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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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아름다우면서 두려웠던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눈부신 친구가 되었던 소녀들의 이야기! 

 

 

 

 

   이른바 ‘얼굴 없는 작가’로 정체를 숨긴 채 나폴리 4부작을 출간한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를 향한 찬사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때 얼굴 없는 가수라는 특유의 기획으로 우리 음악 시장에도 파문을 일으킨 전례가 있듯, 이 역시 철저히 기획된 노림수인지 혹은 대중의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작가 특유의 고집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뜻하는 바를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나를 비롯하여 뭇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기 전에는 이 부분에서 회의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작가의 정체가 작품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접근법을 간과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스스로를 자조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는다’는 코멘트를 통해 오로지 작품으로 모든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역량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인생은 너로 하여금 설명될 수 있었던 거야

 

 

   <나의 눈부신 친구>는 나폴리를 배경으로 60년간 이어져온 두 소녀의 우정을 그린 자전 소설로 4부작 중 1권에 해당한다. 소설은 노년이 된 엘레나 그레코(레누)가 라파엘라 체룰로(릴라)의 아들인 리노로부터 친구인 릴라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는 데서 시작한다. 평생 나폴리를 벗어난 적이 없는 릴라는 30년 전부터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마치 자신이 살아온 66년이라는 세월을 통째로 지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감쪽같이 증발해버렸다. 레누는 사라진 릴라의 흔적을 다시 붙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들이 자라온 유년시절부터의 기억들을 회상해나간다.

 

 

 

   앞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한 릴라의 이 극단적인 행동은 사실 과거의 이력에 비추어 크게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릴라는 예측할 수 없는, 이른바 못된 아이였고 화자인 레누는 모두가 좋아하는 아이가 되고 싶었던 진중하고 착한 아이였다. 그러나 릴라는 여자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자 아이들 보다도 강한 의지를 지녔고, 날카롭고 도발적일 만큼 완벽한 지성을 지녔으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치명적이면서 자신의 의지에 확고한 태도를 지닌 남다른 아이인 것은 분명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려는 모방심리가 있는데, 레누는 릴라를 보며 그녀를 향한 모방과 경쟁 심리로 끊임없는 충동을 겪는다. 그들은 누가 더 용기 있는 아이인지 입증하려는 놀이에 빠져 위험을 자초하기도 하고, 「작은 아씨들」과 같이 좋아하는 책을 탐독함으로써 문학과 학문의 성취감에 몰두하기도 하며 때로는 다른 친구와 더 다정하게 지내면서 서로의 관계에서 상처와 질투를 공유하기도 한다. 책을 읽다보면 모든 것이 아름다우면서도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던 시절, 그들이 관통해야 했던 유년 시절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단순히 그녀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도 겪었고, 또 누구나 겪었을 이야기.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이 그저 떠밀리듯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던 우리 모두는 그렇게 그녀들처럼 시절을 통과해왔다.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을 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어제, 그제, 길어봤자 한 주 전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들은 그 이상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어제의 의미, 엊그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내일의 의미도 알지 못한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이고 지금이다. 여기가 길이고, 우리 집 현관이고, 이 사람이 엄마이고, 아빠이고, 지금은 낮이거나 밤인 것이다. / 29p

 

 

‘우리 이전’이라는 화두가 재등장했다. 초등학교 때와는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릴라는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네에 있는 모든 것이, 돌멩이 하나에서부터 나무 한 조각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존재했지만 우리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성장해온 것이라고. / 210p

 

 

 

   그러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명석하고 뛰어난 학업 실력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진학을 할 수 없었던 릴라는 집안의 가업인 구두수선이나 집안일을 도와야했다. 이와 달리 레누는 비록 집안의 반대는 있었으나 꾸준히 학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면서 둘의 길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라의 명민하고 총명한 기질은 혼자서라도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익혀 레누를 능가할 만큼 뛰어난 것이어서, 그들은 내면에 서로 다른 열등감을 지니면서도 서로가 자극제가 되어 학교를 넘어서 둘 만의 정신적 공동체를 지속한다. 하지만 릴라는 학교 밖의 현실이라는 냉혹한 세계를 몸으로 체감하고, 결혼이라는 상징적인 제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의 한계를 일찍 깨닫는다. 결국,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돈 아킬레의 아들인 스테파노와 약혼을 함으로써 두 소녀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결혼식을 앞두고 자신의 많은 것을 잃어버린 듯 회의감에 젖은 릴라가 레누에게 건네는 말은, 일종의 라이벌 같은 관계였지만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상대에게 투영시킴으로써 서로가 우정 이상의 존재였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결국, 그들의 삶은 어느 한쪽이 있지 않고서는 설명되거나 채워지지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넌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2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해. 그러면 끝이지.”

“아니. 절대로 멈추지 마. 필요한 돈은 내가 줄게. 넌 항상 공부해야 해.”

나는 조그맣게 웃어 보인 후 릴라에게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언젠가는 학교 공부를 마칠 수밖에 없어.”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 416p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에는 이것을 크게 체감할 수 없는 편이기는 하나, 이 소설의 배경인 1950년대에는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세계의 중심이었고 그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있던 시대와 다름없었다. 이 소설 역시 단순히 소녀의 우정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과 가족군이 등장하고, 그들의 복잡다단한 관계가 얽히고설키면서 수많은 스토리를 자아낸다. 특히 부모들로부터 시작된 증오와 경쟁, 경제적 종속 관계들은 후대인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지는데 그들의 무절제한 경쟁심이 화를 자초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과거에 있었던 어두운 일들을 극복하고, 사회로부터 겪는 부조리함을 극복하려는 일련의 자세들은 변화를 맞이하려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주기도 한다.

 

 

 

릴라의 말로는 스테파노가 원하는 것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었다. ‘우리 이전’에 일어난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하며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가 한 일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제 아버지 자리에는 나와 내 가족이 있으니 그만 멈추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222p

 

 

하지만 나는 해내야만 한다. 이제는 복종만 할 수는 없다. 언젠가 올리비에로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와서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을 내 부모님에게 강요했을 때처럼, 나도 어머니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전히 내 한쪽 팔을 붙잡고 있는 어머니를 무시해야 한다. 나는 이탈리아어, 라틴어, 그리스어에서 1등을 한 데다 종교학 선생님께 맞섰고, 내 이름이 적인 기사가 잘생기고 영리한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의 글과 함께 잡지에 게재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 430p

 

 

 

   두 소녀의 유년과 사춘기 시절에 집중된 1부작에 이어 2부작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그들을 어떤 세계로 이끌어갈지 무척 기대된다. 근래에 읽은 책 중 문학적 성취와 대중적 취향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점에서 4부작이라는 꽤 긴 장편 연재라는 점이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곧 3부작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2부작으로 서둘러 넘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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