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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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는 서술자가문학이 이 불완전한 시대 속에서 무엇을 품어야 하는지를 열정적으로 보여주는 놀라운 작가다!

내가 왜 문학을 사랑하는지를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이 모두 설명해준다!

 

 

 

 

  “좋은 소설이란 그 외피가 스릴러이든 로맨스이든 상관없이 세상을 향해 지혜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작가란 자신의 신념을 자신만의 독자적인 형태로 이야기 속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올가 토카르추크는 그런 점에 있어 탁월한 서술가임에 틀림없다태고의 시간낮의 집밤의 집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로 이어지는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세상과 문학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자로서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자처해왔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그도 그럴 것이 범우주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존재론적 숙명과 실존적 고독인간과 동물 혹은 생태 전체에 관한 모럴리티소외되고 연약하고 힘없는 존재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 했던 일련의 시도들을 통해 그녀는 서술자가문학이 이 불완전한 시대 속에서 무엇을 품어야 하는지를 상당히 열정적으로 보여준다그리고 자신의 첫 에세이 다정한 서술자를 통해 그것을 다정함이라 명명한다이는 문학이야말로 물공기 다음으로 세상을 이어주는 다섯 번째 원소이며 세계를 구할 다정한 네트워크여야 한다는 문학의 소명에 관한 선언이다또한 우리가 왜 문학을 읽어야하는가에 대한 아름다운 찬가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책을 읽기 위해서다

 

 

  여기세상의 경계에 선 한 방랑자가 있다프랑스 천문학자 카미유 플라마리옹의 책에 실린 목각화에는 지구의 영역 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조화로운 우주의 질서를 바라보는 방랑자의 모습이 새겨져있다이 목각화는 한없이 복잡한 우주 차원을 향한 탐구가시적인 한계 너머를 향한 경탄과 환희상상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한편으로세상의 끝에 다다른 방랑자는 이 오랜 여정이 끝났음을 예감하고야만다거대한 세계를 향한 무한한 상상은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되어버린 자에게 더 이상 관심과 열정을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 올가 토카르추크는 지금의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세상은 오히려 작아졌다고 말한다네트워크의 연결과 보편화된 원격 감시 체계로 인한 세계의 축소 및 유한성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파놉티콘에 가두었다그중에서도 우리 인간이 세상을 통제하고 있으며 창조의 주인이라는 인식은 이 세상의 놀라운 복합성을 이해하려던 시도를 완전히 멈추게 했다.

 

 

 

  이에 올가 토카르추크는 문학(이야기)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원소라고 강조한다상호 간의 영향과 연결이라는 통합적 관점으로 세상을 조망하는 에너지가 문학만큼 강렬한 장르는 없기 때문이다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직조하며무한한 다채로움과 복잡성을 이해하게 해주고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하나의 존재로부터 또 다른 존재로 전달하게 만드는 문학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방랑자의 감각으로 살 수 있다또한 문학으로 하여금 중심적 관점을 과감히 포기하는 탈중심주의익숙한 사고방식이나 뻔한 행동반경을 벗어나려는 경향고질적인 의식이나 사고방식안정적인 세계관에 부합하는 공동체적 관습으로부터의 탈피를 꿈꾸는 카이로스적 사고를 지향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세계는 다시 드넓어질 수 있다이것이 우리 모두가 책을 읽어야하고서술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가능한 한 폭넓게 이해된다는 점에서 문학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와 유사하다네트워크 덕분에 하나의 존재를 구성하는 모든 개체 사이에 광범위한 교감과 연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문학은 정교하고 특별한 인간의 소통 수단이며그 수단은 명확하면서 동시에 총체적이다. / 39p

 

 

새로운 용어로 가득 찬 도서관을 만들어 보자중심부에서는 결코 들어 본 적 없는 기발하고 괴상한 콘텐츠로 그 공간을 채워 보자결국 언젠가는 단어나 용어관용구나 숙어의 부족 현상이 발생할 테니 말이다누가 알겠는가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기록하고 묘사할 새로운 장르나 스타일이 필요하게 될지그때가 되면 새로운 지도는 물론이고 기존의 사전이나 백과사전의 지평을 넘어서는 세계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영역을 뛰어넘기를 주저하지 않는 방랑자들 특유의 용기와 유머가 우리에게 절실해질 것이다그 세상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보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 43p

 

 

 




 

 

 

 

  올림포스의 신들 중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날개 달린 신을 신고 두 마리 뱀이 감겨 있는 독수리 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신하면 생각나는 이가 있을 것이다바로 전령의 신이자 여행의 신상업의 신도둑의 신인 헤르메스다지상에서부터 지하까지 가지 못하는 곳이 없고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지하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는 오직 그 뿐이다그는 소통의 행위가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난다올가 토카르추크는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이곳저곳에 퍼뜨렸던 이 신의 본질에게서, 언어를 통해 그리고 언어를 초월하여 사람들과 소통하고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인간의 경험을 전파하는 번역가들의 위대함을 들여다본다.

 

 

 

  유기체인 우리 인간에게 있어 번역가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번역가의 중재와 개입 덕분에 우리는 16세기의 작품을다른 세상의 언어를 현실의 감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번역가는 점점 노쇠해 가던 언어가 사장되지 않도록 그 언어가 다시 젊어지고오래된 씨앗에서 새로운 싹이 움트게 된다그런 의미에서 번역을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또는 하나의 문화를 다른 문화로 옮기는 작업일 뿐 아니라 일종의 원예 기술에 비유한 작가의 말이야말로 매우 절묘하다하나의 식물에서 가지를 잘라 내어 다른 식물에 접목한 뒤 새싹을 움트게 하고생장 에너지를 모아 본격적인 가지들로 뻗어 나가게 만드는 작업을 부단히 해왔던 번역가들덕분에 나는 늘 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지금 이 순간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을 누군가가 분명 있을 거라고나는 지금 그런 기적을 누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읽는’ 행위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지구 방방곡곡에 흩어진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헌은 각기 다른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가 발굴된 것이다이처럼 하나의 텍스트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연구되면서 같은 이야기의 여러 버전을 제공하는 언어학적 다성 음악이 만들어졌고그렇게 다른 하늘 아래에서 다른 방언으로다른 속도로 이야기들은 재생과 부활을 거듭했다위대한 헤르메스 또한 이런 식으로 활약하며 아이디어와 이야기를 전 세계를 퍼뜨렸다. / 99p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잃고 집단의 언어가 사적인 언어를 모조리 집어삼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질병은 없다관료정치인학자성직자 들이 바로 이러한 질병을 앓고 있다이럴 때 유일한 치료법이 문학이다창작자의 언어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행위는 우리에게 일종의 백신과 같다즉흥적으로 만들어져서 일종의 도구처럼 남용되는 오늘날의 일그러진 세계관에 저항하는 백신고전을 포함해 문학 작품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강력한 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문학은 집단의 언어가 한때 지금과는 다르게 기능했고 과거의 세계관이 현재와는 확연히 달랐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그러므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 105p

 

 

어떤 인물의 가장 미묘하고 복잡하고 세밀한 경험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그리고 누군가의 삶을 또 다른 누군가의 앞에 펼쳐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게다가 그 모든 게 실존 인물의 삶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기적이라는 것이다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나는 독서의 기적에 대해 지금껏 어떤 심리학자도 완벽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그것은 지구 방방곡곡에서 매 순간 발생하는 보편적인 기적이다. / 109p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역사를 써나가는 개별적인 서술자들이다때문에 이 책에서 제시하는 문학의 가치와 독서 방법문학적 인물이 탄생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여정은 우리가 세상과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어내는 서술자로서 자신의 영토를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그 중에서 작가가 반드시 장려되고 소중히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기벽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의식적으로 지녀야 할 감각인 듯하다기벽은 지금껏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각에 대한 의식적인 탐색이다자신만의 참신함과 새로움으로 무장한 채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것과 간과된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기벽은 서술자들이 간직해야 할 창의적인 마음가짐의 핵심이자 정수다주류의 안전함을 따르지 않고세속적인 우리 삶의 틈바구니 어딘가에 흩어져 있던 은유와 비유를 상상에 의해 끊임없이 소환할 수 있는 삶그러한 영토 속에서 우리는 진정 생동하는 서술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괴팍하고 기이한 성향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좋은 작가가 될 수 없습니다그래서 기벽은 장려되고 소중히 다뤄져야 합니다중심에서 멀어지려는 이 원심적 경향만이 기존의 사회적 지평 너머에서 존재하고 벌어지는 일들을 포착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중심 또는 주류에 머무르려는 성향은 작가의 입장에서 볼 때 편리하고 안전한 선택이긴 하지만 창의성의 측면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기에 현재 또는 미래의 작가들은 그 주류의 흐름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자신을 제어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지적 주류만큼 창작자에게 위험한 것은 없으니까요. / 259p

 

 

메탁시의 영토즉 중간 지대란 예술이 자원을 흡수하여 비축하는 거대하고 강력한 영역입니다이곳에서 이미지가 생성되고은유과 상징이 탄생하며이를 통해 우리 내부가 외부와 접촉할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메탁시의 영토는 세상의 다차원적 복잡성을 투영함으로써 모든 것을 단순화하려는 인간의 사고로부터 세상을 보호합니다. / 328p

 

 

 




 

 

 

 

  무엇보다 다정함이야말로 이 세상이 살아 움직이고 있고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으며더불어 협력하고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는 힘이다다정함이라는 이 놀라운 도구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 방식 덕분에 우리의 다양한 체험들이 시간을 여행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게까지 다다르게 된다어릴 적올가 토카르추크는 엄마의 사진을 보며 표정이 슬퍼보였던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엄마는 그녀에게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그리워하느라 슬픈 거라고’ 말했다내가 아직 세상에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날 그리워할 수 있느냐는 그녀의 물음에 엄마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때로는 순서가 바뀔 수도 있어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그 사람이 거기 존재하게 되는 거란다.” 세상과 세상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어내는 서술자를 탄생시킬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평범한 물질적 속성이나 인과 관계확률의 법칙을 초월하여 세상의 더 많은 존재들을 껴안을 수 있는 다정한 서술자가 보다 많아지기를나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본다.

 

 

 

  『다정한 서술자를 읽으면서 내가 왜 문학을 사랑하는지를사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가깝게 느꼈다읽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고한 문장 한 문장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 꾹꾹 눌러 남느라 다소 읽는 데 시간이 걸렸다이 책을 읽기 전에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 중 한 권을 꼭 먼저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그런 뒤에 이 책을 읽으면 그녀의 언어와 문장에서 더 큰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나는 앞으로 쭉 그녀의 작품을 쫓아다니며 읽게 될 것 같다그녀가 보여주는 세상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독자로 내내 머무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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