럼, 말은 우리의 심층의식에 작용하여 마음의 상태를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상대를 싫어하기 때문에 혐오의 말을 하는 게 아니라, 혐오의 말을 하니까 상대가 싫어지는 것이라고 부연한다. 말은 자기암시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매일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은 반드시 심층의식에 침투하고, 누군가를 험담하면 하기 전보다 그가 더 싫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험담할 때 본래의 이유를 넘어서 홀로 정교한 시노리오를 쏟아 내거나 좀 더 과장되게 말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 이후에 마음 깊숙한 곳에 무심코 감정적으로 반응해버린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의 감정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저자는 가능하다면 마음속으로 세 가지 성찰을 시작해보라고 권한다. 이것을 실천할 수 있다면 말의 두려움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첫 번째, 누군가를 감정적으로 비판했을 때 마음 깊이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나 자기혐오의 감정이 생겨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두 번째, 상대를 감정적으로 비판한 자신을 정당화하고 싶어 하는 작은 자아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세 번째, 상대의 결점이나 잘못을 더 찾아내어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작은 자아의 움직임을 깨닫는다. / 175p

 

 

 

   <인간력>을 읽으면서 끊어진 관계를 이어 붙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있었다. 멀어져도 영원히 인연을 끊지 않을 것, 악연의 의미를 깊게 생각할 것이다. 저자는 ‘인생에서 타인과의 만남은 모두 자신이라는 인간의 성장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로 말한다. 행복한 만남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불행한 만남에도 모두 의미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곧, 이 만남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자세가 인간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함을 일컫는 말인 듯하다.

 

 

 

인간을 수양한다는 것은 바로 ‘마음의 거울’을 닦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 작은 자아를 조용히 바라보고 그 작은 자아로 인해 항상 흐려지는 마음의 거울을 닦는다. 이것이 ‘인간을 수양한다’는 말의 참 의미일 것이다. / 246p

 

 

 

   책을 다 읽고 보니 뒤늦게야 표지에 있는 돌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표지의 이 이미지는 인간관계란 거친 숫돌과 같다고 말하는 것 같다. 거친 돌이 매끄럽게 되기까지 얼마나 숱한 연마의 과정이 필요했겠는가. 결국 나라는 존재 역시 타인과 만나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을 겪으며, 내 마음속의 작은 자아를 깨닫고 연마하는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고. 이렇듯 책은 미숙한 자신을 안고서 성장하며 쉼 없이 걸어가는 인생, 느리거나 서툴러도 괜찮으니 인생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걸어갈 것을 희망한다.

 

 

 

   인간관계를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마음습관 실천법을 읽다보면 내 안의 비뚤어진 마음이 차분해지고 유연한 지혜가 쌓여가는 느낌이다. 점차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곤 하는 나에게 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오늘날처럼 관계에 연연하기보다 개인주의의 성향이 짙은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은 관계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의미 있는 책인 듯하다. 특히 누군가와 사이가 소원해졌거나, 직장 내에서 관계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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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셀프 트래블 - 2017~2018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18
맹현정.조원미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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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자연의 풍요로움을 가득 품은 나라, 스위스 자유여행을 위한 모든 것!

이 책 한권으로 든든하게 준비하는 두근두근 스위스 여행!

 

   알프스로 대표되는 대자연의 풍요로움을 품은 나라, 스위스. 스위스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눈 덮인 산의 웅장함과 드넓은 초원의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달리는 기차를 떠올린다면, 그곳이 바로 스위스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라 불리는 취리히와 각종 국제회의와 회담이 열리는 국제도시로 잘 알려진 제네바와 같이 세련된 도시 풍경을 품고 있기도 하니 유럽 여행 1순위의 나라로 손꼽힐만하다. 그 어디를 가든 세계에서 가장 조밀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교통 시설로 여행자들의 편의를 도우니, 자유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라면 스위스의 다양한 매력을 보다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유럽 여행에 대한 로망을 모두 담은 나라라 할 수 있는 스위스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스위스 여행에 대한 주요 정보를 쏙쏙 담아낸 <스위스 셀프트래블>의 도움을 받아보자.

 

 

 

대자연의 여유로움에 지친 일상을 던져두고 오자

 

 

스위스 일정 짜기는 여행자가 직접 완성해가는 퍼즐과 같다. 단체 패키지 관광처럼 정해진 그림대로 하는 것이 아닌 원하는 바에 따라 도시, 마을, 산악 여행지를 선정하고 그 안에 문화, 예술, 휴식, 미식, 액티비티 등 하고자 하는 것을 조합하여 하나의 근사한 나만의 퍼즐을 완성해보자. / 20p

 

 

 

   <스위스 셀프트래블>은 스위스 정부 관광청 홍보 및 마케팅 관련 담당 업무에 재직 중인 두 저자가 공동으로 기획한 스위스 여행 가이드북이다. 늘 스위스와 관련된 업무에 몸을 담고 있어서인지 굉장히 밀도 있고 생생한 정보들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스위스 현지인들이 직접 추천하는 볼거리, 먹거리, 축제, 액티비티, 쇼핑 등 베스트 추천지까지 함께 담아내고 있어 구성이 알차고 매우 유용하다. 책은 스위스 여행을 준비할 때 유의해야 할 목록들, 기간별 추천 일정들, 체계적으로 조직된 스위스의 각종 트래블 시스템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법들을 우선 설명함으로써 여행 전에 선행되어야 할 필수 준비사항들을 짚어본다. 여기에서는 스위스 여행 시 절대 놓칠 수 없는 다양한 관광 열차 이용법을 수록해놓은 부분이 유독 인상적이다. 파노라마 통창을 통해 알프스의 동화 같은 목초지대를 감상할 수 있는 골든패스 라인과 55개의 터널과 196개의 다리를 지나는 베르니나 특급, 알프스의 험준한 지형들을 관통하는 빙하특급, 스위스 건국 신화의 주인공인 빌헬름 텔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노선인 빌헬름 텔 특급과 같은 열차 여행이 스위스의 낭만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스위스만큼 열차 여행이 어울리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보통 유럽 여행 시 도보 이동이 많은 탓에 많은 여행자들이 열차나 버스 이동 중에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위스에서는 그러기 쉽지 않다. 잠든 사이 알프스의 초원과 목가적인 전원 풍경, 평생 기억에 남을 알프스 산맥과 에메랄드빛 호수의 아름다운 풍광이 끝없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덕에 스위스를 찾는 많은 여행자들이 차량보다는 열차 여행을 택하는 편이다. 스위스 역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열차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 26p

 

 

 

 

 

 

 

   책은 스위스 제1의 도시 취리히, 셀러브리티가 찾는 고급 휴양지 생 모리츠, 포켓 사이즈 대도시 바젤, 호수가 아름다운 금빛 도시 뉴샤텔, 고색창연한 스위스의 수도 베른, 독특한 자연의 매력이 있는 융프라우 지역, 스위스 속 작은 이탈리아 루가노, 마테호른과 청정 산악 마을 체르마트, 국제회의가 열리는 곳 제네바, 전통과 현대가 조화로운 루체른 외 지역별 주변 지역들까지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고 앙드레 김 선생님이 “아, 스위스 융프라우! 그곳에 가지 않고서는 스위스에 갔다고 할 수 없지요.”라고 말씀하셨다던 바로 그곳, 스위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대표적인 지역으로 손꼽고 있는 융프라우 지역에 나 역시 가장 많은 관심이 갔다.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하이킹을 할 수 있는 하더쿨름에서부터 만년설과 빙하에서 스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융프라우요흐, 007 제임스 본드가 선택한 명봉인 쉴트호른 등의 책에서 추천하는 모든 명소가 인상적이다. 등산 경험이 별로 없는 초보자들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코스도 있으니 대자연을 벗 삼아 하이킹을 해보는 경험을 꼭 놓치지 않기를 추천한다.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 3개의 산이 중심인 이 지역은 융프라우 철도가 고산지대를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교통시설과 각종 여행제반시설들을 뛰어나게 갖춰놓았다. 그러한 까닭에 ‘뜨악’ 소리가 나도록 여행비용이 비싼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이킹을 하면서 만날 수 있는 앙증맞은 샬레, 새하얀 만년설이 내려앉은 3,000m 급의 봉우리, 이슬 내려앉은 푸르른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떼, 만년설에서 서서히 녹아내려 천둥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를 체험하기 위해 발걸음이 저절로 옮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 204p

 

 

 

 

 

 

 

   이 외에도 책에는 각종 명소와 식당 마다 주소와 전화번호, 가격 등 참고하기 좋은 정보들이 상세히 기록되었음은 물론 각종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페스티벌 등의 정보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오직 스위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스위스 와인이나 치즈, 초콜릿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연간 세계 1위 수준의 소비량을 자랑하는 스위스 초콜릿, 알프스 물과 같이 청량한 스위스 맥주 등이 알아두면 좋은 내용들도 살펴볼 수 있어 도움이 된다. 이렇듯 스위스는 일상의 시름을 훌쩍 털어놓고 넉넉한 마음을 품어 올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임이 틀림없는 듯하다. 이 아름다운 나라를 여행하고자 계획하는 이들이라면 미리 <스위스 셀프트래블>을 꼭 읽어보길 권유하고 싶다. 책만 읽어보아도 마치 스위스를 누비는 관광 열차에 탑승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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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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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침묵한 한국 현대사에 복수의 칼날을 드리우다!

추악한 음모와 예고된 살인, 숨 막힐 듯 치밀한 전개가 압도적이다!

 

 

 

   우리는 진실을 촉구하기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광장은 사상을 초월하여 오직 진실만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자유의지의 공간으로써, 오늘의 민주주의는 나의 부모와 혹은 그 이전의 부모들이 지켜온 광장에서 더욱 성숙하게 자라왔다. 그러나 우리의 높아진 시민의식을 대변하는 광장의 반대편에는 불행하게도 국가의 권력을 상징하는 이들이 늘 존재해왔다. 권력기관을 견제하는 기관마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때로는 각종 시국 조작 사건들에 앞장서서 시민들을 탄압하고 폭력과 광기를 일삼았다. 그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어야 했던 많은 희생자들의 상처를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해왔지만, 문득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소원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음울한 한국사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겪어야만 했을 그들과 혹은 그들의 자식들이 입은 상처까지 살피기엔 아직도 힘겨워 보인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내부의 소용돌이 속에 머물러 있거나, 오히려 침묵으로 눈을 가리는 편을 선택한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침묵 당하는 모든 진실을 독이 된다

 

 

  이 소설은 1980년대 부당한 국가권력의 횡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다. / 466p

 

 

  <코뿔소를 보여주마>는 국가기관이 조작한 시국 사건에 희생된 자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스스로 전사이자 심판관이 되어 세상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드리운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영혼의 조련사이자 심판관을 자처한 살인자들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카론과 이집트 사자의 신 아누비스가 되어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배후조종자들을 집요하게 처단해간다. 소설은 공안부 검사 출신의 늙은 변호사 장기국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뛰어든 경찰 두식과 범죄심리학자 수연, 검사 준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종의 추리소설의 형식이다.

 

 

 

‘심장 무게달기’ 의식은 이집트 신화를 묘사한 ‘사자의 서’ 125장에 잘 나타나 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할 때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세 재판관에 의해 의식이 치러진다. 호루스와 아누비스, 토트가 재판을 맡은 신이다. 아누비스는 영혼의 길잡이로,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의 한쪽 접시에 올려놓는다. 진실의 여신 마트는 머리 장식에서 깃털 하나를 뽑아 반대쪽 접시에 올려놓고 함께 무게를 잰다. 심장을 얹힌 접시가 죄의 무게 때문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암미트가 심장을 먹어치운다. 암미트는 머리는 악어, 위쪽 몸통은 사자, 그리고 아래쪽 몸통은 하마 모습을 한 암컷 괴물이다. 심장을 잃어버린 자는 사후에 영원히 생명을 얻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이 동영상 역시 영혼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의식이다. / 166p

 

 

법의 지배가 확립된 이후 사적인 복수는 금지됐다. 법이라는 제3자가 복수의 대리인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처절한 복수극을 갈망한다. 복수는 정의를 빙자해 짜릿한 전율을 원하는 대중의 금지된 욕망이다. / 397p

 

 

 

   앞서 작가가 ‘국가권력의 횡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라고 하였듯, 굉장히 엽기적이고 치밀하게 기획된 복수 의식 속에서 이뤄지는 잔인하고 서슬 퍼런 살인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추리소설보다 다소 묵직하게 다가온다. 억울하게 국가권력에 희생된 자들과 그들의 자식들까지 대대로 이어지는 상처들을 진정성 있게 다루는 것은 물론, 그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알리기 위해 다소 기괴하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작가의 시도는 충격만큼이나 자성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한다.

 

 

 

왜 코뿔소인가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장기국의 실종, 배종관의 논문집, 메일에 올라온 글, 단테의 『신곡』을 모방한 동영상, 고석만의 그림, 블로그, ‘심장 무게달기’ 의식 동영상, 메멘토 모리에 이르는 일련의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추리의 퍼즐을 완성해 가는데 매우 흥미롭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살인사건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는 「코뿔소」, 「코뿔소를 위하여」, 「코뿔소를 위한 변명」에 이르는 세 편의 소설들은 꽤 훌륭한 장치가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코뿔소인가. 세 편의 소설은 수사관들이 범인의 움직임을 쫓는데 굉장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소설 속에 코뿔소가 등장하지 않는 점을 의아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책은 말미에 이르러서야 코뿔소의 특징을 설명한다. 코뿔소의 뿔은 죽기 전까지 자라는 걸 멈추지 않는다고. 싸우다가 부러져도 다시 돋아나 평생을 자라며. 코뿔소 새끼는 어미의 뿔을 보고 가야 할 곳을 찾으며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간다고. 이는 내가 원하건 원치 않건, 어떤 운명과도 같은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의 한 단면을 시사하는 듯하다. 부모, 즉 과거의 트라우마가 대대로 이어져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우리 모두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으로든 과거가 덧씌운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게끔 만든다. 그렇다고 그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머무를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우리는 나의 아이 혹은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굴레를 딛고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코뿔소를 보여주마>는 단순히 복수로 점철된 추리소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단순한 합의에 이르는 예정된 결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지만, 읽는 내내 치밀하고 견고한 구성과 발상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과거 작품에 연이어 이 작품 역시 역사과 현 시국, 추리라는 요소를 탄탄하게 소설적 감각으로 완성하였듯, 그만의 문학 제국을 이뤄가는 그의 차기작도 계속해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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