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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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여성들의 자서전이 된 소설!

이름 없는 화자에게 나의 이름을 덧입히느라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몸살을 앓을 것만 같았다!

 

 

 

 

진정으로 나 자신이 되려는 욕망은 죽여야 한다그것 아니면 고독. / 126p

 

 

 

  2022년 노벨문학상에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가 선정되었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는 평과 더불어 소설적 장치들을 포기하고 오로지 경험한 것만을 글로 쓴다는 그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관이 사뭇 궁금해졌다빈 옷장한 여자단순한 열정』 등 작가를 대표하는 다수의 작품들 중에 얼어붙은 여자를 택한 건 얼어붙은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함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혹여 그것이 독립적인 삶을 살기를 희망했던 한 여성이 사회가 정해놓은 성 역할에 따라 고립되고경직되어버린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이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놀랍게도 이 책을 집필하면서 작가는 남편과 헤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실제로 소설 출간 몇 해 후 이혼을 했다고 한다그만큼 전통이란 이름으로 사회가 정해놓은 성 역할 안에서 이내 얼어붙고만 한 여성의 이야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리얼하다결혼과 육아사회와 교육이 만들어낸 여성과 남성의 비합리적인 차이를 이토록 치열하게 다룬 작품이 또 있을까책에서 묘사된 얼어붙은 여자의 이야기는 그러한 이유로 세상 모든 여성들의 자서전이 된다.

 

 

 

수백 년 전의 그녀들이 그러했고수십 년 전의 그녀들이 그러했듯

 

 

 

  작중 화자는 남성과 여성에게 정해진 역할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능력에 따라 일상을 공유했던 부모의 영향 아래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그녀의 아버지는 매일 집에서 커피와 식사를 준비하고설거지하고요리하고채소 손질을 한다스웨터 소매가 팔 위로 말려 올라가지 않게 그녀에게 손으로 소맷자락을 붙들고 코트 입는 법을 가르쳐준 것 역시 아버지다반면 작은 상점 겸 카페를 운영하며 장사하는 걸 더 좋아하는 어머니는 여자아이가 자신이 쓸모 있다고 여기는 기쁨사랑받기 위해서는 자기 방을 잘 정리하고 얌전하게’ 식탁을 치워주는 걸로 충분하다는 생각 따윈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별나고 우스꽝스러운 커플이란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들의 세계 속에서 화자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소녀로 자라난다.

 

 

 

  그렇게 넌 너만 생각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부모에게서 자란 화자지만가정이라는 작은 사회를 벗어나면서 성별에 따른 역할과 남녀 간의 차이로 가득한 세상의 논리에 시시때때로

상처받는다여성의 헌신과 희생을 자극하는 말몸은 불결한 것이고 재능은 죄악이라는 것내가 식료품점 주인의 딸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과 어린애를 애지중지하고 유아차를 미는 그 이상의 운명은 없으리라는 미래에 관한 말들내 에너지의 일부를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써야 하고그러지 않으면 어느 남자아이의 마음에도 들지 못할 것이며 사랑받지 못하며 사는 인생은 살 가치도 없다는 인식들. “너는 결혼 안 하고 늙을 작정이냐!”는 은밀한 압력 아래 나는 그저 혼자 사는 여자가 아니라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불확실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연속된 깨달음이렇듯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여성의 삶에 매겨진 공식에 가까운 관습들은 성장하는 내내 그녀의 발목을 붙든다.

 

 

 

무엇이 어머니를 전시회며 중세의 시가지로느긋하게밖으로 나가게 하는 걸까왜 어머니는 가난하고 불구인 사람들을 방문하는 자원 봉사 노릇을 할까여자로서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 조용히 머무르기만 하면 안 되는 걸까내게 던지는 질문이라도 되는 듯나는 어머니가 완벽했다고 결론내렸다세상이란 거기에 뛰어들고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그 무엇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 42p

 

 

그중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도대체 저게 커서 뭐가 될까라고 한다경멸하는 어투위협나는 남자들의 대화를 엿들어본 적이 많아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한다하지만 뭐라고 응수해야 할지 모른다남자애들처럼 싸우기 좋아하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과그들 말처럼 잡년이 되는 것 사이에 어떤 확실한 관계가 있는지 그때까지 몰랐다상처받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최악은그걸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그에게 덤벼들어 때려주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 52p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몸에 도달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어느 남자아이의 마음에도 들지 못할 것이고절대 사랑받지 못할 것이고 인생을 살 가치도 없어질 것이다마음에 든다는 것과 사랑이라는 인수는 존재의 목적과 같다는 아름다움의 방정식이 성립하고그 방정식은 아주 쉽게그리고 ax² + bx + c = 0 라는 방정식보다 더 교묘하게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그 공식은 곳곳에 쓰여 있다. / 88p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봐야 진짜 여자가 되고 어른이 된다는 것결혼은 곧 완성을 뜻하는 또 다른 말임을 우리는 부단히 들어왔고 또 그렇게 믿으며 살아간다결국 화자는 결혼 이후의 불확실한 삶출산에의 공포까지 짓눌러버리는 저 당연해 보이는 말과 아름답고 지적인 커플의 결합이라는 감동적인 이미지를 받아들이며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는 남성과 여성에게 규정된 확고하고도 분명한 역할론 안에서 질식할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다른 여자들보다 미숙한 데다 식사 때 남이 차려놓은 음식을 편하게 먹으면 되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게으름뱅이며달걀도 깔끔하게 깨지 못하는 쓸모없는 지식인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아직 말 못 하는 아이와 남겨진 빈방들의 고독내 삶의 모든 자유는 아이의 오후 수면 상태에 달려 있으며 모든 것이 세 살 이전에 결정된다는 정신분석학의 저주에 따르는 완벽한 양육에의 강박까지그러면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그럼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너희가 좋아서 아이를 낳은 거잖아.

 

 

 

정오와 저녁에 나는 냄비 앞에 혼자가 된다나는 그보다 더 요리를 잘하지 못했다그저 빵가루 묻힌 송아지고기 커틀릿초콜릿 무스나 할 줄 알았지특별한 것은 할 줄 몰랐다그나 나나어머니 치마폭에서 요리를 도운 과거가 없었다왜 둘 중에서 나만 이것저것 해봐야 하나닭은 얼마나 오랫동안 삶아야 하는지오이의 씨는 제거해야 하는지그런 걸 알아보려고 왜 나만 요리책을 탐독해야 하고그가 헌법을 공부하는 동안 당근 껍질을 벗기고저녁을 먹은 대가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가어떤 우월성을 명목으로 이런 일이 가능한가? / 181p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먹을 것과 똥거기에 세균과 아이 기분을 맞추기에 대한 강박관념물론하찮은 집안일을많은 사랑이 필요한 훌륭한 일 등으로 찬양하고똥을 미화해야 한다방울져 떨어진 우유의 흔적들더러워진 기저귀 속에서 시를 찾아야 한다. / 198p

 

 

심지어 여기에 더해완벽한 여자가 되려는 충동 속으로 빠져들었다살림아이 그리고 프랑스어 수업 세 개를 모두 홀로 감당하고가정의 수호자이자 지식의 분배자단순히 지적일뿐만 아니라간단히 말해서 조화를 이루는 슈퍼우먼결국 이 모든 것을 절충하고 긍지를 느끼는 여자가 되려는 충동. / 238p

 

 

 




 

 

 

 

  놀랍도록 섬세하고 신랄한 묘사들은 문득 잊고 지냈거나 애써 모른척하고 있었던 불편한 감정들을 들춰내 나를 섬뜩하게 만들었다또한 이름 없는 화자에게 나의 이름을 덧입히느라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몸살을 앓을 것 같기도 했다때문에 이 책이 출간된 지 40년이 흘렀지만책 속의 묘사된 남녀의 본질적인 부분들은 의외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낀다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인식은 점점 해소되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타고난 성의 역할과 그 안에 내재된 모순 속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까닭이다그래서 아니 에르노가 묘사한 화자와 여성으로서의 삶은 우리 시대와도 깊은 공감을 이룬다무엇보다 아니 에르노는 처절했고치열했던 자기 역사의 글쓰기가 어떻게 문학이라는 장르로 탄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가란 생각이 든다덕분에 앞으로의 나의 글쓰기 역시 나는 나에게 얼마나 진실한가를 물어보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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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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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는 서술자가문학이 이 불완전한 시대 속에서 무엇을 품어야 하는지를 열정적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작가다!

내가 왜 문학을 사랑하는지를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이 모두 설명해준다!

 

 

 

 

  “좋은 소설이란 그 외피가 스릴러이든 로맨스이든 상관없이 세상을 향해 지혜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작가란 자신의 신념을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태로 이야기 속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올가 토카르추크는 그런 점에 있어 탁월한 서술가임에 틀림없다태고의 시간낮의 집밤의 집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로 이어지는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세상과 문학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자로서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자처해왔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그도 그럴 것이 범우주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존재론적 숙명과 실존적 고독인간과 동물 혹은 생태 전체에 관한 모럴리티소외되고 연약하고 힘없는 존재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 했던 일련의 시도들을 통해 그녀는 서술자가문학이 이 불완전한 시대 속에서 무엇을 품어야 하는지를 상당히 열정적으로 보여준다그리고 자신의 첫 에세이 다정한 서술자를 통해 그것을 다정함이라 명명한다이는 문학이야말로 물공기 다음으로 세상을 이어주는 다섯 번째 원소이며 세계를 구할 다정한 네트워크여야 한다는 문학의 소명에 관한 선언이다또한 우리가 왜 문학을 읽어야하는가에 대한 아름다운 찬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책을 읽기 위해서다

 

 

  여기세상의 경계에 선 한 방랑자가 있다프랑스 천문학자 카미유 플라마리옹의 책에 실린 목각화에는 지구의 영역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조화로운 우주의 질서를 바라보는 방랑자의 모습이 새겨져있다이 목각화는 한없이 복잡한 우주 차원을 향한 탐구가시적인 한계 너머를 향한 경탄과 환희상상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한편으로세상의 끝에 다다른 방랑자는 이 오랜 여정이 끝났음을 예감하고야만다거대한 세계를 향한 무한한 상상은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되어버린 자에게 더 이상 관심과 열정을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 올가 토카르추크는 지금의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세상은 오히려 작아졌다고 말한다네트워크의 연결과 보편화된 원격 감시 체계로 인한 세계의 축소 및 유한성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파놉티콘에 가두었다그중에서도 우리 인간이 세상을 통제하고 있으며 창조의 주인이라는 인식은 이 세상의 놀라운 복합성을 이해하려던 시도를 완전히 멈추게 했다.

 

 

 

  이에 올가 토카르추크는 문학(이야기)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원소라고 강조한다상호 간의 영향과 연결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에너지가 문학만큼 강렬한 장르는 없기 때문이다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직조하며무한한 다채로움과 복잡성을 이해하게 해주고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하나의 존재로부터 또 다른 존재로 전달하게 만드는 문학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방랑자의 감각으로 살 수 있다또한 문학으로 하여금 중심적 관점을 과감히 포기하는 탈중심주의익숙한 사고방식이나 뻔한 행동반경을 벗어나려는 경향고질적인 의식이나 사고방식안정적인 세계관에 부합하는 공동체적 관습으로부터의 탈피를 꿈꾸는 카이로스적 사고를 지향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세계는 다시 드넓어질 수 있다이것이 우리 모두가 책을 읽어야하고서술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가능한 한 폭넓게 이해된다는 점에서 문학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와 유사하다네트워크 덕분에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 사이에 광범위한 교감과 연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문학은 정교하고 특별한 인간의 소통 수단이며그 수단은 명확하면서 동시에 총체적이다. / 39p

 

 

새로운 용어로 가득 찬 도서관을 만들어 보자중심부에서는 결코 들어 본 적 없는 기발하고 괴상한 콘텐츠로 그 공간을 채워 보자결국 언젠가는 단어나 용어관용구나 숙어의 부족 현상이 발생할 테니 말이다누가 알겠는가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기록하고 묘사할 새로운 장르나 스타일이 필요하게 될지그때가 되면 새로운 지도는 물론이고 기존의 사전이나 백과사전의 지평을 넘어서는 세계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영역을 뛰어넘기를 주저하지 않는 방랑자들 특유의 용기와 유머가 우리에게 절실해질 것이다그 세상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보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 43p

 

 

 




 

 

 

 

  올림포스의 신들 중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날개 달린 신을 신고 두 마리 뱀이 감겨 있는 독수리 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신하면 생각나는 이가 있을 것이다바로 전령의 신이자 여행의 신상업의 신도둑의 신인 헤르메스다지상에서부터 지하까지 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지하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는 오직 그 뿐이다그는 소통의 행위가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난다올가 토카르추크는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이곳저곳에 퍼뜨렸던 이 신의 본질에게서, 언어를 통해 그리고 언어를 초월하여 사람들과 소통하고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인간의 경험을 전파하는 번역가들의 위대함을 들여다본다.

 

 

 

  유기체인 우리 인간에게 있어 번역가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번역가의 중재와 개입 덕분에 우리는 16세기의 작품을다른 세상의 언어를 현실의 감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번역가는 점점 노쇠해 가던 언어가 사장되지 않도록 그 언어가 다시 젊어지고오래된 씨앗에서 새로운 싹이 움트게 된다그런 의미에서 번역을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또는 하나의 문화를 다른 문화로 옮기는 작업일 뿐 아니라 일종의 원예 기술에 비유한 작가의 말이야말로 매우 절묘하다하나의 식물에서 가지를 잘라 내어 다른 식물에 접목한 뒤 새싹을 움트게 하고생장 에너지를 모아 본격적인 가지들로 뻗어 나가게 만드는 작업을 부단히 해왔던 번역가들덕분에 나는 늘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지금 이 순간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누군가가 분명 있을 거라고나는 지금 그런 기적을 누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읽는’ 행위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지구 방방곡곡에 흩어진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헌은 각기 다른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가 발굴된 것이다이처럼 하나의 텍스트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연구되면서 같은 이야기의 여러 버전을 제공하는 언어학적 다성 음악이 만들어졌고그렇게 다른 하늘 아래에서 다른 방언으로다른 속도로 이야기들은 재생과 부활을 거듭했다위대한 헤르메스 또한 이런 식으로 활약하며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전 세계를 퍼뜨렸다. / 99p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잃고 집단의 언어가 사적인 언어를 모조리 집어삼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질병은 없다관료정치인학자성직자 들이 바로 이러한 질병을 앓고 있다이럴 때 유일한 치료법이 문학이다창작자의 언어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행위는 우리에게 일종의 백신과 같다즉흥적으로 만들어져서 일종의 도구처럼 남용되는 오늘날의 일그러진 세계관에 저항하는 백신고전을 포함해 문학 작품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강력한 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문학은 집단의 언어가 한때 지금과는 다르게 기능했고 과거의 세계관이 현재와는 확연히 달랐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그러므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 105p

 

 

어떤 인물의 가장 미묘하고 복잡하고 세밀한 경험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또 다른 누군가의 앞에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게다가 그 모든 게 실존 인물의 삶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기적이라는 것이다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나는 독서의 기적에 대해 지금껏 어떤 심리학자도 완벽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그것은 지구 방방곡곡에서 매 순간 발생하는 보편적인 기적이다. / 109p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역사를 써나가는 개별적인 서술자들이다때문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문학의 가치와 독서 방법문학적 인물이 탄생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은 우리가 세상과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어내는 서술자로서 자신의 영토를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그 중에서 작가가 반드시 장려되고 소중히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기벽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의식적으로 지녀야 할 감각인 듯하다기벽은 지금껏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각에 대한 의식적인 탐색이다자신만의 참신함과 새로움으로 무장한 채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것과 간과된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기벽은 서술자들이 간직해야 할 창의적인 마음가짐의 핵심이자 정수다주류의 안전함을 따르지 않고세속적인 우리 삶의 틈바구니 어딘가에 흩어져 있던 은유와 비유를 상상에 의해 끊임없이 소환할 수 있는 삶그러한 영토 속에서 우리는 진정 생동하는 서술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괴팍하고 기이한 성향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좋은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그래서 기벽은 장려되고 소중히 다뤄져야 합니다중심에서 멀어지려는 이 원심적 경향만이 기존의 사회적 지평 너머에서 존재하고 벌어지는 일들을 포착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중심 또는 주류에 머무르려는 성향은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편리하고 안전한 선택이긴 하지만 창의성의 측면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기에 현재 또는 미래의 작가들은 그 주류의 흐름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자신을 제어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지적 주류만큼 창작자에게 위험한 것은 없으니까요. / 259p

 

 

메탁시의 영토즉 중간 지대란 예술이 자원을 흡수하여 비축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영역입니다이곳에서 이미지가 생성되고은유과 상징이 탄생하며이를 통해 우리 내부가 외부와 접촉할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메탁시의 영토는 세상의 다차원적 복잡성을 투영함으로써 모든 것을 단순화하려는 인간의 사고로부터 세상을 보호합니다. / 328p

 

 

 




 

 

 

 

  무엇보다 다정함이야말로 이 세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고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더불어 협력하고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힘이다다정함이라는 이 놀라운 도구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 방식 덕분에 우리의 다양한 체험들이 시간을 여행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게까지 다다르게 된다어릴 적올가 토카르추크는 엄마의 사진을 보며 표정이 슬퍼보였던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엄마는 그녀에게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그리워하느라 슬픈 거라고’ 말했다내가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날 그리워할 수 있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엄마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순서가 바뀔 수도 있어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그 사람이 거기 존재하게 되는 거란다.” 세상과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어내는 서술자를 탄생시킬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평범한 물질적 속성이나 인과 관계확률의 법칙을 초월하여 세상의 더 많은 존재들을 껴안을 수 있는 다정한 서술자가 보다 많아지기를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본다.

 

 

 

  『다정한 서술자를 읽으면서 내가 왜 문학을 사랑하는지를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가깝게 느꼈다읽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고한 문장 한 문장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꾹꾹 눌러 남느라 다소 읽는 데 시간이 걸렸다이 책을 읽기 전에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 중 한 권을 꼭 먼저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그런 뒤에 이 책을 읽으면 그녀의 언어와 문장에서 더 큰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나는 앞으로 쭉 그녀의 작품을 쫓아다니며 읽게 될 것 같다그녀가 보여주는 세상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독자로 내내 머무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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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 : 쩌미문 1 - 타임슬립 판타지 드라마툰 다시 만난 세계 : 쩌미문 1
샌드박스스토리 키즈 편집부 지음 / 샌드박스스토리 키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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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미래의 가 과거의 를 응원하는 유쾌 발랄아름다운 성장 이야기!

 

 

 

 

 ‘연보라색 리본 머리’ 하면 생각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민쩌미어떤 캐릭터든 척척 소화해내며 1인 다역극으로 일상의 재미난 에피소드를 선보이는 그녀의 유튜브 채널은 이미 30만 명의 구독자를 넘어서 날로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마침 10월 중순에 대구에서도 민쩌미사랑해요 엄마!’의 뮤지컬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 걸 보니다방면에서 활약하는 그녀의 행보가 점점 기대된다그런 와중에 투니버스 화제의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쩌미문까지 책으로 출간되었으니반가운 마음에 아들과 얼른 읽어보았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민쩌미가 드라마 주인공으로!

타임슬립 판타지 드라마를 만화 형식의 드라마툰으로 만나다!

 

 

  『다시 만난 세계:쩌미문』 1권은 드라마를 만화 형식의 드라마툰으로 제작한 영상집이다이야기는 2034년을 빛낸 크리에이터 1위의 민쩌미가 여느 때처럼 바쁜 활동을 이어가던 어느 날침대 밑에서 달빛 키링을 발견된 뒤 알 수 없는 세계로 소환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그곳은 바로 쩌미문쩌미문은 달에 만들어진시간 이동이 가능한 정류장으로 그곳에서 민쩌미는 토끼 역장을 만나게 된다토끼 역장이 그녀에게 건넨 일기장에 따라 주문을 외운 민쩌미그러자 뜻밖에도 2022년으로 소환된 그녀는 거기에서 초등학생 시절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한편하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은 초등학생 박민정(민쩌미)은 꿈에 그리던 모래초등학교에 전학을 간다그런데 첫날 등교하자마자 12년 후의 자신이라고 말하는 민쩌미가 느닷없이 자신을 쫓아오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고전교생이 모두 보고 있는 방송을 망쳐버린다그것도 자신이 꼭 들어가고 싶었던 방송부 친구들에게 제대로 찍힌 민정은 속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고안타까운 마음에 민쩌미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같이 머리를 맞대기 시작하는데…….

 

 

 




 

 

 

 

쩌미문이여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달빛 키링을 만지면 열리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마법 세계!

 

 

 

  이처럼 다시 만난 세계:쩌미문』 1권에서는 새로 전학을 간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원하는 방송부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민정이와 이를 도와주는 민쩌미의 활약을 담고 있다모래초 방송부의 아나운서이자 10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SNS 인플루언서인 유제인모래초 축구부 주장 한연우방송부 프로듀서이자 모래초 왕자님이라고 불릴 만큼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말하지 못할 비밀을 감추고 있는 유선호유일하게 선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속 깊은 다정남 이찬영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극의 재미를 더한다.

 

 

 





 

 

 

 

  특히 초등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와 친구들의 성장기를 담고 있는 스토리는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여기에 쩌미문 식구들의 오순도순 재미있는 촬영 뒷이야기와 다양한 독후활동도 수록되어 있으니아이들도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상상력을 담아내볼 수 있다.

 

 

 

  엄마인 나도 한 편의 성장드라마를 보듯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었다타임슬립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미래의 가 과거의 를 도와주며 성장을 응원하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나라면 어느 시절의 로 여행을 떠나볼까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과연 민쩌미는 민정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현재의 로 돌아갈 수 있을까? 2권의 내용도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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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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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침묵하는 자에게는 그 무엇도 보여주지 않는다!

장르를 훌쩍 뛰어넘어선날카롭고 시린 문제적 미스터리!

 

 

 

 

  늦은 밤변호사인 판옌중은 친구인 추궈성으로부터 도와달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비밀에 부쳐달라는 당부와 함께조만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친구에겐 아들이 하나 있는데만 열여섯 살이 된 소녀와 성관계를 가져 상당히 곤란해졌다는 소식이었다판옌중은 소녀의 엄마가 딸과 관계를 가진 일명 의붓오빠들을 찾아다니며 합의금을 타가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걸 금세 알게 되었지만친구인 추궈성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거금으로 합의를 끌어낸다하지만 서로 합의 하에 이루어진 관계이며 오히려 합의금으로 무마한 것이 억울하다는 식으로 나오는 친구의 아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던 그 시각어찌된 일인지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심지어 딸 아이를 데리고 평소 아내가 일하는 학원으로 찾아갔더니 휴가를 냈다는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병원에 가야 한다며 매달 꼭 하루는 휴가를 냈다는 학원 동료 선생님의 말은 그를 당혹스럽게 한다게다가 돌아가셨다던 아내의 어머니가 얼마 전학원을 찾아오기까지 했다니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아내가 뭔가를 숨기는 게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는 변호사인 판옌중이 실종된 아내인 우신핑의 행적을 쫓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판옌중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아내의 어머니가 버젓이 살아 있는 데다 실종된 날아내가 어머니의 집에 들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판옌중으로서는 아내가 자신을 속인 것만으로도 황당할 지경인데아내의 어머니는 우신핑이 예전에 저지른 일’, ‘여러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한이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말을 퍼부어대며 내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게다가 인근에 사는 아내의 동창생을 찾아갔다가 아내를 향한 깊은 적의를 느끼기도 한다. ‘나는 왜 신핑이 한 말을 의심해보지 않았을까왜 아내의 과거를 더 깊이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판옌중은 아내를 알고 있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면서 이제껏 자신이 알고 있던 아내가 맞는지그녀 안에 두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닌지 깊은 의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비밀이란 그런 것이다비밀의 존재를 숨기고 없는 척할수록 그 비밀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어디를 가도 그 비밀이 따라온다시간이 쌓이면서 그 비밀을 지키고 싶기도 하고 없애버리고 싶기도 한 두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며 우리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 111p

 

 

사람이 평생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는 대상은 배우자일 거라고 생각했다많은 이들이 결혼을 울타리에 비유한다그 울타리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특수한 외형과 생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거짓말은 결혼 생활에서 윤활제이지 걸림돌이 아니다. / 133p

 

 

판옌중은 철학적인 문제를 떠올렸다숲속에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을 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나무는 쓰러질 때 소리를 낸 것이 맞을까오늘 만난 이 사람들이 없다면 우신핑의 또 다른 일면이 존재하는 것일까혹은 이들에게는 판옌중이야말로 우신핑의 또 다른 일면일까? / 140p

 

 

 



 

 

 

 

  한편아내가 실종된 날 만나기로 약속했다던 한 여인이 판옌중의 앞에 나타난다오드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아내와 한때 한 집에서 살았을 만큼 상당히 가까운 친구 사이인데다 그들의 결혼 생활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그녀는 아내가 실종되었다면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느냐며 도리어 그를 의심한다그도 그럴 것이 판옌중이 우신핑과 재혼하기 전의 아내를 때린 과거가 있는 데다실종되기 전에 두 사람이 싸웠다는 사실을 오드리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고 보면 독자로서는 상당히 혼란스러워진다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판옌중에게 사실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한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나 나쁜 짓을 저지른 우신핑이 자신의 비밀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여러 의심이 혼전에 혼전을 거듭하는 까닭이다그런데 이야기는 또 다른 곳에서 뜻밖의 국면을 맞이한다우신핑의 동창에게서 우신핑이 과거에 친구의 오빠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 것이다그 과정 속에서 판옌중은 그녀의 과거 사람들로부터 강간 같은 사건에서는 왜 여자 쪽의 말만 듣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었거나 당시 모든 여학생들이 흠모하던 청년의 신세를 망친” 것으로 매도되고 있었던 아내의 옛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그녀는 피해자가 아닌가어째서 사람들은 그녀를 더 비난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가운데판옌중은 추궈성의 아들이 겪은 일과 우신핑의 과거라는 이 유사한 관계 속에서 아내가 정말 피해자가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다어쩌면 아내가 자신에게도 의도적으로 접근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한편으로는 자신의 친딸이 아님에도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던 아내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이 충돌하는 것을 느낀다대체 우신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그녀를 믿지 말라는 사람들의 경고는 정말 사실일까?

 

 

 

전샹은 여태 그런 식으로 이성과 접촉한 경험이 없었어근데 갑자기 어떤 여자애가 나타나서 애교를 부리며 매달리면그런 상황에서 그 여자애가 좋은 친구인지 나쁜 친구인지 어떻게 구분하겠어…….”

판옌중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묵묵히 있었다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특성이 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 165p

 

 

그러면서 이렇게 당부하셨죠우리 딸을 망치지 말아주세요신핑이 멍청하게도 선생님께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주변에 알려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자기도 알게 될 겁니다그래도 저는 어떻게든 부모님을 설득해보려고 했는데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또 제 손을 잡고 말하더군요롄 선생님지금 선생님이 하시는 행동이 신핑을 해치는 일이에요여자애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순결인데순결을 잃었으면 전부 다 잃은 거잖아요걔 때문에 우리 가족 전부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그러면서 이 일을 모른 척해달라고 하더군요.” / 295p

 

 

그때까지 판옌중은 자신이 성폭행이라는 개념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한 사람의 의사에 반해 성교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떨리는 손으로 서명한 글씨를 보고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소녀는 그로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 혹은 또 다른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 소녀가 앞으로 보게 될 세상은 어떤 색깔일까? / 303p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가던 한 여성의 비밀 속에 드러나는 추악한 사회적 본성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 더 집요해지는 폭력성을 묵직하게 표현해낸 미스터리 소설이다성장기의 트라우마가스라이팅가정 폭력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현실감 있게 구현하면서도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아우를 줄 아는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특히 중후반부에 이르러 이제껏 내가 읽었던 모든 것들의 판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적인 반전이 가히 압권이다.

 

 

 

  그러면서도 가해자와 피해자 가르기에 몰두하며 습관적으로 비난할 대상을 찾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상당히 치밀하게 그려내고벼랑 끝에 내몰린 자들의 숨은 목소리를 전면에 드러내려했던 진지한 시도는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훌쩍 넘어서는 느낌이다때문에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작품이다혹자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하지만 부조리한 것들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힘은 아주 의외의 것에서 얻어지기도 하는 법이다나는 미스터리야말로 굉장히 기이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모순된 것들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 우샤오러 같은 미스터리 작가를 만난 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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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인문학 수업 -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한, 개정판
김종원 지음 / 청림Life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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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인문학적 소양이 아이의 잠재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반드시 새겨두어야 할 귀중한 메시지들!

 

 

 

 

  프랑스의 한 일간지 르 피가로에 매우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실린 적이 있다학생들의 학업 성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한 실험이었는데뜻밖에도 부모의 자세와 기초 소양이었다고 한다다시 말해 공부에 투자한 시간도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가도아이큐도 아닌 바로 부모의 인문학적 소양이 아이의 학업 성적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자녀 교육에 있어 부모에게만 너무 과도한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닌가?’ 자녀의 모든 학업 습관이나 생활 태도정서 등의 문제를 부모의 잘못으로만 매도하는 게 버거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만큼 아이에게 온전히 영향을 미치는 존재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때문에 두 아이의 부모인 나는 오늘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걱정하지 말고아이들이 항상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걱정하라던 로버트 풀검의 말처럼 나를 한 번 더 다독이고 더 분발하는 부모가 되고자 노력한다자녀교육서를 꾸준히 찾아 읽는 이유도 부모로서 나의 태도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수정하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어떤 의미에서 보면 앞선 실험 결과가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부모가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려고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아이도 부모를 통해 보다 긍정적인 성장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책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한 부모 인문학 수업』 역시 그런 기대에서 읽게 된 책이다.

 

 

 

아이는 부모가 상상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도 공부가 필요합니다.”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한 부모 인문학 수업은 철학고전예술 등 인문학을 대하는 부모의 자세와 질문들이 아이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책이다부모의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아이의 잠재력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돕는 책이기도 하다아울러 톨스토이괴테니체정약용이익 등 이른바 인문학의 대가들이 전해주는 가르침으로 하여금 부모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삶의 철학을 세우게 하고아이에게는 지혜로운 인격체로 성장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복수다.”

일상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결국 나와 내 아이가 보낸 하루의 합으로 완성된다하루를 시작할 때마다 필요와 욕심을 구분하고원칙을 분명히 해서 최적화된 일상을 만들고타인보다 나를 비판하는 자세로 모든 것을 사랑하라.

그럼에도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처음부터 사소한 인생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주어진 시간을 사소하게 소비한 대가로 사소한 인생을 살게 될 뿐이다. / 31p

 

 

 

아이의 시야를 부모의 시야보다 좁히는 것은 쉽지만반대로 아이의 시야를 부모의 시야보다 넓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아무리 가르쳐도 아이는 부모의 안목과 견문 그리고 세계를 인식하는 범위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그게 바로 부모가 나아져야 하는 이유입니다부모가 세계를 인식하는 수준이곧 아이가 세계를 인식하는 수준입니다. / 44p

 

 

 



 

 

 

 

  요즘 아이들은 조기 교육과 선행 학습으로 일찍이 다양한 학습 환경을 접하고 있지만 정작 스스로 생각하는 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족하다고 한다부모가 철저히 학습 계획을 세우고 빈틈이 없는 학습 조건을 마련해주고 있지만, “네 생각은 어떠니?”라는 질문 앞에서는 주저한다는 것이다고작해야 타인의 의견이나 기존의 지식을 정리하는 정도의 원리적인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이처럼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힘을 기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부모가 너무 심하게 아이 삶에 간섭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아이가 혼자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시간을 만들어줘야 하는데부모의 빈틈없는 계획과 지나친 개입이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할 틈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시집 기탄잘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사상가 타고르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이런 가르침을 준다. ‘아이에게 너무 많은 책을 읽어주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잃게 되고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면 오히려 아무것도 볼 수 없다아이의 삶에 빈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모든 공간을 부모가 다 채우려 하지 마라.’ 오늘도 나는 엄마의 만족감이라는 이름으로 아이가 생각할 틈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혹은 아이가 조잘조잘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을 때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알았어!” 하고 아이의 솟아오르기 시작한 지적 욕망에 찬물을 붓지는 않았나 늘 유념해둬야겠다.

 

 

 

창조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과정에 충실하라머리에 억지로 지식을 집어넣으면 창조력이 작동하지 않는다어떤 것을 기억하는 게 그걸 안다는 뜻은 아니다그냥 기억할 뿐이다하지만 과정에 충실한 사람은 자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내게 집중하는 순간이 바로 창조의 시작이다.” / 78p

 

 

부모는 일의 중요성이 아니라 필요성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남들이 말하는 중요성이 아닌 내 아이에게 그게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중요성을 따라가는 사람은 타인의 생각에 의지하는 삶이고필요성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자기의 생각을 실천하는 삶이다모든 아이에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내 아이에게 필요한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 165p

 

 

아이들은 조언을 반기지 않아요대신 이렇게 제안하는 것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죠.

그걸 어디에 쓰면 좋을까?”, “다른 방법은 또 없을까?”

부모는 조언이 아니라 다른 방식을 제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부모의 제안을 통해 늘 사물의 쓰임을 생각하는 질문을 던진 아이는같은 공간에서도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니까요기억하세요많이 배운 아이는 자식은 쌓을 수 있지만지성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지식의 쓸모를 알아야 지성을 갖출 수 있습니다. / 167p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시 베껴 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받아쓰기나 띄어쓰기 공부를 따로 하지 않고 시를 베껴 쓰게 한 것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어휘와 띄어쓰기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이의 공부를 봐줄 수 없을 때면 시 베껴 쓰기를 하나 더 하게 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때울 때가 있다그리고 시를 다 쓴 아들의 공책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그치고 덮어버리기도 한다공교롭게도 우리 아이를 기품 있게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책 역시 베껴 쓰기를 강조하고 있었는데이때 저자는 아이가 베껴 쓰기를 하는 중간에 계속 질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게 뭐지?” “네 생각은 어때?” “네가 작가라면 어떻게 쓰고 싶니?” 와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언어로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마침 아이가 적으려 했던 시에 소쿠리를 만들자/아주 큰 소쿠리/은하수를 담는 가장 큰 소쿠리라는 구절이 있어 아이에게 이렇게 큰 소쿠리를 만들어서 우린 무얼 담아볼까?” 하고 물어보았다그날의 시 베껴 쓰기 시간에는 모처럼 아이와 상상의 너비를 넓혀보았다별 것 아닌 듯해도 그 순간 소쿠리에 가득 담은 아름다운 언어들은 아이의 마음속에도 차곡차곡 쌓이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언제나 아들의 취미를 존중해 아들이 쓴 것을 한 번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보통의 부모는 자녀가 쓴 작은 메모와 일기조차도 검사하려든다자녀교육에 치밀했던 제임스 밀이 왜 아들의 글은 읽지 않은 걸까두 가지 이유가 있다하나는 누구의 신경도 쓰지 않고 자유롭게 집필하기를 바랐기 때문이고또 하나는 비판에 주눅 들지 않고 아는 것을 자기의 논리대로 써나가길 원했기 때문이다아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게 놔둔 것이다아이가 쓴 것을 확인하는 순간그것은 주입식 교육이 된다아이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스스로 그것을 실천하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게 그냥 두어라. / 124p

 

 

 

  시인은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이다때문에 내 아이를 시인의 감각으로관찰자의 눈을 가진 아이로 기르라는 저자의 조언은 아이를 키우면서 반드시 새겨두고 싶은 말 중에 하나다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스쳐 보내지 않고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자신의 진짜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표현하는 법을 알 수 있어야 한다관찰자의 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보는 것만 볼 수밖에 없고보이지 않으니 없다고 생각하고 단념하는 걸 반복하다 보면 아예 눈을 감고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때문에 저자는 진짜 보는 법진짜 듣는 법진짜 느끼는 법의 근간이 되는 시인의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어쩌면 이건 부모 역시 시인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봐야 한다는 뜻은 아닐까천 개의 눈과 심장을 가진 내 아이의 타고난 감각을 열린 눈으로 바라봐주고 지지해줄 것모든 사람이 정문을 두드릴 때 뒤로 돌아가 뒷문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내 아이에게 시인의 감각을 길러줘야 한다가장 쉽게 다르게 표현하기’ 능력을 기르는 방법이 하나 있다먼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하나를 선택하라. ‘과자라는 단어를 선택했다면 아이에게 과자를 열 글자 이상으로 풀어 써보라고 하라아이들은 의외로 굉장히 세심하게 자기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아마 어렵지 않게 내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것’,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이름’ 등을 생각해낼 것이다아이는 원래 세심한 감각을 타고났다부모가 그걸 방치하고 단련해주지 않았을 뿐이다하루에 10분 이상 다르게 표현하기를 삶에서 실천해보라곧 시인의 감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 282p

 

 

인문학 교육의 열 가지 지침

①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한다.

② 공부는 공부하는 사람이 주도하게 한다.

③ 서둘지 말고때를 기다린다.

④ 공부의 시작은 겸손이다.

⑤ 부모가 직접 숙제를 낸다.

⑥ 배운 것을 나누게 한다.

⑦ 아이가 좋아서 하는 일은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다.

⑧ 공부의 목적을 바로잡는다.

⑨ 왜곡된 것을 분별할 안목을 가지게 한다.

⑩ 지적클래스에 변화를 주는 생각법을 교육에 적용한다. / 118p

 

 

 




 

 

 

 

  생각하는 아이질문하는 아이시인처럼 열린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는 부모가 열어 보이는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을 때 완성된다마찬가지로 스스로 공부하는 부모만이 아이를 스스로 공부하게 할 수 있다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이에게 호기심과 생각을 이끌어내는 질문을 하고 있는가’, ‘비록 엉뚱할지라도 아이가 건네는 질문을 제대로 마주하고 있는가’, ‘내가 정해놓은세상이 원하는 답을 아이에게 정해주고 있는 건 아닌가를 좀 더 고민해보게 되었다무엇보다 지금내 앞에 선 이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더 생각하며 마주보려 한다.

 

 

 

  근래에 읽은 자녀교육서 중에서 가장 크게 와 닿은 책이다아이가 커갈수록 부모의 소양과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듭 느끼고 있는 요즘읽는 내내 꼭꼭 씹어 먹는 마음으로 읽고 따라 쓰며 체화하려 했다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은 물론예비 부모가 될 부부가 함께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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