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오늘의 젊은 작가 39
김홍 지음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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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도 아닌내 몸 속에서 빠져나간 본체가 를 소외시킬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낯설고낯설지만 그래서 싫지 않은 김홍이라는 세계!

 

 

 

  그저 흔한 유체이탈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무더운 여름밤바퀴벌레에게서 도망치는 꿈을 꾸고 있을 무렵 본체가 쓰윽 일어나더니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나가버렸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말이다예상과 조금 다른 게 있다면본체가 주민등록증과 장롱 밑에 감춰 둔 비상금 뭉치를 들고 달아난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고지서가 날아오고 외상까지 갚으라는 소식이 들려왔다는 점이다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 안에서 가장 양아치 같은 녀석이 빠져나갔나보다 하며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본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무엇이든 간에 결국엔 에게서 가 떠난 것인데어찌된 게 본체는 연락도 없이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는 그저 본체의 법칙금과 각종 채무를 갚아가며 늘 그래왔던 것처럼 살아가는 수밖에언제부턴가는 고지서나 독촉장도 날아오지 않자 바르게 살고 있다는 증거인지살고 있지 않다는 신호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를 보며 도리어 내가 더 황망해졌다다른 누구도 아닌내 몸 속에서 빠져나간 본체가 를 소외시킬 땐 어떻게 해야 하지본체가 빠져나간 뒤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 속절없이 차오르는 눈물 앞에선 도리가 없었던 처럼 그의 물기 어린 우울감에 그만 전이되고 말았다.

 

 

 

본체가 빠져나가버리고 난 후그때야 비로소 시작되는 나의 이야기

 

 

  ‘는 본체가 떠난 지 5년 만에 인천공항으로 데리러 오라는 전화를 받는다손을 흔들지 않았다면 알아보지 못했을 만큼 타인처럼 느껴지는 어떤 이물감이 반가움보다 앞선다본체는 볼리비아를 포함해 웬만한 남미 도시는 다 가봤고 러시아에도 갔다 왔다고 한다어떻게여권도 없이하지만 본체를 따라 간 곳에서 우리들을 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던 이들을 만나보니 그건 그리 중요한 일 같지 않아 보인다고향인 덴버에서 아마추어 마술사로 활동했던 리처드 펭귄 씨는 어느 날 코트 안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마술을 하는 도중 실수로 자기 본체를 꺼내 날려버렸다 하고박정현 씨는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주차 관리 요원으로 근무하던 중 손에 든 경광봉을 어깨까지 올리려다 쓰러지며 본체가 빠져나갔다 한다지수 씨는 지하철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순간 본체가 빠져나갔는데 그 뒤로 마트나 도서관 출입구를 지날 때마다 사이렌이 울렸다고 한다지수 씨가 지나가면 주차된 차가 경적을 울렸고 편의점의 바코드 리더기가 말을 듣지 않는 등 각종 오해를 사기도 했다고우리들을 총괄하고 있는 안거룩 씨도수능을 앞둔 가장 나이 어린 오히 씨도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상계동의 한 건물 2층에 모여든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더 많은 우리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역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본체가 작용했고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본체를 통해 개인들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던 그들의 말은 대체 무엇일까모든 지체가 본체 될 때 누릴 지복이란 건 또 무엇일까전국의 우리들이 모여들 본체의 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어떤 모종의 담합 같은, ‘전 지체의 본체화라는 구호와 그럴 듯한 신념 같은 것을 앞세운 비상한 단체는 아닐까이따금 그런 부류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불온한 기운이 감지되기도 하지만 는 이곳으로 오는 발길을 끊지 않는다그저 이 어수선함이중대한 일을 앞두고 활력이 넘치는 듯한 이 공간이 어쩐지 는 마음에 든다드디어 자신의 인생에 무슨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고평생 혼자 심심하게 살다 갑자기 친구들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던 거다.

 

 

 

우리는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어.” 본체가 말했다. “더 많은 우리들을.” 본체는 주민등록증 하나를 꺼내더니 보석을 감정하는 전당포 주인처럼 눈 가까이 대고 살펴보았다냄새를 맡기도 하고 형광등에 비춰 보기도 했다. “언제나 더 많은 우리가 필요하거든.”

주민등록증으로 뭘 할 수 있는데그냥 플라스틱 쪼가리잖아공인인증서도 못 받을걸고등학생들이 편의점에서 담배 사는 데 쓸 수는 있겠네.”

네 말이 맞아이건 그냥 형식일 뿐이지진짜 우리를 만드는 건 믿음이야.” 본체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형식 없는 믿음은 금방 무너지지.” / 60p

 

 

때가 되면 돌아올 거예요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본체가 육포를 뜯어 던졌다개가 껑충 뛰어올라 받아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길을 보여 주는 것뿐이에요길 위에서 얼마나 머무르는지는 자기 몫인 거지.” / 70p

 

 

 

  하지만 본체의 밤 행사에 불이 나고 본체가 잠적하면서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 울음은 멈출 줄을 모른다. “왜 울고 그래요제가 뭐 나쁜 말한 것도 없는데.” 한 카페에서 안거룩 씨를 우연히 만날 날, ‘는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울음이 주체가 되지 않아 그만 탁자에 엎드려 엉엉 운다나조차도 본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는데본체는 없고 는 있으니까 마치 동네북처럼 우리들은 나를 노렸다경찰 조사에서는 만 빼고 다들 단합을 목적으로 수락산 불암산 등지를 산행했다는 것을 알았느냐고 묻더니 이내 학창 시절에 교우 관계가 원만했느냐는 질문 따위로 곤혹스럽게 했다하긴생각해보면 울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본체가 제멋대로 떠난 뒤에도 는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왔고삶을 지속시켰으며, ‘임을 증명하기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가 임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의 무례를 견뎌내기까지 했는데사실 뭐 뾰족한 수도 없다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그저 우는 수밖에.

 

 

 



 

 

 

 

  이처럼 김홍의 엉엉은 의 몸에서 본체가 떠난 뒤비로소 나의 진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는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혹은 에 갇혀 있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거나 로부터 버림받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소설의 두 축을 이루는 모임인 슬사모(슬픈 사람들의 모임)’와 우리들은 세계와 화합하지 못한 상처들을 저마다 지니고 있지만 정작 본체에게서조차 위로받을 수 없어 슬픈 존재들이다그날 가 엉엉울어젖히다 못해 몇날 며칠 동안 울음이 그치지 않아 비도 멈추지 않았던 것은 그 모든 존재들을 대신해 울어주고픈 김홍 작가의 마음은 아니었을까물론 운다고 해서 뭐 하나 이렇다하게 달라지는 건 없지만이상하게 한바탕 울고 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말개지곤 하는 것처럼.

 

 

 

근데 번번이 지잖아요한 번도 이겨 보지를 못하고.”

이번에 졌어도 다음에 이길 수 있어요저는 그렇게 믿어요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그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이거예요니들이 지랄해 봤자 세상 안 바뀌어저는 그 말 진짜 웃기다고 생각하거든요당신이 아무리 지랄해 봤자 우리도 안 바뀌거든.”

정말 안 바뀌어요?” 그람 씨가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물었다.

바뀔 수도 있겠죠그래도 지금은 일단 안 바뀐다고 해 놓는 거야좀 센 척하면 어때요장담하는 거 좋지 않지만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되는 거예요이번에는 장담도 좀 해보는 거죠한 번 싸우고 끝나는 게 세상에 어딨어요야구도 9회 하고 테니스도 한 세트에 여섯 게임 따야 돼요축구에는 로스 타임이 있고 승부차기도 있잖아요이번 경기 끝나면 다음 경기 또 있고…… 우리 같이 참호를 파요전선을 넓게 만들고 각 부문에 속속들이 침투하자고요그리고 기다려요꼭 개를 키워요고양이도 좋고요.” / 194p

 

 

 

  사실 엉엉은 다른 의미에서 엉엉 울고 싶어지는 소설이다읽으면서 내내 응응?” “오잉?” “에앵?” 따위의 표현들을 우물거리며 헤아릴 길이 없는 전개와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자주 혼란스러워지곤 했기 때문이다소설 속에는 쿠팡의 로켓프레쉬당근마켓강형욱집밥 박선생(집밥 백선생등 온갖 현실적인 언어로 가득한데정작 질서와 서사를 거부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묘사하는 서술 방식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터라 다소 얼떨떨했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낯선 감각이 싫지 않다본체가 없는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결심한 나는 어제와 좀 더 멀어져야 할 테니까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거나 원하는 이름을 획득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그 낯선 세계로 기꺼이 걸어 들어갈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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