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고도 없이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무레 요코 지음, 이현욱 옮김 / 경향BP / 2022년 2월
평점 :

비록 예고 없이 중년이 되고 말았지만, 이 역시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니까!
중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주는 것들!
내 나이가 벌써 서른아홉이라니. 마흔을 직전에 앞두고 있으려니 새삼 세월의 속도감이라는 것이 이렇게 빠른 것이었나 실감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40대라 하면 나이가 지긋하게 든 중년의 아주머니를 떠올리곤 했는데, 나는 여전히 캡을 쓰고 조거 팬츠에 후드티를 입고 외출하는 캐주얼함이 좋은 걸 보면 마냥 나이만 훌쩍 든 것 같다. 다만, 이제는 20대가 어울릴 만한 색감이나 액세서리보다는 나이가 들어서도 무난하게 입을 수 있는 컬러감이나 모던한 디자인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게다가 건강했던 남편이 느닷없이 응급실에 가게 되고, 나 역시 방광염을 얻어 몇 주째 고생하고 있는 지금, 마음보다 몸이 먼저 나이에 반응하게 되는 경험들이 세월을 무시할 수 없구나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나이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지금의 나이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예고도 없이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는 우리에게 『카모메 식당』으로 잘 알려진 무레 요코의 신작에세이다. 어느 날 문득 중년이 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지금의 나이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오늘의 일상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소소하지만 유쾌하고, 엉뚱하지만 불편한 시선들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한 글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눈썹 정리는 정말 어렵다. 어떻게 하면 자기 얼굴에 어울리는 예쁜 눈썹을 가질 수 있을까? 수십 년이 지나도 눈썹 정리 기술이 늘지 않는 나에게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 15p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예쁜 옷에 화장도 예쁘게 하고 맛있는 요리까지 뚝딱뚝딱 해내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엄마의 나이쯤엔 모든 게 능숙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그때의 엄마보다 나이가 더 들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백종원 레시피를 매번 들여다봐야하고 눈썹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해서 화장끼 없는 얼굴로 외출하기 일쑤다. 얼마 전엔 가스레인지 화구를 착각해서 손등을 태워먹고(?), 세탁기 세제 투입구에 세제를 반대로 넣는 실수를 아직까지 하고 있다. 무레 요코 역시 이렇게 말한다. 50대 중반이 지났는데도 덜렁거리는 성격은 전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펌프식 핸드워시에 손가락이 끼기도 하고, 여전히 자신의 얼굴에 어울리는 예쁜 눈썹을 찾지 못했을뿐더러,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타이밍을 맞추기가 어려워 매번 곤란을 겪는다. 나이가 들어도 능숙해지지 않는 것은 변함없고, 헤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나이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된다.
중년이 되면 누구나 몸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사전에서 ‘중년’을 찾아보니 ‘40대에서 50대 후반까지’라고 되어 있는데 내 연령은 현재 중년의 우두머리로 2년 정도 지나면 ‘노년’의 가장 막내가 될 것이다.
(…) 아무래도 막 중년이 되었을 때와는 다르게 몸의 모든 부분이 한 단계 더 상태가 나빠진 것 같다. 조금 더 몸을 신경 써서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중년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무리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겼다. / 101p
“지금은 휴대전화에서 주소록을 관리하는 사람이 많아서 수첩에 쓸 필요가 없어.”
그 지인도 일정이나 주소록 관리는 전부 휴대전화로 한다고 했다. 알람이나 건강관리 기능도 추가되면서 휴대전화가 굉장히 영리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출해서 급하게 연락해야 할 때는 수첩과 주소록이 필요하다. / 162p



나이가 들었을 때에야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다. 요즘 우리 식의 표현에 따르면 ‘꼰대’, ‘오지랖’이라 할 수 있겠지만, 배려 없는 이기주의와 편리함만 쫓는 세태에 대한 씁쓸한 시선은 여러모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이를 테면, 자연스럽게 진통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정이나 형편에 따라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 아이의 안전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혼자 두는 엄마들, 문제가 생겨도 사과만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편한 시선을 거둘 수 없다. 그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동년배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그 중 가시 없는 생선을 먹은 에피소드가 유독 인상에 남는다. 그녀는 가시 없는 생선을 먹으며 최근 집에서 생선을 먹는 사람이 줄었다는 뉴스를 떠올린다. 비린내가 나고 가시를 발라 먹는 것이 귀찮아서, 아이들이 먹지 않기 때문에 식탁에 올릴 기회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혹여 아이 목에 가시가 걸릴까 생선을 먹이는 데 소극적인 것도 이유이기도 하다. 나 역시 아이 목에 가시라도 걸릴까 하나하나 발라주다가 그마저도 수고로워서 가시 없는 생선을 구매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역시 가시 없는 생선은 어쩐지 맛이 떨어지는 듯해서 아직도 냉동실에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이에 무레 요코는 목에 가시가 걸려서 당황한 적도 있지만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선 먹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가시를 제거하는 것이 귀찮다고 가시 없는 생선만 먹다 보면 생선 먹는 법도 배우지 못하고, 집에서 식사 시간을 통해 부모에게 배우는 것도 적을 것이라고 말이다. 수고를 덜고 리스크를 피하는 게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듯, 부모의 역할도 자녀의 리스크를 줄이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젊은 사람이 얼마만큼 얼굴이 작아지는지 검증해 본 사진도 본 적이 있는데, 몸은 보통인데 머리만 성냥 머리만큼 작아진 걸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는 지우거나 미화해서 이리저리 가공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한때 있는 그대로 어쩌고저쩌고하는 노래가 유행한 적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있는 그대로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175p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나처럼 종이를 귀중품으로 생각하면서 자랐을까? 종이에 대해 어떤 감정이나 애착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까? 나처럼 과자 포장지 같은 아주 작은 종이를 모으거나 뒷면이 하얀 종이를 모아서 계산용지로 사용한 경험이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235p
주인 혼자 운영하던 가게에 장을 보러 갔을 때 부재중이라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5분 정도 후에 주인이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근처에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채소를 배달하러 갔다 왔다고 미안해했다. 대량 판매도 기대하기 어렵고 주인 혼자서 일하는 것도 힘들 텐데 기다리게 했다고 귤을 2개 더 넣어 주기도 했다. 이런 다정한 주인이 하는 가게가 없어진 것은 아주 속상한 일이다. / 238p


스포츠 방송을 보며 절정의 순간이 주는 두근거림이 여전히 좋은 나이, 무리라 하더라도 걸그룹 노래에 맞춰 춤춰보고 싶은 나이, 더 이상 흰머리를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러워지기를 택할 수 있는 나이, 비록 예고 없이 중년이 되고 말았지만 이 역시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다. 무레 요코의 글을 읽고 있으면 중년이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나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만, 오늘보다는 내일이 좀 더 멋진 사람이기를. 그런 바람으로 나의 중년을 맞이하리라 다짐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지원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