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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 유연하고 충실하게, 이소은이 사는 법
이소은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3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0328_11.jpg)
인기와 유명세를 뒤로 하고 자신의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는 이소은의 아름다운 여정!
Get it done.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힘찬 응원이 필요할 때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표지에서 이소은을 발견한 순간 엇, 하고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나와 같은 세대라면 <작별>, <서방님>, <키친> <기적> 등 청아하고 앳된, 독보적인 음색을 지닌 이 가수와 대표곡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봤던 한 TV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녀가 로스쿨에 합격해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들은 바 있다. 당시 자신의 인기와 유명세를 뒤로 하고 느닷없이 변호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상당히 뜻밖이었지만, 마찬가지로 인기와 유명세를 뒤로 하고 새로운 커리어를 향한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는 용기에 참 멋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녀가 쓴 책을 손에 쥔 나는 또 한 번 궁금해졌다. 음악을 사랑하고 무대 위에서 진실했지만 음악 이외의 세상이 궁금했던 소녀가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왔을 때 마주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지금은 또 어떠한 세상을 꿈꾸며 나아가고 있을지 나 역시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이런 일을 또 해보겠어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가수에서 로펌 변호사 그리고 국제상업회의소(ICC)에서 중재 전문가로 활동하며 뉴욕 지부 부의장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개척하고 프로페셔널로 성장하고자 했던 이소은의 분투기를 담은 에세이다. 그녀는 지난 10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술회한다. “나 자신답게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살았고, 그 안에는 매우 복합적인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았다. 자라온 환경과 지난 시간의 결과물로 형성된 ‘나’는 뉴욕에서 이방인이었고, 아시안 여성이라는 그 사회 속 소수인종이 되었고, 더 이상 아티스트가 아니라 변호사로 살았다. 직업, 환경, 나라, 언어, 문화, 모든 것이 달라진 혼돈 속에서 진실한 나다움의 정체성이 더욱 모호해졌다.”
가수 활동 이외에는 일반적인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던 그녀는 미국 문화 뿐 아니라 아티스트가 아닌 직장인으로서의 생활 패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한국에서 누렸던 것들을 내려놓고 익명이 주는 자유와 허전함을 동시에 느끼며 정체성의 혼란과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욕심, 편견, 고집과 집착은 고유한 나로 사는 것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그때마다 비워내는 노력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다움’이란 시간과 환경에 의해 바뀌는 것이며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한 정의를 매일 새로 쓸 수 있는 용기가 인생에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두려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새로운 미래를 디자인해보려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이렇게 주문을 외듯 말했다고 한다. “내가 언제 이런 일을 또 해보겠어.” 내가 서 있는 길 위에서 마주하는 모든 변화를 유연하게 맞이하려는 열린 마음을 위한 주문, “내가 언제 이런 일을 또 해보겠어.” 지금의 내게도 꼭 새겨두고 싶은 말이다.
“Be yourself. Everyone else is already taken. (너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은 이미 존재한다.)”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변호사라고 해서 일부러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를 풍기려고 할 이유도, 센 언니일 이유도, 모노톤의 의상을 입어야 할 이유도 없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직업이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에 나 자신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만의 옷을 입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고 최대의 결과물이 나온다.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강렬한 힘이다. / 23p
하는 일의 성패와 관계없이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것, 자신의 노력과 작은 성과를 인정해주는 것,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이러한 작은 습관부터 기르는 것이다. 결국 나를 돌보는 셀프케어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마음에서 나온다. 너무 쉽게 나를 등한시했던 지난날과 화해하고 이제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기를, 평온한 날들에도 나를 아낄 수 있기를, 여유가 생기면 불안 없이 충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 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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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안에 네가 예전에 썼던 글들 다 담겨 있는데 집에 가져갈래?” 친정에 갔다가 집으로 나서려는데 엄마가 구석에 쌓아놓은 박스 한 상자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박스를 열어보려고 다가가다 나는 이내 돌아섰다. 중학생 때부터 썼던 글을 빠짐없이 모아둔 것이라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열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아니, 보기가 두려웠다. 소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오히려 형식과 내용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그때는 글을 쓰는 게 참 재미있었는데. 그때처럼 글을 쓸 수 없는 지금은 완성은커녕 시작조차 두려워서 아예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말 나는 이대로 다시는 소설을 써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런데 이런 내 마음 속에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말이 쿵, 하고 와 박힌다. “Done is better than good.” 무언가를 완성해내는 것이 잘해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무언가를 시작하고 완성해내는 것이 어려워진다. 어릴 때는 별 생각 없이 하던 도전도 나이가 들면서 심사숙고 끝에 포기하는 일이 잦아진다. 생각만 하다가 결과를 보장할 수 없어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도 흔해졌다. 이소은 그녀 역시 ‘Good’인지 고민하다가 ‘Done’을 놓치곤 한다고. 그럴 때마다 “뭐라도 끝까지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거야”라던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금 자신을 일으켜본다고 한다. “소은아, 너 뒤처지지 않았어. 그리고 뒤처졌다 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그냥 해. Get it done.” 전보다 잃을 것이 많아져서, 완벽해져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오늘도 망설이기만 하고 있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 너무도 필요한 말이 아닐까.
지금껏 살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고착된 생각으로 스스로를 억압하면서 이미 변화하고 있는 나를 리셋하지 못하고 과거에 매달리고 있던 건 아닐까?
(…) 자신을 ‘이러이러한 사람’의 틀에 가둬버리는 것은 성장을 방해하고 오류를 범할 위험성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편견도 그 바탕에는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저들은 이런 스타일의 인간이야’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지 않던가. / 126p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내기’는 내 인생에서 지속된 화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 계속 머물렀다면, 하던 음악을 계속했다면, 한 회사에서 한결같이 일했다면, 직업을 하나로 이어갔다면… 이렇듯 수많은 ‘If(만일 내가 이랬다면)’를 나열하며 고민하고 흔들리는 날들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괜히 인생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사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존재에 대한 묘한 혼란스러움이 있기에 안주하지 않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나만의 독특한 삶을 디자인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은 분명하다. / 141p
그녀의 시간 속에는 늘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었던 엄마에게서 배운 삶의 가르침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과 시간 속에서 숱한 시련을 이겨내며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답답한 조직 생활 속에서도 끝끝내 일이 되게 하자는 목표를 잃지 않았던 순간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 중 소수인종의 동양 여자아이로 정체성 혼란과 콤플렉스가 생길 수 있는 예민한 시기에 들려주신 선생님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다른 애들이 하는 말에 콧방귀도 뀌지 말아라. 네가 무엇을 하든, 어떤 목표를 갖든 아무도 네게 영향을 주게 하지 말아라. 네가 무엇을 하든 그들하고는 상관없는 일이거든. 넌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 그 어떤 누구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라는 말을 해주신 분이 있었기에 그녀는 항상 꿈꿀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언젠가 내 아이에게 힘든 시기가 찾아올 때, 나는 이 말을 꼭 기억했다가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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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그녀는 자신의 슬로건을 이렇게 내세운다. “자리를 차지하고, 목소리를 내!” 여성, 소수인종, 사회적인 약자 할 것 없이 언젠가는 당연하게 모두 동등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되길 기대하면서, 그때까지 내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크게 목소리 내는 연습을 계속하려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여성의 경제권이 1980년대 위치로 뒷걸음질했다는 우울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이자 소수인종으로서 유리 천장을 부수려는 그녀의 행보가 우리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한다. 계속해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큰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울러 나다움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현재의 위치를 깨부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