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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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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하나하나에 ‘경이’를 담은 놀라운 소설!
지금 당장 주목해야 할 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추천하겠다!
이따금 나는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의 무게를 가늠하느라 머뭇거리곤 한다. 재미삼아 한 거짓말이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오는 이야기, 남의 것을 탐하다 자신이 가진 것마저 잃어버린 이야기가 잠자리에서 베개 삼아 들을 수 있는 동화라는 것쯤은 아이도 알고 있다. 다만, 언젠가는 엄마에게도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 지구 저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자비한 폭격에 관한 이야기, 우리에 가두고 키워진 동물들이 사람들의 먹거리가 되기도 한다는 잔혹한 진실 앞에서 내가 어떤 말을 해주어야 아이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짐작하기 어렵다.
단어 하나하나조차 민감하게 반응하고 흔들리기 쉬운 아이의 눈빛 앞에서, 이 아름답고 견고해 보이는 세상이 실은 얼마나 바스라지기 쉽고 잔인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일이란 늘 무겁고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넓디넓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경이로운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 모든 과오 속에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일러주는 게 나의 몫임을 안다. 아들 로빈에게 전 우주적 감각과 가능성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한 시오처럼,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열어보여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늘 품고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부족하죠. / 18p
싱글대디이자 행성대기예측프로그램을 연구 중인 우주생물학자 시오는 갓 아홉 살이 된 아들 로빈과 오늘도 지구 너머에 존재하는 행성을 탐험한다. 스모키산맥의 숲속에 임시 베이스캠프를 마련한 뒤 망원경을 설치하고, 우리은하 4000억 개의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나란히 누워 행성들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인다. 시오는 행성이 얼마나 많은지, 어째서 문명이 가득해야 할 은하계가 이토록 침묵하는가를 두고 걱정하는 자신의 특별한 아이를 바라보며 고뇌한다. 둘 만의 이 특별한 야영이 끝나고 나면, 누구보다도 상실에 민감하고 욱하는 성격에 제어하기 어려운 아이의 행동을 아스퍼거 또는 강박장애, ADHD 같은 진단명으로 통제하려드는 도시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영을 다녀온 직후 로빈은 학교에서 친구의 얼굴을 보온병으로 때려 다치게 한다. 도로 위에 뛰어든 주머니쥐를 피하다 죽은 엄마의 사고를 두고 제멋대로 말하는 친구에게 분개한 것이다.
의학이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별난 이론을 하나 발전시켰다. 인생은 우리가 멈춰 서서 교정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이론. 내 아들은 내가 헤아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도 없는 주머니 우주였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실험이며, 심지어 우리는 그 실험이 무엇을 시험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아내였다면 그 의사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았으리라. 아내는 이렇게 말하기를 좋아했다.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부족하죠.’ / 18p
로빈은 나를 피해서 현미경 접안렌즈를 들여다보았다. 공책에 필기하는 손이 바빠졌다. 바깥에서 누가 본다면 녀석의 연구가 진짜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2학년 때 로빈의 담임은 비공개 학생 평가에서 ‘느리지만 그렇다고 늘 정확하지는 않다.’ 라고 썼다. 느리다는 점은 맞았고, 정확성에 대한 평가는 틀렸다. 시간만 주어지면 로빈은 담임이 상상도 못할 정도의 정확성을 갖출 수 있었다. / 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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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의 약물치료를 거부해오던 시오는 마침내 아내의 친구였던 신경과학자 마틴 커리어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그로부터 디코디드 뉴로피드백이라는 치료를 로빈에게 받게 한다. AI를 이용해 타인의 감정 지문을 그대로 경험하도록 훈련하는 것으로, 엄마인 얼리사의 생전 두뇌 활동 패턴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로빈은 눈에 띄게 안정적으로 변해간다. 그러는 과정에서 로빈은 동물권활동가였던 얼리사의 영향을 받아 멸종된 생명체들을 그리는 데 몰두한다. 파머스 마켓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아 생긴 수익금으로 동물단체에 기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의사당 앞에서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하기 위해 1인 시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려던 시오와 지구 생명체의 위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로빈의 노력은 번번이 사회와 부딪친다. 진전을 보였던 치료 역시 연구비 지원이 중단되면서 멈추게 된다. 무엇보다 자신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세상과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의 냉정한 시선을 과연 이 연약하고 섬세한 아이가 이겨낼 수 있을까.
‘엄마가 하던 말 기억해? “넌 얼마나 부자니, 꼬마야?”’
“기억하지.”
로빈은 두 손을 들어 올려 달빛이 비치는 산을 증거로 가리켰다. 바람에 구부러진 나무들. 가까운 강에서 나는 요란한 물소리. 특이한 대기 속에서 원자의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전자들. 어둠 속에서 로빈의 얼굴은 정확한 말을 찾아 고심하고 있었다. ‘이만큼 부자야. 이렇게 부자야.’ / 51p
존재하는 많은 것들은 셋 중 하나의 특질을 나타낸다. 0, 1, 또는 무한이다. ‘단 하나’는 이야기의 모든 단계에, 모든 곳에 있었다. 우리는 예전에 한 세계에서, 한 가지 액체 매질 속에서, 한 가지 에너지 저장 형태와 한 가지 유전 암호를 써서 생겨난 한 종류의 생명만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세계들이 지구 같은 필요는 없었다. 나의 세계에서 태어난 생명은 지표수나 골디락스 존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탄소를 핵심 요소로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어린아이가 그렇듯 나는 편견에서 아무것도 추정하지 않으려 했다. 마치 하나뿐인 우리의 예가 오히려 가능성에 끝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 100p
‘나한테 벌점도 줬어. 학교에서 물건을 파는 건 규칙에 어긋난다며, 그 정도는 안내서를 보고 알았어야 한대. 그래서 케일라에게 우리가 선생님 나이가 되면 지구상의 대형 동물 절반이 없어질 걸 아느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지금은 생물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시간이고 말대꾸하지 말라면서 또 벌점을 줬어.’
나는 차를 몰았다.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인간은 지긋지긋했다. 우리는 집 앞에 차를 댔다. 아들이 내 팔에 손을 얹었다.
‘우린 뭔가 잘못된 데가 있어, 아빠.’ / 1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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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행성에서 살고 싶었던 로빈. ‘이따금 내 아이가 사는 행성은 어디일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던 시오의 글처럼, 로빈은 그 자체로 소우주였다. 끊임없이 다른 행성에서 들려올지 모를 생명의 신호를 기다리며 이 땅의 생명들을 있는 그대로 품고 싶었던 아이를, 아이의 우주를 파괴한 건 누구였을까. 무모하고 폭력적이며 신과 같은 자각, 많고도 많은 자각, 급격하게 폭발하다 기계의 도움을 받고 수십억으로 불어난 자각, 오래 지속하기에는 너무나 불안정한 이 힘을 과신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아니었을까. 때문에 힘없이 엄마의 기도문을 외우던 로빈의 음성이 내내 가슴 한 구석을 묵직하게 짓누른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서 해방되기를.’
하지만 어차피 지구상의 모든 것이 그 아이를 바꾸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친구가 던진 공격적인 말 한 마디, 가상의 농장에서 하는 클릭질 한 번, 로빈이 그리는 모든 생물종, 모든 온라인 비디오 클립, 밤에 로빈이 읽는 모든 이야기와 내가 들려 주는 모든 이야기가 로빈을 바꿨다. 이런 자아들의 행렬 속에 영원히 ‘그대로’ 남을 단 한 명의 순례자 ‘로빈’은 없었다. 시공간을 행진하는 만화경 같은 자아들의 행렬 자체가 로빈의 현재 진행형이었다. / 162p
‘그럼 차세대는 어떻게 할 거래?’
전 세계 천문학자들과 열 살짜리들의 잠을 망쳐 놓을 게 확실한 질문이었다. 허블의 5만 배는 멀리 보려고 120억 달러를 들인 장비가, 열여덟 개의 육각 거울을 만분의 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배열해서 우주의 저편을 보려고 했던 장비가 버려져서 조각조각 뜯겨 나가다니…… 역사상 가장 비싼 난파선이리라.
‘아빠, 모든 게 뒷걸음질 쳐.’
(…) ‘저 바깥에 있는 모든 문명들 말이야. 다들 왜 우리의 소식을 전혀 못 듣는지 궁금해할 거야.’ / 371p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닥친 위기로부터 무관심한 사람들, 장애진단을 받거나 적응이 느린 아이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문제, 우주 탐사 및 과학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시선들 등 전 인류가 공감하고 고민해야 할 주제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한 작가의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문장 하나하나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소설에 뭐라 더 좋은 말을 쓸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주목해야 할 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추천하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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