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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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침묵하는 자에게는 그 무엇도 보여주지 않는다!

장르를 훌쩍 뛰어넘어선날카롭고 시린 문제적 미스터리!

 

 

 

 

  늦은 밤변호사인 판옌중은 친구인 추궈성으로부터 도와달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비밀에 부쳐달라는 당부와 함께조만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친구에겐 아들이 하나 있는데만 열여섯 살이 된 소녀와 성관계를 가져 상당히 곤란해졌다는 소식이었다판옌중은 소녀의 엄마가 딸과 관계를 가진 일명 의붓오빠들을 찾아다니며 합의금을 타가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걸 금세 알게 되었지만친구인 추궈성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거금으로 합의를 끌어낸다하지만 서로 합의 하에 이루어진 관계이며 오히려 합의금으로 무마한 것이 억울하다는 식으로 나오는 친구의 아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던 그 시각어찌된 일인지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심지어 딸 아이를 데리고 평소 아내가 일하는 학원으로 찾아갔더니 휴가를 냈다는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병원에 가야 한다며 매달 꼭 하루는 휴가를 냈다는 학원 동료 선생님의 말은 그를 당혹스럽게 한다게다가 돌아가셨다던 아내의 어머니가 얼마 전학원을 찾아오기까지 했다니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아내가 뭔가를 숨기는 게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는 변호사인 판옌중이 실종된 아내인 우신핑의 행적을 쫓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판옌중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아내의 어머니가 버젓이 살아 있는 데다 실종된 날아내가 어머니의 집에 들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판옌중으로서는 아내가 자신을 속인 것만으로도 황당할 지경인데아내의 어머니는 우신핑이 예전에 저지른 일’, ‘여러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한이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말을 퍼부어대며 내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게다가 인근에 사는 아내의 동창생을 찾아갔다가 아내를 향한 깊은 적의를 느끼기도 한다. ‘나는 왜 신핑이 한 말을 의심해보지 않았을까왜 아내의 과거를 더 깊이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판옌중은 아내를 알고 있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면서 이제껏 자신이 알고 있던 아내가 맞는지그녀 안에 두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닌지 깊은 의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비밀이란 그런 것이다비밀의 존재를 숨기고 없는 척할수록 그 비밀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어디를 가도 그 비밀이 따라온다시간이 쌓이면서 그 비밀을 지키고 싶기도 하고 없애버리고 싶기도 한 두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며 우리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 111p

 

 

사람이 평생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는 대상은 배우자일 거라고 생각했다많은 이들이 결혼을 울타리에 비유한다그 울타리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특수한 외형과 생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거짓말은 결혼 생활에서 윤활제이지 걸림돌이 아니다. / 133p

 

 

판옌중은 철학적인 문제를 떠올렸다숲속에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쓰러졌을 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나무는 쓰러질 때 소리를 낸 것이 맞을까오늘 만난 이 사람들이 없다면 우신핑의 또 다른 일면이 존재하는 것일까혹은 이들에게는 판옌중이야말로 우신핑의 또 다른 일면일까? / 140p

 

 

 



 

 

 

 

  한편아내가 실종된 날 만나기로 약속했다던 한 여인이 판옌중의 앞에 나타난다오드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아내와 한때 한 집에서 살았을 만큼 상당히 가까운 친구 사이인데다 그들의 결혼 생활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그녀는 아내가 실종되었다면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느냐며 도리어 그를 의심한다그도 그럴 것이 판옌중이 우신핑과 재혼하기 전의 아내를 때린 과거가 있는 데다실종되기 전에 두 사람이 싸웠다는 사실을 오드리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고 보면 독자로서는 상당히 혼란스러워진다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판옌중에게 사실은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한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나 나쁜 짓을 저지른 우신핑이 자신의 비밀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여러 의심이 혼전에 혼전을 거듭하는 까닭이다그런데 이야기는 또 다른 곳에서 뜻밖의 국면을 맞이한다우신핑의 동창에게서 우신핑이 과거에 친구의 오빠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 것이다그 과정 속에서 판옌중은 그녀의 과거 사람들로부터 강간 같은 사건에서는 왜 여자 쪽의 말만 듣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었거나 당시 모든 여학생들이 흠모하던 청년의 신세를 망친” 것으로 매도되고 있었던 아내의 옛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그녀는 피해자가 아닌가어째서 사람들은 그녀를 더 비난하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가운데판옌중은 추궈성의 아들이 겪은 일과 우신핑의 과거라는 이 유사한 관계 속에서 아내가 정말 피해자가 맞는지 확신하지 못한다어쩌면 아내가 자신에게도 의도적으로 접근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한편으로는 자신의 친딸이 아님에도 살뜰하게 보살펴주었던 아내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이 충돌하는 것을 느낀다대체 우신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그녀를 믿지 말라는 사람들의 경고는 정말 사실일까?

 

 

 

전샹은 여태 그런 식으로 이성과 접촉한 경험이 없었어근데 갑자기 어떤 여자애가 나타나서 애교를 부리며 매달리면그런 상황에서 그 여자애가 좋은 친구인지 나쁜 친구인지 어떻게 구분하겠어…….”

판옌중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묵묵히 있었다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특성이 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 165p

 

 

그러면서 이렇게 당부하셨죠우리 딸을 망치지 말아주세요신핑이 멍청하게도 선생님께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주변에 알려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자기도 알게 될 겁니다그래도 저는 어떻게든 부모님을 설득해보려고 했는데 몇 마디 하기도 전에 또 제 손을 잡고 말하더군요롄 선생님지금 선생님이 하시는 행동이 신핑을 해치는 일이에요여자애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순결인데순결을 잃었으면 전부 다 잃은 거잖아요걔 때문에 우리 가족 전부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그러면서 이 일을 모른 척해달라고 하더군요.” / 295p

 

 

그때까지 판옌중은 자신이 성폭행이라는 개념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다한 사람의 의사에 반해 성교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떨리는 손으로 서명한 글씨를 보고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소녀는 그로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 혹은 또 다른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 소녀가 앞으로 보게 될 세상은 어떤 색깔일까? / 303p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살아가던 한 여성의 비밀 속에 드러나는 추악한 사회적 본성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 더 집요해지는 폭력성을 묵직하게 표현해낸 미스터리 소설이다성장기의 트라우마가스라이팅가정 폭력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양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현실감 있게 구현하면서도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아우를 줄 아는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특히 중후반부에 이르러 이제껏 내가 읽었던 모든 것들의 판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적인 반전이 가히 압권이다.

 

 

 

  그러면서도 가해자와 피해자 가르기에 몰두하며 습관적으로 비난할 대상을 찾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상당히 치밀하게 그려내고벼랑 끝에 내몰린 자들의 숨은 목소리를 전면에 드러내려했던 진지한 시도는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훌쩍 넘어서는 느낌이다때문에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작품이다혹자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하지만 부조리한 것들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힘은 아주 의외의 것에서 얻어지기도 하는 법이다나는 미스터리야말로 굉장히 기이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모순된 것들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 우샤오러 같은 미스터리 작가를 만난 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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