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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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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색채를 즐길 수 있는 작품!
음식과 성이라는 주제를 문학으로 한 데 엮어낸 감각적인 소설!
티타와 식탁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방향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식탁은 티타가 태어나면서부터 흘린 슬픈 눈물을 받아 내며 그녀와 운명을 함께해야 했으며, 티타는 이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 18p
1910년 무렵 멕시코의 어느 마을,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심장마비로 아버지를 잃은 티타는 가정과 농장을 동시에 운영해야 했던 마마 엘레나를 대신해 요리사인 나차의 손에 길러진다. 태어나면서부터 부엌은 곧 티타의 유일한 세계였으므로 그녀가 특별히 요리에 뛰어난 감각을 지니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도 모르겠다. 티타의 삶은 음식을 만들 때 나는 소리와 향, 식탁으로 점철된 시간의 연속이었으며 삶의 즐거움 역시 먹는 즐거움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티타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반해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 페드로 무스키스라는 청년으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하지만 마마 알레나는 데 라 가르사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 즉 막내딸이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를 앞세워 이를 무산시킨다. 이는 티타가 결혼은 물론 자식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대신 티타가 아닌 첫째 딸 로사우라와 페드로가 맺어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티타는 마마 엘레나로부터 언니와 페드로의 웨딩케이크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는다. 절망과 원망, 회환과 괴로움의 눈물이 뒤섞인 웨딩케이크는 결혼식 당일 괴이한 식중독을 일으킨다. 모든 하객들이 케이크를 먹는 순간 크나큰 슬픔과 좌절감의 포로가 되어 흐느껴 울더니 이내 마당 한가운데서 토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신부인 로사우라의 웨딩드레스마저 구토물 범벅이 되자, 유일하게 케이크를 먹고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티타는 언니의 결혼을 망치려 들었다며 마마 엘레나로부터 구타를 당한다. 이내 티타는 페드로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며 그녀의 언니와 결혼한 것은 오로지 티타를 가까이서 보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지만, 한층 날카로워진 마마 엘레나의 감시와 구속은 티타를 더욱 옥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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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차의 죽음으로 집안의 요리사가 된 티타는 오직 요리를 할 때만 자유롭고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난생 처음 페드로로부터 받은 장미꽃에 마음이 들떠 메추리 요리를 만들기로 하는데 장미 소스, 메추리 고기, 포도주, 음식 냄새 하나하나에 스며든 티타의 육감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은 놀랍도록 감동적인 요리를 탄생시킨다. 페드로는 티타의 요리를 먹자마자 황홀한 표정으로 탄성을 지르고, 둘째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그동안 억눌러 왔던 성적인 욕망을 발산하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집을 뛰쳐나가버린다. 의지하던 헤르트루디스가 그렇게 집을 떠나자 티타는 조카인 로베르토에게 애정을 쏟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젖이 나오지 않는 언니 로사우라를 대신에 로베르토를 먹이고 키우는 티타와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페드로의 시선을 눈치 챈 마마 엘레나는 페드로 가족을 미국으로 보내버린다. 훗날 그곳에서 로베르토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충격에 빠진 티타는 만들고 있던 초리소를 찢어발기며 “엄마가 로베르토를 죽였어!” 하고 마마 엘레나에게 소리친다.
연금술 같은 묘한 작용이 일어나 그녀의 존재 자체가 장미 소스, 메추리 고기, 포도주, 음식 냄새 하나하나 속으로 스며들어 녹아내린 것 같았다. 티타는 그렇게 달아오른 체취를 풍기며 육감적이고 섹시하게 페드로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티타와 페드로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발견한 듯했다. 그 안에서 티타는 발신자, 페드로는 수신자였으며, 불쌍한 헤르트루디스의 몸은 그들의 성적인 메시지가 지나가는 매개체였다. / 59p
사람들은 설탕에 절인 달콤한 시트론 맛, 매운 고추 맛, 그윽한 호두 맛, 시원한 석류 맛 등 갖가지 진미로 속을 가득 채운 칠레고추를 남겼다.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가 얼마나 맛있는데! 정말 꿀맛인데! 그 안에는 갖가지 사랑의 비법이 들어 있었지만 점잖은 체면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빌어먹을 체면! 빌어먹을 예의범절! 그것들 때문에 그녀의 몸은 속수무책으로 조금씩 시들어 가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 65p
정신병원에 넣으려는 마마 엘레나로부터 티타를 구한 건 주치의인 존 브라운이다. 존은 티타에게 ‘이성’을 찾아주고 자유의 길을 열어준다. 티타에게 사랑을 느낀 존은 그녀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받아들여줄 때까지 아끼고 보살핀다. 그렇게 존의 사랑으로 치유된 티타는 존이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지만, 마마 엘레나의 죽음으로 페드로가 돌아옴으로써 다시금 그녀의 마음에 동요가 일어난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과 자신이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페드로 사이에서 고민하는 티타,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후 소설은 여전히 마마 엘레나의 환영을 보며 관습과 의무, 운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티타가 욕망과 사랑 앞에서 고뇌하며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극복하려는지를 충격적인 결말과 함께 그려나간다.
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 옆에서는 가차 없이 미리 정해진 일을 해야만 했다. 질문의 여지도 없었다. 일어나 옷을 입고, 화덕에 불을 지피고, 아침을 준비하고,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고, 설거지하고, 침대를 정리하고, 점심을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다림질하고,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하고, 매일매일, 해마다 그렇게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잠시 쉴 틈도 없이, 그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의 명령에서 자유로워진 손을 보며 티타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 117p
금기시되는 것과 죄악시되는 것, 정숙하지 않은 것은 바랄 수 없다.
하지만 대체 정숙하다는 게 뭐란 말인가?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부정하는 것? 차라리 어른이 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페드로를 몰랐더라면! 페드로의 아기를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구석구석 그녀를 쫓아다니며 그녀의 행동이 정숙하지 못하다고 소리 지르지 않았더라면! / 184p
이처럼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음식과 성이라는 소재를 문학과 결합시킨 이색적인 작품이다. 크리스마스 파이, 차벨라 웨딩 케이크, 북부식 초리소, 초콜릿과 주현절 케이크 로스카 등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은 각 장의 특징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매개체다. 그도 그럴 것이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는 ‘금기를 욕망’하게 하고, 소꼬리수프는 티타의 무너진 정신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초콜릿은 ‘집과 가족에 대한 향수’를, 크림 튀김 역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각 장마다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는 구성은, 가족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것을 넘어서 오랜 세월 재료 한 개, 1g 하나하나까지 정성을 기울임으로써 식탁이라는 우주를 완성해낸 ‘여성 서사’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 여성들에게 있어 음식과 부엌이란, 어머니 또는 그 이전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시간과 공간으로서의 역사이자 그들의 자아에 오랫동안 뿌리내린 유산이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티타는 식민지 전 시대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요리 비법의 마지막 계승자였기에 그것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막내딸이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부당한 전통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하면서도 쉽사리 헤어 나오기 어려웠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를 하는 순간만큼은 자유롭고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기에, 그녀의 감정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고스란히 공유된다. 이는 마치 음식에 연금술을 부리기라도 한 듯 기묘한 장면으로 연출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알렉스와 조카인 에스페란사의 결혼식 날 있었던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만든 티타의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는 하객들의 오감을 자극하며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한다. 심지어 끓어오르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그들은 황급히 농장을 떠나 여기저기에서 격렬한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이 에로틱한 장면은 독자들로 하여금 요리란 곧,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는 행위이자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오감을 여는 놀라운 체험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즉, 요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통해 여성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창조성을 지닌 주체적인 위치로 재평가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티타는 신바람이 나서 세례식 때 내놓을 몰레를 하루 전 날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페드로는 거실에서 티타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태껏 느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냄비 부딪히는 소리, 질냄비 위에서 노르스름하게 익어 가는 아몬드 냄새, 요리하면서 흥얼거리는 티타의 달콤한 목소리가 페드로의 성적 본능을 자극했던 것이다. 연인들이 사랑하는 이의 은밀한 체취를 가까이에서 느끼면서 애무를 즐길 때 둘만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적으로 아는 것처럼, 페드로는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와 음식 냄새, 특히 노르스름하게 익은 참깨 냄새로 굉장한 요리가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74p
이 뜨거운 탐색전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영원히 바뀌었다. 옷을 뚫는 듯한 강렬한 시선을 나눈 후로는 모든 게 전과 같지 않았다. 티타는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가 되는지, 불 같은 사랑을 겪어 보지 못한 가슴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반죽 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페드로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서도 티타의 가슴을 순수한 소녀의 가슴에서 관능적인 여인의 가슴으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 75p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타말을 준비할 때, 싸우면 타말이 익지 않는다고 했던 나차의 말이 떠올랐다. 타말이 화가 나면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익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타말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익을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줘야 한다고 했다. 티타는 자기가 로사우라와 싸워서 콩들이 화가 난 거라고 미뤄 짐작했다. / 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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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존이 티타에게 성냥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다. 존은 티타에게 산소가 종 모양 유리관 윗부분에 있던 인 가스와 만나는 순간 커다란 불꽃을 일으키는 광경을 보여주며 우리는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나 음식, 음악, 애무, 언어, 소리 같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의 말은 티타로 하여금 우리 안에는 저마다 불씨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관습과 굴레, 억압과 폭력의 차가운 입김에 지배당하지 않고 부단히 내 안에 잠재된 불꽃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
“아주 강렬한 흥분을 느껴서 우리 몸 안에 있던 성냥들이 모두 한꺼번에 타오르면, 강렬한 광채가 일면서 평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 그 이상이 보이게 될 겁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잊어버렸던 길과 연결된 찬란한 터널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거고요. 그곳은 우리가 잃어버린 신성한 근본을 다시 찾으라고 손짓할 겁니다. 영혼은 축 늘어진 육체를 남겨 둔 채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할 테고요…….” / 256p
이렇듯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음식과 성이라는 주제를 문학으로 한 데 엮어냈다는 점에서 상당히 감각적이라는 인상을 남기지만, 몇몇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을 비롯해 여성의 성장 서사가 애매모호하게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페드로를 향한 티타의 사랑에 몰입하기 어려웠던 점도 흠을 남긴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대중성에 기여하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장르의 문학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짧지만 강렬한 고전 작품을 만나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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