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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기술 - 명화의 구조를 읽는 법
아키타 마사코 지음, 이연식 옮김 / 까치 / 2020년 9월
평점 :
당장 미술관으로 뛰어가고 싶게 만드는 책!
이 책을 읽고 나면 몇 번이고 봤던 그림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예술 작품을 관람하는 것을 좋아해서 종종 미술관을 찾곤 한다. 특별한 기술적 지식이 없기 때문에 주로 작품에서 드러나는 정서나 감각에 의지하는 편이다. 그러다 팸플릿이나 해설사들의 설명을 통해 작품 해설과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듣다 보면, 전문가들은 대체 어떻게 작품을 이토록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는지 부러울 때가 있다. 예술 작품이란 것이 보고 싶은 대로, 느껴지는 대로 즐기면 된다고는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읽고, 작품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곤 한다.
“자네는 보고는 있지만, 관찰하고 있지는 않다네.”
/ - 아서 코난 도일의 『보헤미아 왕국의 스캔들』에서 14p
아키타 마사코의 『그림을 보는 기술』은 나처럼 명화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싶은 분들을 위한 그림 감상 안내서다. 그림의 주인공에 해당하며 화가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봐주기를 바라는 부분인 ‘초점’, 중요한 지점으로 눈길을 유도하는 ‘경로(리딩 라인)’, 그림의 인상을 좌우하는 ‘균형’, 화면을 조정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끄는 역할을 하는 ‘색’, 작품의 설계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구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통일감’ 등의 기술을 통해 작품을 보다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관찰의 스킴(보기 위한 틀)”을 따라 그림을 바라보다보면 그 누구라도 그림을 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그림을 보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표면적인 인상뿐만 아니라 선, 형태, 색 등의 조형에서 보아야 할 포인트를 잡고, 그 배치와 구조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8p
지난 해,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을 인상 깊게 관람한 적 있다. 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확 사로잡은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병자들을 낫게 하는 그리스도」였다. 어마어마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그리스도가 가진 신성한 기운을 오롯이 드러낸, 렘프란트의 탁월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아키타 마사코 역시 인물의 위치와 명암을 섬세하게 조절하여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주목하게 한 “초점”의 기술이 잘 발휘된 작품이라 평가한다. 뿐만 아니라 렘브란트는 그리스도가 성스러운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후광 효과를 주었는데, ‘선을 한 점으로 집중시킴으로써 중요함’을 나타내는 이러한 방식은, 우리가 작품 속에서 “리딩 라인”을 발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화면을 빠짐없이 보도록 하려면 회전형 구도 외에도 지그재그 구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떤 식으로든 반환점이 화면 가장자리에 가까워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관객이 화면 밖으로 주의를 돌릴 염려가 있습니다. 회전형 구도에서는 관객의 시선이 모서리에 빨려들어가는 것을 경계하지만, 지그재그 구도에서는 양쪽 가장자리에서 시선이 밖으로 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 92p
밀레(1814-1875)의 그림 「이삭줍기」는 등장인물들이 아무도 관람객을 바라보지 않고, 두드러지는 요소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을 끕니다. 정돈이 잘 된 그림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시선의 경로에 있습니다.
이 그림이 마음을 끄는 이유는 지평선의 한 점을 중심으로 하여 전체 선이 우산 형태로 펼쳐지는 구심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부터 보더라도 그 한 점에 이끌려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있으며, 마치 한지붕 아래에 있는 것 같은 잘 마무리된 기분이 듭니다. / 102p
우에무라 쇼엔의 「미유키」와 피테르 파울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을 살펴보면 인물의 몸이 기울어져 있어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작품의 구조선은 특정한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데, 사선의 구조를 이용한 두 작품은 수평과 수직과 달리 약동감이나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연인이 노래를 써준 부채를 보고 있던 참에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소매로 숨기는 모습을 포착한 그림 「미유키」 속의 주인공이 만약 똑바로 서 있는 자세였다면 그저 의연한 느낌을 주었을 테지만, 몸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깜짝 놀라는 움직임과 인물의 감정이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루벤스의 「십자가를 세움」 또한 오른쪽 아래로 향하는 사선을 구조선으로 삼았기 때문에 긴박하고도 비극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이처럼 기본적인 구조만 알고 있어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을 읽는 눈까지 달라질 수 있다니, 무척 신기하고 웃음이 날 만큼 재미있다.
그림 속의 선은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므로 반드시 다른 각도의 보조적인 선이 필요합니다. 선들의 관계를 “리니어 스킴”이라고 합니다. 그림의 구조를 선의 모델로 파악하는 방식입니다.
「서장의 춤」에서 구조적인 세로선에 대응하여 인물이 앞으로 뻗은 오른손이 이루는 가로선이 화면의 균형을 잡습니다. 세로선과는 대립하면서도, 세로선을 지지하며 마치 화면 양쪽 가장자리에 고정하는 듯한 이 가로선은 구조선보다는 눈에 덜 띄는 부차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수평선과 수직선에 의한 십자형태의 조합은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리니어 스킴입니다. / 130p
알머 타데마가 이 그림을 그리던 무렵에는 이미 황금비가 화가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의식적으로 이것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황금비가 그림을 아름답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직사각형의 기하학적 성격을 활용한 질서 정연한 구성이 아름다움의 비결이라고 여겨집니다. / 269p
윤곽선을 강조하여 그릴 경우에는 표현의 자연스러움이 떨어지지만, 선을 긋는 방법에 따라서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입니다. 선의 굵기, 길이, 필압, 선을 긋는 속도, 분방하게 그은 선인가, 공들여 그은 선인가, 어떤 재료로 그은 선인가 등등. 이런 요소들이 조합되어 선의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선의 성격을 살피면 그 역할과 효과가 보이겠지요. / 286p
미켈란젤로, 고흐, 다 빈치, 에드워드 호퍼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명화들을 예시로 살펴보면서 그림을 읽는 비법을 알려주는 이 책은 그 자체로 명화를 즐기는 기쁨뿐만 아니라, 몇 번이고 봤던 명화도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볼 수 있도록 그림 보는 눈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작품을 기술에 가두면 단순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의견과 취향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감성의 영역’과 작품의 객관적인 특징을 분석적으로 살펴보는 기술 즉, ‘이성의 영역’을 함께 놓고 감상하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질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이 두 가지 관점을 조화롭게 활용하여 그림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덕분에 그림을 보는 안목도 조금은 높아진 기분이다. 얼른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