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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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침묵한 한국 현대사에 복수의 칼날을 드리우다!

추악한 음모와 예고된 살인, 숨 막힐 듯 치밀한 전개가 압도적이다!

 

 

 

   우리는 진실을 촉구하기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광장은 사상을 초월하여 오직 진실만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자유의지의 공간으로써, 오늘의 민주주의는 나의 부모와 혹은 그 이전의 부모들이 지켜온 광장에서 더욱 성숙하게 자라왔다. 그러나 우리의 높아진 시민의식을 대변하는 광장의 반대편에는 불행하게도 국가의 권력을 상징하는 이들이 늘 존재해왔다. 권력기관을 견제하는 기관마저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때로는 각종 시국 조작 사건들에 앞장서서 시민들을 탄압하고 폭력과 광기를 일삼았다. 그 무자비하고 일방적인 힘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어야 했던 많은 희생자들의 상처를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해왔지만, 문득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는 소원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음울한 한국사의 트라우마를 직접적으로 겪어야만 했을 그들과 혹은 그들의 자식들이 입은 상처까지 살피기엔 아직도 힘겨워 보인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내부의 소용돌이 속에 머물러 있거나, 오히려 침묵으로 눈을 가리는 편을 선택한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침묵 당하는 모든 진실을 독이 된다

 

 

  이 소설은 1980년대 부당한 국가권력의 횡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다. / 466p

 

 

  <코뿔소를 보여주마>는 국가기관이 조작한 시국 사건에 희생된 자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스스로 전사이자 심판관이 되어 세상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드리운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영혼의 조련사이자 심판관을 자처한 살인자들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카론과 이집트 사자의 신 아누비스가 되어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배후조종자들을 집요하게 처단해간다. 소설은 공안부 검사 출신의 늙은 변호사 장기국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뛰어든 경찰 두식과 범죄심리학자 수연, 검사 준혁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종의 추리소설의 형식이다.

 

 

 

‘심장 무게달기’ 의식은 이집트 신화를 묘사한 ‘사자의 서’ 125장에 잘 나타나 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심판할 때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세 재판관에 의해 의식이 치러진다. 호루스와 아누비스, 토트가 재판을 맡은 신이다. 아누비스는 영혼의 길잡이로,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의 한쪽 접시에 올려놓는다. 진실의 여신 마트는 머리 장식에서 깃털 하나를 뽑아 반대쪽 접시에 올려놓고 함께 무게를 잰다. 심장을 얹힌 접시가 죄의 무게 때문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암미트가 심장을 먹어치운다. 암미트는 머리는 악어, 위쪽 몸통은 사자, 그리고 아래쪽 몸통은 하마 모습을 한 암컷 괴물이다. 심장을 잃어버린 자는 사후에 영원히 생명을 얻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소멸한다. 이 동영상 역시 영혼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의식이다. / 166p

 

 

법의 지배가 확립된 이후 사적인 복수는 금지됐다. 법이라는 제3자가 복수의 대리인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처절한 복수극을 갈망한다. 복수는 정의를 빙자해 짜릿한 전율을 원하는 대중의 금지된 욕망이다. / 397p

 

 

 

   앞서 작가가 ‘국가권력의 횡포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라고 하였듯, 굉장히 엽기적이고 치밀하게 기획된 복수 의식 속에서 이뤄지는 잔인하고 서슬 퍼런 살인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추리소설보다 다소 묵직하게 다가온다. 억울하게 국가권력에 희생된 자들과 그들의 자식들까지 대대로 이어지는 상처들을 진정성 있게 다루는 것은 물론, 그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알리기 위해 다소 기괴하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작가의 시도는 충격만큼이나 자성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한다.

 

 

 

왜 코뿔소인가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장기국의 실종, 배종관의 논문집, 메일에 올라온 글, 단테의 『신곡』을 모방한 동영상, 고석만의 그림, 블로그, ‘심장 무게달기’ 의식 동영상, 메멘토 모리에 이르는 일련의 미스터리한 요소들이 추리의 퍼즐을 완성해 가는데 매우 흥미롭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살인사건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는 「코뿔소」, 「코뿔소를 위하여」, 「코뿔소를 위한 변명」에 이르는 세 편의 소설들은 꽤 훌륭한 장치가 된다. 그런데 왜 하필 코뿔소인가. 세 편의 소설은 수사관들이 범인의 움직임을 쫓는데 굉장히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소설 속에 코뿔소가 등장하지 않는 점을 의아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책은 말미에 이르러서야 코뿔소의 특징을 설명한다. 코뿔소의 뿔은 죽기 전까지 자라는 걸 멈추지 않는다고. 싸우다가 부러져도 다시 돋아나 평생을 자라며. 코뿔소 새끼는 어미의 뿔을 보고 가야 할 곳을 찾으며 뿔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간다고. 이는 내가 원하건 원치 않건, 어떤 운명과도 같은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의 한 단면을 시사하는 듯하다. 부모, 즉 과거의 트라우마가 대대로 이어져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우리 모두는 개인적이든 사회적으로든 과거가 덧씌운 굴레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게끔 만든다. 그렇다고 그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머무를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우리는 나의 아이 혹은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 과거와 현재의 굴레를 딛고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듯 <코뿔소를 보여주마>는 단순히 복수로 점철된 추리소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단순한 합의에 이르는 예정된 결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지만, 읽는 내내 치밀하고 견고한 구성과 발상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과거 작품에 연이어 이 작품 역시 역사과 현 시국, 추리라는 요소를 탄탄하게 소설적 감각으로 완성하였듯, 그만의 문학 제국을 이뤄가는 그의 차기작도 계속해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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