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돈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5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1201_11.jpg)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사회와 그를 둘러싼 ‘돈’의 이중적 가치를 깊이 있게 다룬 에밀 졸라의 역작!
프랑스 제2제정은 184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나폴레옹 3세가 국민투표로 신임을 얻고, 이듬해 헌법을 제정해 황제로 즉위한 시기였다. 그는 크림전쟁에서 러시아를 누르고 청나라에도 출병했지만 이탈리아 통일전쟁에 관여했다가 이탈리아 용사 가리발디가 1천 명의 붉은 셔츠 부대를 이끌어 전선을 구축하자 침략을 단념했다. 이어 미국이 남북전쟁을 하는 동안 멕시코를 차지하려던 계획도 미국의 경고로 좌절되면서 나폴레옹 3세의 위신이 크게 실추되었다. 이에 떨어진 권위를 세우기 위해 1867년, 파리에서 만국 박람회를 열면서 여러 대외 인사들이 방문하고 도시는 전에 없던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후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나폴레옹 3세는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에밀 졸라의 소설 『돈』은 바로 이 무렵인 19세기 후반, 프랑스 증권시장을 배경으로 탄생한 한 편의 금융?정치 드라마다. 프랑스 제2제정의 화려한 번영과 암울한 쇠퇴의 역사를 ‘만국 은행’의 흥망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역작이다. 1890년 2월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졸라는 『돈』을 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돈이나 투기, 증권거래소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가톨릭 은행과 유대인 은행의 혈투에서 비롯된 동시대의 거대은행 ‘위니옹 제네랄’의 파산 사건이 아마도 그로 하여금 금융자본주의시장에 눈을 뜨게 한 계기가 아닐까 추측된다. 이는 그에게 있어 금융이라는 거대경제활동과 돈이라는 화폐가치가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음을 알려준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당대 지식인들의 대부분이 돈의 파괴성과 혐오성에 주목하는 것과 달리, 졸라는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돈의 이중적인 속성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돈이란 ‘도처에 해독을 끼치고 파괴를 일삼’으면서도 ‘사회적 식물을 키우는 효모’이자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 대역사에 필요한 부식토’면서 ‘내일의 인류가 자라나는 밑거름 역할’을 해왔음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의 부정적인 역할에 대해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게 없어진 오늘날, 돈의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인간의 희로애락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작품은 그래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것을 다시 정복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열망, 그가 결코 올라보지 못한 곳까지
오르고 싶은 열망,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정복한 도시에
발을 올려놓고 싶은 열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 15p
주인공인 사카르는 주머니가 텅 비고 굶주림이 극에 달한 채 파리의 길모퉁이에 도착한 날을 잊지 못했다. 나폴레옹 3세의 쿠테타가 터진 바로 다음날, 형인 루공 장관의 권력을 빌어 대성할 꿈을 안고 파리에 도착했지만 형이 그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죽고 재혼을 통해 그도 한때는 벼락출세를 하기도 했지만 돈과 황금은 그의 손가락 사이로 순식간에 스르르 빠져나갔다. 아들인 막심 역시 아버지를 자기 집에 거두기를 거절했다. 레스토랑 샹포에서 만난 증권중개사, 투기꾼들, 재력가들 역시 그를 무심하게 대할 뿐이었다. 때문에 증권거래소 안팎으로 주문을 주고받는 소리, 한시부터 세시까지 마치 거대한 심장처럼 박동하는 열기의 도가니 속에서 다시 한번 황금의 왕국을 세우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1201_12.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1201_13.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1201_14.jpg)
바로 그 무렵, 그가 아믈랭과 카롤린 부인 남매를 만난 건 천의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엔지니어인 아믈랭은 사카르를 흥분시키는 큰 사업의 열쇠를 쥐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동방 철도회사 사업이었다. 동방의 경이로운 역사, 즉 소아시아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끈처럼 펼쳐질 그 철도망이 사카르에게는 진정한 투자, 돈의 생명줄처럼 보였음이 분명했다. 이 계획은 사카르의 머릿속에서 카르멜 탄광, 대형 여객선 합동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지중해의 모든 운송회사를 하나의 신디케이트로 묶는 거대한 사업으로 부풀어 올랐음은 물론이요, 그들이 이 사업의 주인이 되는 날 로마에서 예루살렘으로 교황을 오게 해 찬란한 가톨릭의 시대를 여리라는 원대한 계획으로 나아가기까지 했다. 이 사업의 발판을 이룰 만국 은행의 출범은 그렇게 허황된 꿈으로 세워진 모래탑 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일련의 도면을 보세요. 이건 대역사로서, 소아시아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관통하는 철도 시스템을 건설하는 거죠…… 편리하고 빠른 교통의 부재, 바로 그것이 이토록 풍요로운 나라가 겪고 있는 침체의 근본 원인입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여행과 운송이 언제나 노새나 낙타의 등에서 이루어지죠…… 만약 철도가 사막의 끝까지 침투한다면, 이거야말로 혁명이 아닐까요! 그땐 산업과 상업이 열 배로 늘어날 테니 문명의 승리가 아닐 수 없고, 바야흐로 유럽이 동방으로 가는 관문을 뚫는 셈입니다.” / 82p
“봐요! 만국 은행과 함께 우리는 끝없는 대지, 아시아라는 낡은 세계 위에 진보의 곡괭이로, 연금술사의 몽상으로 돌파구를, 더없이 넓은 지평을 열 것이오. 물론 야망이 이토록 거대한 적은 없었고, 나도 동의하지만 성공과 실패의 조건 역시 이토록 모호한 적은 없었지.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고, 단언컨대 우리의 존재가 알려지자마자 대중은 전례없이 열광할 것이오…….” / 158p
사카르의 들뜬 예언은 과연 적중했다. 그의 계획이 시장에 소문나면서 정보를 찾아 헤매는 자, 한 탕을 노리는 자, 자리를 쫓는 자, 명예로운 자리에 이름을 대고 싶어 하는 자들이 그를 찾아왔다. 2500만 프랑의 자본금이 필요한 만국 은행을 설립하기 전에 우선 발행주식의 팔할, 즉 적어도 4만 주를 매수함으로써 사전에 주식 발행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자산가들, 은행가들, 유명 인사들이 이 새로운 금융회사를 후원하기로 약속하자 여기저기 청탁자들이 줄을 섰다.
그 중에는 실크 사업에서 투기 열정으로 갈아타면서 자기 사업의 이윤을 소진하고 있던 세디유, 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지참금을 벌 요량으로 전 재산을 주식에 쏟아 부은 드주아, 투기에 빠져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치마폭도 내어줄 산도르프 남작 부인, 귀족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몇 주일 동안 버터 없이 감자만 먹고 헌 신발을 신고 다니는 보빌리에 백작 부인 같은 이들도 있었다. 사카르는 이들의 손을 잡으며 기적의 번영과 성공을 약속했고, 그들의 부풀어 오르는 꿈과 함께 만국 은행은 모든 것을 뒤흔들고 모든 것을 파괴할 강력한 기계로서 무한질주의 궤도에 올라탔다. 과연 그 선로의 끝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결코 내릴 수 없었던 이 폭주기관차는 어떤 말로를 맞이할 것인가.
사카르는 자기 능력의 한계 외에 다른 한계를 모르는 인간, 구속도 장벽도 없이 고삐 풀린 본능을 자신의 욕망만을 좇아 달려가는 인간이었다. 그는 아내를 자기 아들과 공유했고, 아들도, 아내도, 자기 수중에 ㄸ?ㄹ어진 모든 것을 팔아치웠다. 심지어 그는 자기 자신마저 팔았고, 그녀 또한 팔고 있었으며, 그녀의 오빠를 팔 것이었다. 그는 오누이의 가슴과 머리로 돈을 만들 것이었다. 그는 이제 사물과 사람을 녹여 돈을 주조하는 화폐 제작자일 뿐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녀의 눈에 만국 은행이 도처에서 돈을 발산하며 돈의 호수, 돈의 바다를 이루고, 그 돈의 바다 한가운데서 별안간 은행이 가공할 굉음과 함께 수직으로 침몰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아! 돈이여, 세상을 더럽히고 아귀아귀 삼키는 끔찍한 돈이여! / 310p
사카르가 새로운 증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가볍고 어렴풋한 소문이 돌았다. 그는 자본을 1억 프랑에서 1억 5천 프랑으로 증식하고자 했다. 지금은 특별한 열광의 시간, 이를테면 제국의 모든 번영, 도시를 변형시킨 거대 공사, 광기 어린 돈의 유통, 사치를 위한 맹목적 소비가 투기의 뜨거운 열기로 수렴되는 운명적 시간이었다. 각자가 자기 몫을 원했고, 하룻밤 만에 벼락부자가 된 다른 사람들처럼 재산을 불리고 향락을 즐기기 위해 자기 돈을 투기판에 얹었다. 태양빛을 받으며 펄럭이는 만국박람회의 깃발, 샹드마르스 광장의 조명과 음악, 거리에 넘쳐흐르는 세계의 군중이 파리를 도취시켜 고갈되지 않는 부와 지고한 권력의 꿈속으로 몰아넣었다. / 323p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1201_15.jpg)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1201_16.jpg)
소설은 투자의 열풍이 부르주아에서 노동자와 농민들, 한 자리 숫자의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들, 은퇴를 앞둔 문지기들, 고양이와 함께 사는 노처녀들, 생활비가 하루에 10수에 불과한 퇴직자들, 적선으로 빈털터리가 된 사골 사제들, 증권거래소의 재앙으로 이미 파산한 최하층 금리생활자들을 휩쓸고 지나가는 광경과 그들의 일확천금을 향한 광기 어린 질주를 다양한 캐릭터를 동원해(이국 이름을 외우는 것이 곤혹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들의 욕망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무엇이 그들의 현실감각을 상실케 하는 것인지 매우 구체적이다 못해 치밀하게 보여준다. 그러는 사이 이 과열된 숫자 놀음 뒤에 은밀하게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들, 이를 테면 기존 주주들이 매수를 거부한 주식을 명의 대여인을 통해 사카르가 떠안음으로써 시세상승을 이어가는 장면이나 신문사를 선점해 유리한 기사를 싣는 등 여러 부도덕한 일들의 면면까지 낱낱이 까발림으로써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에 날카로운 매스를 가한다.
이는 너무나 빈약한 지참금, 그녀가 감히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신혼살림 밑천, 기다리는 구혼자가 나타난다면 금세 바닥날 자산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으며 운명과 싸웠고, 태생의 특권을 전혀 포기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고고하게 합당한 재산이 있는 척했다. 두 발로 걸어서 외출할 수도 사교 모임 만찬에 앙트르메를 생략할 수도 없었기에, 그리고 딸의 영원히 불충분한 지참금에 50프랑을 더해야 했기에 그녀는 생활 경비를 삭감하고 몇 주일 동안 버터 없이 감자만을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을 괴롭고 미숙한 일상의 영웅적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영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은 매일 조금씩 그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 92p
끝으로, 카롤린 부인의 가슴을 무한한 연민으로 채운 것은 미지의 사망자들, 이름도 사연도 알려지지 않은 희생자들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런 사람들이 외딴 숲과 수풀 도랑을 가득 채웠으며, 나무둥치 뒤에는 어김없이 이름 모를 시체, 고통으로 헐떡거리는 부상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 얼마나 가공할 무언극인가! 평생 애써 모은 돈을 오직 하나의 주식에 투자한 가난한 군소 금리 생활자와 개미 주주들의 무리, 은퇴한 문지기들,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창백한 노처녀들, 편집증적인 지방 퇴직연금 수령자들, 적선으로 빈곤해진 시골 사제들, 그들은 모두 너무나 가난해서 하루하루 빵과 우유를 마련하기도 힘들었고, 소득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재앙을 맞이하곤 했던 최하층민들이었다. / 501p
이 외에도 사카르와 군데르만의 끝 모를 적의를 통해 들여다 본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 속 카톨릭교와 유대교의 대립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주요 포인트다. 또한 자본주의자로 대표되는 사카르와 사회주의자로 대표되는 시지스몽을 통해 ‘돈’의 사회적 가치와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대립되는지를 뚜렷이 보여주는 일련의 장면들도 이 책을 다채롭게 사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다만, 많은 등장인물과 비슷한 흐름이 중첩되는 문장들로 다소 느슨한 감을 주는 면면들은 아쉬움을 남긴다. 작가의 목소리가 많이 개입되는 작품들이 주는 피로감 같은 것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사회와 그를 둘러싼 ‘돈’의 이중적 가치를 깊이 있게 다룬 이 작품은 역시 ‘에밀 졸라다’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의 작품은 늘 나를 번뜩이게 한다.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21201_1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