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기술
이반 안토니오 이스쿠이에르두 지음, 김영선 옮김 / 심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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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을 완성하는 기억과 망각의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다!

 

 

  우리는 모두 기억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기억의 산물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감각 정보들을 받아들여 이를 저장시키고, 회상이라는 작용을 통해 복기해나가는 일련의 연속된 행위들 속에서 우리의 삶이 유지된다. 알츠하이머나 치매와 같이 기억장애를 지닌 이들이 겪는 곤란함에 비추어보았을 때 기억은 생존과 결부될 만큼 기능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기억은 정서적이기도 하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잊고 싶어 몸부림치게 만드는 아픈 상처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왜 반드시 잊고 싶은 기억은 유독 끝끝내 잊히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영화 <맨 인 블랙>처럼 기억을 지워주는 아이템이라도 있다면, 불쑥불쑥 떠오르는 괴로운 기억 따윈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을 텐데.

 

 

 

   이렇듯 우리에게 ‘망각의 기술’이란 게 있다면, 이것을 적절히 사용할 수만 있다면 삶의 만족도가 보다 높아질 수 있지는 않을까. 이러한 이유로 『망각의 기술』이란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쉽게 기억을 통제하지 못하듯 망각 또한 통제하기 어려운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나름의 근거를 통해 기술을 체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접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기대와 달리 ‘지우고 싶은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법에 대해 기술한 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책은 기억과 망각이란 무엇이며, 신경과학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을 일으키게 하는 생화학적 기제들이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다소 전문적인 주제를 다룬다. 즉, ‘우리는 왜 기억을 하고 또 잊는 것인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의 기술로써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기억과 망각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 망각한다

 

 

   『망각의 기술』의 저자 이반 안토니오 이스쿠이에르두는 브라질의 과학자로 학습과 기억을 연구한 신경생물학 분야의 선구자이다. 그는 생물학적 기제에서 기억 과정을 설명하는 일에 초점을 둔 연구를 통해, 뇌에서 어떤 정보가 기억으로 형성되는 과정과 공포나 스트레스 등 특정 상태일 때만 인출되는 기억 인출 조절에 에피네프린, 도파민,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 그리고 아세틸콜린 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최초로 밝혀낸 인물이다.

 

 

 

   그는 기억이란 우리가 흔히 학습이라고 부르는 습득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말한다. 경험이 뇌의 언어로 번역되면 그 결과 생긴 정보는 기억의 흔적이나 기억 파일로 응고화 되어 뇌의 언어로 저장되는 것이다. 그는《심리학》이라는 저서를 출간한 맥고가 “기억의 가장 두드러진 양상은 망각”이라고 한 말을 인용해, 우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분명히, 매일 우리 기억의 많은 부분이 영원히 사라진다. 망각이란 기억을 형성하고 인출하는 기제가 포화될 수 있기 때문에 쓰이지 않는 기존 기억은 새로운 기억에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정리되고 마는 과정이다. 즉, 우리가 모두 개인으로서 활발히 또는 흡족히 행동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기억 또는 기억의 단편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는 곧 망각 역시 기억만큼이나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듯, 우리가 망각하는 것 또한 우리 자신임을 피력한다.

 

 

 

 

 

 

   기억을 떠오르지 않게 하는 데는 습관화, 소거, 차별화, 억압의 네 가지 방식이 있다. 이 네 가지는 근본적으로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기억으로의 접근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습관화란 망각의 기술을 이루는 중요한 기둥으로, 경적소리를 처음 들으면 놀라서 그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만, 열아홉 번째로 경적소리를 들으면 그냥 무시해버리는 예를 통해 점진적인 반응의 억제를 바로 습관화라 명명한다. 습관화는 우리가 세상을 좀 더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도록 도와준다. 공항 같은 시끄러운 장소 또는 극장처럼 빛이 많거나 공공시장처럼 여러 목소리가 뒤섞이는 곳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 소거는 우리에게 친숙한 ‘파블로프의 개’의 실험으로 설명된다. 신호음은 조건 자극, 먹이는 무조건 자극, 개가 습득한 신호음에 타액을 분비하는 반응은 조건 반사다. 무조건 자극은 조건 행동을 강화하기 때문에 ‘강화물’이라고 부른다. 일단 조건화를 확립한 뒤 강화물을 생략하면 동물은 조건 반응을 억제한다. 이것이 바로 소거이다.

 

 

 

   차별화는 생물학적으로 의미 있는 반응을 일으키는 자극과 질적으로 비슷한 자극에 대한 반응을 억제하는 것이다. 어린 아기가 주변 모든 남성을 ‘아빠’라고 부르다가 곧 진짜 아빠를 가리키는 데만 한정해서 이 말을 쓰도록 스스로 학습하듯, 아무 남성을 보고 아빠라고 부르는 일을 억제하는 것을 차별화라고 한다. 앞선 세 가지가 학습의 형태를 통해 이뤄진다면 마지막인 억압은 의식 안으로 어떤 기억을 들여보내지 않기 위해 그 표출을 억제하는 것으로, ‘자발적 억압’이 뇌 체계 작동 결과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진짜 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망각의 네 가지 기술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생존하는데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기억과 망각에 관여하는 뇌 영역과 감정이 기억의 형성과 인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원인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증명한다. 인간과 다른 동물, 주로 포유류에게 있어 감정적이지 않은 순간은 없다. 이런 점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자극적인 기억이 대개 잘 기억되는 것은, 이때 기억의 형성과 인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신경호르몬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정서적 각성이 해마와 편도체의 노르아드레날린성 자극을 발생시켜 더 선명하고 강렬한 기억의 형성과 인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정서나 감정의 영역이라 여겼던 부분까지도 뇌의 기능과 호르몬의 역할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하니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신경을 제거한 횡격막 실험이 극적으로 보여주듯 시냅스의 폐기는 그것을 거쳐 이동한 정보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확실한 방법이다. 라몬 이 카할이 1893년에 주장하고 현대 신경과학이 증명한 대로 시냅스가 기억 보관소로 여겨지는 한, 인간과 모든 동물에게 일어나는 진짜 망각의 대부분은 시냅스의 폐기에서 비롯된다. / 121p

 

 

기억이 지속되는 것은 부분적으로 그 기억의 감정적 내용이나 개인적인 중요성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많은 각성이 따르는 강렬한 감정 상태에서 습득한 기억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이 과정은 보통 기저외측 편도체로부터의 입력 그리고 노르아드레날린성 및 도파민성 자극으로, 해마에 있는 기억 형성 세포의 유전자가 활성화하고 단백질 합성이 강화된 결과다. / 123p

 

 

 

 

 

 

 

   뇌 속에는 단백질과 뉴런의 많은 교체가 이루어지는데, 하루에도 여러 차례 구성 물질을 바꾼다고 한다. 뇌에 들어오는 많은 정보가 그 안에 그대로 머물지 않으며 다른 정보로 대체되거나 또는 대체되지 않을 수도 있는, 매우 복잡하고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기억과 망각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존재들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자서전 《살아남기》의 첫 구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기억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라고. 결국 내 삶을 완성해가는 건 무엇을 기억하느냐와 무엇을 망각하느냐 사이에 있음을,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 역시 그 지점에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불편하고 귀찮은 기억에 사로잡힐 때마다 나의 뇌에게 ‘소거’하자, ‘억압’하자 하고 명령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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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셀프 트래블 - 2017~2018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은하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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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축복으로 가득한 스페인의 열정과 낭만을 즐기다!

스페인 자유여행을 위한 맞춤형 실속 가이드북! 

 

 

   최근에 <유럽여행 베스트 123>이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가 있다면 바로 스페인이었다. 평소 스페인에 대한 이렇다 할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탓에 그 책을 읽고 나서는, ‘스페인이 이렇게 매력 넘치는 나라였어?’ 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아마도 그 어디보다 자신만의 색채를 가장 뚜렷이 갖고 있는 나라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 같이 뛰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것은 물론, 구시가지의 소소한 일상과 한낮의 느긋한 여유까지 즐길 수 있는 스페인은 이제 가장 가고 싶은 유럽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여행 정보에 로컬의 감성까지 더하다!

 

 

   <스페인 셀프트래블>은 스페인을 보다 가깝고, 깊게 이해하는데 제격인 맞춤형 가이드북이다. 그간 여러 여행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역시 저자의 필력에 따라 가이드북의 이미지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스페인 셀프트래블>은 단순히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스페인 백과사전과 같이 깊이 있는 정보와 더불어 한 편의 에세이를 읽듯 로컬의 감성까지 다채로운 독자의 니즈를 충족시킨다. 드넓은 영토와 장엄한 자연환경을 갖춘 스페인의 지정학적인 매력을 비롯하여 뛰어난 예술가를 많이 배출해낸 문화와 예술의 품격, 강렬한 축제의 희열과 풍부한 농수산물을 바탕으로 한 미식의 향연 등 삶이 곧 문화인 현지인들의 모습까지 속속들이 소개한다. 넓은 땅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스페인 속에서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아야 이 땅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저자 덕분에 우리는 단숨에 태양의 마법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베스트 오브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의 유산으로 스페인 최고의 관광도시가 됐지만 가우디의 건축 여행 말고도 바르셀로나에서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하는 일들은 많다. 도시의 예술적인 면모는 미술관뿐 아니라 작은 골목의 디자인 상점에서도 드러나며 유명한 축구 클럽과 레스토랑, 19세기 모더니즘 건축물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자, 그럼 예술 도시의 아름다움과 지중해의 활기와 여유 속으로 들어가 보자. / 56p

 

 

 

 

 

 

   책은 스페인 내에서 ‘바르셀로나’에 특히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바르셀로나는 로마 시대부터 중세까지 지중해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만큼 경제적 부흥과 함께 뛰어난 모데르니스모 건축들이 꽃을 피웠다. 익히 알고 있는 가우디를 비롯한 많은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활약하였으며 피카소와 미로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활동하여 곳곳에 많은 유산들을 남기기도 하였다. 저자는 바르셀로나로의 여행 계획을 꿈꾼다면, 반드시 가우디 건축물 보기, 보케리아 시장 구경하기, 구시가지 산책하기,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시간 보내기, 현지 음식 최대한 먹어 보기를 추천한다. 적어도 3박 4일 이상 길게는 일주일의 일정을 제안하면서 이에 따른 최적화된 여행 코스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계절의 변화에 따른 여행법이나 주요 여행 팁, 언어와 문화, 드넓은 도시 전경 및 다양한 쇼핑 루트도 함께 제공한다. 특히 바르셀로나를 직접 다녀온 여행자들의 후기와 그들의 만면에 띤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스페인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르셀로나의 로컬 감성과 아티스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보른’에 꼭 들려보고 싶다. 웅장한 카탈루냐 음악당과 피카소 미술관을 비롯하여 아기자기하고 유니크한 디자인 공방이 몰려있는 거리를 산책하다보면 ‘아, 바르셀로나에 오길 잘했어!’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올 듯하다. 보른을 비롯하여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가우디 박물관과도 같은 ‘엑삼플레’가 아닐까. 동화 속 집을 연상케 하는 카사 바트요와 강한 파도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라 페드레라, 지금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정도로 거대한 종교의 미적 감각을 자랑하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전공하는 신랑이 이곳에 온다면 무궁무진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최현석 셰프가 TV에서 선보인 분자요리를 맛볼 수 있는 디스프루타르 식당에서의 식사도 기대가 된다. 단, 이 도시에서는 가격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고 하니 그 와중에도 합리적인 가격의 식당을 소개해주는 저자의 추천지를 참고해봄직 하다.

 

 

 

 

 

 

 

   책은 바르셀로나의 근교를 포함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동화 속 성을 찾을 수 있는 ‘세고비아’, 스페인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톨레도’, 정열의 나라를 상징하는 ‘세비야’,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머무른 절벽 위의 하얀 도시 ‘론다’, 아트 도시로 변모 중인 항구 도시 ‘말라가’, 이슬람 왕국의 마지막 도시 ‘그라나다’, 스페인 제3의 도시 ‘발렌시아’, 위대한 화가 고야를 만날 수 있는 ‘사라고사’, 무데하르 양식을 꽃피운 도시 ‘테루엘’, 미식의 도시 ‘산 세바스티안’, 문화의 도시로 거듭난 ‘빌바오’, 북부 여행의 경유 도시 ‘산탄데르’, 유럽의 봉우리들이라는 뜻으로 스페인 북부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피코스 데 에우로파’, 순례자들의 종착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방대한 정보들을 아우른다. 이 중 그라나다는 이슬람 건축물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멕시코 출신의 비평가가 자신의 시에 “그라나다에서 장님이 되는 것만큼 불행한 인생은 없다”고 표현하였고,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 역시 “스페인에서 한 도시만 방문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라나다여야 한다.”고 했다고 하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책은 다양한 특색을 지닌 지역에 관한 정보 외에 로컬 음악과 플라멩코의 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클럽을 소개하고 있는 점 또한 이색적이다. ‘바(Bar)’ 문화가 그 어느 나라보다 발달된 스페인인만큼 레스토랑 외에도 바와 카페, 베이커리 등 특색 있는 미식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추천지도 흥미롭다. 끝으로 스페인에 관한 기본 정보와 축제 및 연중 행사, 여행 준비에 필수인 입출국 정보, 교통, 여행 준비 등과 같은 가이드북에 있어서 필수 정보들도 상세히 다루고 있으니 유용하다. 이렇듯 <스페인 셀프트래블>은 여느 가이드북 보다 스페인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으면서 실용적인 정보들로 가득하다. 모두들~ 이 책을 읽고 Buen Viage!(부엔 비아헤!: 좋은 여행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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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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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반복되는, 탈출구 없는 인생 그 이후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독보적인 존재감, 독자적인 경계 어디쯤에 서 있는 작가, 김영하!

 

  한국 문단에 있어 가장 동경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김연수 작가와 김영하 작가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로 두 작가는 다소 다른 지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는데, 김연수 작가는 전통적인 문법을 가장 소설가답게 단단하게 여밀 줄 안다면 김영하 작가는 문법 속에 자의식을 애써 투영시키지 않고 치밀한 듯 치밀하지 않은 듯 해체와 결합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독특한 문학 세계를 완성시킨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책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어쩐지 맹목적인 믿음 같은 게 있어서 작가의 신작 소설집『오직 두 사람』을 냉큼 구매했다. 역시나, 무려 7년 동안 쓴 7편의 단편 소설을 모아 출간하였을 만큼 출판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독자적인 존재감은 여전했다.

 

 

 

인생의 원점을 잃은 이들에 대하여

 

 

   7편의 단편 소설들을 아우르는 『오직 두 사람』은 끝없는 상실과 돌아갈 자리를 잃어버린, 인생의 원점을 잃어버린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하여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와 같은 명쾌한 해답이 있다면 좋겠는데 인생이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의 연속인지라 매사 그것을 담담하고 성숙하게 견뎌내는 것만이 능사라는 듯이 말이다. 때문에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 것’으로 소설집을 갈무리한 작가의 말이 마음을 씁쓸히 휩쓸고 간다.

 

 

 

   7편의 단편 소설들은 대체로 가장 일상적인 곳에서 찾아오는 공포와 낯선 판타지의 기묘한 동거로 이루어져있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은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 출신자인 언니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을 생각하며 현주는 자신의 상황에 투영시킨다. 현주는 앞선 희귀 언어 사용자처럼 아빠는 자신에게, 자신은 아빠에게 ‘오직 두 사람’이지만 ‘오직 한 사람’ 같은 존재로 서로만이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유독 현주만을 편애하고 집착하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는 아빠이지만, 자신의 삶에 있어 ‘커다란 결락이자 중독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아빠를 향한 현주의 이중적인 감정은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듯한 기분을 같게 되는 것이다. 아빠를 잃어버린 것은 곧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으로의 진입을 의미함으로 이러한 상실이 그녀의 앞길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언니, 수학에 이런 방정식 있잖아요? 예를 들면 3x+4xy+6xyz=8이라고 해요. 그럼 좌변에서 x를 괄호 밖으로 빼낼 수 있잖아요? x(3+4y+6yz)=8. 여기서 x가 아빠예요. 아빠를 괄호 밖으로 빼내면 수식은 참 단순해져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빠가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니에요. 수식을 잘 보세요. 괄호 밖에서 x가 모두를 가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 36p

 

 

 

   7편의 단편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아이를 찾습니다』였다. 마트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의 상실감을 그린 작품으로, 무려 11년 동안 일상이 뒤틀리고 조각난 삶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아이를 찾아 헤매는 윤석의 처절한 모습이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아이를 잃었다는 자괴감에 조현병에 걸린 아내와 낡은 단칸방 생활 속에서도 잃어버린 아들만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던 그의 맹목적인 믿음 또한 조악한 인생사의 헛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쓰라렸다. 특히,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 아이를 잃어버린 순간 아내인 미라가 표현한 공포는 너무나 일상적인 곳에서 벌어졌기에 더욱 섬뜩했다.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이 매장 안으로 벌써 세 번째 울려퍼졌다. 반향은 없었다. 방목하는 양떼처럼, 수백 대의 카트들이 매장 안을 평화롭게 소요하고 있었다. 미라는 그들 사이로 헤치고 들어가 소리치고 싶었다. 왜 아무도 방송을 듣지 않아요? 여러분도 아이가 있잖아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 48p

 

 

십 년간 그는 ‘실종된 성민이 아빠’로 살아왔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그것이 끝나버렸다. 행복 그 비슷한 무엇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불행이 익숙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 그는 한 번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민이만 찾으면, 성민이만 찾으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 이후를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퇴행성이라는 미라의 조현병까지도 씻은듯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 65p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작품은 탈출구를 없는 기이한 공간 속에 내던져진 이들의 이야기 <신의 장난>이다. 일종의 입사 테스트의 명목으로 연수를 온 네 명의 남녀가 느닷없이 ‘방 탈출 게임’에 휘말려버린 것인데, 어딘가에 힌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탈출을 시도하려했던 시도가 무색할 정도로 이들은 오랜 기간 감금 상태에 이르고 만다. 이들은 방문에 온몸을 던져 부딪쳐도 보고, 속죄의 기도를 끊임없이 올리거나 자신들을 가둔 이들을 교란시킬 수 있을 만한 일들을 꾸며도 보지만 마치 영화 ‘큐브’처럼 끝없는 미로에 잠식당한다.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탈출구 없는 인생을 상징하는 듯하다. ‘정은은 그녀를 다독이고 태준은 다시 서성이고 강재는 철문으로 돌진하고…… 그렇게 그들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긴 여운을 준다.

 

 

 

“정은씨, 난 언제나 현재가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여기만 지나가자. 그럼 나아질 거야. 그런데 늘 더 나빠졌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더 행복했어요. 그럼 지금 이 순간도 최악이 아닐 수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이 그래도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서는 가장 젊고, 제일 괜찮은 순간일 수 있다는 건데…… 우리 모두 여기서 늙어가다가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처음 들어왔던 때가 그래도 좋았어. 그땐 젊었고, 희망도 있었다.” / 257p

이 외에도 <인생의 원점>, 제3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이들 역시 이 주제를 아우르는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역시나, 하고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뛰어난 가독성과 문학과 대중의 경계를 아우르며 특별한 지점에 위치해 있는 작가의 존재감이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독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다음에도 그의 작품이 나온다면 나는 이번과 같이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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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셀프트래블 - 2017~2018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권예나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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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자연의 신비와 대한민국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대마도(쓰시마 섬)!

이 책 한 권이면 대마도 자유 여행 준비는 끝!

 

 

  한국과 일본 열도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여 거리상으로는 대한민국과 훨씬 가까운 나라, 대마도. ‘쓰시마’라고 불리는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이라고는 낚시 마니아들이 자주 찾는 곳 혹은 당일치기나 1박 2일 정도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다. 그러다 최근 나가사키 현의 ‘군함도’를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가 제작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우리의 슬픈 역사가 화제가 되었고, 대마도 역시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한 곳으로써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굳이 역사적인 의미를 주요 여행의 이유로 삼지 않더라도 대마도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운 이국으로 그 어느 곳보다 가볍게,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혜의 자연 환경을 품은 수수한 매력이 돋보이는 곳, 대마도

 

 

   <대마도 셀프트래블>은 보다 가볍게, 그러나 알차고 실속 있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가이드북이다. 일본정부관광국 광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계기로 일본에 관한 다양한 저서를 남긴 권예나 저자가 2017년 5월까지 지역별 맞춤 최신 정보를 담아낸 책이다. 대마도에 ‘대즈니랜드’라는 애칭을 짓고, 여행자의 외로움과 배고픔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신 현지 일본인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프롤로그를 읽고 있노라면 그녀가 지닌 대마도에 대한 애정이 각별함을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소소하지만 그만큼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여행지라는 생각이 앞선다.

 

 

 

   대마도 여행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기에 앞서 책의 ‘일러두기’를 읽어보면 한 눈에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요 정보의 큰 그림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미션과 인사이드 파트에서는 여행 전에 알아두면 좋을 만한 대마도에 대한 기본 정보에서부터 체험해보면 좋을 만한 매력적인 정보들을 소개한다. 오직 대마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요리에서부터 특산물, 쇼핑 목록 등을 비롯하여 대마도로 출발 전에 꼭 기억해두어 할 유의점이나 계절별 차림, 공휴일(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음으로)과 축제 캘린더, 관광안내소와 영사콜센터와 같은 중요한 정보들도 다루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한국어를 발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섬사람들은 한국어를 잘 모르고 영어도 잘 통하지 않으니 번역 애플리케이션이나 기본적인 일본어 회화 등은 익히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꼼꼼한 조언 역시 아끼지 않는다. 이 외에도 당일치기 쇼핑 여행, 1박 2일 히타카츠-이즈하라 버스 여행, 1박 2일 렌터카 여행 등과 같이 테마별로 자유여행의 가이드라인을 선별하여 최적의 스케줄을 짜는데 도움을 준다.

 

 

 

 

 

 

  책은 크게 이즈하라, 미쓰시마, 도요타마, 미네, 가미아가타, 가미쓰시마로 나뉘는 대마도의 여섯 지역을 다루고 있다. 특히, 조선통신사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역사적인 명소가 몰려 있는 ‘이즈하라’는 대마도 여행의 1번지로 손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제안한 1시간, 2시간, 3시간에 이르는 코스별 노선에 따라 느긋하게 산책을 하다보면 구석구석 숨어 있는 명소와 수수한 작은 골목길의 매력을 보다 느낄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덕혜옹주 결혼 봉축 기념비와 만송원, 최익현 순국비가 세워져있는 수선사는 꼭 가보고 싶다. 여행사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어느 분의 인터뷰에서도 소개하듯 톳과 오징어가 들어간 이 지역 대표메뉴인 쓰시마버거는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먹거리인 점도 잊지 말아야겠다. 빵순이들을 이끄는 제과점 ‘루팡’과 ‘와타나베과자점’ 또한 잊지 말 것!

 

 

 

Writer's Pick 쓰시마 명물 가스마키

빵순이, 빵돌이는 물론이고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가스마키는 부드러운 빵 안에 앙금을 듬뿍 넣은 쓰시마 명물이다. 안에 들어가는 앙금은 콩의 종류에 따라 색이 달라지지만 미각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맛의 차이는 크게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검은 앙금파와 흰 앙금파로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니 기왕이면 둘 다 먹어보자. 빵은 카스텔라 느낌으로 부드럽고 촉촉하다.

쓰시마의 과자점마다 가스마키를 파는데 빵과 앙금의 식감, 달콤함 정도에 차이가 있다. 후레아이도코로 쓰시마 옆의 특산품 판매점, 하치만구 신사 앞의 쓰시마물산관, 공항의 기념품 상점 등에 다양한 과자점의 가스마키가 모여 있어 한꺼번에 둘러보며 구매하기 좋다. 특히 하나씩 예쁘게 포장한 가스마키는 선물용으로 그만! / 57p

 

 

 

   이 외에도 수수하고 작은 바다마을의 풍경이 은근한 감동을 주는 ‘가미쓰시마’, 대마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이곳을 대표하는 시설이 많이 몰려있는 ‘미쓰시마’, 일본 건국 신화의 비밀과 대마도의 절경을 누릴 수 있는 ‘도요타마’, 보석 같은 온천 호타루노유와 감동적인 일몰을 볼 수 있는 모고야 등 지나치기 아쉬운 명소가 숨여진 ‘미네’, 대마도의 청정 자연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가미아가타’를 소개하는 각각의 구성들은 대마도만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책에는 각 명소 및 식당, 숙박 업소 등을 소개할 때마다 선명한 사진, 주소와 전화번호, 입장료, 가는 길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니 코스 선택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앞서 가스마키를 소개한 것처럼 ‘Writer's Pick’ 으로 저자의 특별 코멘트까지 수록되어 있으니 이 책 한 권으로 대마도 여행은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Writer's Pick 다크 투어리즘, 도요포대

휴양과 관광이 아닌 역사적 사건, 재난, 비극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다크 투어리즘 혹은 블랙 투어리즘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 여행자가 들려볼 만한 대표적인 다크 투어 여행지는 군함도라 불리는 나가사키현 하시마 섬이다.

쓰시마는 여유롭고 느긋한 분위기의 섬이지만, 일본의 국경으로 은근한 긴장감이 있기도 하다. 식당 카즈에서 언덕을 조금만 오르면 도요포대를 만날 수 있다. 도요포대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대한해협 봉쇄를 목적으로 만든 곳으로 규모나 크기가 상당하다. 당시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거포였고, 실제로는 한 번도 발사한 적 없지만 일본은 도요포대의 위협 효과가 컸다고 본다. 그러나 강제노역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동원되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어 한국인 여행자 입장에서는 그냥 눈으로만 관람하긴 힘들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분위기가 음산하니 혼자서는 가지 말 것. / 89p

 

 

 

 

 

 

 

  이어 저자는 대마도의 매력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하는데, 버스 투어, 현지인 집에서 묵는 민박과 체험, 캠핑 즐기기, 소바 만들기, 느긋한 온천 여행, 쓰시마 액티비티 중 적어도 하나 정도는 골라서 경험해보면 좋음 직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배편 사용법이나 출입국하는 법, 시내교통이나 렌터카 이용하는 법, 기본적인 여행일본어, 독자들을 위한 다양한 쿠폰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으니 그야말로 알짜배기 가이드북을 읽은 느낌이다. 이 책에 읽다보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곳곳에서 여행자들의 매너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마도는 관광지임과 동시에 현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터전인 곳이므로 여행자들의 들뜬 마음을 앞세워 매너를 잊지 않기를 당부한다. 푸근하고 수수한 매력을 지닌 대마도,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면 이 책을 읽고 대마도 자유여행을 꿈꿔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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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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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아우르는 수작 중의 수작!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진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 이어 마침내 3부작인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가 출간되었다. 한층 두터워진 책의 무게감만큼이나 격동의 이탈리아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파란만장한 두 여인의 삶이 채 읽어보지 않아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사회 전체가 광란의 카니발을 연상케 했던 전편의 이야기에 이어 어느덧 중년기로 돌입한 릴리와 레누의 삶은 보다 더 시대의 흐름 속으로 복잡하게 얽혀 들어갈 것이라 예상되었다. 때문에 통속적인 듯, 그러나 통속적일 수 없는 이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가 3부작에 이르러 더욱 뚜렷하게 전면에 드러나리라는 것 또한 짐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짐작한 대로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우리가 이 거대한 서사를 넘어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을 저울질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들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격변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아우르다

 

 

   전편인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는 작가로서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한 레누와 폭력과 상처가 만연한 삶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릴라가 전혀 다른 길을 가는 데에서 마무리 된다. 이어 다음 편인『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분노가 독으로 가득 찬 고름으로 터져 나오는 것’ 같은 도시의 나폴리를 떠나는 삶을 택한 레누와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삶을 택한 릴라의 상반된 삶을 그려나간다. 즉, 레누는 ‘합리적인 이성의 세계’, ‘위대한 이상과 명문가에 대한 숭배와 원리원칙이 중요시 되는 세계’로 대변되는 약혼자 피에트로의 삶에 귀속됨으로써 빈곤과 병든 고향에서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반면 릴라는 햄 공장에서 단돈 10리라라도 더 받기 위해 영하 20도의 냉동고에서 일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장주의 추파와 고단한 현실을 살아낸다.

 

 

 

   덕분에 릴라와 레누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이제 레누는 릴라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가 왔음을 느끼게 되고 보다 주체적이고 이상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녀는 정치적인 열정이 넘치는 지적인 사람간의 모임에서 자신의 소설은 보잘 것 없고, 자신은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공허함에 사로잡힌다. 더군다나 결혼과 출산을 통해 부여된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료하게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에 숨이 막힌다. 결국, 레누 역시 당시 신여성들이 오랜 학업의 대가로 자신들의 미래가 집안일에만 국한되지 않기를 바랐던 의지를 실행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상실감에 빠지고 만다. 문제는 뜻밖의 방향으로 해소되기에 이른다는 점이었다. 자유부인 놀음이라도 하듯 남편 몰래 다른 남자의 애정을 갈구하거나, 규율을 위반하고픈 충동을 느끼기도 하며 다시금 자신의 앞에 나타난 첫사랑 니노에게 보다 더 열정적으로 몸과 마음이 사로잡힌다.

 

 

 

   한편, 릴라는 조악하기 짝이 없는 햄 공장에서 일하면서 엔초와 매일 저녁에 컴퓨터 공부를 하는 것으로 삶의 위안을 얻으며 살아간다. 그러던 그녀 앞에 파스콸레가 나타나면서 우연히 그를 따라 노동의 현실을 각성시키려는 투쟁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거리는 노조를 세워서 노동 환경 개선에 앞장서려는 청년들과 그들의 행위를 방해하고 폭력을 가하는 파시스트 무리의 충돌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던 때였다. 그녀는 진짜 현실은 모른 채 노동계급이니 뭐니 하며 떠들어대는 나디아가 위선자처럼 보였고, 그곳에서 이들을 각성시킬 만한 냉담한 노동 환경의 현실을 규탄한다. 이후 그녀는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의 뜻을 모으고 지난한 착취의 현장을 고발하려 하지만, 한계에 봉착하면서 공장을 뒤로한 채 엔초와 새로운 삶의 여정으로 나아간다.

 

 

 

   이렇듯 소설을 읽다보면 이 두 여인과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삶은 그저 한 개인의 역사에만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병든 것은 우리 고향 동네가 아니라, 나폴리가 아니라 지구 전체다”는 표현처럼, 소설 속은 이탈리아 혹은 외부의 세계를 아우르는 격변의 시대 속 상황을 곳곳에서 매우 상세히 묘사한다. 이탈리아 문화의 퇴보와 선거 후 정치판에 대한 분석, 사회민주주의의 패배, 학생 운동과 경찰의 탄압과 같이 이른바 의식 있는 청년들의 화두는 물론, 마리아로사가 주관하는 페미니스트 모임을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젖가슴을 드러내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며 정치에 목소리를 드러내는 실비아의 모습은 꽤나 강렬하다.

 

 

나는 그 젊은 여성의 모습에 동요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소란스러운 강의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보다 어리고 세련되어 보였는데 벌써 한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었다. 하지만 육아에 힘쓰는 얌전한 젊은 어머니의 이미지를 거부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함을 치기도 하고 격렬하게 손동작도 하고 발언권을 요구하기도 하고 분노한 나머지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향해 멸시하듯 손가락질도 했다. / 86p

 

 

 

불안한 욕망의 그림자

 

 

   소설의 흐름상 아내로, 아이의 엄마로 성숙해진 두 여인이 중년기에 이른 만큼 개인적으로는 앞선 작품들보다 이번 3부작에서 보다 이입을 한 듯하다. 정치적 혹은 페미니즘적 색채를 떠나 이들 내면에 자리 잡은 불안한 욕망들이 수시로 개인사를 넘나들고, 이들을 선택의 기로로 내모는 광경들이 매우 흥미롭다. 특히나 레누처럼 한때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던 나로서는 가정에서의 역할이 사회적 욕망을 짓누르는 데에서 오는 상실감으로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하는 레누의 감정에 이입되고 말았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이 삶을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림자처럼 붙드는 또 다른 욕망에 특별하기를 바랐던 나 자신이 결국은 평범한 사람이 지나지 않음을 느껴야만 했던 그녀의 좌절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시 내가 자주 사용했던 표현처럼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내가 그 일을 경험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것도 아니라면 비록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직도 비이성적일 정도로 고집스레 모든 타협을 거부하는 릴라를 내 기준으로 삼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릴라와는 모든 면에서 달라진 지금에 와서도 릴라가 행동반경을 스스로 고향 동네에 국한시키지 않고 나와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면 릴라가 행동했을 법한 일을 하고 릴라가 했을 법한 말을 했던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 346p

 

 

무엇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나를 사로잡았지만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원했다. 그 무엇인가가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동안 무엇인가가 되기는 했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뚜렷한 대상도, 진정한 열정도, 확실한 야망도 없이 말이다. 릴라는 중요한 사람이 되는데 나만 혼자 뒤처질까봐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뭐라도 되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무엇인가 되기를 바랐지만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 495p

 

 

 

   결국 레누는 그림자처럼 들러붙었던 욕망에 전도되어 니노에게 다시 사로잡히고 만다. 어쩐지 그 결말이 그리 아름답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그간 갈망해왔던 남자에 대한 사랑을 쟁취함으로써 레누는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마지막 4부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앞서 1부작인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릴라를 예고했던 만큼 릴라의 삶에 또 어떤 격변이 일어나게 될지도 궁금하다. 얼른 4부작이 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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