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끝없이 반복되는, 탈출구 없는 인생 그 이후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

독보적인 존재감, 독자적인 경계 어디쯤에 서 있는 작가, 김영하!

 

  한국 문단에 있어 가장 동경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김연수 작가와 김영하 작가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로 두 작가는 다소 다른 지점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는데, 김연수 작가는 전통적인 문법을 가장 소설가답게 단단하게 여밀 줄 안다면 김영하 작가는 문법 속에 자의식을 애써 투영시키지 않고 치밀한 듯 치밀하지 않은 듯 해체와 결합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독특한 문학 세계를 완성시킨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책에 대한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어쩐지 맹목적인 믿음 같은 게 있어서 작가의 신작 소설집『오직 두 사람』을 냉큼 구매했다. 역시나, 무려 7년 동안 쓴 7편의 단편 소설을 모아 출간하였을 만큼 출판계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독자적인 존재감은 여전했다.

 

 

 

인생의 원점을 잃은 이들에 대하여

 

 

   7편의 단편 소설들을 아우르는 『오직 두 사람』은 끝없는 상실과 돌아갈 자리를 잃어버린, 인생의 원점을 잃어버린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하여 이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와 같은 명쾌한 해답이 있다면 좋겠는데 인생이란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의 연속인지라 매사 그것을 담담하고 성숙하게 견뎌내는 것만이 능사라는 듯이 말이다. 때문에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 것’으로 소설집을 갈무리한 작가의 말이 마음을 씁쓸히 휩쓸고 간다.

 

 

 

   7편의 단편 소설들은 대체로 가장 일상적인 곳에서 찾아오는 공포와 낯선 판타지의 기묘한 동거로 이루어져있다. 표제작인 <오직 두 사람>은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 출신자인 언니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을 생각하며 현주는 자신의 상황에 투영시킨다. 현주는 앞선 희귀 언어 사용자처럼 아빠는 자신에게, 자신은 아빠에게 ‘오직 두 사람’이지만 ‘오직 한 사람’ 같은 존재로 서로만이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삶을 살아왔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유독 현주만을 편애하고 집착하는 기이한 행태를 보이는 아빠이지만, 자신의 삶에 있어 ‘커다란 결락이자 중독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아빠를 향한 현주의 이중적인 감정은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듯한 기분을 같게 되는 것이다. 아빠를 잃어버린 것은 곧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으로의 진입을 의미함으로 이러한 상실이 그녀의 앞길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언니, 수학에 이런 방정식 있잖아요? 예를 들면 3x+4xy+6xyz=8이라고 해요. 그럼 좌변에서 x를 괄호 밖으로 빼낼 수 있잖아요? x(3+4y+6yz)=8. 여기서 x가 아빠예요. 아빠를 괄호 밖으로 빼내면 수식은 참 단순해져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빠가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니에요. 수식을 잘 보세요. 괄호 밖에서 x가 모두를 가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 36p

 

 

 

   7편의 단편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아이를 찾습니다』였다. 마트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의 상실감을 그린 작품으로, 무려 11년 동안 일상이 뒤틀리고 조각난 삶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아이를 찾아 헤매는 윤석의 처절한 모습이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아이를 잃었다는 자괴감에 조현병에 걸린 아내와 낡은 단칸방 생활 속에서도 잃어버린 아들만 찾으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던 그의 맹목적인 믿음 또한 조악한 인생사의 헛된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쓰라렸다. 특히,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 아이를 잃어버린 순간 아내인 미라가 표현한 공포는 너무나 일상적인 곳에서 벌어졌기에 더욱 섬뜩했다.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이 매장 안으로 벌써 세 번째 울려퍼졌다. 반향은 없었다. 방목하는 양떼처럼, 수백 대의 카트들이 매장 안을 평화롭게 소요하고 있었다. 미라는 그들 사이로 헤치고 들어가 소리치고 싶었다. 왜 아무도 방송을 듣지 않아요? 여러분도 아이가 있잖아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 48p

 

 

십 년간 그는 ‘실종된 성민이 아빠’로 살아왔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그것이 끝나버렸다. 행복 그 비슷한 무엇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불행이 익숙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내일부터는 뭘 해야 하지? 그는 한 번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민이만 찾으면, 성민이만 찾으면. 언제나 그런 식이었지 그 이후를 상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퇴행성이라는 미라의 조현병까지도 씻은듯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 65p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작품은 탈출구를 없는 기이한 공간 속에 내던져진 이들의 이야기 <신의 장난>이다. 일종의 입사 테스트의 명목으로 연수를 온 네 명의 남녀가 느닷없이 ‘방 탈출 게임’에 휘말려버린 것인데, 어딘가에 힌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탈출을 시도하려했던 시도가 무색할 정도로 이들은 오랜 기간 감금 상태에 이르고 만다. 이들은 방문에 온몸을 던져 부딪쳐도 보고, 속죄의 기도를 끊임없이 올리거나 자신들을 가둔 이들을 교란시킬 수 있을 만한 일들을 꾸며도 보지만 마치 영화 ‘큐브’처럼 끝없는 미로에 잠식당한다.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탈출구 없는 인생을 상징하는 듯하다. ‘정은은 그녀를 다독이고 태준은 다시 서성이고 강재는 철문으로 돌진하고…… 그렇게 그들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긴 여운을 준다.

 

 

 

“정은씨, 난 언제나 현재가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여기만 지나가자. 그럼 나아질 거야. 그런데 늘 더 나빠졌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더 행복했어요. 그럼 지금 이 순간도 최악이 아닐 수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이 그래도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서는 가장 젊고, 제일 괜찮은 순간일 수 있다는 건데…… 우리 모두 여기서 늙어가다가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처음 들어왔던 때가 그래도 좋았어. 그땐 젊었고, 희망도 있었다.” / 257p

이 외에도 <인생의 원점>, 제36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이들 역시 이 주제를 아우르는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역시나, 하고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뛰어난 가독성과 문학과 대중의 경계를 아우르며 특별한 지점에 위치해 있는 작가의 존재감이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만의 독특한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독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다음에도 그의 작품이 나온다면 나는 이번과 같이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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