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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게
늘리혜 지음 / 늘꿈 / 2022년 2월
평점 :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가 아닌, 진짜 내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기를!
우리가 한때 너무나도 간절하게 갈망했던 그 시절, 그 사람, 꿈들을 들추어보게 하는 소설!
제운은 전혀 웃지를 않네요.
시키면 또 잘하기는 하는데, 도통 무슨 생각인지…….
제운아, 넌 무엇을 할 때가 제일 좋아? 응? / 21p
“제운은 무얼 좋아해?”
숱하게 들어왔지만 매번 시원하게 대답을 할 수 없었던 질문. 제운은 줄곧 무심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통 어디에도 관심과 흥미를 갖지 못하는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년시절에 죽은 아빠를 대신해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과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걸맞은 자기 역할은 항시 잊지 않았다. 그래서 남몰래 동화를 쓰고 있다는 것을, 동화처럼 아름답고 순수하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글을 완성하고픈 바람을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도 쉽사리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방과 후 하굣길에서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작고 가벼운 소녀를 목격했다. 그녀는 바람이 불면 정말로 날아오를 것 같은 모습을 하고서 하늘을 온 몸으로 품으려는 듯 두 팔을 내뻗고 있었다. 제운을 발견한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 하늘 어딘가에 나의 진정한 모습이 있을 거야. 그래서 보고 있었어, 하늘.” 그러고 보니 제운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소녀였다. 그의 이름은 하늘이었다.
“난 언제든 어디든 있어. ‘하늘’이고 ‘늘’이니까.” / 40p
학교를 다니다보면 꼭 그런 아이가 하나씩 있다. 사고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 아이. 독특하다는 이유로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경계의 대상이 되는 아이. 하늘이 바로 그런 아이였다. 이를 테면 외계인과 통신을 주고받는다거나 귀신을 볼 수 있다거나 남에게 저주를 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등의 이상한 소문을 달고 다니는 그런 아이 말이다. 사실, 하늘은 ‘하늘’처럼 되고 싶었다. 늘 한결같이 하늘처럼 아름다운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건 부모가 자신에게 준 첫 선물이었으며 그들 사랑의 결실이었으므로. 엄마가 가족을 두고 떠나버리고 아빠마저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이후로 그런 바람은 더욱 간절해졌지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이용하고 왜곡하는 사람들로 인한 상처는 더욱 깊어져갈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제운을 만났다. 자신과 똑같은 꿈을 꾸는 그를, 아무도 믿지 않는 자신의 꿈을 믿어주는 그를.



어쩌면 정말로 많이 좋아질지도 모르는 사람. 어쩌면 벌써 많이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 / 242p
제운은 자신의 좋지 않은 상황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는 하늘과, 주변에서 뭐라고 하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행동하려는 하늘의 강인함에 이끌린다. 반면 하늘은 속으로 울고 있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제운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다정한 목소리와 온기가 좋다. 그래서 되도록 오래, 자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준다. 제운은 책임감으로부터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고, 하늘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쉽게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다 상대방을 향한 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예기치 않은 상황이 그들 앞을 가로 막는다. Ni renkontigos. 다시 만나자던 그 말처럼, 두 사람은 과연 다시 서로를 향할 수 있을까.
이처럼 소설 『하늘에게』는 아이와 성인의 경계선에 선 남녀가 각자가 지닌 상처와 비밀을 공유하면서 점차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자 청춘로맨스소설이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가 아닌, 진짜 내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담은 이야기다. “나의 색은 늘, 너였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삶 전체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는 사람, 상대의 색으로 하여금 나의 색 전체를 물들게 하고픈 사랑. 우리가 한때 너무나도 간절하게 갈망했던 그 시절, 그 사람, 꿈들을 들추어보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다만 여기서는 ‘일곱 색깔 나라와 꿈’으로 표현되는 판타지 세계관이라는 것이 등장하는데, 이를 신비스럽고 몽환적이며 동화적인 이미지로 시종 끌고 가다 보니 다소 모호하고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판타지라는 장르일수록 독자에게 세계관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탓에, 블러셔로 처리된 듯 흐릿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세계관에 대한 구성은 작품 전체에 대한 몰입을 떨어뜨릴 때가 있다. 또 주인공들의 나이가 고3이라는 점은 감안하더라도, 감정선과 그 감정선을 뒷받침해줄 수 있어야 할 에피소드들이 단조로운 점 역시 아쉽다. 하늘이와 제운이의 서사가 좀 더 두텁게 형성되었더라면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오랜만에 순수하고 아련했던 어느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한 책을 만나서 반갑다. 특히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새로운 판타지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작가의 소신 있는 글쓰기를 응원하고 싶다. 당신의 글로 하여금 세상의 여린 틈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